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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매지 마라”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행복이 무엇인지 계속 묻는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맨다면 결코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아침에 세운 계획을 오후에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아침에 위대한 것이 저녁에는 미미해지고, 아침에 진실했던 것이 오후에는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인생은 안개 속에 쌓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매지 말라는 말을 기억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인생일 뿐이다. 우리는 오늘을 무사히 잘 마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 것이다.
‘당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지 않으면 남이 통제할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아무리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운명을 전적으로 남의 통제권에 맡기지는 말고 어느 정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게끔 애는 써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에 비로소 자신의 운명에 대한 사랑도 짙어질 것이다.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 게임’의 포로가 되어 고단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삶을 간신히 끌어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당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은 악담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지 않으면 어쩔 것인지 반대로 생각해보면 운명애가 헛소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강준만의 『당신의 운명을 사랑하라』에서는 세상을 꿰뚫는 아포리즘을 소개한다. 제1장은 꿈?희망?죽음 등, 제2장은 성공?냉소?영혼 등, 제3장은 위선?칭찬?신뢰 등, 제4장은 사랑?가족?아름다움 등, 제5장은 상상력?문학?유행 등, 제6장은 음식?웃음?갈등 등, 제7장은 열정?광신?진실 등, 제8장은 인간?종교?도시 등, 제9장은 지식인?진보?독서 등, 제10장은 민주주의?혁명?정당 등의 키워드다. 이 키워드들을 통해 수많은 명언을 읽고 지적 교양을 쌓아보자.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안목을 참고하는 게 좋다. 특히 수많은 현인이 삶의 다양한 풍경을 지나면서 떠오르는 문장을 간결하게 적어놓은 아포리즘은 세상에 대한 독학의 길을 열어주는 훌륭한 선생이다. 단 한 줄의 문장이 우리를 생각하게 만들고, 그 생각이 세상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혀줄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현인이 남긴 명언들을 음미해보면서 세상에 대한 여행을 떠나보자.
👨🏫 저자 소개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해왔다.
2005년에 제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하고, 2011년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국의 저자 300인’, 2014년에 『경향신문』 ‘올해의 저자’에 선정되었다. 저널룩 『인물과사상』(전33권)이 2007년 『한국일보』 ‘우리 시대의 명저 50권’에 선정되었고, 『미국사 산책』(전17권)이 2012년 한국출판인회의 ‘백책백강(百冊百講)’ 도서에 선정되었다.
2013년에 ‘증오 상업주의’와 ‘갑과 을의 나라’, 2014년에 ‘싸가지 없는 진보’, 2015년에 ‘청년 정치론’, 2016년에 ‘정치를 종교로 만든 진보주의자’와 ‘권력 중독’, 2017년에 ‘손석희 저널리즘’와 ‘약탈 정치’, 2018년에 ‘평온의 기술’과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2019년에 ‘바벨탑 공화국’과 ‘강남 좌파’, 2020년에 ‘싸가지 없는 정치’와 ‘부동산 약탈 국가’, 2021년에 ‘부족주의’, 2022년에 ‘퇴마 정치’와 ‘좀비 정치’ 등 대한민국의 민낯을 비판하면서 한국 사회의 이슈를 예리한 시각으로 분석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정치 무당 김어준』, 『퇴마 정치』, 『정치적 올바름』, 『엄마도 페미야?』, 『정치 전쟁』, 『좀비 정치』, 『발칙한 이준석』, 『단독자 김종인의 명암』, 『부족국가 대한민국』, 『싸가지 없는 정치』,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 『부동산 약탈 국가』,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강남 좌파 2』, 『바벨탑 공화국』,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약탈 정치』(공저), 『손석희 현상』, 『박근혜의 권력 중독』, 『힐러리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 『전쟁이 만든 나라, 미국』,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싸가지 없는 진보』, 『감정 독재』,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갑과 을의 나라』, 『증오 상업주의』,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책』(전23권), 『한국 근대사 산책』(전10권), 『미국사 산책』(전17권) 외 다수가 있다.
