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쇼카 석주
마우리아 왕조
석가가 활동했던 시기는 인도가 통일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 몸부림치던 때였다. 인도는 몇 개의 나라로 나뉘어져 있었고, 마가다 국이 제일 강했다. 석가는 주로 마가다 국의 수도인왕사성에서 활동했다. 석가는 마가다 국의 왕인 빔비사라 왕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
이후에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를 공격하지 찬드라 굽타 마우리아가 총 사령관이 되어서 알렉산더를 막았다. 알렉산더는 인도 정복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왕이 죽자 아프가니스탄과 인도의 서북부는 알렉산더 대왕의 잘군인 셀레코스(박트리아)가 통치하면서, 그리스 화하였다.
알렉산더 대왕을 막으면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찬드라 굽타가 인도를 통일하면서, 마우이랑 왕조를 세웠다. 찬드라 굽타의 손자인 아쇼카 왕 때 인도 통일을 완수하였다. 그는 전투 중에 많은 병사들을 살상한데 대한 죄책감으로 불교를 국교화하여 죽은 영혼을 위로했다. 그리고 불교를 진흥하면서, 국외로 표교활동도 활방하게 했다. 이때는 소승불교 시대였고, 스리랑카에 포교함으로, 오늘에 스리랑카가 가장 원형적인 소승불교를 지키고 있다.
아쇼카 왕이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됨으로 불교 경전에서는 아쇼카 왕을 가장 이상적인 군주로 묘사하면서 ’전륜성왕‘이락로 했다. (석가는 법왕이다.)
아쇼카 왕은 불교가 파벌로 논쟁이 끊이지 않자. 불경을 통합할 필요성을 느끼고 1000명의 고승을 모아서 불경을 정리했다. 이때는 논장까지도 정리하여 삼장을 완성했다.
뿐만 아니라 왕국의 곳곳에 기념비적인 조형물을 세웠다. 아쇼카 석주이다.
첫댓글 불교 미술은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 석주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것은 불교미술이 태어나는 배경 이야기입니다. 불교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요합니다.
불교 미술도 우리 주변에 너무나 흔하게 마주하는 것이므로 흥미를 가져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