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는 중부 유럽의 내륙 국가로 인구는 천만 명, 면적은 93천 평방키로미터로 한국과 비슷하다. 수도는 부다페스트이며 국민의 대다수가 마자르족이다. 화폐는 헝가리 포린트이다. 사적 소유를 기반으로 한 자유시장경제체제로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서유럽의 국가들보다 현저히 낮지만 동유럽의 국가들 가운데서는 상당히 앞선 편에 속한다. 16세까지의 무상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의학 수준이 높다.
북쪽으로 슬로바키아, 동쪽으로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남쪽으로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서쪽으로 오스트리아와 접해 있다.
헝가리의 2대 주요강인 도나우·티소 강은 헝가리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로지른 후 남쪽의 세르비아로 들어간다. 도나우 강이 티소 강의 서쪽에서 흐르며, 헝가리를 흐르는 도나우 강의 지류들은 알프스 산맥에서 발원한다. 티소 강은 북쪽의 카르파티아 산맥에서 발원한다.
공식 언어는 헝가리어로 국민 대다수인 98%가 사용한다. 전체 인구의 약 60%가 로마 가톨릭교이며, 개신교가 25%를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 그리스 정교 및 소수 종교로 분포된다.
1980년대말 중앙계획경제체제를 사적 소유를 기반으로 한 자유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시작으로 개혁제도가 마련되었다. 시장에 의한 가격조절체제로 이행하기 위한 발판으로 기본 소비제품들에 대한 가격통제 및 정부 지원을 폐지한 것도 이와 같은 개혁제도의 일환이며, 다수의 부실한 국영기업들도 문을 닫게 되었다. 헝가리는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서유럽의 국가들보다 현저히 낮지만 동유럽의 국가들 가운데서는 상당히 앞선 편에 속한다.
1949∼89년에 헝가리는 헝가리 사회노동당 1당체제하의 공산주의 공화국으로 당이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 전반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말 소련의 동유럽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헝가리는 소련식 정치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1989년 10월 헝가리 의회는 공산당의 독재를 종식시키고, 폭넓은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1949년의 헌법을 개정했다. 헌법개정안 가운데는 야당을 합법화시키는 조항, 자유선거 규정에 관련된 조항, 대통령직을 신설하는 조항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예술과 과학 분야에 큰 공헌을 한 헝가리인이 많다. 헝가리 태생의 과학자 가운데 알베르트 센트 디외르디, 게오르크 본 베케시, 유진 위그너, 에드워드 텔러, 레오 실라르드, 존 폰 노이만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업적을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노벨상을 수상했다. 음악계의 페렌츠 리스트, 벨로 보르토크, 졸탄 코다이 역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시인 야노슈 오로니와 샨도르 페퇴피 및 작가 칼만 미크사트와 지그몬드 모리츠의 작품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헝가리는 1241년 몽골인들의 침공을 받고 인구의 절반이 사망하는 재난을 겪었다.
자민족이 세운 왕조인 아르파트 왕조가 막을 내린 1301년부터 1918년까지 헝가리는 단 1차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줄곧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14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이 공격을 가해왔으며, 1568년에 이르러 지금의 헝가리 영토는 3개 지역으로 분할되었다. 서쪽의 대상(帶狀)지역인 로열 헝가리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았으며, 동쪽의 트란실바니아(대략 지금의 루마니아 북서부)는 1566년 투르크의 지배하에서 자치권을 누리고 있었고, 나머지 지역(중앙 평원)은 투르크의 직접 통치를 받았다.
오스만 제국의 뒤를 이어 헝가리에 대한 주권을 획득한 합스부르크 왕가는 카를로스 3세와 마리아 테레지아의 재위기간을 제외하고는 투르크인들과 마찬가지로 전제정치를 실시했고, 빈번하게 일어나는 반란을 가혹하게 진압했다. 마침내 1800년대초에 개혁이 이루어졌지만 당시 헝가리 전인구의 60%를 차지하고 있던 마자르인 외에 여러 민족들은 마자르인에게 유리한 새로운 법안에 불만을 품었다.
1848년 빈에서 혁명이 일어났고, 1년 뒤 로요슈 코슈트의 지휘하에 헝가리는 독립을 선언했다.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의 지원에 힘입어 헝가리에 대한 통치권을 재주장했지만 국력이 쇠퇴하자 헝가리와 타협하고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설립했다. 그러나 민족문제는 끊이지 않았고, 결국 제1차 세계대전 후 헝가리는 독립했다. 루마니아·체코슬로바키아·유고슬라비아·오스트리아·폴란드·이탈리아가 모두 헝가리 영토의 일부를 할양받았는데, 헝가리는 잃어버린 영토의 일부라도 되찾기 위한 노력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에 대항하여 독일에 협력했다.
