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아브르(Le Havre)
프랑스 노르망디 레지옹(Normandie Région) 센마리팀 데파르트망(Seine-Maritime Département)에 있는 코뮌(Commune).
대서양에 면해 있으며 센강 어귀의 북안에 위치하며, 영국 해협에 면한 무역항으로 미국·영국·아프리카 등지에 이르는 항로의 기점이다. 면화·커피·코코아·비철금속·고무·천영가스·석유 등의 수입항이자 공업제품의 수출항이다. 그 무역액은 마르세유에 이어 프랑스 제2위를 차지한다.
르아브르(Le Havre)라는 도시 이름은 프랑스어로 ‘항만’ 또는 ‘항구’를 의미하며, 르아브르는 마르세유에 이어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다. 르아브르의 기후는 온대 해양성 기후이며, 바람 없는 날이 드물다. 주민들은 아브레, 또는 아브레스로 불린다.
역사
1517년 프랑수아 1세가 어촌에 불과했던 이곳에 도시를 건설하여, 르아브르 드 그라스(혜택받은 항구)라고 명명한 것이 시의 기원이다. 그 후 고래잡이·대구잡이 등의 어업기지로서 발전하였다.
르아브르는 1517년 항구가 건설되었을 때, 프랑시스 1세의 이름을 따서 프랑시스코폴리스로 명명되었다. 이후 르아브르 드 그라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르아브르의 건설은 토사로 인해 효용이 줄어든 옹플뢰르와 아르플뢰르의 고대 항구를 대체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그전까지 이곳은 어촌에 불과했다.
추기경 리슐리외와 루이 14세 때인 17세기에 증축되고 보강되었으며, 18세기 후반에는 루이 16세 치하에서 더 큰 선박을 수용하도록 개조되었다. 18세기에 나폴레옹 1세에 의해 항구가 정비되어 제1급의 해군기지가 되었다.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 치하에서는 더욱 개선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벨기에 정부는 안트베르펜과 오스텐드가 독일군에 함락되자 잠시 이곳에 옮겨졌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항만·시가지가 파괴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재건되어 프랑스에서 가장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했다. 르아브르는 1970년대 초부터 광범위하게 확장되었다. 르아브르는 마르세유에 이어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로서 파리의 아웃포트(심층 선박의 해상 터미널) 역할을 한다.
1976년 르아브르 북쪽 앙티페에 심해 석유항이 문을 열었다. 기존 항구를 재건설해 드라이 벌크와 컨테이너를 위한 전문 시설로 만들었다. 무역량의 대부분은 주로 원유 수입이다. 다른 항만 기능으로는 영국과 아일랜드로의 선박 수리 및 여객선 운항이 있다.
항구와 직결된 대규모 공업지대는 석유정제, 석유화학, 화학, 자동차, 시멘트, 항공부품 산업 현장이다. 이러한 산업 활동은 센 강 하류 계곡에 고용을 집중시키고 있다. 부분적으로 요트 항구와 인접 휴양지인 생트아드레스를 기반으로 한 대학, 증가하는 관광 무역 등 서비스 및 행정 기능도 발전했다. 조선·항공기·기계·유지·방적·유리 등 각종 공업이 발달하였다. 특히 최근에 석유공업이 발달하여 부근의 앙티페르 등지와 함께 센강 하류에 정유공장군을 형성하고 있다. 석유는 송유관으로 파리에 송유된다.
지리 및 기후
르아브르는 루앙에서 서쪽으로 50km 떨어진 영국 해협과 센강 어귀에 위치해 있다. 이 도시는 센마리팀주의 가장 큰 도시인 페이드코의 남서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수많은 도로들이 르아브르와 연결되며, 주요 접근 도로로는 아미앵의 A29 자동차 도로, 파리에서 A131 자동차 도로로 연결되는 A13 자동차 도로 등이 있다.
르아브르의 기후는 해협 연안에 자리하고 있어 온대 해양성 기후다. 바람이 없는 날은 드물고, 연중 내내 바다의 영향을 받는다. 연간 25일은 0°C 미만으로 떨어지고, 연간 11.3일은 25°C 이상 상승한다. 강수량은 연중 내내 골고루 분포되며, 가을과 겨울에 많다.
6~7월은 월 평균 2일 정도 뇌우가 있다. 이 지역의 특징 중 하나는 낮 동안에도 기온의 변화가 많다는 것이다. 남서쪽에서 강풍과 북북동에서 바람이 불고, 눈보라는 특히 겨울 1월과 2월에 발생한다.
