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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남예 언님 증언
1990/02/18, 전남완도군 군외면 교인리 : 강 남예
기록 : 김 종북
언니 오빠 삼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멋대로 짐승처럼 야성으로 산 것 같다. 언니와 6살, 오빠와 3살 차이다. 내가 9살 때 언니 결혼했고, 내 성격은 선머슴아 같아서 남자들과 연 띄우고 못치고 놀았다. 아버지는 9살에 돌아가셨다. 7살 때 땅파기 좋아해서 감자도 심었다. 공부하고 싶어도 시켜주지 않으니 콩 감자 내 것 따로 심어보았다. 첫해 콩 농사해서 까보니 신짝으로 하나 가득 찼다. 담요 한 장 만큼 내 밭을 만들어 8, 9살 까지 땅을 팠다. 그 시절 아이가 땅을 파면 부모를 일찍 여인 다고 했는데 15살에 어머님 가시고 고아 되어 할머니와 살다가 19살에 할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일찍부터 어머니께 출가시키지 말라고 졸라댔다. 어릴 때부터 장로교회 주일학교에 다녔다. 불신가정에서 나 혼자 교회에 다녔기에 교회 야학에 보내주질 않아 불평스러웠다. 다른 집들은 아이들을 공부 잘 시킨다고 맡겼다. 숙진봉 산자락 밑에 집을 지어 불상한 노인 둘쯤 모시고 살고 싶었다. 그 때 불상한 노인 복식 어머니가 있어 늘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이 두영 전도사 있을 때 주일 밤에 나가다 만났다. 할머니 노망하여 못나가다 광주 해남 동광원 알려주어 가서 보니 고아들 기르는데 천사들 같다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때는 내 나이 22살 때다. 오빠는 24살에 결혼했다. 23살 때 동광원 보내 달라 하니 성경에서 독신생활 기록 찾으면 보낼 수는 없고 심부름해 줄 수 있다하여 질문하여 고린도전서 7장에 있다고 하니 잘 찾았다고 하여 나이도 23살 과년하여 동무도 없으니 빨리 보내달라고 하여 허락 받았다.
해남 김준호 씨 댁에 가서 광주에서 차가 올 때 동광원에 갈 수 있다 하였다. 그 때가 6월 하절기였다. 차를 못 타니 60리 길을 하루 종일 걸어서 복희 어머니한테 들어갔다. 식구들은 들에 나갔다고 없고 굵은 콩을 주 어 먹고 있는데 성령 받았다는데 저렇게 건방져? 일 안 나가고 콩만 먹고 있는가? 의심이 갔다. 김 선생님 밤에 남반에 가시고 복희 어머니 곁에 가서 자라고 하여 가니 언니들이 와서 누더기 입고서 성경도 잘 읽고 설교도 잘 하였다. 나도 광주 가서 알고 믿어야 하겠다고 생각되어 광주에 보내달라고 졸라댔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고집 부린다고 나무람 하나 졸라대서 해남까지 김준호 선생 계시는 곳에 찾아가 설교시간에 이현필 선생 소개 듣고 천사처럼 여겨져 보고 싶은데 복희씨 어머니 기도도 않고 잠만 잔다고 하였다. 이전도사님은 이튼 날 간다고 하여 광주로만 가겠다고 졸라댔다. 해남으로 가는데 천천히 왔다고 노해서 핑 갔다. 농사, 8일후 이 선생님 수레기 어머니 진도에 다녀온다고 들렸다. 그래서 차타고 함께 광주로 올라 왔다. 가서 보니 고아 보모 많은데 나만 무식쟁이 여서, 한 달쯤 사는데 나물죽 보리된장 물에 타서 나물만 먹고 사는데 공부 못하고 애기 6 맡겨 목욕시키는데 어떻게 말랐는지 뼈 가죽뿐 이였다. 하도 측은 하여 옴이 올라 손발이 붓고 방 쓸면 딱지 부스러기가 많이 나와 옷 오를 가봐 벽장에 올라가자고 쓰러진다고 하면 턱에 힘주어 괜찮다고 하면서 우겼다. 1달하고 못하겠다고 공장에 다니면서 성경학교 다니고 싶다고 하였다. 어머니들이 지키고 있어 도망칠 수도 없었다.
