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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스크랩 "장녹수" -김용임-
지중해 추천 0 조회 53 11.05.13 22:57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드라마의 연산군과 장녹수!.  

 
연산군의 여자관계를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여인이 장녹수이다. 
 연산이 분노했던 그대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은 
 임금의 황음 내지는 못된 첩이 한 인간과 나라를 
 망친다는 식의 역사이해를 가져 왔다. 바로 그런 역사관에 의해 
 연산시대의 악녀로 자리매김된 여인이 장녹수이다.

 장녹수는 연산군 8년 3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연산이 승지에게 그녀의 부친 장한필의 내력을 조사시켰다는 기록인데, 
 이 해부터 장녹수에게 빠졌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보아 
 대략 이 때쯤 연산과 장녹수가 만났던 것같다.
 
 장녹수의 아버지 장한필은 문과에 급제하고 성종 19년에 
 충청도 문의현령까지 지냈다. 그러나 더 이상 크게 출세하지는 못한 것같다. 
 어머니는 장한필의 첩이었고 신분도 천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조선시대에는 부모 중 한 쪽이 천인이면 자녀는 자동으로 천인이 되었으며, 
 그 자녀의 소유권은 모계를 따라 가도록 되어 있었다. 
 장녹수가 제안대군의 종과 결혼하고, 제안대군의 여종이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모친도 제안대군의 종이 아니었나 싶다.
 
 장녹수의 젊은 시절은 불행했다. 가난하고 신분도 천한 여인이라 
 몸을 팔아서 생활했고 결혼도 여러번 했다. 
 그러다가 제안대군의 집 종과 결혼했다.
 
 아들 하나까지 낳았는데, 이 가정도 힘들었던지 
 다시 생활전선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닥에서 
 몸을 파는 수준에서 벗어나 노래와 춤을 배워 정식으로 기녀로 데뷔했다. 
 희대의 바람둥이를 매혹시킨 장녹수의 매력은 어떤 것이었을까? 

 의외로 그녀는 탁월한 미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실록에서는 그녀가 그냥 중간 수준의 얼굴이라고 표현했다. 
 나이도 연산보다 두세 살 이상 많았다.
 
 그러나 30대에도 16세의 앳된 소녀처럼 보일 만큼 동안이었던데다 
 영리해서 남자의 뜻을 잘 맞추고, 아양 떨고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은 견줄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헐리우드의 스타로 비교하자면 
 인형 같은 미모는 아니지만 미소와 귀염성 있는 얼굴이 매력인 
 맥라이언 같은 스타일이었던 모양이다.
 
 연산이 남다르게 총애한 여성은 장녹수 외에도 많았다. 
 그러나 장녹수는 그들 중 누구도 누리지 못한 특별한 역할을 했다. 
 연산은 장녹수를 거의 아내처럼 대우했다.
 
 연산의 왕비 신씨는 신승(숭)선의 셋째 딸이었다. 
 연산과 신비의 사이는 좋았다. 
 연산은 신비를 현모양처요 훌륭한 국모로 인정하고 존중했다. 
 그러나 그것은 국왕과 왕비의 사이였다.
 
 연산이 국왕이 아닌 세속적 인간으로 돌아올 때는 장녹수가 
 그의 아내가 되어 주었다. 때로 장녹수는 연산을 어린아이같이 조롱하고 
 연산을 하대하며 욕을 하기도 했다.
 
 이런 일을 기록한 사람은 혀를 찼지만, 연산은 인간 본연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고, 그런 세계를 맛보고 싶었던 것같다. 
 그러나 섣불리 연산에게 그런 사이버 공간을 연출했다가는 
 당장 국왕 능멸죄에 걸렸을 것이다. 
그 역을 감당하기에는 
 아주 특별한 매력과 재능이 필요했다. 
 아마도 장녹수는 오랜 호스티스 생활을 통해 남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파악하고 충족시켜 주는 재능을 터득했던 것같다.
 
