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에 걸쳐 적잖은 음반을 갖춰 두고
거의 매일 음악을 들으면서도 가끔은 뭘 들을까 망설여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실내악
중에서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들을 자주 꺼내는 편이다.
그뤼미오와 하스킬,
셰링과
해블러,
오이스트라흐와
바두라-스코다,
주스케와 올베르츠
등의 협연이 친근하지만,
이들 외에도 카간과
S.
리히터,
드루이안과
셸,
쿠이켄과 레온하르트
등 많은 종류의 음반들을 갖고
있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들은 모두 모차르트
예술의 핵심을 전달하고 있으며 하나같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어여쁘면서도 기묘한 애잔함이 있어 더욱 정이
간다.
곱게 빚은 음표 몇 개만으로 천상적 순수함과
아름다움의 극치를 그토록 오묘하게 그려낸 모차르트의 영감이 올 곳은 오직
하늘뿐이리라...
42곡에 이른다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들 중
K.304
제1악장의 살짝 비감스러우면서 차분한
서정,
K.378
제1악장의 유려함,
K.454 제2악장의 고적함,
그리고
K.526
제2악장의 포근함 등이 가장
유명하지만,
꼭 이런 최대 히트작들이 아니더라도
여기저기에 숨은 아름다운 선율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얼핏 꼽아도 K.296의 제2악장과 제3악장,
K.301의
제1악장,
K.306의
제1악장,
K.376의
제1악장,
K.377의 제2악장과 제3악장,
K.380의
제2악장,
그리고
K.481의 제2악장 등 어여쁜 걸작들이 맛있는 굴비처럼 줄줄
이어진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한 이 작품들에
대해 우열을 논하거나 어떤 설명을 붙이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듣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럽고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으므로),
K.377
제2악장에 대해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하도 많이
들어서 각별한 정을 갖고 있다.
K.304,
K.378, K.454, K.526 등에 비해서는 덜 알려져
있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감성적인 이 제2악장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이 곡을 들을 때는 늘 구동독의 거장
주스케의 연주를 고집했는데,
주스케의 음반이 모두
고가이지만 그 진지하고 깊이 있는 음색을 듣고 있자면
언제나 제 값어치를 한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주스케를 소위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을
느끼게 하는 진정한 비르투오소라고 생각하며,
없는 돈에도 한 장
한 장 모은 주스케의 음반들은 내 작은 음악실의 커다란 자랑이다.
언젠가 내 음악실에서 진행된 작은 모임에서
주스케의 음반으로 K.377의 제2악장을 들려준 적이 있는데
곡이 끝난 후 모차르트 애호가인
L
여사의 눈가가
촉촉해진 것 같아 내가 순간적으로 L
여사 들으라고
“이런 아름다운 음악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오늘 여기 오신 분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습니다!”라고 즉흥적인 코멘트를 선물하기도
했다.
컴컴한 실내에서 화폐적 수입과는 무관한
음악회를 열고 손님이 좋아했다는 이유만으로 뿌듯함을 느끼는 이 고약한 증세는 대체 뭐란
말인가?
친구놈들은 만날
섹시한 50대 여동생들과 골프니 음주가무니
본능에 충실한 멋진 삶을
사는데...
한마디만 더 얹으면,
K.296과
K.301~306의 7곡은 1778년 어머니와 떠난 만하임과 파리로의
연주여행에서 쓴 것들인데 K.304의 분위기가 비감스러운 건 어머니의 갑작스런
사망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모차르트의 모든 바이올린 소나타들 가운데서
K.304의 인기가 가장
압도적이다.
모차르트여!
모차르트여!
말해
주시오!
그대가 혹 오르페우스가
아니었는가···
음악으로 산천초목을 감동시켰던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가
1756~1791년에 걸쳐 잠시 이승을 다녀간 게
아니었는가···
PS) 정치적 목적으로 '중국 우한
코로나'를 '대구 코로나'로 부르고,
이번 사태를 '대구의
문제'라고 떠드는 저질스런 작자들 때문에 심기가 몹시 불편하여
통 글이 써지지 않았는데,
어제 미국 사시는
jenna님의 독려를 받고 모처럼 게시물을 만들어 보게
되었음...
모차르트 : 바이올린 소나타 K.378 중
제1악장
모차르트 : 바이올린 소나타 K.296 중 제2악장
모차르트 : 바이올린 소나타 K.377 중 제2악장
- 보월산방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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