동무가 생겼는데 대구에는 성경학교가 많이 있고 일도 가능하다 했다. 어느 날 내일 새벽에 나가자고 했다. 새벽 기도시간에 뒤에 쳐져 있다가 도망치려고 하는데 순갑 언니가 지키고 있었다. 발바닥 없는 신 신고 언니 방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머니 방에서 순갑 언니가 나오다가 어디 가려는가 묻 길래 시침 떼고 있다가 어머니한테 말하려 가는 중에 도망쳐 나왔다. 뒤돌아보면서 계속 달려 송정리 까지 왔다. 대구 기차표는 못 끊고 돈 부족하여 김제 표 사가지고 멀미 핑계 대고 모른 채 하고 대전까지 갔다. 대전에서 무임승차로 파출소에 잡혀갔다. 자고 갈 수 있어 잘 되었다고 갔는데 빨리 나가라고 하여 나가는데 어머니 한분이 같이 가자고 해서 돈이 없다고 하니 아무것이라도 주면 된다고 하여 그분 치마 주고 거기서 잠을 잤다. 나가더니 감을 두 개 가지고 와서 먹고 나왔다.
15일 걸려 얻어먹으며 대구로 걸어갔다. 부엌에서 기다려 방에서 남은 밥 나오면 조금씩 얻어먹고 탱자 고얌 대추 주워 먹으면서 밀 이삭 감자 수수 모가지 꺾어 먹었다. 팔월 추석 영동에 들어가 이장 집에 찾아들어갔다. 임가라니 종씨 나왔다고 촌수 따지더니 동생 벌 된다하여 걸게 차려주어 잘 먹었다. 큰집 간다고 문 걸고 그 집에서 자라하여 자고 예배시간 쯤 되어 공중에서 큰소리가 들리는데 ‘너희는 만물가운데 하나인 생물 이니라’
그 후 또 길을 가는데 산골을 지나게 되었다. 호랑이 밥 될 가 걱정하면서도 외길을 하루 종일 가다가 해가 저물어 이장 집에 찾아가 행랑채에 있다가 간첩 조사한다고 이사무실로 오라해서 갔더니 청년들이 칼을 차고 경찰이라고 하면서 겁을 주고 증명을 내 놓으라 했다. 언니가 증명이 없다하니 간첩은 삐라를 감추고 다닌다더라. 내놓으라. 하였다. 우리는 간첩 아니라 성경책뿐이라 하니 옷을 벗기고 조사한다 하였다. 노인들이 하지 말라하여 가까스로 모면했다. 또 하루는 언니 시집가라는 말도 했다. 홀어머니 주인집에서 아이 못 낳는 집에 시집가면 호강할 것이라 했다. 어린사람 돈 벌어 고향 보내준다고 해서 ... 길동무 없어지니 큰 걱정이 되었다. 고생스러우니 쉽게 살겠다고 하여 세례교인인가/ 수술도 하고 애 못나지 않느냐, 먹고 보자고 우겨 중매쟁이가 와서 선보러 와서 한참 얘기하고 있었다. 아이 나주면 집도 지어 주겠단다. 저녁은 남자 집에 가서 먹자고 하여 국수를 주어서 먹었다. 이에 잡힐까 걱정도 나면서 중매쟁이 집에서 모여 얘기 중에, 남자가 떨게 되었다. 무릎 까지 그러니 나가 버렸다. 어제 밤 꿈에 삼촌과 진호 씨가 끌고 나가 굵은 작대기로 꾸짖으며 두들겨 맞았다. 동광원 으로 돌아가라. 시험에 들지 마라. 가라하는데, 가라고 쾌히 승낙하여 대구로 향했다
