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의 두 기사를 비교해 보십시요...
첫번째 기사는 연합뉴스 기사이고,
두번째 기사는 스포츠조선 기사입니다.
인기그룹 `젝스키스' 소속사 탈세의혹 수사
2000년 08월 03일 20 : 00
(서울=연합뉴스) 김종우.김범현 기자 = 최근 해체된 인기 댄스그룹 `젝스키스'
소속 기획사인 D기획의 탈세 의혹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3일 "D기획이 젝스키스 음반을 내면서 음반 판매량을 축소하
고 팬클럽 가입비를 유용했다는 첩보를 입수, 기획사 대표 이모씨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사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젝스키스 멤버의 부모들을 상대로 전화통화를 통해
음반 판매량 임의축소 등에 조사를 벌였지만 모두 `피해 본 사실이 없다'고 답했으
며, 출석에도 응하지 않아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젝스키스는 `폼생폼사' `예감' 등의 노래를 부른 6인조 댄스그룹으로, 10대 팬
들의 인기를 끌었으나 지난달 해체됐다.
[금요초대석] 이호연 DSP엔터테인먼트 사장
DSP엔터테인먼트 이호연 사장. 국내 4대 음반 기획, 제작, 유통업계의 하나로 불리는 이 회사를 이끌어가는 대표다.
좀처럼 남에게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한다는 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기획한 음반이나 가수가 뜨길 바라면 바랬지 자신이 앞으로 나서는 것을 탐탐치 않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인터뷰 요청에 "제가 그런 지면에 나갈 자격이 있나요"라며 반문하던 김사장은 어렵사리 이루어진 인터뷰를 위해, 그는 약간 부어있는 눈빛으로 빛내며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녹음실에서 날밤을 세@다고 했다. 지난 81년 이 일을 시작했을때나 사장이 된 이후나 일상은 똑같다는 거였다.
국내 내로라하는 수많은 스타들이 그와 함께 일했다. 한밭기획시절에는 태진아 구창모 문성재 유열 전유나 소방차 심신 그리고 자신의 회사인 대성기획을 설립한 이후는 젝스키스 팡클까지. 또 연예인으로는 오현경 이승연 박소현 이본 최할리 등등.
그는 소속 연예인들과 계약서 없이 신의와 신뢰로 일하는 것도 유명하다. 일도 직원들에게 맡겨 버리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포인트는 자신이 꼭 챙긴다. 고생 끝에 성공한 그는 자유로운 삶이 항상 그립다고 말한다. 학연, 지연에 얽매여 이리저리 얽히고 설키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81년 한밭기획에서 들어가 일을 배운 그는 처음부터 "체질에 딱 맞았다"고 말햇다. 그 이후 20여년동안 연예계에서 뼈가 굵었다. 그리고 지금은 성공한 사람으로 불린다. 그는 성공을 했다고 불러준다면 그것은 부지런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새벽에 집에 들어가 새벽에 출근한 20년동안의 시간이 자신을 그렇게 부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성공 비결로 `부지런의 미학'을 갈파하는 그는, 기획적인 측면에서 남들이 않하는 것을 시도했다. 부지런과 신선한 기획력이 바탕이 된 모험심이 자신을 현재의 위상으로 정립시켰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국내 댄스뮤직을 히트시키면서 가요계 하나의 흐름으로 위상을 자리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한 장본인이다. 코코, 잼, 젝스키스, 핑클 등등이 대표적인 그룹이다. 이들의 노래는 듣는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노래의 형식을 바꾸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 모았다.
소속 가수들의 스타로의 발돋움과 더불어 자신의 이름도 세상@에 널리알려진 준스타가 됐지만 워낙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그는, 조용히 물밑에 숨어있었다. 그게 보람이었다. `잭스키스'의 발굴과 신화 창조, 그 뒤를 이는 핑클의 대히로 `스타 발굴가'로 유명한 그다.
핑클의 경우, 스티커사진을 찍다가 눈에 뛴 이효리, 라디오 노래자랑의 이연으로 스카웃된 옥주현, 사생대히에서 발탁된 성유리, 친구소개로 오디션에 나갔던 이진, 이런 식이다. 그러나 이사장은 이들의 개성을 합쳐 빅히트를 시켜낸다.
