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양이요, 땅은 음이다.
태양은 양(陽)이요, 지구는 음(陰)이다.
우주 모든 현상(現象)의 근본은
음양(陰陽)의 원리이다.
음양이 맞물려 변화하는 형상(形象)을
태극(太極)이라 하는데
이러한 태극이야말로
우주의 존재원리(存在原理)를 나타낸다.
모든 사물은 수축과 팽창을 거듭한다.
수축은 음의 기운이요, 팽창은 양의 기운이다.
이러한 상반(相反)된 기운의 작용으로
음양은 오행의 모습인 우주의 현상으로 변한다.
연구의 편의를 위하여
음양을 분리하여 고찰하기는 하지만
음양은 양 없는 음이나 음 없는 양의 모습으로
제각기 분리되어 각각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음은 음으로 양은 양으로만 변하는 것이
일견 당연해 보여 착각하기 쉽지만
음이 극에 이르면 양으로, 양이 극에 이르면 음으로
큰 원칙 안에서 순환하면서 변한다.
극(極)에 이르지 않더라도 한쪽에서 음이 성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양이 성한 모습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이렇듯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는 음양(陰陽)은
어떤 원리에 의해
그 고유성(固有性)이 유지되고 있는 것일까?
음양은 얼핏 생각하면
상호 대립하는 형상(形象)으로 보이지만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성질이 매우 강할 뿐
대립(對立)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이 성질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均衡)과 조화(調和)를 이루려고 하므로
이를 <치우치지 아니하는 바른 상태>라는 뜻의
중화(中和)라 명명하여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중화(中和)는
음양의 상호 균형은 물론
극한(極限)에 이른 기운을 흡수하여
어떤(?) 심오한 작용(作用)을 거쳐
새로운 기운을 일으킴으로써
전체적인 균형을 유지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중화를 이루기 위한
작용(作用)의 원리가
우주만물(宇宙萬物)이 존재할 수 있는
근원(根源)적인 원리가 된다.
음이 극에 이르면 양으로,
양이 극에 이르면 음으로
끊임 없이 순환하는 큰 원칙이 바로
중화(中和)의 원리이다.
따라서 태극을 보면
음과 양 두 개로만 구성되어 있지만
음양이 생성존립(生成存立)하는 이면에는
중화를 향한 작용력(作用力)이 늘 함께 하고 있다.
앞에 언급한 대로 음양은 상대적이며
섞이지 않고 공존(共存)하는 모습으로 존재한다.
남녀가 합방 않고 아이를 낳을 수 없듯이
음양 또한 합방(?)에 의해서만 음양을 생성할 수 있다.
이 말은 곧 음양은 상호 어떤 감응에 의한 작용을 거쳐
음양을 생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쌍의 음양은
2쌍의 새로운 음양을 생성하게 되는데
양의 기운만으로 태어난 양은 화(火)
음의 기운을 함께 가지고 태어난 양은 목(木)
음의 기운만으로 태어난 음은 수(水)
양의 기운을 함께 가지고 태어난 음은 금(金)
이렇게 해서
4행(四行)이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토(土)는 어디에 있는가?
토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만물을 길러내는 어머니와 같다.
음양이 4가지 모습의 음양을 탄생 시킬 때
‘감응을 통한 작용력’의 역할을 하는 것.
그것이 생명 탄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대지의 기운인 토(土)이다.
다소 독특하기는 하지만
이 토의 기운 역시 음과 양의 역할이 다르다.
양토인 무토(戊土)는
생명의 씨를 저장 및 배양을 하지만
음토인 기토(己土)는 갑목(생명력)이 직접 뿌리를 내리는
실질적인 의미로서의 기름진 땅을 의미한다.
앞서 논한 바와 같이 음양은 중화(中和)로 인해
그 존재성(存在性)을 유지하게 되는데
이 중화는 오행으로 들어가면
대지의 기운인 토(土)의 작용과 같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음양은 상대적인 개념이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식물은 음이요, 동물은 양이지만
인간과의 비교에 있어서 동물은 음이다. (인간은 양)
남자는 양중의 양이요,
여자는 양중의 음이다.
남녀의 사랑의 행위는
양토적인 기운이지만
새생명를 잉태하고 10개월 동안 길러내어
태어나게 하는 것은 음토 즉, 여자의 몸이다.
이와 같이 기토(己土)와 같은 여자의 몸은
언제든지 생명을 탄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으며
신(神)의 형상으로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우주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음양은 언제나
오행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음양은 오행이라는 옷을 입고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무한한 형태로 존재한다.
