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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5월 2일(토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아상(我相)을 버려야 만복(萬福)이 저절로 들어오는 이유”
법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아상(我相)을 버려야 만복(萬福)이 저절로 들어오는 이유”라는 주제를 가지고 함께 수행의 길을 깊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복을 원합니다.
건강하기를 바라고, 가정이 평안하기를 바라며, 하는 일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복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복이 외부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환경, 좋은 인연, 좋은 기회가 있어야 복이 온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복 또한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바뀌면 삶이 바뀌고, 마음이 밝아지면 복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괴로운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나라는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옳다’, ‘내가 인정받아야 한다.’, ‘내가 손해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마음을 좁히고 긴장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마음이 바로 아상입니다. 아상은 ‘나’라는 생각에 대한 집착이며, 그 집착이 클수록 마음은 무거워지고 삶은 점점 더 힘들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마음이 상하는 이유도 ‘나’라는 생각 때문이고, 누군가 나에게 불리한 말을 했을 때 화가 나는 것도 ‘나’에 대한 집착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괴로움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아상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의 핵심을 ‘나’를 내려놓는 데 두셨습니다. 무아(無我)의 가르침은 바로 이 아상을 비우는 데 있습니다.
법우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만복자귀의(萬福自歸依)는 범유하심자(凡有下心者)라” 무릇 마음을 낮추는 사람에게는 만 가지 복이 저절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겸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상을 내려놓는 수행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마음을 낮춘다는 것은 자신을 억지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다’라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 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놓아버릴 때 비로소 마음은 부드러워집니다. 부드러운 마음은 막힘이 없고, 막힘이 없으면 흐름이 생기며, 그 흐름 속에서 복이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됩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그리고 그 낮은 곳에는 모든 물이 모입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낮아지면 모든 좋은 인연과 복이 모이게 됩니다.
반대로 마음이 높아지면 어떠할까요.
스스로를 높이고, 남을 판단하고, 항상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은 점점 더 고립되고, 복이 들어올 자리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늘 자신을 낮추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남을 먼저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마음을 길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심(下心)의 수행이며, 아상을 내려놓는 첫걸음입니다.
법우 여러분, 아상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쌓여온 습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 중심의 생각이 올라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억지로 없애려 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아, 지금 내가 나를 내세우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순간, 그 생각은 힘을 잃게 됩니다. 이처럼 알아차림은 아상을 내려놓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대념처경에서 항상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걷고, 서고, 앉고, 눕는 모든 순간에 자신의 마음을 살피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아상이 순간순간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나’라는 생각에 끌려가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라도 작은 실천을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내 말이 옳다’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는 것입니다.
그 순간 이미 아상은 약해지고, 마음은 한층 부드러워지게 됩니다.
또한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라고 생각하기보다, ‘이 또한 인연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마음의 전환이 바로 수행이며, 아상을 내려놓는 길입니다.
법우 여러분, 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지만, 아상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을 뿐입니다.
마음을 낮추고, 자신을 비우며, 남을 향해 열려 있는 마음을 가질 때, 그동안 보이지 않던 복이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됩니다.
오늘 이 법문을 통해 법우 여러분 모두가 아상을 조금씩 내려놓고, 하심의 수행을 실천하여, 만복이 저절로 들어오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두 손 모아 기원드립니다.
우리는 흔히 ‘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자존심, 내 생각, 내 입장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지킨다는 행위가 때로는 스스로를 더 힘들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상하고, 상대방의 태도 하나에 분노가 일어나는 이유는 바로 ‘나’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왜 나를 무시하지’, ‘왜 나를 인정해 주지 않지’ 이러한 생각들이 마음을 점점 더 좁게 만듭니다. 이처럼 아상은 우리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하고, 경쟁하게 하며, 인정받으려는 마음속에서 불안과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스스로를 괴롭히는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金剛經)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나’라는 생각에 머무르지 말고,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어떤 생각에 머물러 있을 때 마음은 막히게 됩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고정된 생각이 많을수록 마음은 유연함을 잃고, 그 안에 괴로움이 쌓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내려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마음은 자연스럽게 넓어지고, 상황을 받아들이는 힘이 생기며, 타인을 이해하는 여유가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아상을 내려놓을 때 나타나는 변화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부딪히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가족, 이웃, 직장 동료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기쁨도 느끼지만, 동시에 많은 갈등과 괴로움도 경험합니다. 이 관계의 갈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내가 맞다’는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서로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할 때, 그 사이에는 화합이 아니라 충돌이 생기게 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하심입니다.
한 걸음 물러나서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는 것,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 이것이 관계를 밝히는 등불이 됩니다.
