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1월 01일 수요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제1독서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6,22-27
22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24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25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26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4,4-7
형제 여러분, 4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5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6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7 그러므로 그대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다.
여드레 뒤 그 아기는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6-21
그때에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16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17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18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19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20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21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복은 주님에게서 옵니다.
오늘 독서가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거듭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결같지 못할지라도,
충실하신 사랑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시는 변함없는 보호와 돌봄이 축복이겠지요.
문득 창세기 25장과 27장에 나오는 에사우와 야곱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조상 대대로 전해지는 하느님의 축복인 맏아들의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빵과 불콩죽 한 그릇에 팔아넘긴 에사우의 일화는 신앙의 악화 일로를 걷는
오늘날의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빛을 던져 줍니다.
결국 하느님의 축복은 그것을 간절히 바란 동생 야곱에게 이어졌습니다.
축복을 놓고도 경쟁하였다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하느님의 소중함을 알아보고 하느님께 기대어 그분의 사랑과 돌봄을 체험한
야곱에게 축복이 이어졌다는 메시지만큼은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또한 세계 평화의 날입니다.
새해를 맞아 서로 축복을 나누는 이날, 교회는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참으로 뜻깊게 다가옵니다.
모든 축복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평화입니다.
참사랑과 존중을 체험하여 자신의 귀함을 알고 다른 사람의 존귀함도
배워 아는 이들이 북돋워 갈 수 있는 것이 평화입니다.
우리 교회는 평화를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고백합니다.
평화는 한결같은 위대한 사랑의 뒷배인 하느님 없이는 늘 위태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더욱 깊이 깨닫고,
그분 사랑의 동반자인 우리의 아름다움과 존귀함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한 해 보내기를 바라 봅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2025년 을사년 (乙巳年) 새해가 밝아왔습니다.
지난 2024년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 연말에 찾아온 많은 아픔은 우리를 더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왜 이렇게 많이 일어났는지….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해지시길 기도합니다.
여행 등을 통한 다양한 경험을 해야만 복잡한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정말 그럴까 싶었습니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오신 분과 성지순례를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해외여행을 많이 하셨으니 다른 사람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이분 덕택(?)에 너무 힘든 순례가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싫은 것이 많은지, 그리고 자기 다녀온 경험과 계속해서 비교하시는지,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듣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여행 안에서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존주의 철학가 임마누엘 칸트는 평생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인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의 경험 통로는 책과 사람들과의 대화뿐이었습니다.
여기에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학문 연구와 가르치는 데 몰두했습니다.
여행 등의 경험이 전혀 없지만, 그는 엄청난 철학적 업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경험의 객관적 형태보다 자기가 마주한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더라도 해석하는 힘이 없다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해석은 우리 신앙 안에서 묵상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안에서 분명 깊이 있는 깨우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냅니다.
구세주를 이 세상에 낳아 주신 어머니를 기리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구세주의 어머니시지만,
앞에서 먼저 말씀하시지도 또 행동하시지도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도 나오지만,
특별한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셨습니다.
이는 예수님 잉태 소식을 들었을 때도,
또 예수님을 성전에서 다시 찾으셨을 때도 보여주셨던 모습입니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면서, 하느님의 뜻을 해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모님의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는 모습,
즉 기도와 묵상을 통해 하느님 뜻을 해석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지금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세상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믿지 못한다는 생각으로써는
절대로 하느님의 뜻을 알 수도 따를 수도 없게 됩니다.
새해 첫날, 천주의 성모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는 모습을 따르면서
하느님의 뜻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024년과는 다른, 보다 의미 있는 2025년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타인이 내게 내어주는 시간은 언제나 소중한 선물이다.
지금은 나미브 사막의 폭풍우처럼 희소해졌지만
누군가에게 한 시간 혹은 하루 동안 온전히 집중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사진설명: 디에고 벨라스케스 작품 ‘성모 대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