음과 양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의 비율로 섞여있는가에 따라
오행은 얼마든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 존재하든
오행의 모습은
음양이 옷을 갈아입은 것일 뿐
음양을 벗어날 수는 없다.
(백랑 오봉환 배상)
http://blog.daum.net/wldydtk
*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개념을 분명하게 정의하고 개념화된 용어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작업인 듯합니다. 중화(中和)... 국어사전의 의미로는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것이 섞여 각각의 성질을 잃거나 그 중간의 성질을 띠게 함. 또는 그런 상태>이므로 분명히 적절한 용어선택은 아닙니다. 그러나 꼭 맞는 용어를 찾지 못해 고심하다가 제 책에서만이라도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것이 섞여 각각의 성질을 잃지도 않고 치우치지도 않는 상태를 이루게 함 또는 그런 상태>이라고 재정의하기로 약속하고, 명리학의 전문용어로써 중화라는 용어를 선택 사용하였습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개념을 넣은 것이지요. 양해 부탁 드립니다. ^-^
첫댓글 Very good! 소경이 빛을 본 느낌입니다.
백랑님, 정말 좋은 글이네요. 감사 드립니다. ^-^
다소라도 도움이 되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한길로님, 활기찬 한 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음양 중화(中和)란 용어를 수화기제(水火旣濟)로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여봅니다. ^*^
Modu님, 반갑습니다. 그리고 날카로운 지적 감사 드립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개념을 분명하게 정의하고 개념화된 용어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작업인 듯합니다. 중화(中和)... 국어사전의 의미로는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것이 섞여 각각의 성질을 잃거나 그 중간의 성질을 띠게 함. 또는 그런 상태>이므로 분명히 적절한 용어선택은 아닙니다. 그러나 꼭 맞는 용어를 찾지 못해 고심하다가 제 책에서만이라도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것이 섞여 각각의 성질을 잃지도 않고 치우치지도 않는 상태를 이루게 함 또는 그런 상태>이라고 재정의하기로 약속하고,
명리학의 전문용어로써 중화라는 용어를 선택 사용하였습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개념을 넣은 것이지요. Modu님,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널리 양해 부탁 드립니다. ^-^
"끊임 없이 순환하는 큰 원칙" 혹은 중화에서 벗어나지 않는 어떤 작용력을 태극이라 본 것은 매우 논리적이며 합당한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이 원칙 혹은 작용력을 한걸음 더 나아가서 氣로 볼 것인가 理로 볼 것인가 心으로 볼 것인가 그렇지 앟으면 다른 어떤 것으로 볼 것인가에까지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부분이 해결된다면 명리학이 술수를 넘어 형이상학을 갖춘 학문으로 새롭게 변모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雪湖님, 반갑습니다. 이렇게 깊은 관심을 보여주시고 또한 격려해 주시니... 깊이 감사 드립니다. 제 연구의 목표는 명리학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논리를 갖춘 원론(原論)으로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구를 시작하면서 마주친 첫 번째 산이 이기론이었지요.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을 드려볼까요? 오래 전부터 논쟁의 중심에 서서 학자들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어 왔던 이기론<성리학에서 이(理)와 기(氣)의 원리를 통해 모든 우주현상과 사물의 생성 및 유기적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이란...
이(理)는 모든 사물과 관련된 법칙, 원리 또는 이치, 도리의 뜻을 나타냅니다. 즉 모든 사물을 지배하는 일체의 법칙성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기(氣)는 이(理)의 원리를 기준으로 생성되는 사물의 현상적 요인으로서, 구체적 사물과 관련된 질료(質料), 형질(形質)의 뜻을 나타냅니다... 모든 만물은 이(理)를 토대로 기(氣)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생성 소멸하고 각각의 차별성을 가지며, 또 기(氣)의 운동법칙에 따라 변화 발전하는 것이라고 보아, 이(理)는 기(氣)에 의존하여 구체적 존재로 나타나고 기(氣)는 이(理)를 근거로 존재하고 운동한다고 설명하였지요...
특히 이(理)를 보다 중요시한 이황은 이(理)와 기(氣)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주리론(主理論)'을 편 데 반해, 이이는 이(理)를 객관적 실재라기보다는 기(氣)의 법칙성으로 이해하여 이(理)와 기(氣)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주기론(主氣論)'을 전개하여, 이후 성리학의 양대 주류로 계승 발전되었던 이론이랍니다(네이버사전 참고)... 이에 대한 연구결과는 차후에 다시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나저나 명리학... 과학적인 원리에 의한 학문적인 체계를 세워나가는 것, 짐작도 하고 각오도 했지만 정말 만만치 않은 작업이네요. ^-^
좋은 공부 많이하고 갑니다.
