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건강하게, 블루존의 장수 비결
내셔널 지오그래픽 탐험가 댄 뷰트너는 전 세계에서 가장 건강하게 장수하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을 찾아 ‘블루존(Blue Zone)’이라고 칭했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블루존 사람들의 식습관과 생활양식에 그 답이 숨어 있다.
일상 속 저강도 운동
이탈리아 사르데냐
사르데냐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얀 모래 해변, 그리고 천혜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섬으로, 인간 장수의 비밀을 탐구하는 전문가들이 처음 발견한 블루존이다. 이곳은 특히 장수하는 남성의 비율이 높기로 유명하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100세 이상의 남녀 비율이 1:4인 데 비해 사르데냐의 산악 마을 바르바지아는 그 비율이 거의 1:1에 근접할 정도다.
사르데냐 남성 중에는 목동이 많은데, 이들은 하루 종일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시간을 보낸다. 양 떼를 높은 지대에서 낮은 곳으로 몰기 위해 바위가 많은 가파른 산맥을 오르내리며 매일 8km 이상을 걸어 다닌다. 이처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운동을 실천하는 생활 방식은 심혈관 건강뿐 아니라 근육과 뼈 건강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많은 사람이 사르데냐인들의 장 수 비결로 이를 꼽는다.
세 자매 농법으로 차린 식탁
코스타리카 니코야
니코야는 코스타리카 최대 규모의 반도로, 중년 사망률이 낮은 곳으로 유명하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60세 이상의 니코야 남성은 미국 남성보다 90세까지 살 확률이 약 2배 높다고 한다.
니코야 주민들의 장수 비결은 세 자매 농법으로 재배한 옥수수, 콩, 호박에 있다. 세 자매 농법이란 이 세 작물을 함께 심어 키우는 방식으로, 16세기 초 스페인 사람들이 오기 전 이 지역에 살던 초로테가족의 전통에서 유래했다. 옥수수 토르티야는 비타민, 미네랄, 섬유질이 풍부한 복합 탄수화물을 제공하며, 검은콩은 항산화 물질을 많이 함유해 코스타리카 최고의 슈퍼 푸드로 손꼽힌다.
종교에서 비롯된 채식주의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마린다
스페인어로 ‘아름다운 언덕’을 뜻하는 로마린다는 웰빙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로마린다대학교 메디컬 센터에는 900명 이상의 의사가 근무하며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로마린다에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 이들은 다른 미국인보다 평균 10년 더 오래 사는데, 그 비결은 식물성 식단에 있다. 통곡물, 콩류, 채소류, 과일류, 견과류, 씨앗류 등 다양한 식물성 식품으로 구성된 식단은 면역체계를 강화하고 기대수명을 늘린다.
이웃과 함께하는 삶
그리스 이카리아
튀르키예 주변 에게해 동부에 위치한 이카리아는 인구 1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섬이다. 주민 3명 중 1명이 90대까지 산다는 인구통계 결과가 있을 만큼 장수인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카리아 사람들의 심장병 발병률은 미국인의 절반, 치매 발병률은 5분의 1에 불과하다.
이카리아에는 ‘사생활’이라는 표현이 없을 정도로 이카리아인들은 이웃과 친밀하게 지낸다. 정기적으로 가족, 친구들과 모여 서로를 돌보고, 매년 여름에는 마을 축제 ‘파니기리아’가 열려 8세부터 80세까지 전 연령대의 사람이 춤을 추며 먹고 마신다. 이렇듯 활발한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소속감과 안정감은 우울증과 치매 예방에 도움을 준다.
Episode. 죽음을 잊은 기적의 섬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사람이 이카리아에서 무려 45년을 더 생존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 주인공은 스타마티스 모라이티스(Stamatis Moraitis). 의사는 그에게 6~9개월의 시한부를 선고했지만, 60대 중반의 나이에 고향 이카리아로 돌아온 그는 놀랍게도 104세까지 살았다.
목적의식이 있는 삶
일본 오키나와
오키나와는 예로부터 세계적인 장수마을로 유명하다. 비록 미군 주둔의 영향으로 패스트푸드가 확산하면서 식습관이 서구화되고 비만율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오키나와 노인들은 여전히 전통 생활양식을 고수한다.
오키나와 사람들의 장수 비결 중 하나는 ‘이키가이(いきが い)’다. 일본어로 ‘삶의 의미’를 뜻하는 이 단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 그리고 경제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일을 조화롭게 결합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키가이의 핵심은 삶의 목표를 직업적 성공이나 높은 소득에만 두지 않는 데 있다. 대신 삶의 다양한 맥락과 작은 부분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국가 정책으로 설계된 블루존 2.0
싱가포르
싱가포르가 세계 여섯 번째 블루존으로 지정되면서 15년 만에 리스트에 변화가 생겼다. 댄 뷰트너는 싱가포르를 ‘블루존 2.0’, 즉 차세대 노령화의 개척지라고 정의했다. 실제로 싱가포르는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모두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률도 세계에서 가장 낮다.
다른 블루존은 오랜 세월 전통문화 속에서 장수 환경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반면, 싱가포르는 블루존 개념을 도시계획에 반영해 정책적으로 설계한 장수 마을이다. 일상 속 걷기 습관을 장려하는 ‘내셔널 스텝 챌린지 캠페인’과 가족이 함께 사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근접 주택 보조금 제도’가 대표 사례다. 싱가포르 블루존은 건강과 장수를 위한 환경이 국가 정책과 도시설계를 통해서도 충분히 조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