강지수
미국 뉴욕 파슨스(Parsons School of Design)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
📜 목차
머리말 : 당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 5
제1장 현명하다는 것은 무엇을 무시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형편에 맞는 꿈’을 꿔라 · 17 | 희망은 낙관주의가 아니다 · 21 |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인가? · 24 | 선택은 피할 수 없는 삶의 멍에다 · 27 | 선택은 사람 잡는 괴물이다 · 31 | 변화하지 않는 것도 용기다 · 34 | 비교는 인생의 기쁨을 훔쳐가는 도둑이다 · 37 |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매지 마라 · 40 | 백 년 후, 이 세상은 모두 새 사람이다 · 43 | 누구도 섬은 아니다 · 46
제2장 실패할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것이 인간의 가장 고귀한 덕성이다
성공과 사랑이 따로 놀 수 있는가? · 51 | 실패를 축하한다는 말을 믿어도 되는가? · 54 | 왜 패배를 큰 재앙으로만 여기는가? · 57 |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등을 원하지 않는다 · 60 | 모든 지위 경쟁은 제로섬게임이다 · 63 | 진화가 덜 된 사람이 서열에 집착한다 · 66 | 힘을 가진 자들은 냉소적이지 않다 · 69 | 영혼을 집에 두고 출근해야 하는가? · 72 | 너 자신으로 살지 말고 딴사람이 되어라 · 75 |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오만하다 · 78
제3장 가슴에 호소하지 말고 허영심에 호소하라
위선은 악덕이 미덕에 바치는 공물이다 · 83 | 허영심이 없으면 미덕은 오래가지 못한다 · 86 | 허영심은 존중해야 할 사회적 열정이다 · 89 | 칭찬은 향수와 같다 · 92 | 아부는 그 내용이 중요한 건 아니다 · 95 | 비판은 쓸모가 없고 위험하다 · 98 | 신뢰는 습관적인 호혜 관계다 · 101 | 지혜란 냉담함의 알리바이다 · 104 | 대형 참사보다 나의 치통이 더 중요하다 · 107 | 우리의 자기애가 천재 숭배를 조장한다 · 110
제4장 사랑하는 동시에 현명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장엔 이성이 모르는 논리가 있다 · 115 | 결혼은 자격증이 필요한 특권이다 · 118 | 고독은 결혼의 가장 튼튼한 기초인가? · 121 | 정의보다는 어머니를 먼저 지킬 것이다 · 124 | 늙음은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 128 | 오장육부까지 아름다워야 속이 시원한가? · 131 | 페미니스트들은 아름다움을 비난하지 마라 · 135 | 꼭 ‘사랑받지 않을 용기’를 내야 하는가? · 138 | 여성은 남성의 프롤레타리아였다 · 141 | 섹스는 아담과 이브의 타락에 대한 벌인가? · 144
제5장 상상만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당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을 채용하라 · 149 | 스타벅스에서 상상력 훈련을! · 152 | 평온이 창조적인 정신을 자극한다 · 155 | 문학은 무신론자의 마지막 도피처인가? · 158 | 비평가는 기생충이 아니다 · 161 | 음악적 취향은 계급을 말해준다 · 164 | 위대한 예술가는 위대한 병자다 · 167 | 패션은 자유와 상상력을 상징한다 · 170 | 유행은 계급 분리에 대한 저항이다 · 173 | 디자인은 ‘겉포장’이 아니라 ‘영혼’이다 · 176
제6장 슬픔이 두려움처럼 느껴진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음식은 곧 당신이다 · 181 | 매트리스는 숭배받아야 한다 · 184 | 슬픔은 과로하게 되어 있다 · 187 | 우울증은 세상에 대한 저항이다 · 190 | 웃음은 얼굴에서 추위를 몰아내는 태양이다 · 193 | 습관은 물과 같다 · 196 | 세계 전체를 날조하는 거짓말이 더 무섭다 · 199 | 왜 히틀러는 연민을 두려워했는가? · 201 | 갈등은 사회의 면역력을 강화한다 · 204 | 폭력은 평판을 위한 전략적 범죄다 · 207
제7장 우리는 많은 말을 하지만, 대화하지 않는다
열정은 증오를 불러오는 질병이다 · 213 | 증오는 정녕 나의 힘인가? · 216 | 광신자의 최악은 그의 진실성이다 · 219 | 정치적 광신과 종교적 광신은 비슷하다 · 222 | 정의 위에 사실을 세울 수는 없다 · 225 | 진실마저 민주화되어야 하는가? · 228 | 신념이 정체성이 되면 설득은 불가능하다 · 231 | 한국인은 말은 잘하지만 대화는 잘 못한다 · 234 | ‘가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가? · 237 | 영감은 아마추어들이나 찾는 것인가? · 239
