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눈알
학교가는 길 유리눈알 소년
그들의 눈알은 가장 깨끗하여 가장 깊은 곳까지
땀이 난다 눈에서는 울음이 난다
어디 있다 이제야 나타났냐고
뻗은 손을 잡으면 14년의 험난한 지구
솜사탕이 되어 별로 떠오른다고
작고 작고 작은 세상 더 볼 필요 없다고
눈물 맺힌 유리눈알이 나에게 말한다
가장 아름다운 소년
나는 얼마나 그를 따라가고 싶었던가
그들의 눈알을 빙글빙글 돌며 헤엄치고
토끼풀 묶어 씌워 주고
살지 못한 미래에 대한 그리움은 아득히 멀어지고
부드러운 공포 슬며시 다리를 미는 공포
유리눈알을 다시 볼 수 없는 것은 말도 안 되었으므로
눈에는 소년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안개가 가득 찼다
반짝이는 유리눈알이 희미하게 보였다
내민 손을 얼마나 잡고 싶었던가
꼼짝 않는 발걸음을 옮기기 위해
삶이 박혀 있는 우주를 던져 버리기 위해
저 닻을 끊어 버리기 위해
나는 박살을 내고 싶다 나는 박살을 내야만 한다
웨스트민스터의 종소리
아니, 소년의 유리눈알은
스피커의 찢어지는 전자음과
폭포처럼 쏟아지는 겨울의 빛
종아리의 털이 깟깟하게 서도록 시린 땅에 흩어지는 발소리
아 늦었어 씨 빨리 뛰어
불룩하게 껴입은 레깅스와 치마 조금만 팔을 들어도 빠져버리는 짧은 와이셔츠
코트 아래 맨살에 유리눈알이 닿는다 폭발하며 파고든다
눈알은 투명하게 천천히 증발한다
마지막으로 돌아본다
돌아보는 곳에는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
가장 아름다운 눈알을 가진 소년이
때
새파란 소리가
집 앞에 가득 쌓여
문을 열지 못할 때가 되면
여름이 간다 새로운 여름이 온다
붉어진 소리가 홀로 달빛에 매달려
산더미가 흩어진 줄도 모르면
올해가 간다 갈 줄도 모르고
저녁시소
어둠 전에 소년이 내린 놀이터에서
삐걱
삐걱
소년이었다 소녀였다 한다
쪽지 속엔 너의 빼곡한 입술 볼에 와 닿았다 떨어진다
촛불 주위엔 작은 따듯한 물빛보라
그중에서 제일 영원한 것은 케이크겠지
그건 내 몸이었다 네 몸이었다 했겠지
촛불도 꺼지고 우리는 연기처럼 사라져
우리는 아직도 태어나는 중인데
소녀였다 소년이었다
우리는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어
조금만 기다려
촛불을 끄는 것 같은 거야
우리는 조금 녹고, 조금 흘러서
여기였다
저기로 갈 거야
환한 연기를 감고 따뜻하게
소년이었다 소녀였다 둘을 다
살다 태어났다 파란 촛불을
같이 불 거야 그때는 놀라지 않고
안개였다 눈이었다
너의 입술에 가 닿았다
시집 『나랑 하고 싶은게 뭐에여?』 민음사 2022, 1, 2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