 연산이 아무리 화가 났다가도 장녹수만 보면 
 반드시 기뻐하며 웃었다고하니 진짜 일류 호스티스였다. 
 어찌 보면 조정관료들이 그녀에게 제일 감사해야 했을 것 같은데,

 그들은 그 고마움은 잊고 녹수의 형부가 순식간에 등용되고, 
 연산이 자기들에게서 빼앗은 저택과 땅과 노비를 천한 첩들에게 
 하사하는 것을 보고 분노하였다.
 
 사적인 청탁과 인정을 배제하기는 불가능한 사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녹수가 인사나 이권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개입한 것 같지는 않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위에서 꼽은 부정들은 과거부터 
 종친과 훈구세력들이 늘 해오던 일들이다.
 
 수령이나 하급관직은 몰라도 녹수의 청탁으로 고위직에 올랐다는 사람도 
 다 종친이나 관료들이었다. 그녀의 친척 중에서 제일 출세한 사람이라면 
 형부 김효손인데, 
연산군 10년 이전에는 겨우 7품 무관직인 
 사정(司正)을 받았을 뿐이다. 6품과 7품은 질적 차이가 있어서 
 7품 이하는 정치적 비중이 거의 없는 단순 행정 또는 실무직에 해당하며, 
 서리 출신들도 여기까지는 많이 진출했다. 수령 자리 하나 얻지 못했으니 
 녹수가 많이 자제를 했거나 연산이 꽤 엄격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연산군 10년에서 12년 사이에 김효손은 벼락승진을 해서 
 정3품 당상관까지 올라갔다. 아마도 이 조치에 대해 많은 관료들이 
 상당히 분노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녹수의 일가로서 출세한 사람은 
 그 하나뿐이었다는 점은 고려해 줄 만하다.
 
 녹수의 집을 건축할 때 대간을 보내 감독을 시킨 것이나 내시와 승지 등에게 
 그녀의 가마를 뒤따르게 한 것 등도 그녀의 청탁이 아니라 연산이 항상 
 궁리했던 '관료 길들이기'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관료들은 종친과 고급관료가 천인 출신의 계집에게 굽실거리고, 
 사족의 집과 땅이 그녀의 손아귀로 들어가며, 그녀의 종들이 자신들의 종을 
 우습게 보고, 상권, 노비, 토지 등의 이권다툼에서 자신들을 이기고,
 
 자신들의 이권을 앞서서 채가는 현상을 참을 수 없었다. 
 이것은 사회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행위였고, 
 왕이나 세상 사람들이 기억해서는 안되는 전례였다.
 
 그녀의 최후는 비참하였다. 중종반정이 일어났을 때 
 녹수와 전비등은 당일로 군기시(지금의 서울시청과 서울신문사 사이) 
 앞에 끌려가 처형당했다. 
많은 후궁들 중에서 녹수와 전비가 비난과 
 처형의 대상이 된 것은 그녀들의 재산이 많았던 탓도 있지만
 (그 중 상당수는 연산이 공신, 관료들로부터 뺏은 것들이다), 
 그녀들의 출신이 미약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들의 진정한 죄는 
 자신들의 주제로서는 참여해서는 안되는 특권에 참여한 죄였을 것이다.

 드라마의 연산군과 장녹수"주제가"


가는세월 바람타고 흘러가는 저 구름아
수많은 사연담아 가는곳이 어드메냐

구중궁궐 처마끝에 한맺힌 매듭엮어
눈물강 건너서 높은 뜻 걸었더니

부귀도 영화도 구름인 양 간곳없고
어이타 녹수는 청산에 홀로 우는가

한조각 구름따라 떠도는 저 달님아
한많은 사연담아 네 숨은곳 어드메냐

곤룡포 한자락에 구곡간장 애태우며
안개강 건너서 높은 뜻 기웠더니

부귀도 영화도 꿈인 양 간곳없고
어이타 녹수는 청산에 홀로 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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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5.14 02:34

    첫댓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11.05.14 16:04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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