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雞林歷史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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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고도 서라벌 순례 서라벌의 백제계 석탑 ㅡ 남산 탑골 옥룡암 석탑재
계림 추천 0 조회 12 26.09.03 03:36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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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9.04 14:20

    첫댓글 옥룡암에 있는 석탑재(지붕돌)의 우동마루 형상은 백제계 석탑 양식의 특징을 띠고 있다.

  • 26.09.04 14:21

    지붕돌의 모서리 능선(우동마루)이 목조건축의 지붕 마루처럼 뚜렷하게 도드라져 있으며, 경사가 완만하게 퍼져 나가는 형상이다.

  • 26.09.04 14:22

    목조건축을 돌로 구현하던 백제계 석탑 특유의 미감으로, 처마 끝선과 모서리 라인을 유연하게 처리한 방식이다.

  • 26.09.04 14:23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 남산 지역에 이러한 백제계 양식의 기법이 반영된 석탑재가 남아있는 점은 당시 지역 간 양식 교류나 후대(통일신라~고려) 석탑 양식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요소로 평가받는다.

  • 26.09.04 14:24

    이 탑은 최소 2기 이상의 서로 다른 석탑 부재가 섞여 조립된 탑이다.
    ​1층 지붕돌(옥개석) 바로 아래를 보면 크기와 비례가 맞지 않는 커다란 석재 2개가 위아래로 중첩되어 있다. 본래 하나의 1층 탑신석이어야 할 자리에 서로 다른 규격의 석재(또는 다른 탑의 기단부/탑신석 부재)가 이중으로 올려진 모습이다.

  • 26.09.04 14:26

    1층 탑신부의 거대한 크기에 비해 2층과 3층의 탑신석 및 지붕돌은 갑자기 매우 작아진다. 이는 단일한 탑으로 만들어졌을 때의 조형적 비례감(체감률)과 전혀 맞지 않다.
    부재마다 마모된 정도와 돌을 깎아낸 체감 비례가 서로 다르다.

  • 26.09.04 14:26

    세월이 흐르며 절이 폐사되고 무너진 여러 석탑의 부재들이 계곡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이를 근현대에 도량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흩어진 부재들을 수습해 현재의 모습으로 쌓아 올렸기 때문에 이처럼 여러 탑의 석재가 혼합된 형태가 되었다.

  • 26.09.04 14:28

    ​일제강점기 경주 공립보통학교 교장이자 고적 연구가였던 오사카 긴타로(大坂金太郎)가 탑골(옥룡암 일대)에서 '신인사(神印寺)' 명문 기와를 발견했다고 보고하면서 이곳이 신인사 터로 추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물 명운와가 전하지 ㅇ않는다는 한계 때문에 완벽한 확증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 26.09.04 14:29

    해당 기와의 탁본이나 실물이 현재 전혀 전해지지 않고, 발견 당시의 정식 학술 발굴 조사 기록이나 객관적인 교차 검증 데이터가 부족하다.

  • 26.09.04 14:30

    설령 그가 기와를 수습했더라도 일제강점기 당시 단순 지표 채집 형태였을 가능성이 높아, 해당 부재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인지 외부에서 유입된 것인지 교차 확인하기 어렵다.

  • 26.09.04 14:30

    이 때문에 학계 및 관련 문헌에서는 이곳을 "신인사지(神印寺址)"라고 확정짓기보다 "신인사지로 추정되는 터" 정도로 신중하게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

  • 26.09.04 14:32

    소형 기와류(와경 및 명문 와편)는 석조물이나 건물지 기단과 달리 유동성(이동 가능성)이 매우 높은 유물이다.
    ​이 때문에 매장문화재 및 고고학 조사에서 단순 지표 채집된 기와 하나만으로 절터를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 통설이다.

  • 26.09.04 14:32

    조선 시대나 근현대에 인접 지역에서 건물을 짓거나 정비를 할 때, 혹은 폐사지의 기와를 끌어다 축대나 담장을 쌓는 과정에서 다른 지역의 명문 기와가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26.09.04 14:33

    오사카 긴타로의 보고는 정식 발굴을 통한 '출토 층위(Layer)' 정보가 없다. 출토 위치와 불전지(건물지) 기단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는 한, 지표면에 떠돌던 와편은 이동된 유물일 확률이 존재한다.

  • 26.09.04 14:34

    확실한 사찰 성격 규명을 위해서는 명문 기와 단독이 아니라, 현장에 고정되어 이동이 불가능한 건물지 기단, 초석(주초), 대형 마애불/석불의 양식 및 문헌과의 복합적인 대조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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