아상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나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좁은 나에서 벗어나 넓은 우리로 확장되는 길입니다.
내가 아닌 우리를 생각할 때, 마음은 자연스럽게 넓어지고 따뜻해지며, 그 속에서 복이 자라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비를 가장 큰 덕목으로 삼으셨습니다. 자비란 상대를 나처럼 여기고,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라는 생각이 강할수록 이 자비는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내 입장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상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자비가 자라나고, 자비가 자라날 때 우리의 삶에는 평안과 복이 함께하게 됩니다.
법우 여러분, 중요한 것은 아상을 단번에 없애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랜 습관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대신 매 순간 알아차리고,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누군가 나를 불편하게 할 때 ‘왜 저럴까’라고 생각하기보다, ‘지금 내 마음이 반응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우리는 감정에 끌려가지 않고, 한 발 물러서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이 한 걸음의 여유가 바로 수행이며, 아상을 내려놓는 시작입니다.
법우 여러분, 수행은 특별한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말을 할 때, 행동을 할 때, 생각을 할 때마다 우리는 수행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나’를 내려놓는 순간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쌓이면 점점 더 자연스럽게 아상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오겠습니까.
바로 여유, 평안, 그리고 복이 들어오게 됩니다.
마음을 낮춘 자리에는 갈등이 머물지 않고, 다툼이 오래 지속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해와 화합이 자리 잡게 됩니다. 그래서 “만복자귀의 범유하심자”라는 말씀은 단순한 덕담이 아니라, 삶의 원리를 정확히 꿰뚫은 가르침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상이 그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부족함만을 느끼게 합니다.
아상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이미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게 되고, 그 감사 속에서 더 큰 복이 열리게 됩니다.
오늘 하루, 법우 여러분께서도 자신을 낮추는 한 걸음을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한 걸음이 인생을 바꾸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아상을 내려놓는 그 자리에서, 만복이 저절로 들어오는 삶이 펼쳐지기를 두 손 모아 기원드립니다.
법우 여러분, 이제 마지막으로 “아상(我想)을 버려야 만복이 저절로 들어오는 이유”를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새기며 오늘의 법문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내가 손해 보지 않으려 하고, 내가 인정받으려 하며, 내가 더 편안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이 지나치면 삶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관계는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됩니다.
아상은 겉으로는 나를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근본 원인이 됩니다. 마음을 좁히고, 시야를 가두며, 끊임없이 비교와 갈등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진정으로 편안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누군가를 이겼을 때입니까, 아니면 누군가를 이해했을 때입니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내려놓았을 때 편안함을 느끼고, 양보했을 때 마음이 가벼워지며, 이해했을 때 관계가 부드러워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아상을 내려놓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변화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자기를 이기는 것이 가장 큰 승리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기려 하지 말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라는 가르침입니다.
아상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결국 자기 마음을 이기는 것입니다.
화가 일어날 때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욕심이 생길 때 한 걸음 물러서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수행입니다.
이러한 수행은 결코 거창하지 않습니다. 일상 속의 아주 작은 순간에서 이루어집니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를 받았을 때 바로 반응하지 않고 한 번 숨을 고르는 것, 그것이 수행입니다. 누군가를 판단하기 전에 그 사람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이 수행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매 순간 아상을 내려놓을 기회를 만나고 있습니다.
법우 여러분, “만복자귀의 범유하심자”라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
마음을 낮추는 사람에게는 만 가지 복이 스스로 돌아온다는 이 가르침은 결코 우연한 말씀이 아닙니다. 마음을 낮춘다는 것은 스스로를 비우는 것이고, 비운 자리에는 반드시 새로운 것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자리에 들어오는 것은 평안이며, 지혜이며, 좋은 인연이며,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복입니다. 반대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으면 어떠하겠습니까. 이미 ‘나’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행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입니다.
더 가지려 하기보다 내려놓는 것이고, 더 높아지려 하기보다 낮아지는 길입니다.
법우 여러분, 물이 흐르는 모습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르며, 그 낮은 곳에 모든 물이 모입니다.
이처럼 하심의 마음은 모든 복을 모이게 하는 그릇과 같습니다.
우리가 그릇을 낮추면 낮출수록 더 많은 것이 담기게 되고, 그릇을 비우면 비울수록 더 많은 것이 채워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아상을 내려놓을 때 만복이 들어오는 이유입니다.
법우 여러분 모두가 아상을 조금씩 내려놓고, 하심의 수행을 실천하여,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복이 들어오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두 손 모아 발원드립니다.
부처님의 자비광명 속에서 늘 평안과 건강이 함께하시기를 기원드리며, 오늘의 법문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첫댓글 부처님 법문 고맙습니다.
마음에 새겨 행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