그가 발굴한 연예인들이 대체로 깜짝인기에 머물지 않고 오랜동안 팬들의 사랑을 는 것은 자신들의 노력이 뒷받침될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소속배우들이 `아버'라고 부를 정도로 가족처럼 대하고 생활하는 그는 한번 마음먹은 신의는 끝까지 지키는 의리맨으로도 통한다.
마흔 여섯 노총각인 이 사장은 "착하고 이해잘해주는 여성을 만나 결혼하는 게 요즘의 소망"이라고 말했다. 의리와 끈기 부지런함으로 자시세게를 일구고 가꾼 이사장의 생각속으로 들어가봤다.
-연예계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지난 81년이에요. 고향선배인 양승국회장과의 인연으로 한밭기획에 전무이사로 가요계에 발을 디뎠어요. 전무이사로 발령받아, 로드 메니저로 시작해서 단계를 밟은 게 아니라 기획일부터 했지요. 체질에 딱 맞았어요.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할 것 같아요. 양회장님의 배려에 늘 감사해요.
-일하는 스타일은?
▲이것 저것 계산하지 않고 미친 듯이 일했지요. 거의 날밤을 세웠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새벽에 들어가 새벽에 출근했어요. 태진아 구창모 문성재 유열 전유나 소방차 심신 등 저희 소속사 가수들은 거의 스타가 됐어요. 반짝스타가 아니라 생명력이 긴 스타가 됐다는 게 기뻤어요.
-성공철학은?
▲성공요? 글쎄요. 부지런했어요. 운도 따랐구요. 아무튼 열심히 일했어요. 제가 붙임성이 있어서 사람들이 일단 신뢰해주었고 그런 주위의 도움도 컸어요. 한 10년간 앞만 보구 달렸어요. 돈키호테처럼요.
-발굴한 가수나 기획한 음반이 히트하면?
▲저희 일은 모든 게 모험이에요. 아무리 대중들의 기호나 정서의 흐름, 유행의 방향을 읽는다해도 알수 없는 게 스타가 되고 히트작이 나오는 거에요. 그런 모험 속에 기획, 제작한 음번이 빅히트하면 짜릿하죠. 특히 소속 연예인들이 각종 차트에서 1위를 휩쓸면 기막히죠.(웃음)
-생명력이 긴 가수나 연예인들을 발굴했는데?
▲깜짝스타들도 많아요. 그런데 저와 일한 사람들은 상당히 긴 시간동안 스타로 정상을 지켜왔어요. 그들이 노력이 중요하죠. 한 순간의 인기는 그야말로 물거품 입니다. 그 물거품을 안고 기획, 제작사업을 하기에는 너무 고통이 커요.
-89년 독립, 대성기획을 설립했는데?
▲소자본 창업이라 무척 어려웠어요. 앞만 보고 달렸어요. 김규민의 `옛이야기', 잼의 `난 멈추지 않는다'로 시작했어요. 다행히 반응이 괜찮았어요. 창업 자체도 아려웠고, 경에적으로도 무척 힘이들었어요. 발로 뛰고 뛰었고 그 결과 가수들의 노래가 떳@어요. 제 얼굴도 누렇게 떴지요.(웃음)
-국내 가요게에 10대가수들을 본격,등장시켰는데?
▲기획상품인 셈이죠. 나이든 가수들만이 있을 필요가 있을까? 새로운 흐름, 새로운 스타일, 새로운 노래형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10대 가수들을 발굴하기 시작했죠. 어렵게 찾아내 8개월 동안 연습시켜 세상에 선보을 보이는 방식이었죠. 그게 맞아 떨어졌어요.
-댄스뮤직이란 장르를 대중 속에 파고들게 했는데?
▲`코코'(윤현숙@이예영), 뮤를 비롯해 수없이 많지요. 듣는 노래에서 보는 노래로 형식의 변화를 추구한 것입니다. 노래란 형식을 오디오만이 아니라 비디오로 즐긴다는 개념으로 발상전환, 새 매체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물론 이 흐름이 자리를 잡고 나니 댄스뮤지직이 한국 가요를 망친다는 비판여론도 없지 않았어요.
-젝스키스의 산화도 그 연장선상인데?