제8장 인간처럼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로 꽉 찬 존재는 없다
인간은 동물과 닮은 게 아니라 동물이다 · 245 | 불관용은 신앙의 속성이다 · 248 | 종교는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다 · 251 | 그것을 말하기엔 너무 이르다 · 254 | 시간은 폭력과 죽음의 동의어다 · 257 | 시계는 현대 문명의 어머니다 · 260 | 그는 언제 시골을 무척 좋아할까? · 263 | 재능이 있고 튀는 사람은 대도시로 가라 · 266 | 한국은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거대한 극장이다 · 269 | 학부모는 ‘대학교’라는 신흥 종교의 광신자다 · 272
제9장 개인은 집단의 일원이 되면 바로 바보가 된다
지식인은 진영을 위해 일하는 치어리더다 · 277 | ‘정의 중독’은 인정투쟁 민주화의 부작용이다 · 280 | 진보는 비이성적인 사람에게 달려 있는가? · 283 | 철학의 시작은 ‘놀라움’이다 · 286 | 왜 전통시장을 살리자면서 자신은 안 가는가? · 289 | 우리는 말할 수 있는 이상으로 많이 알고 있다 · 292 | 독서는 불복종의 뿌리였다 · 295 | 군중은 모순에 대해 무관심하다 · 298 | 미국인은 물질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 301 | ‘주류에 대한 동경과 숭배’가 나쁜가? · 304
제10장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부 형태다
민주주의는 겸손을 먹고산다 · 309 | 정치인은 자신의 총명을 감춰야 성공한다 · 312 | 모든 견고한 것은 공기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 315 | 싸움의 대상이 모호해 혁명은 멀어졌다 · 318 | 자본주의는 성적 억압을 필요로 한다 · 321 | 왜 ‘좌익 파시즘’이란 말이 나온 걸까? · 324 |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지만 권력은 살 수 있다 · 327 | 돈은 정치의 영원한 젖줄이다 · 330 | 정당은 종교·친목·이익 단체다 · 333 | 한국엔 네이버신문과 카카오일보가 있다 · 336
주 · 339
📖 책 속으로
선택은 피할 수 없는 삶의 멍에임에도 그걸 피해보겠다고 발버둥을 친 결과 나타난 게 ‘원톨로지스트’라는 신종 직업일 게다. 미국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는 “현명하다는 것은 무엇을 무시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그런 능력을 똑같이 갖고 있는 건 아니기에, 이 신종 직업을 ‘지혜의 아웃소싱’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영혼의 아웃소싱’도 가능한 것인지, 가능하다고 해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 갑자기 궁금한 게 많아진다.
--- p.29~30, 「선택은 피할 수 없는 삶의 멍에다」 중에서
성공과 사랑이 따로 노는 세상을 만들자는 제안인 것 같은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성공이 성공을 낳는다. 하나가 잘되면 만사가 잘된다”거나 “성공하면 바보도 잘나 보인다”는 말은 성공과 사랑이 분리되기 어렵다는 걸 시사해주는 게 아닐까? 아니 애초부터 우문(愚問)이다. 가능하건 가능하지 않건, 이 제안에 마음속으로나마 지지를 보내는 거야 어렵지 않으니까 말이다. 고대 로마 시인 루컨(Lucan, 39~65)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는 게 놀랍다. “성공한 사람은 남들에게서 사랑받는 이유가 오직 자기 자신 때문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 p.53, 「성공과 사랑이 따로 놀 수 있는가?」 중에서
입센이 바로 그런 허영심 때문에 『인형의 집』(1879)과 같은 명작들을 생산해낼 수 있었다면, 좋은 의미의 사회적 열정으로 존중해주어야지 어쩌겠는가? “허영이 혁명을 일으켰고, 자유는 오직 그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1769~1821)의 말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프랑스혁명엔 명암이 있지만, 명(明)을 더 높게 평가한다면 이 또한 허영심의 공으로 돌릴 부분이 적지 않다는 데에 눈을 돌려야 할지 모르겠다.