경제
르아브르항은 2011년 기준으로 6,860만 톤의 화물을 처리하는, 프랑스에서 마르세유 항에 이어 무역 규모가 두 번째로 큰 항구다. 세계적으로는 50위 규모다. 거의 220만 개에 달하는 프랑스 전체 컨테이너 운송량의 60%를 처리한다.
이는 유럽국가 중 컨테이너 물량으로는 8위, 총 물동량으로는 6위를 차지한다. 르아브르항은 2010년에는 한 해 34만여 대의 차량을 선적하고 하역한 기록을 수립했다.
75개의 해운회사가 전 세계 500개의 항구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르아브르 항만의 최대 교역 상대국은 컨테이너별 수입의 58%, 수출의 39.6%를 차지하는 아시아 대륙이다. 나머지 화물량은 주로 유럽과 미국에 분포돼 있다. 르아브르는 유럽의 북방 항구에서 전 세계 해양 무역의 4분의 1을 처리하는 기록을 세웠다.
심해의 항구로서 24시간 내내 크기에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배들이 이용할 수 있다. 1517년 프랑수아 1세의 명령에 따라 설립된 이후 르아브르는 계속 성장해 왔는데, 오늘날에는 동서로 27km, 남북으로 약 5km, 면적은 100km2에 달한다. ‘포트 2000’이라는 대형 프로젝트로 인해 컨테이너의 처리 능력이 증가했다.
이 항구는 르아브르 지역에 1만 6,000개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약 3,000명의 직원을 고용한 유통 및 하역과 2,400여 개의 도로 운송 관련 일자리도 제공하고 있다.
2011년에는 71만 5,279명의 승객이 르아브르항을 이용했고, 95척의 크루즈 유람선이 총 18만 5,000명의 승객을 태우고 방문했다. 1934년에 만들어진 르아브르의 레저 보트 항구는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1,160개의 계류장을 갖춘, 해협에서 가장 큰 프랑스 보트 항구다. 프랑수아 지구에는 작은 어항과 해상 센터가 있다.
대부분의 산업은 하구의 북쪽과 르아브르 시의 동쪽에 있는 산업항구에 위치해 있다. 르아브르 지역에서 고용 규모가 가장 큰 회사는 2,400명의 종업원을 가진 르노 공기업이다.
석유화학은 이 지역의 매우 중요한 산업으로 프랑스 정유 능력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기초 플라스틱 생산의 약 50%와 첨가제 및 오일의 80%를 공급하며, 3,500명 이상의 연구원들이 민간 및 공공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화학 산업 관련 대기업은 주로 르아브르(밀레늄 화학), 몽티빌리에(슈브롱 오로니트 등), 상두빌(굿이어 화학 유럽) 등에 있다. 르아브르 지역에서 총 28개의 산업 시설이 플라스틱을 제조하고 있다.
항공우주산업 관련 회사도 있다. 제트 엔진과 추력 역전기를 만들어 에어버스, 보잉, 그리고 다른 상업용 항공기 동체 제작회사에 공급하는 SAFRAN 나셀은 아르플뢰르에 위치해 있으면서 르아브르 지역에서 1,200명을 고용하고 있다.
드레세랑 SA는 석유와 가스 산업용 장비를 제조하면서 약 7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르아브르의 EDF 화력발전소가 1,450MW의 발전 능력을 가지며, 357명의 종업원과 함께 석탄을 이용해 가동하고 있다.
종교
르아브르에는 7개의 복음주의 개신교 교회들이 있는데 구세군, 제7일 그리스도 재림 교회, 사도 교회, 하나님의 성회, 침례 교회, 복음 교회, 르아브르 교회, 그리고 아프리카에 기원을 둔 몇몇 개신교 교회들이 있다.
이 도시에는 7개의 무슬림 예배 장소도 있다. 북부 노르망디의 무슬림 사회문화연합, 폴 클로델 가(街)의 앙누르 모스크, 빅토르 위고 가의 엘 파트 모스크, 귀스타뷔스 브랭도에 있는 벨뷔 모스크와 오드랑 거리, 쥘 뒤랑 대로, 로디 거리 등에 있는 3개의 기도실 등이다. 재건된 도심에 위치한 유대교 회당은 2002년 4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방문을 받았는데, 이스라엘리트 뒤 아브르 추기경협회 본부가 위치해 있다.