▲하와이에서 2명, 국내에서 4명을 찾아내 구성했죠. 처음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으니까 그림이 썩 괜찮더라구요.처음부터 히트에감이 있었어요. 방송을 타기 전 PC통신에서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대단했지요. 앨범을 내놓았는데 상상외였어요. 한 앨범에서 `학원별곡' `폼생폼사' `연정' `기억해 줄게요' 등 4곡이 빅히트를 했어요. 한 앨범에서 4곡 히트는 드문일이라 더욱 놀랐어요. 본인들이 열심히 했어요. 해체할 때까지 말다툼을 하거나 싸운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결국 젝스키스는 해체됐는데?
▲너무 아쉬웠어요. 이 문제는 본인들과 부모들이 심사숙곡한 끝에 내린 결정이에요. 갈길이 있고 정상에 잇을때 자리를 떠나겠다는 거였죠. 일부 팬들은 저의 입깁 운운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아요. 사업가의 입장에서 보면 제가 해체를 말한 이유가 없어요. 끝까지 가고 싶었지요. 젝스키스의 해체는 이 사업을 하면서 가장 아쉬운 일로 기억될 겁니다.
-기획자와 소속 연예인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는?
▲젊은 소속 연에인들은 저를 아버지라고 불러요. 저 역시 친자식처럼 대하구요. 부보의 입장엣에서 속이야기를 다해야만 합니다. 가식이 있으면 안되요. 사로 친 부모자식간 처럼 일하려고 해요. `젝스키스' `핑클'의 부모님들은 간섭을 하지 않고 끝까지 묵묵하게 지켜보아 주셨어요. 저 로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해요.
-매니저나 기획일을 하고 싶은 지망생들에게 한마디?
▲글쎄요(사이) 제가 그런 얘기를…아무튼 부지런해야 되요. 그게 제일 소중해요. 그리고 신중하고, 인간관게를 중요시하면서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조급하게 목표를 이루려는 생각보다 멀리보려는 시각과 인내심을 가지라는 겁니다. 그리고 뛰는 겁니다.
-인생철학도 그런가?
▲한번 마음 먹으면 그일을 꼭 해낼뿐만 아니라 성공시키겠다는 자기신념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사람과도 마찬가지도 한번 마음 먹으면 그 신의는 끝까지 지킵니다. 그게 재산이에요.
-돈도 많이 벌었다는데?
▲하하, 밥 세끼 먹으면 됐지요.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일할 겁니다. 저희 회사 직원이 35명인데 식구나 다름없어요. 이익이 나면 직원들과 소속연예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돌아가도록 노력할 작정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때는?
▲그걸 어떻게 말로 할수 있을까요? 현대사회에서 생존경쟁은 정글이나 마찬가지죠. 그 정글을 헤치고 뚫고 나오는데는 몸도 지치고 얼굴도 긁히고…지금도 정글 속에 있어요.(웃음) 다행이 성격이 활달해서 잘 극복했지만요.
-남기고 싶은 것은?
▲옛날에 이런 유명(?)한 사람이 있었다 정도지요. (이 계통의 사업에서)빠질 때 시원하게 빠지는게 좋다고 생각해요. 사은 것도 그렇구요. 저희 회사가 가수나 연예인이 되려는 젊은이들에게 정말 좋은 의미의 기교역할과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는 연예기획집단으로 인상지워지길 기대해요.
◇이호현 사장은? 1954년 대전 출생. 1981년 한밭기획 전무이사로 기획, 음반제작 일 시작. 한밭기획에서 태진아 구창모 문성재 유열 전유나 소방차 심신 등 수많은 가요스타와 일함. 89년 대성기획(현 DSP엔터테인먼트)설립. 김규선의 `옛이야기'를 시작으로 잼, 코코, 아이돌, 젝스키스, 핑클까지 80여명의 스타군단을 탄생시킴. 현재 핑클뿐만 아니라 제2의 젝스키스 발굴을 준비 중.
[박용재 문화부장 eastsea@]
08/03(목) 14:19 입력
조선일보사에 있는 기자들은 정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연예계에 악명높은 이호연사장을 미화하는 기사나 인터뷰
내용으로 볼때..
제 생각에는 정말 조선일보나 스포츠 조선 없어져야 될 신문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