--- p.91, 「허영심은 존중해야 할 사회적 열정이다」 중에서
“서울을 생물학 종에 비유한다면 이미 멸종의 길에 들어섰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조영태가 2022년 한국의 합계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0.78, 그중에서도 서울시가 0.59를 기록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한국의 출산율이 유독 떨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서울과 수도권으로의 엄청난 집중”이라고 했는데, 서울의 높은 인구밀도는 심리적으로 결속보다는 분리를 선호하게 만든다. 비싼 주거비용과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암담한 미래는 청춘 남녀에게 원룸과 고시원의 삶을 강요하면서 분리에 적응하도록 만든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치이는 게 일상인 사회에서 결혼은 미친 짓이 될 수밖에 없을 게다.
--- p.123, 「고독은 결혼의 가장 튼튼한 기초인가?」 중에서
이렇듯 비평과 비평가에 대한 독설은 무수히 많지만, 비평은 여전히 건재하다. 물론 디지털혁명으로 인해 ‘비평의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예전 같은 권위와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비평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건 비평가들이 비평을 위해 쏟는 땀의 가치가 어느 정도나마 인정받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 비평가를 기생충으로 보는 시각은 일의 가치에 서열을 매기는 발상으로 오늘날 한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각종 갑질의 정서적 토대가 되고 있다는 걸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 p.162~163, 「비평가는 기생충이 아니다」 중에서
생존 전략이면 어떤가? 행복과 웃음의 관계는 쌍방향이다. 행복감이 충만해 웃기도 하지만, 웃다 보면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는 “웃음은 얼굴에서 추위를 몰아내는 태양이다”고 했는데, 자주 비장미를 풍겨 추워 보이는 한국인들의 얼굴에 웃음이 흘러넘치면 좋겠다.
--- p.195, 「웃음은 얼굴에서 추위를 몰아내는 태양이다」 중에서
“사실 위에 정의를 세울 수는 있어도 정의 위에 사실을 세울 도리는 없다. 나는 신념이 가득 찬 자들보다는 의심이 가득 찬 자들을 신뢰한다.” 소설가 김훈이 어느 강연에서 한 말이다. 의심을 긍정하거나 찬양한다고 해서 사사건건 남을 의심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자기 확신이 지나친 독선적인 사람들 들으라고 한 말로 보는 게 좋겠다. 요즘은 정치 논쟁을 하는 사람들이 드물지만, 한 번이라도 그런 걸 해본 사람이라면 우리가 의심을 찬양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할 것이다.
--- p.226~227, 「정의 위에 사실을 세울 수는 없다」 중에서
역사란 무엇인가? 그 누구건 이 역사가들처럼 얼마든지 자기 나름의 정의를 내릴 수 있다. 돌려서 말하는 것도 좋고, 뭔가 심오한 뜻이 있는 것처럼 허세를 부릴 수도 있다. 독일 사상가이자 경제학자인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인간은 그들 자신의 역사를 만들지만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진 못한다”고 했고,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은 프랑스혁명이 옳은 것이었느냐는 질문에 잠시 숙고한 후에 이런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 “그것을 말하기엔 너무 이르다.”
--- p.256, 「그것을 말하기엔 너무 이르다」 중에서
신념이 행동을 형성하는가, 아니면 행동이 신념을 형성하는가? 미국 사회심리학자 대릴 벰(Daryl Bem)은 행동이 감정뿐만 아니라 믿음까지도 바꾼다고 주장하면서 ‘자기지각 이론(self-perception theory)’을 내놓았다. 이 이론에 따르면, 구체적인 신념이 없을 때 우리는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면서 어떤 행동을 자주 하게 되며, 나중에 자신이 한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이미 저지른 행동에 맞게 신념을 세운다. 일단 행동을 저지르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 p.291, 「왜 전통시장을 살리자면서 자신은 안 가는가?」 중에서
어디 생산과 규율뿐인가?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건 소비였다. “시민들이 쇼핑 대신 섹스에 몰두하면 경제는 곧 멈추고 말 것이다.” 미국 문화비평가 로라 키프니스(Laura Kipnis)의 말이다. 웃자고 하는 말로 들을 수도 있겠지만, 자본주의가 성적 통제를 필요로 한다는 건 분명하다. 즉,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이상을 위해 우리는 쾌락, 특히 성적 쾌락을 상당 부분 희생하도록 요구받는다는 것이다.