문화 유적
르아브르에 있는 많은 건물들은 '역사적인 기념물'로 분류되지만, 르아브르의 건축 유산들이 실제로 인정을 받은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시는 2001년에 '예술과 역사의 도시'라는 인증서를 받았고, 2005년에 유네스코는 르아브르 시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르아브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그라빌 수도원이다. 또 다른 중세 건물로는 앵구빌의 생미셸 예배당이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인 르아브르 노트르담 대성당은 1536년에 첫 주춧돌이 놓였다. 르아브르의 주교가 있는 곳이다. 이 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딛고 살아남은 르아브르 중심부의 극소수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1974년 르아브르 교구가 생겨나면서 대성당이 되었고, 르아브르 주교가 상주하게 됐다. 종탑은 1520년경에 지어진 것이며 주요 외관은 바로크 형식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인 생 조셉 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1951~1958년 재건축되었다. 르아브르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이 교회의 종탑은 오귀스트 페레가 디자인했으며, 높이 107m로 프랑스에서 가장 높이 솟아 있어 항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페레의 상상은 등불을 닮은 건물을 만들었는데, 현재는 애칭으로 '조명탑' 또는 ‘도시 중심부의 등대’라고 불린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이 교회는 전후 프랑스 현대 건축 혁신의 산물이다.
르아브르의 5개 박물관은 높은 수준의 박물관에만 부여된 공식 라벨인 프랑스의 박물관(Musées de France)으로 분류된다. 앙드레 말로 박물관은 1955년 아틀리에 LWD가 건축했고, 1961년 앙드레 말로가 개관했다. 이 박물관에는 중세 후반부터 20세기까지의 미술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이어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많다. 박물관에는 클로드 모네, 르누아르, 라울 뒤피, 에드가 드가 등의 작품이 있다. 구(舊) 아브르 박물관은 앙시앙 레짐 및 19세기의 많은 작품들과 함께 르아브르 시의 역사를 기리는 박물관이다. 가구, 오래된 지도, 조각상, 그림 등이 소장되어 있다.
자연사 박물관은 1881년에 설립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심하게 훼손되었다. 이 박물관은 18세기 중반에 지어진 르아브르 전 법원 건물에 들어 있다. 외양과 기념비적인 계단은 역사적 기념물로 등재되어 있다. 이 박물관은 광물학, 동물학, 조류학, 고생물학, 선사 시대의 유물들과 함께 지역 자연주의자이며 여행가인 샤를 알렉상드르 르쉬외르(1778~1846년)의 수집품에서 나온 8000점의 19세기 초 그림들을 소장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1944년 9월 5일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되는 바람에 도서관이 사진, 과학 기구, 기록 보관소와 함께 소멸되었다. 광물과 지질학적 수집품들도 노르망디의 희귀한 지역 광물 표본과 함께 모두 파괴되었다. 선주의 저택은 앙시앙 레짐의 많은 유물뿐만 아니라 가구, 오래된 지도, 조각상, 그림들을 소장하고 있다.
그라빌 소수도원의 박물관은 조각상, 성모 마리아, 그리고 다른 종교적인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이 작품들은 프랑스 문화부에서 주제별로 분류하고 있다. 또 19세기 쥘 고슬랭이 만든 206개의 모델하우스로 구성된 고슬랭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르아브르 미술박물관에는 19세기 화가 외젠 부댕과 20세기 화가 라울 뒤피의 작품이 포함된 컬렉션이 소장되어 있다.
교통
오랫동안 르아브르는 해안 지역의 강점을 이용했지만 고립에도 시달렸다. 르아브르와 탕카르빌 다리 위 A13 자동차 도로를 연결하는 항만 고속도로 A131(E05)을 통해 도시의 접근성이 개선된 것도 이 때문이다. 르아브르 시와 광역권의 촘촘한 교통망이 북부 지역과 남부 지역을 연결하면서 고립 문제를 해결했다. 르아브르는 루앙에서 1시간 반, 일드프랑스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옥테빌쉬르메르에 있는 르아브르 옥테빌 공항은 르아브르에서 북쪽으로 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리옹의 교통 허브다. 해협 여객선은 영국 남부의 포츠머스와 연결된다. 포츠머스로 가는 두 번의 서비스는 시타델 터미널에서 매일 제공된다. 아일랜드로 연결되는 여객선은 셰르부르항으로 옮겨졌다.
기타
대통령 르네 코티, 화가 R.뒤피, 작가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의 출생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