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하느님… 제발 도와주세요”
군산 매매춘 화재현장 희생자 여성의 일기장, 그 고통스런 기록
(사진/화재가 난 건물의 창은 이중으로 쇠창살이 쳐져 있었다.임씨등은 감금상태로 성매매를 강요받았다)
지난 9월19일 오전 감금상태에 있던 매춘여성 5명의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간 전북 군산시 대명동 속칭 ‘쉬파리’ 골목 화재사건은 매춘여성 역시 매매춘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각성시키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밤새 손님을 받은 뒤 잠에 골아떨어졌던 20대 초반의 여성 5명은 화마에 몸이 까맣게 그을린 채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건물의 이중 출입문은 커다란 자물통이 채워진 채 밖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에는 두꺼운 쇠창살이 이중으로 처져 있었다.
사건 발생 사흘 뒤 잿더미에서 발견된 임아무개(20)씨의 일기와 금전출납부에는 매매춘 지역에서 공공연히 이뤄지는 인신매매, 감금, 갈취 사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또한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한 어린 매춘 여성이 견디어야 했던 고통스럽고 절망스런 시간이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유족의 동의 아래 일기의 일부를 발췌한다.
사람답게, 여자답게 살고 싶다
2월16일
영업이 끝났다.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간다. 6일 전의 두려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금의 난 이곳 생활에 길들여져 가고 있다. 항상 소망한다. 업소 생활의 마지막이 이곳이 되기를. … 업소 생활 3년 만에 얻은 것들도 잃은 것들도 많다. 잃은 건 내 자신, 내 본모습, 이름 석자, 그리고 돈. 난 항상 말한다. 지금의 난 내가 아니야, 아니 아닐 거야.
2월17일
살고 싶다. 정말 살고 싶다. 사람답게 여자답게 살고 싶다. 순결해지고 싶다. … 거울 속 내 모습을 보았다. 난 간 데 없고 누군가 모르는 여자가 있다. 묻고 싶다. 왜 그렇게 변했냐고. 부끄럽고 창피하지 않냐고.
2월18일
너무 아팠다. 예전에 주사 맞았을 때랑 같은 증상. 몸이 나른해지고 정신이 멍멍해지고 머리가 아파서 미칠 것 같았어. 일은 해야 하고 몸을 따라주지 않고. … 몸이 내 몸 같지 않아. 너무 피로에 쌓였어. 쉬어야 하는데 단 하루라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전화가 너무 하고 싶었어. 엄마 나 좀 데려가라고 나 힘들다고. 그리고 외롭다고.
날짜 미상
벌써 2월이 다 가고 있다. 곧 봄이 올 텐데. 언니가 너무 보고 싶다. 생각난다. 언니랑 부대찌개 먹으러 갔던 날이. 너무 보고 싶다. 언니도 내가 보고 싶을 거야. 빨리 빚을 갚고 내가 사랑하는 언니를 만나러 가고 싶다. 8월이 빨리 왔으면…. 그때면 적금 끝. 난 해방. … 하나님 도와주세요. 울 언니, 내 동생.
2월28일
처음에는 어서 빨리 여기서 나가야지, 빨리 3개월이 지났으면 했는데 지금의 날 보면 어쩐지 술도 못 먹고 매상도 못 맞춰. 근데 몸이 너무 지쳤어. 아침에 눈뜨기가 겁이 나. 나에겐 너무 고통이야.
일기에는 “도와주세요”란 간절한 문구가 곳곳에 나온다. 집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는 대목도 많이 들어 있다. 2월 초에 쓴 글에는 ‘앞으로 석달’이라고 나와 있지만 그뒤로는 ‘8월이면’, 그리고 4월에는 ‘1년만’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그뒤로는 영영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불안이 가득하다. 임씨에게 족쇄가 된 몸값 선불은 1320만원. 2, 3, 4월 내내 열심히 갚았지만 그는 123만1천원을 갚았을 뿐이다.
한달 총지출 비용 230만원
날짜 미상
날고 싶다. 훨훨 새가 되어 꽉 막힌 곳을 벗어나. 베란다 중앙에 있는 새장을 보았다. 외로운 새 한 마리가 보였다. 날 보는 것만 같았다. 창살 틈으로 새가 말한다 짹짹. 그 모습은 내 모습이었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남들이 알아들으면 어찌할 방법을 가르쳐줄 텐데. 아무도 모른다.
날짜 미상
삼촌이 그랬다. 아직은 니가 빛을 볼 때가 아니라고. 많이 생각했다. 너무 자신이 없다. 내 모습에 나의 외모에 작고 통통한 몸 못난 얼굴 싫어 정말 싫어. 삼촌은 얼굴에 상관없이 손님한테 충실히 열심히 해서 파트너를 만들면 된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남자를 꼬시고 유혹하고 애교를 떨 줄 모르는 내겐 외모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이다.