배고파 기진맥진한 중에 초소에서 순경이 밥 주는 것 얻어먹고 가려는데 월북한 순경이 불상하다고 울면서 군인 차에 올려 줄잡고 가라는데 보퉁이 떨어져 엎어져 가지고 혀 나오고 눈 들어가 문질러 살려주고 다른 차로 대구까지 가겠다. 자전차포 헛간에서 12시 넘어 들어가 있는데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찬송이 나왔다. 그때 집사님 한분이 나와 집 있는 사람 집에 보내 주겠으니 그리로 가서 자자하여 갔는데 사람이 많아 방이 차서 잠을 못자고 밤을 새우고 서문교회에 가서 공장을 알아보았으나, 쉬고 피난민 몰려와 밥 얻어먹고 겨우 공짜 일 해주는 남의 집도 못 살아 유치원실 등에서 자고 밥 얻어먹고 4일쯤 있다가 전도사님들, 처녀 권태임 전도사를 만나 언니는 제일교회로 가버리고 식모일 할 5식구 일 부탁하여 전라도 권사 어머니 보여주고 데려다 주어 2년 살다가 시험보라 하는데 중 고 학생 고등성경학교 입학 자신 없었다. 그러나 40명 중에 17번째 중에 들어가 3~4개월 다니는데 옷 몇 벌 돈 담요 하고 방 얻어 사는데 어데 갔다 오니 담요에 모두 싸 가버렸다. 가진 거라고는 외투와 옷 한 벌 뿐이었다. 그해가 70년 만에 추위라고 제일 추운 겨울 돈 옷 이불 없고 학교 다닐 수 없으니 하나님 안 돌보시면 살 필요 없다. 죽자. 안 먹으면 죽지 쌀 연탄 아무것도 없었다. 죽으려고 생각하니 아주 개운했다. 아주 편안했다. 지금도 해보고 싶으나 그리 되질 않는다. 27살적 밤 낮 반복되는데 품어 주시는지 죽지는 않고 편했다. 3~4일 되어 변소 가려는데 이미 손발이 얼어 버렸다. 이제는 살수 없을 줄 알고(물이 꽁꽁 얼었더라.) 겨우 갔다 와서 짚 둥지처럼 누워 버렸다. 7일 지난 것 같은데 이제는 일어날 수 없게 되고 내가 둘로 분리되어 서있는 사람은 하얗게 빛나고 외투 입고 누운 사람보고 가야 되는데 이렇게 둘로 갈라졌으니 어찌 할까 걱정되어 기도를 했다.
저 육신을 살려 달라고 한참 기도를 했는데 육체가 썩기 시작하는데 옷이 사라지고 썩기 시작하는데 구데기가 생기더니 모두 구데기로 변해 버렸다. 일어나 발을 동동 굴러도 더 확실해 지더라. 찬송하고 싶어 ‘내모든 시험...,을 3절까지(이웃집 놀다 갈 걱정하면서) 하는데 빗자루가 있고 문이 열리면서 떨어지는데 문턱에 차고 넘쳐(꽁지 달린 구데기) 나가고 뼈도 안보이더니 살아나더라. 썩은 육체대로 되어 일어나 보니 못 일어날 것이라 하여 시험해 보니 아무렇지 않더라.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셨구나 생각되어 아버지 알아서 하시오. (들어 누웠을 때) 일어나 보니 멀쩡하게 일어나게 되어 전도사님 만나보고 나온 후 처음에 장사라도 하여 살아보려고 고구마(야끼모) 장사 같이 해보자고 드럼통과 화로 등을 줄 테니 장소를 고르라 했다. 그것은 못한다고 하여 천막(갑빠) 치고 상자 놓고 과일 등을 파니 아이들이 상점에 안가고 와서 사가니 상점 주인들이 성화를 내서 못하고 교인 중 교수 댁 암 병자 손보아 달래서 반년 동안 수종들고 한문 공부 좀 하고 아들2 딸2 교수가 데리고 서울 올라가면서 사모께서 성경공부 하도록 해주시오 유언 했다고 부탁해서 서울로 따라가 기숙사에서 일 년쯤 아이들과 살다 완도로 내려와 3개월 살다 무등산에 들어가 막치고 살았다. 28살 때 딸 2이 있는 물통 집에서 강씨 종씨가 친하게 해 주어 그 집에서 살면서 집 지으려고 하는데 김 선생 등이 지나다가 말만 듣다가 그때 처음 뵙게 되었는데 안부 물어 제가 기다고 했다. 그 집이 첫 번째 막이었다.