건곤명리님, 멀리 못나갑니다. 살펴가십시오. ^^
오늘도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포모나님, 항상 깊은 관심 고맙습니다. ^-^
음속에 양이있고 양속에 음이 있으니...상대성이론에 기반을둔 남여중
남은분명 양인데
그자체에는무궁한 음이 존재한다는...좋은 말씀...내용... 감사합니다
날씨가 다소 풀렸다기에 가볍게 입고나갔다가
덜커덕 생각지도 못했던 고뿔이 들고말았네요.
기산님, 많이 풀렸다고는 하나 아직은 쌀쌀합니다.
방심하지 말고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
백랑님/ 성리학은 태극을 理로 보지요. 주희 이황 이이는 이점에서 모두 같습니다. 한당대의 원기론이나 주렴계, 장재의 氣론 들은 모두 태극을 氣로 봅니다. 육상산 이후 심학일파는 태극을 心으로 봅니다. 기왕지사 태극을 다루셨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리시더라도 氣, 理, 心을 폭넓게 살피시면 어떨까요? 특히 성리학은 무극=태극인데 반해 기론은 무극에서 태극이 생겨난다고 하죠. 이런 형이상학적 문제들이 명리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가 관건 같습니다. 이 다음에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한동석님의 "우주변화의 원리"를 보면..
주자는 무극= 태극이 아니고...
무극에서 태극을 계승한다는 의미라 ....
한동석선생님께서는 말씀하시는데...
설호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소인은 고회민선생님의 이론을 따라...
주자는 무극=태극이라 말씀하신걸로 보는데?.....고마.
그리고...
나중에..게시글로 올릴지는 모르겠지만...
소인은 체용일원설이나...
주자의 리본론을 떠나...
<역에는 체가 없다>라는...
고회민선생의 이론...
<역무체易無體>론을 계승하고 있답니다......고마.
雪湖님, 이거 감탄을 금할 수가 없군요.
하시는 말씀마다 정곡(正鵠)을 찌르시네요.
애정 어린 따뜻한 말씀, 깊이 명심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지도와 편달을 부탁 드립니다. ^-^
참...그리고^^
설호님이 왜 조선에는 리학만 들어왔나...하는 말씀에....
지금...
육왕심학을 공부하고 있답니다...
(입문서 수준이지만^^)
입문 수준이라...
학문적인 것보단..외적인것에 더 마음에 끌리는 중인데....
아호에서 만난..두성인의 장면을 연상하니...
추노에서...
활을 당기는 대길과....
여인을 지키고자 서있는 태하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아마...
아호에서 만난..
주희선생과...육구연선생의 포스가....
추노의...
대길과 송태하의 포스가 아닌지^^
<오늘 곡주가 심해...헛댓글이 많습니다...부디 혜량해주시길....고마>
심오한 논리와 극도의 난해함 때문에 누구나 일정한 공부를 하면 이해할 수 있는 과학과 달리 웬만한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그 명함도 내밀기 어렵다는 음양오행설... 한동석 선생님의 "우주변화의 원리"도 음양오행의 원리를 담은 책인데 여러 면에서 너무 난해해서 저도 한숨 깨나 흘렸지요. 고마님, 반갑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부탁 드립니다. ^^
백랑님/ 저는 여적지 학동입니다. 오히려 저에게 많은 지도 부탁드립니다.
雪湖님, 따듯한 말씀 고맙습니다.
애궁, 벌써 밤이 한참 깊었네요.
이불 차지 말고 편안히 주무십시오. ^-^
고마님/ 고회민선생의 저작은 아직 접하지 못했습니다. 10년전에는 역경이 제 주된 관심이었는데 어느새 멀어졌네요. 역무체설에 대해 소개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한동석 선생의 우변원은 저도 제법 탐독했습니다. 처음에는 고뇌, 이후에는 감탄, 마지막으로는 허탈했지요. 최종적으로 제 이성으로는 해독불가의 서적이었습니다. 제 수준 혹은 근기가 얕아 그런 것이겠제요. 언젠가 우변원 놓고 분석해 보는 작업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한동석 선생님도 <우주 변화의 원리>가 50대에 철학 석사과정의 학위논문으로 쓰기 시작하신 글이라고 하니 - 석사과정을 때려치우기는 했지만^^ - 雪湖님도 힘을 내십시오. ^-^
백랑 오봉환선생님과 설호님의 답글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소인은 가르치려는 자가 아니라...
배우려 하는자이고...배울수 밖에 없는 자입니다....고마.
...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은 쌍방향 커미뉴케이션이 아닐까요?
그러니 雪湖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누구나 배움 고픈 학동이지요.
고마님!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멋진 복을 많이 지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