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접(避接)과 피서(避暑) 소운/박목철
옛 분들은 역병이 돌거나 병마에 시달리게 되면 머무는 곳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머물다 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오곤 했다. 도가적인 관념에서 뭔가 터의
기를 거슬렸다는 겸손한 마음에서 이에 순응하는 마음이기도 했다. 이를 피접이라 하는데 상대적으로
생활이 어렵던 백성에서 보다는 왕실이나 사대부 가에서 흔히 행하던 병에 대처하는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피서라는 말은 최근에 일반화된 현상으로 옛 분들에게는 피서라는 개념 자체가 별로 없었다.
옛 분들은 집터를 잡을 때 기의 흐름을 잘 고려해 통풍이 잘되는 곳에 자리 하였고 집에 구조도 대청
마루를 중심으로 앞마당에는 볕이 잘 들어 기온이 높게, 뒤뜰에는 수목을 심어 그늘을 만들어 온도 차에 의한
대류를 대청에 위치한 문을 통해 흐르게 함으로써 대청마루에 자리를 깔고 누우면 그 자체가 피서였다.
한여름 무더위에도 마을 정자나무 그늘 밑은 늘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도 같은 이치의 온도 차의 대류 때문이다.
지금은 인구의 밀집으로 대류의 흐름은 아예 무시 된 채 집을 지으면 안 될 곳에 자리한 집들이 널려 있다.
거기다 온난화까지 겹쳐 여름이면 더위에 숨이 막혀 시원한 자연을 찾아 피서를 떠나는 풍습이 자리 잡았다.
우한에서 발생한 역병은 우리가 살아 온 삶의 방식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우선 자신의 집터에서 가능하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겁주는 준칙이 우리를 옥죄고 있고,
어려움이 닥치면 교회나 절을 찾아 안녕을 빌던 치성 자체가 악으로 치부되어 연신 언론 및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으니 말이다. 신께 구원을 청하러 가서 역병에 걸려 온다는 자체가 신에 대한 믿음의
붕괴로 이어질까 걱정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이 이어진다면, 부처님이나 하느님에 의존하던 인간의 신앙
자체가 발붙일 곳이 없어질 것이기에 해보는 걱정이다.
* 마스크를 쓰고 부처님을 뵈어야 하는 참담한 현실, 사바세계의 업이려니,

나마, 어른들은 어려운 현실을 이해했다기보다는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 자체가 능동적 복종이라는
타협책을 찾게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왜 꼼작 말고 집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조심하기로 하고 바람이라도 쐬어 주자- 이런 마음으로 동해안을 따라 백암온천을 찾게 되었지만, 역병
중에 여행이라니 마음은 편할 리가 없다. 그래도 다섯 살배기 꼬마와 5학년 손주 녀석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하니 잘했다는 위안을 삼기로 했다. (5살 손주는 늘 높은 집(콘도) 가자고 졸라댔으니 좋아할 만도 하다)
직장에 다닐 때 울진 원자력 발전소 출장이 잦아 백암은 자주 찾던 곳이라 어떻게 변했을까 내심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찾은 백암은 교통도 좋지 않고 오래된 곳인 탓인지 쇠락해진 관광지의 모습에
더해 코로나 사태로 인한 불경기까지 겹쳐 한마디로 썰렁한 분위기였다.
축제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한여름의 동해안은 한마디로 젊음과 축제의 마당이라 할 만큼 열기가 넘쳐나고, 도로는 차들로 붐비는 게
통상이었지만, 올해는 한적한 분위기였다. 나마 문을 연 해수욕장도 검문소를 통과하듯 마스크를 쓰고
인적 사항을 기록한 후 열을 재 정상이라야 통과 시켜 주었으니 축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검문소를 통과한 사람은 고무 밴드를 팔뚝에 차게 해 무단 출입자를 가려내려는 통제가 있었다)
*동해안 기성망양 해수욕장의 한적한 풍경, 여타 해수욕장도 다를 바 없었다.

* 무료 풀장까지 설치해 피서객을 유치해 보려 하지만, 앞날이 걱정스럽다.

현실이야 어떠하든 태양에 달궈진 모래는 따뜻했고, 바닷물은 차가웠다.
철썩이는 파도는 쉬지 않고 밀려왔다 밀려갔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햇살은 눈 부셨다.
비치 파라솔 아래 어른들은 더웠지만, 물장구에 모래성 쌓기에 바쁜 아이들은 행복하다 재잘거렸다.
드문드문 피서객들이 내는 소음과 한적한 한여름의 해안의 풍경이 어우러져 묘한 감상으로 다가왔다.
처음 겪어보는 역병의 공격에도 2020년의 해수욕장은 삶의 여정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고 있었다.
손주들도 마스크를 쓰고 들어와 물놀이 하던 경자년의 여름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한 토막 추억으로,
* 5살 손주가 하도 다녀온 물놀이를 아쉬워하기에, 한적한 글램핑 캠핑장을 찾아 하루를 쉬었다.
코로나를 걱정하며 동해안을 다니기보다는 한결 편안하고 마음 놓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어디를 가나 어른들은 불편하지만, 애들이 좋아하니 고생한 보람은 있다.
녀석들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컸으면 좋겠다.
* 글램핑, 냉장고에 에어컨까지 갖춘 고급 천막 숙소에 수영장, 계곡까지 품어 피서에는 제격이지만 역시 한산하다.

* 천막 아래 계곡물이 흐르고, 저녁이면 숯불을 피워 줘 바비큐의 호사를 누릴 수 있다.

* 계곡물은 차가워 오래 있기가 어려울 정도,

* 혹시 사람이 붐비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수영장을 손주가 독차지 했다.

* 말이 텐트이지 삼중 구조라 아늑하고 덥지도 않았다. 밤에는 에어컨을 꺼야 했다.

* 막내 손주는 집에 안 간다고 떼를 썼다. 녀석 요즘은 제 형을 무척 따르고 할배와 형의 호감 서열이 수시로 바뀐다.

* 이 판국에 놀러 다니다니?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면 노는 것도 힘든 과제일 뿐입니다. 하지만 손주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놓치기 싫은 작은 행복이기에 기꺼이 나서는 것이지요,
다음에는 소년기에 꿈이었던 캠핑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써 보려 합니다. 건강하기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