그 초막에 살 때 순경들이 둘씩둘씩 6사람이 모두 저녁이면 무장하고 밤에 찾아다니는데 겁이 났다. 하루는 낮에 와서 돈을 주기에 돈 없는 사람이 아니고 병 때문에 와 있으며 돈은 집에서 보내주고 있다고 하니 돈을 돌로 눌러 놓고 가버렸다. 밤에 올 줄 알고 머리 신발 누더기 옷 많이 몇 겹으로 입고 기다리고 있으니 찾아왔다. 열 번이나 부르면서 관리인이니 문 열라고 하였다. 내가 문 열 것 없이 구석 까지 다 보이니 보라고 해도 가지 않고 도둑이 도망쳐서 잡으러 왔다 하였다. 들어오면 연장이 있으니 대항할 것이라. 나는 나병환자이니 내 몸을 잡으면 병이 옮을 것이다 했다. 그래도 또 한사람이 와서 누워버렸다. 관리들은 약한 사람 도우는 줄 알았는데 놀리는 사람들이 관리 요? 라고 내가 말하니 내 도민증이 경상도 것이라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트집을 잡았다. 건방진 놈 또 오면 꽉 찍어버릴 것이라 하니 내일 와서 죽인다고 하더니 3일 후에 왔다. 그 뒤로 호박죽 떠먹고 나무 지고 팔려고 내려가면 인사도 잘하고,
한번은 춘일양이 찾아와서 도암 대포리로 가자고 하여 보퉁이 챙겨 가지고 내려오는데 40세가량 남자가 점심 때 조금 지나 계속 따라오는데 바짝 다가가도 괜찮을까 걱정되면서 다리가 떨리고 기도하면서 덤비면 날카로운 돌로 쳐 죽일 것이라 독한 생각 들 때 기도하니 ‘아버지 저 사람 무섭게 해 주세요’ 그 때 할아버지 한 분이 나타나니 그가 도망쳤다. 오늘 큰일 날 번했다. 도암서 꿈에 그 장면이 나타났고 돌을 들어 때리려고 하니 ‘보고 있으니 당신은 의인이요. 왜 그러느냐?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안다.’
도구박골 한 나 어머니 이야기
‘처음 올 때 길을 몰라 기도하니 한 청년이 길을 알려 주고, 감사하려고 하니 없어졌다.’
내가 올 때 도구박골에는 득춘씨 연남씨 세휘자가 살고 있었고 그 집 옆에 움막을 치고 잔 나뭇가지를 역어 만들었는데 흙을 올려준다고 세휘자가 올라가니 막이 쓰러져 ‘못 쓰겠소’하고 기둥 베어다 다시 짓고 1년 살다가 마음에 안 들어 딴 곳에 짓고 살다가 또 짓고 살았다. 그 때 생활은 고사리 취 산나물 뜯어, 내다 팔고 고구마 농사해서 먹고 살았다.
