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진 옛길
지난 연말 방학에 들어 스무날이 지나는 일월 하순 목요일이다. 다음 주중은 개학을 앞두어 거제로 돌아가야 한다. 소한 이후 매서운 한파가 닥쳤다만 대한이 지나니 기온이 많이 누그러져 앞으로 혹한은 없을 듯하다. 저녁부터 주말에 이르기까지 강수가 예보된 날씨다. 한동안 가물었는데 대지를 적셔주면 좋을 듯하다. 겨울에도 때때로 눈이나 비가 내려야 부유 먼지를 재워준다.
새벽녘 집 근처 아침 산책을 나서려니 마땅한 행선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코로나 감염원이 붙어올까 봐 염려가 된다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른 시각 승객이 적을 때 밤새 소독을 마친 시내버스는 괜찮을까 싶기도 했다. 날이 덜 밝아온 아침 여섯 시 집을 나서 반송 소하천을 따라 걸어 창원실내수영장 맞은편으로 나갔다. 대방동에서 삼귀해안 석교로 가는 버스를 탔다.
216번 버스는 충혼탑에서 창곡삼거리를 거쳐 양곡을 지날 때 내려 마산에서 진해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장복터널 못 미친 목장마을을 앞둔 오봉사 입구에서 내렸다. 장복터널이 생기기 전 마진터널로 넘나드는 마진 옛길을 걸어볼 요량이다. 장복터널이 개통되어 산마루로 올라 미진터널로 오가는 차량은 드물어 산책 코스로 알맞았다. 해마다 겨울이면 틈을 내 걸어보는 길이다.
날이 새지 않아 사위는 칠흑 같고 찻길로만 장복터널로 오가는 차량이 질주했다.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는데 보행자 조작 신호등이었다. 운전자 중심으로 늘 파란 불이 켜져 있다가 보행자가 단추를 누르면 잠시 뒤 차도에 빨간불이 켜지고 보행자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장치로 인근에서 흔하지 않다. 낙동강 하굿둑 근처 명지포구 시장에서 낙동강 생태 탐방로로 건널 때 지나봤다.
진해 옛길로는 차량의 소음이나 매연이 전혀 없기에 트레킹하기 아주 좋았다. 차량이나 사람이 다니지 않아도 가로등은 밤새도록 켜져 어둠에도 상관 없었다. 가로등 불빛에 고목 벚나무 가지들이 실루엣으로 드러났다. 사월 초 벚꽃이 만개하면 나는 진해 경화역 철길이든, 창원 교육단지든 찾을 겨를이 못 되었다. 근교 산자락을 누비면서 야생화 탐방이나 산나물 채집에 바빠서다.
마진터널 가까이 이르니 날이 희뿌옇게 밝아왔다. 차량이 지나지 않는 터널을 통과하니 통영 해저터널을 걸어 지나는 기분이었다. 터널 바깥 오른쪽 추모비가 세워져 있었다. 40여 년 전 늦여름 태풍 주디로 터널 입구 산사태가 발생해 민간인을 구조하다 순직한 해군 영령들을 추모하는 빗돌이었다. 예전에는 터널 입구 헌병이 검문하는 초소가 있었으나 지금은 장복터널에도 없다.
장복산 남향은 ‘창원편백숲치유의숲’으로 불린다. 산기슭 우람한 적송이 한 그루 자라는데 ‘장복송(長福松)’으로 명명해 진해 사람들 기상을 대변하고 있다. 진해 드림로드 기점을 지나 장복조각공원으로 들었다. 유명 작가의 여러 조각품 가운데 김영원의 남성 인체 나신을 형상화한 ‘중력-무중력’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창원 출신으로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진해구민회관에서 평지 벽화마을을 지나 내수면시험장으로 내려섰다. 수산과학원에서 내수면 어종을 연구하는 기관인데 근래 일부 구역을 공원처럼 개방해 출입이 자유로웠다. 그런데 아침 이른 시각이어선지, 코로나 때문이지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 볼 수 없었다. 여좌천 천변 데크를 따라 걸었다. 자주 들릴 수 없는 곳인지라 봄날에 화사하게 필 벚꽃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 봤다.
내친 김에 주택가를 지나 중앙시장까지 진출했다. 진해 토박이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규모가 제법 되는 상설시장이다. 장터를 기웃거리다가 떡집에서 떡을 사고 노점에서 펄떡이는 활어를 구경했다. 대구는 금어기라 보이질 않았다. 물메기는 덩치가 너무 크고 꿈틀대는 아귀 한 마리를 짚었다. 할머니가 아귀에게 ‘미안합니다!’라 경어를 쓰며 칼로 생명체를 해체하는 모습이 경건했다. 21.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