“공자가 말했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그에게 복으로 갚아주고 착하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그에게 재앙으로 갚아준다.’” <【명심보감】, 범립본 지음·김원중 옮김>
순리가 진리다
젊은 시절 수학과정에서 나의 한문 스승 덕분에 <명심보감>의 한문 원문을 다 외었었는데, 지금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은 천명편의 “종과득과 종두득두 천망회회 소이불루(種瓜得瓜 種豆得豆 天網恢恢 疎而不漏, 오이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콩을 심으면 콩을 얻는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성기지만 새지는 않는다.)”라는 대목이다. 그 많은 내용 가운데 왜 이 부분만 뇌리에 각인되어 있을까. 아마도 인과의 무서움과 그 인과가 바로 하늘의 주재(主宰)로 이뤄진다는 믿음이 각인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 인과의 현상이 빨리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마저 느끼게 한다. 권모술수로 자신의 아성을 구축한 사람들의 말로가 일찍 찾아오고 그에 걸맞는 죄과를 받는다. 인간 의식의 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하늘의 개입이 이뤄지지 않으면, 인간의 무도함을 더 이상 바로잡을 수 없기 때문일까.
이 만고의 고전은 그러한 하늘의 마음과 인간의 양심이 하나임을 잘 보여준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는 회광반조(廻光返照)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선조들은 사람이 죽기 전에 나타나는 잠깐 동안의 정상적인 상태를 회광반조라고 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상태로 신변을 정리하고, 살아 있는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는 그 순간이다. 어떤 동물에게도 이러한 현상은 없다. 이는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수확’의 순간이다. 이 지상에 뿌려진 씨가 어떻게 수확되어 하늘로 돌아가는지 자신이 그것을 확인하도록 한다. 인간은 하늘의 뜻을 대행하는 하늘의 자손이다. 그래서 맹자는 “하늘을 따르는 자는 살고, 하늘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라고 한다. 이 마음을 놓는 순간 그는 정신적 고아가 된다. 역사에서 그렇게 미망(迷妄)에 갖혔다가 사라져간 사람은 부지기수다.
말 그대로 <명심보감>은 마음에 새겨 보감으로 삼을 글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비록 봉건시대의 윤리를 강조하는 측면이 있지만, 삶에서 터득한 그 지혜는 이 시대에 더욱 절실함을 느낀다. 조선시대는 어린이들의 교양서로서 기능했다. 성종의 어머니 소혜(昭惠) 왕후는 <소학>과 <명심보감> 등의 책에서 언행의 본보기가 될 내용을 뽑아 1475년에 <어제내훈(御製內訓)>을 편찬하기도 했다. 일종의 궁중 교과서에 해당한다. 김원중은 해제에서 원말 명초의 인물인 범립본이 1393년 혹은 4년에 <명심보감>을 편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여말 선초의 조치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들여와 펴냈다고 한다. 여기에는 공자와 맹자를 비롯하여 장자, 열자, 유비, 당 태종, 송 휘종, 사마온공, 도연명, 주돈이, 주희 등 내로라하는 뛰어난 인물들의 격언이 실려 있다. 그 내용은 하늘의 질서, 깨달음, 깊은 철학적 사유, 증명된 원칙, 공동체를 위한 준칙 등 다양한 차원에서 발견된 빛나는 지혜의 언설로 이뤄져 있다. 삶의 나침반인 수양서인 셈이다.
목차는 착함을 잇는다는 계선(繼善), 하늘의 뜻인 천명, 천명에 순응하라는 순명(順命), 효도와 가족의 도리인 효행, 자기 수양인 정기(正己), 분수를 지키라는 안분(安分), 마음을 보존하는 존심(存心), 성품을 경계하라는 계성(戒性), 부지런히 배우라는 근학(勤學), 자식을 가르치라는 훈자(訓子), 마음을 살피라는 성심(省心) 상·하, 바른 가르침의 기준인 입교(立敎), 정사를 다스리는 치정(治政), 집안을 다스리는 치가(治家), 의로움에 편안하라는 안의(安義), 예의를 지키는 준례(遵禮), 말을 삼가라는 언어, 우정의 도리인 교우(交友), 부녀자의 덕행인 부행(婦行)의 20편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한반도에 들어와 더해진 5편이 실려 있다. 그것은 덧붙임인 증보, 반성을 위한 8가지 노래, 효도와 행실 속편인 효행, 청렴하고 올바른 처신인 염의(廉義), 배움을 권하는 권학이다.