그 후 삼포면 도레에서 삼화사노인과 순기어머니와 함께 1년 정도 군인가면서 집을 비워둔 게 있어 살게 되었다가 그 땅이 다른 사람에게 팔려가 주어버리고 또 도구박골 문바위에 들어와 집을 천원 주고 사서 살다가 중촌 대포리에 막치고 살다가 또 도구박골로 올라가 살다가, 내려와 방산서 막치고 살다가, 가랫물 이 선생 사시던 곳에서 살게 되었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 열병을 앓아 죽을 지경에 효순 양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큰 주전자 물을 금방 마시고 나서 붉은 물이 흐르는데 머리에 물을 퍼 부었다. 그 때 소리가 나기를, ‘바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너희는 모른다.’ 하며 하늘에서 빛이 비취더라. 눈을 감아야 된다더라 하여 눈을 감고 있는데도 보이고 입에서 말이 자꾸 나왔다. 그래서 받아쓰고 있는데 속으로 효순 양이 왔으면 했는데 다음날 효순 양이 왔다. 와서 언니하고 얘기했다.
후에 언니가 말했다. 홍전도사 사치하고 왔더라. 그래서 ‘옛날 효순 양이 아니 네’했다고 한다. 그 뒤 3~4 번 다녀갔다. 효순 양은 ‘통해 진다‘ 하는데 ’나는 통해지지 않더라.’ ‘성령 받은 분은 오 장로님 김 선생님이라고 나는 아는데 그분들에게 가지 않고 도암에만 오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전도사님 말씀 잘 듣고 살고 있다는 애주, 순심 씨 가운데 누워 보니 보리차대기로 보인다 하여 그럼 나는 무엇으로 보이는가? 누워 보겠다. 하였더니 마른 막대기에 기름을 붓고 그 사람 가슴에 손을 대고 ‘에~’하면서 기도하다가 손을 떼버리더라. 그 뒤 효순 양이 광주 갔다 왔는데 나오라 해서 나갔는데 효순 양이 싸늘하게 느껴지면서 나오더니 깜짝 놀라면서 벌벌 떨더라. 그래 담요를 덮어 주어도 계속 떨기에 왜 떠는가 물어보니 언니가 내 몸에 손을 댄 연고라 했다. ‘나 위해 기도를 해 주라’하기에 ‘왜 내가 기도를 해 줄 수 있소? 전도사님이 기도를 해 줘야지’ 했는데 내 말이 끊어져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꿈에 하얀 옷 입고, 새롭게 된 뒤에 다시 만납시다. 꿈에 그 분이 보이면서 ‘악신 이래 악신 이래’ 그가 개를 데려 왔는데 그 개가 물어 피투성이로 보이더라.
운동장에 동광원 식구들이 모여 있는데 새가 날아와 동광원이 나쁘게 될 것이라고 연설을 하여 가서 보려고 하니 새가 날아가고 어떤 청년이 막대기로 휘 젖더니 또 새가 와서 연설을 하고 비행기가 높이 올라가다 내려오니 새가 나와 교단에 올라가 연설을 했다. 그 뒤에 그런 소문이 들렸다.
수레기 아버지는 노름을 잘 해 20마지기 다 팔아먹고 수레기에 살 때 삼우엘 장로님 낳기 전 문둥병과 몸이 많이 부었었다. 애기 낳았을 때 젖이 나오지 않아 아기가 죽게 되어 울음소리도 잘 안 들리고 그 때 울음소리가 전혀 나지 않아 들여다보니 날개 도친 천사가 우유 2병을 가지고 1병 먹이고 두병 먹이고 문 닫힌 그대로 있는데 사라지고 없어졌다. 그 후 병도 낳았고 아기는 3일 동안 잠을 잤으며 7일 만에 병은 다 나았다고 한다. 삼우엘 업고 베 매주고 늦게 오면 호랑이 불이 따라왔다.
추신 : 세 천사가 내려와 찬송가 363장(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을 3절 까지 아름다운 반주와 함께 부르더라. 따라 부르려고 하니 못 부르게 하드라.
언니가 아이 데리고 와서 함께 못 살 것 같아 걱정이 되어 함평으로 보내려고 이양에 있는 약방에 물어 봤 드니 둥우리 캐서 잘 말려 가져오면 산다고 하여 캐서 다듬고 있다가 잠들었는데 머리 위와 어깨 양 쪽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