3월6일
오늘은 정말 죽고 싶은 날이었어. 너무 큰 실수를 해버렸어. 술에 취해버렸어. 그래 술을 못 마시면 이 직업을 택하지 말아야지. 나도 알아 나도 술집은 오기 싫었어. 상황이 날 만들어주지 않아서 그렇지. 너무 쪽팔리고 가고 싶은 생각밖에는 없었어. 미칠 것 같았어. 쥐 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어. … 난 잘하고 싶어. 열심히. 얼굴도X 몸매도X 그러면 술이라도 잘 먹어야지. 그래서 매상에 신경써야 하는데 난 이것도 저것도 안 돼. 정말 쓸모없어. 미치겠어.
3월10일
오늘 삼촌이 말했다. 꾀부리지 말고 열심히 좀 하라고. 나도 미치겠다. 몸은 아프고 게다가 술까지 마시면 나도 죽겠다. … 돈 너무 우습게만 보아왔다. 1만원 우습지! 10만원 더 우습지! 정말이지 악바리처럼 돈 모으련다. 도와주세요 주여. 우리 가족 지켜주세요. 아프지 말고 아무 사고없이 몸 건강하도록 보살펴주세요.
임씨의 3월달 지출내역을 보자. 화장품 23만5천원, 홀옷 46만원, 가발 15만원, 붙인 머리 30만원 등이 적혀 있다. 여기에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고정지출비용은 방세 70만원, 아줌마 30만원(청소용역비인 듯), 세탁비 10만∼20만원을 비롯해 전기세, 수도세 등을 합하면 총지출 비용은 230만원을 웃돈다. 밥값은 뺀 돈이다. 게다가 선불로 ‘땡겨’ 온 빚의 이자는 원금상환과는 별도로 갚아나가야 했다. 3, 4, 5월에 69만원, 48만원, 63만원으로 적힌 부분이 이자로 보인다. 살인적인 금리다. 화대를 반씩 나누므로 임씨는 최소한 한달에 600만원 이상의 고정소득은 올려야 이런 고정지출비를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한달에 150여명의 손님과 ‘관계’를 해야만 벌 수 있는 돈이다.
너무나 집에 가고 싶다
(사진/화재현장 잿더미 속에서 발견된 임씨의 일기)
금전출납부에는 매상내역이 빼곡이 적혀 있다. 9월의 경우를 보면, ‘9월11일 ‘13명 총 61만5천원 내꺼 37만5천원, 9월12일 10명 총 65만원 내꺼 32만5천원, 9월13일 9명 총 43만원 내꺼 21만5천원, 9월14일 8명 총 51만원 내꺼 25만5천원’ 등. 그러나 그가 번 돈은 선불로 ‘땡겨’ 쓴 몸값의 이자와 터무니없이 높은 방값, 옷값, 세탁값 등의 각종 명목으로 고스란히 업주의 호주머니에 되돌아갔다. 숨진 5명의 아가씨와 다른 두명이 있었다는 걸로 미루어볼 때 업주는 한달에 수천만원대의 수입원을 거느렸던 셈이다.
3월15일
여기서의 첫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꿈을 꾼다. 가족 꿈, 집에 가는 꿈, 언니랑 놀러다니는 꿈. 처음부터 그랬듯이 아니 지금도 또 앞으로도 나의 소망은 단 하나. 집에 빨리 가는 거. 그래서 하루 빨리 언니를 만나는 거.
날짜 미상
집이 너무 그립다. 엄마가 해주던 밥. OO이랑 과자 먹던 일. 아버지 술 먹던 모습. 울 언니랑 시내 구경하며 사먹던 일 등등…. 너무나 보고 싶고 해보고 싶다. 언제쯤이면 집에 갈 수 있을까? 1년? 2년? 모르겠다.
4월19일
내가 이렇게까지 정말 살아야 하는지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살아야 될지 모르겠다. 요새 너무나 슬픈 꿈들을 많이 꾼다. 가고 싶다. 너무나 집에 가고 싶다. 보고 싶다. 너무나 가족들이 보고 싶다. 살고 싶다. 하지만 살고자 하는 의욕이 점점 없어진다. 내 자신에게 실망하고 주위에 실망하고 세상에 실망한다. 내가 왜 이곳에 지금 뭐 때문에 와 있는지를 생각해본다. 괴롭다. 따지고보면 여기에 있을 이유도 없는데….