헝가리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소련 점령군은 1920년 설정된 국경선을 재확인하는 1947년 조약의 이행을 확실시하기 위해 계속 헝가리에 주둔했다. 1945년 헝가리 공산주의자들은 친소 임시정부를 출범시켰으며, 1949년에는 헝가리 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1956년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하는 격렬한 반정부시위운동이 일어났지만 소련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야노슈 카다르가 집권하면서(1956∼88) 헝가리 공산당은 경제·문화 분야에 보다 적극적으로 자유화 정책을 도입했고, 이에 헝가리는 소련의 동유럽 블럭 국가들 가운데 가장 자유스러운 국가로 꼽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1989년에는 권력에 대한 독점을 포기하여 체코슬로바키아·루마니아 등의 주변국가와는 달리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국민시위를 피해갔다. 1989년 10월 헝가리의 헌법은 다당제를 인정하도록 수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1990년 봄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자유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승리한 중도 우익 성향의 헝가리민주포럼과 그 연합세력은 자유시장 경제체제로의 점진적인 이행을 표방했다.
1990년 5월 헝가리민주포럼이 새 정부를 구성함에 따라 헝가리에서 45년 동안 이어진 공산주의 통치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애초 기대와는 달리 20∼30%를 웃도는 높은 인플레이션, 전체인구의 14%에까지 이른 급격한 실업률 증가 등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진 가운데, 1994년 봄 2번째로 실시된 자유선거에서 헝가리사회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좌파가 다시 득세했다.
의회의 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헝가리사회당은 자유민주연합과 연대해 연립정부를 출범시켰으며, 새 정부는 경제안정과 시장경제로의 전환 등 기존정부의 정책을 계속 추진해갈 것임을 밝혔다.
1987년 12월 부다페스트에 한국무역사무소가 개설되었으며, 헝가리는 1988년 3월 서울에 상공회의소사무실을 상주시켰다. 1988년 8월에 한·헝가리 상주대표부 설치 협정을 체결하고, 같은 해 10월에 한국은 주 헝가리 한국 상주대표부를 부다페스트에, 헝가리는 12월에 주 한국 헝가리 상주대표부를 서울에 개설했다. 이후 헝가리는 한국과 1989년 2월에 공식 수교를 맺었고 상주대표부는 대사급으로 격상시켰다.
한국의 입장에서 헝가리는 공산국가 가운데 정식 국교를 수립한 첫 번째 국가이다. 1989년 11월에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노태우 대통령이 헝가리를 방문했으며, 1990년 11월에는 곤츠 대통령이 방한했다. 이후 한국은 2001년 12월에 대통령 김대중, 2004년 10월에 이해찬 국무총리, 2015년 7월에 정의화 국회의장 등이 헝가리를 방문했고, 헝가리는 1990·1993년 대통령 괸츠, 1991년 5월에 국회의장 사바드, 1995년 12월에 총리 G. 호른, 2007년 4월에 괸츠 외교부장관, 2015년 4월에 아데르 대통령이 방한했다.
심 산
부다페스트 구 시가지▼
부다페스트 야경▼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 야경, 세체니 다리 ▼
다뉴브강▼
독일의 슈바르츠발트('검은 숲'이라는 뜻) 삼림지대에서 시작해 유럽 대륙의 남동부로 약 2,850㎞를 흘러 흑해로 들어간다. 이 강은 독일·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헝가리·세르비아·불가리아·루마니아·러시아 등을 거쳐 흐른다.
도나우 강 유역의 총면적은 81만 6,000㎢에 이른다. 이 면적의 약 56%는 도나우 강의 오른쪽 지류로 물이 빠지며, 이 지류들은 알프스 산맥을 비롯한 산악지방에서 물을 모아 도나우 강으로 흘러든다. 도나우 강의 연평균 유출량은 1초에 7,193㎥이다.
국회의사당 ▼
국회의사당▼
신시가지 바츨라프 광장▼
다뉴브강 선착장 ▼
세체니 다리 ▼
국회의사당 ▼
야경이 아름다운 부다페스트 궁전 ▼
부다페스트 호텔 ▼
어부의 요새- 어부의 요새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마차시 성당 옆에 있는 네오 고딕 네오 로마네스크 스타일의 테라스이다.
19세기 헝가리 전쟁 당시 어부들로 이루어진 시민군이 요새를 방어해 어부 요새(fisher's fort) 라 명명되었다. ▼
어부의 요새와 마챠시 사원 ▼
국회의사당▼
다뉴브 강과 페스트 지구 ▼
마챠시성당▼
어부의 요새▼
마챠시 성당▼
성스테판왕 동상▼
마차시 성당 내부▼
부다페스트 왕궁▼
성 이슈트반 대성당 ▼
성당 내부▼
어부의 성▼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