--- p.323, 「자본주의는 성적 억압을 필요로 한다」 중에서
🖋 출판사 서평
정의보다는 어머니를 먼저 지킬 것이다
대형 참사보다 나의 치통이 더 중요하다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인가?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서 오셀로는 질투에 불타 아내를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고 침실로 가서 잠자고 있는 아내를 보며 “살았을 때 냄새 맡자. 향기로운 숨결이다. 정의의 여신조차 설득당해 칼을 꺾을 만하구나. 다시 한번. 죽어서도 이렇다면 난 너를 죽여놓고 그 후에 사랑하리”라고 홀로 독백을 한다. 질투는 긴장과 흥분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좋은 드라마적 요소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는 질투가 삶 전체에 대한 의심과 불안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시인 기형도는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라고 「질투는 나의 힘」에서 말했다.
냉소주의와 위선주의 중 어떤 게 더 나쁜가? 어느 것을 지목하건 사람들이 내심 갖기를 더 원하는 건 위선주의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 분명하다. 힘도 없고 지위도 낮은 사람에겐 위선의 기회마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힘을 가진 자들은 냉소적이지 않다. 자신들의 사상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더 위선주의적이거나 도덕주의적일 가능성이 많으며, 지위가 낮은 사람들일수록 냉소주의적이거나 자기위안적일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심장엔 이성이 모르는 논리가 있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사랑에 마음의 평화란 있을 수 없다. 사랑을 통해 얻는 것은, 더한 욕망의 새로운 출발점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또 영국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초서는 “사랑은 맹목적인 것이다.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랑은 예측 불허이자 측정 불능이다. 사랑에는 이성이 알지 못하는 논리가 있는 것이다. 사랑이 착각이건 기만이건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 작가 존 치아디는 “사랑은 젊은이의 성적 흥분, 중년의 일상적 습관, 노년의 상호 의존에 딱지를 붙이기 위해 사용된 단어다”고 주장했다.
미국 신경학자 앨리스 플래허티는 창의성에 관한 세 종류의 심리학 이론을 소개했는데, 첫 번째는 정신분석학적 모델로 창의성은 무의식에 내재하고 있다는 이론, 두 번째는 창의성을 우울함에서 오는 공허감의 표현으로 보는 이론, 세 번째는 예술에서 창의성을 유발하는 것은 다름 아닌 질병이라는 이론이다. 독일 소설가 토마스 만은 “위대한 예술가들은 위대한 병자들이다”고 말하면서 질환과 예술가들의 창작 사이에 긴밀한 연관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가 질환의 고통 속에서 창조성을 발휘했다. 이는 예술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광기와 질환마저 포용할 뜻이 있다는 말이다.
신념이 정체성이 되면 설득은 불가능하다
미국 정치학자 브렌던 나이한과 영국 정치학자 제이슨 라이플러는 일부 당파주의자들이 기존 신념을 포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일단 자신의 신념이 도전받으면 그것을 더욱 강력하게 고수하는 ‘역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입증했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신념이 확고한 사람을 설득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당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는 마음을 닫아버리고, 사실과 증거를 들이대면 출처를 의심하며, 논리로 호소하면 논점을 오해한다”고 말했다. 급기야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그가 속았다는 사실을 납득시키는 것보다 그를 속이는 일이 더 쉽다”고까지 말했다. 따라서 신념이 정체성이 되면 설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프랑스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은 “신앙의 가장 변함없는 일반적인 성격 중의 하나는 불관용이다”며 “신앙이 강하면 강할수록, 불관용은 더욱더 비타협적이 된다. 확신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렇듯 관용은 오랜 세월 ‘내로남불’의 피해자였다. 아니 관용은 종교의 덕목이 아니라는 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는 정치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오랜 세월 불관용의 탄압에 시달리면서 정치적 신념을 신앙처럼 여기면서 버티던 사람들이 권력을 갖게 되면 불관용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둔갑하는 건 거의 법칙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