이러한 내용을 관통하는 힘은 무엇보다도 천지의 순리자연한 도일 것이다. 천지가 질서정연하게 순환하듯이 삶도 보이지 않는 원칙을 중심으로 전개됨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사마온공이 “남모르는 덕을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쌓아서 자손을 위한 계획으로 사는 것”이 금이나 책을 모아 남겨주는 것보다 낫다고 하는 말은 마치 <금강경>의 무주상(無住相) 보시와도 같은 가르침이다. 소위 음덕이다. 자손이 보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그 덕이 미치겠는가. 허공의 작용이다. 텅 비어 있는 것 같지만 하늘은 결코 그 덕을 무시하지 않는다. 인간이 천지의 기운을 타고 났으니 천지와 소통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늘의 기운이 맑으면 기분이 좋고, 천둥이 칠 때 하늘이 나의 양심에 호통 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장자가 “만일 사람이 선하지 못한 일을 해서 이름을 떨친다면 다른 사람이 비록 해치지 않더라도 하늘이 반드시 그를 죽일 것이다”라고 한 말은 공자가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라고 한 말을 부연한 것에 다름이 아니다. 하늘을 속인 사람이 설사 천수를 누렸다고 해도 죽음의 순간에는 지옥의 불마차가 그의 눈앞에 나타나 태워가게 마련이다. 하늘에 역행하는 자는 반드시 하늘이 거두어들인다.
다음은 바른 관계에 대한 가르침이다. 역지사지가 바로 그것이다. 모든 종교의 핵심인 황금률이 <명심보감>도 관통하고 있다. 국가와 국가,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길은 황금률 외에는 없다. 외교에서도 호혜평등의 원칙을 관용어로 쓴다. 이를 파괴하는 것은 곧 약육강식의 본능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무소불위의 제국은 사라졌다. “다른 사람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신을 꾸짖으면 허물을 적게 할 것이요,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면 사귐을 온전히 할 수 있다.”, “만일 남이 나를 정중히 대해줄 것을 바란다면 내가 남을 정중하게 대하면 될 뿐이다.” 이는 경험칙의 지혜다. 국가의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은 이 관계의 철학을 어떻게 극대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성리서>를 인용하여 “다른 사람이 착함을 보거든 자신의 착한 것을 찾고, 다른 사람의 악함을 보거든 자신의 악한 것을 찾을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비로소 이로운 점이 있을 것이다.”, “나의 착한 점을 말해주는 사람은 나의 도적이요, 나의 나쁜 점을 말해주는 사람이 나의 스승이다.” 범인은 밖으로 향하지만, 성인은 이처럼 늘 자신의 내면을 응시한다.
<명심보감>은 우리에게 일상의 지혜를 베풀고 있다. 공자가 “선비가 도에 뜻을 두면서, 허름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러워한다면 그와는 더불어 논의할 만한 가치가 없다”라고 한 말은 본말이 전도된 현실에서 죽비가 되어 내려치는 것 같다. 재물과 권력 챙취가 삶의 목표가 된 우리들에게 가치 있는 삶은 무엇인가, 진정한 기쁨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 <공자삼계도>에서 “일생의 계획은 어릴 때에 있고, 1년의 계획은 봄에 있으며,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라는 격언은 특히 젊은이들이 생을 기획하고 설계할 수 있어야 함을 말한다. 분야별로 수많은 전문가가 있지만, 최고의 인생은 삶에 대한 전문가가 되는 일이다. 더욱 가슴을 후벼파는 일은 뭐니뭐니 해도 부모에 대한 공경이다. 자식의 오줌과 똥은 싫어하지 않지만 늙은 어버이의 눈물과 침은 싫어한다. 하여 “여섯 자나 되는 그대의 몸뚱이는 어디로부터 왔는가”라고 묻는다. “젊으셨을 때 그대를 위하여 살과 뼈가 닳으셨도다”라며 부모를 공경하라고 한다. 각박해진 사회가 가족을 해체시키고, 인간의 도리를 무디게 한다. 지은 업은 인과의 터널을 거쳐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하늘의 이치다. 성현 군자들의 고귀한 가르침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우리 인간은 이를 외면하고 스스로 불바다에 뛰어들어 고통을 겪는다. 아,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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