5월19일
왜 내가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오직 집에만 가고 싶다. 그렇다고해서 일을 소홀히 할 수도 없는 노릇. 미치겠다. 잠을 자기가 싫다. 눈은 몇분 감은 거 같지 않은데 금방 일어날 시간이다. 하루에 열두번도 집 생각이 난다. 먹는 건 돼지인데 살은 찌지 않고 2kg이나 빠졌다. 미치겠다. 왜 시간이 가지 않을까? … 이곳에서 나가 사회에서 뭘 하고 살까? 솔직히 막막하기도 하다. 두렵기도 하고. 혹시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동네에 벌써 소문이 나지 않았을까? 제발 부디 제발 그것만은.
감금 상태에서 화대를 갈취당하면서도 임씨은 자신이 인권유린을 당한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오로지 돈을 벌어 빚을 갚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가족에게도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잿더미에서 일기장을 찾아낸 임씨의 아버지와 언니는 이 글을 읽고 가슴이 막혀 숨을 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영안실에서 만난 임씨의 가족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6월29일
항상 거울을 보며 묻는다. 너 여기 지금 왜 있니? 빨리 집으로 가야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모든 게 싫다. 짜증만 난다. 지겹다. 하루하루가. 잠들기가 싫다. 눈뜨기도 싫다. 말하기는 더 싫다. … 내가 무슨 죄를 크게 지었기에 지금의 고통을 받는지. 하루 빨리 가고 싶다. 하느님, 저에게 단 한번의 기회를 주신다면 정말 성실하게 옛일들을 뉘우치며 살겠습니다. 도와주세요. 이젠 지쳐가고 있어요. 그러다 삶의 의미조차 잃어버릴까 두렵습니다. 산다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줄은 알았지만 이건 아닙니다.
빨리 빚 까서 자유의 몸이 될 거야…
6월23일
어제 아가씨 한명이 갔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가는 것에 대한 서운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언제 나도 갈지 모른다는 두려움. 솔직히 겁이 난다. 난 여기서 빚 다 까고 여기서 마치고 싶은데. 어쩜 또다시 떠돌아다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오늘 하루를 보내게 한다. 슬픈 일이다. 정말 슬프다. 돈! 돈이 뭔지? 그리고 인생이 뭔지? 왜 꼭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 아껴야지 돈 무섭게 알고 이 악물고 하루 빨리 빚 까서 자유의 몸이 될 거야. 난 할 수 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꼭 해낼 거야. OO 파이팅!
7월13일
사랑하는 친구 OO에게. 오늘도 너에게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쓴다. … 너무 불안해. 벌써 네가 날 잊었을까봐. 항상 이곳에서의 마지막 날을 꿈꿔. … 혼자서 목욕탕 가고 슈퍼 가고 커피숍 가서 창가에 앉아 사람들 구경하고. 근데 OO야, 내가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 겁도 나고 자신도 자꾸 없어져.
임씨은 8월14일 이곳에 팔려왔다. 지금까지 기록된 내용은 군산역 앞 중앙로에 자리한 유흥가 ‘감뚝’의 한 업소에서 지낼 때의 기록이다. 경찰은 합법적으로 등록된 감뚝의 유흥업소들을 정기적으로 단속한다고 하지만, 일기를 참고해 볼 때 같은 관할인 ‘감뚝’에서의 ‘허가받은’ 매춘생활도 감금과 갈취 등으로 고통스럽긴 마찬가지였다.
8월30일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두렵다. 너무 두려워 그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곳은 2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까지의 여자들이 모인 곳. 두렵다 그래서 두렵다. 나 지금은 젊다지만 내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지금 이곳에 있는 것처럼. 그리고 외롭다. 너무 외롭다.
날짜 미상
집에 솔직히 얘기하고 나 좀 도와달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용기. 도저히 용기를 낼 수 없다. 언니의 울음, 동생의 민망.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 도와주실 거죠? 하느님, 도와주세요. 이번만은 꼭! 저 살고 싶어요. 이번엔 정말 제대로,
9월17일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치면 칠수록 항상 제자리. 난 항상 그래. 정말 이럴 땐 딱 죽고 싶다. 모든 걸 잊고 죽고만 싶다. 인간에게 질려버리고 짜증이 난다. 남자! 남자! 남자가 싫어진다. … 하루 어디에서 내 기분 내키는 대로 발길가는 대로 스트레스 좀 풀고 싶다. 예전엔 그럴 수 있었는데. 언제쯤 그런 날이 올까? 두렵다 일이 두려워진다. 아프기 싫은데 자꾸 아프니까 싫다. 나! 나 좀 도와주세요. 제대로 인간답게 사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요. 이 정도면 옛날의 죄값은 다 치른 것 같은데 제 생각만 그런가요. 이젠 그만 용서해 주시고 저 좀 도와주세요.
임씨가 애타게 찾던 하느님도, 그리워하던 가족과 친구도, 경찰도, 공무원도 임씨가 외부와 차단된 쪽방에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끝내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공동체의 이웃들은 이 죽음에서 자유로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