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돌아가신 나의 어머님께서 의과대학재학시, 학도호국단으로 잠시 피난오셔서 거제도에사실때, 그곳분들이 "피난민과사람이 싸운다"텃세부리며 서럽게 득세부렸다는 말씀을하시며, 외할머니와 생이별 하신 멍에를 갖고사셨답니다.
제가 호주에 살때~ 수도 켄베라 한국관에서 한국전쟁의 참담한 모습과 벌거벗은 아이들,남루한 저고리밑으로 젖을 물리는 무표정한 어머니의모습, 60년대 현재 서울 모습등~그 당시 80년도인데도... 한국의 정치인들이 켄베라 국회의사당 견학도 많이다녀가면서~ 30대 중반의 열정은 시드니로 돌아오는 차속에서 내내 열변을 토했던 애국학생(?)이~ 지금은 그때 그시절 그리워하며..
첫댓글 녜.
묵념.~~~
고이 잠드소서.............
그 고귀한 뜻을 받들어 아름다운
대한민국 으로~!!!
인젠 선진문화 국민으로
질서와 정직을 기본삼고
더 좋은 나라로 자손들애게 남겨줘야 되겠지요?
우리 집은 밀양에 살아서 피난도 안갔고
피난민들이 마당으로 마루로 방으로 모두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울 집도 피난갈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마당을 파서 돈자루도 숨기고
그나마 피난 안가고 집과 재물을 가족을 잃지 않은건
큰 복인거 같아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육이오도 겪고 피난살이도 해보셨다니 올매나 힘들었을까요?
이산가족 방송은 모두의 심금을 울렸지요
모두 내 가족인양 안타까왔구요
전쟁과 가난에 뿔뿔이 헤어진 가족을 애타게 찿으며
수많은 세월은 흘러가고 ....
지금은 돌아가신 나의 어머님께서
의과대학재학시, 학도호국단으로 잠시 피난오셔서 거제도에사실때,
그곳분들이 "피난민과사람이 싸운다"텃세부리며 서럽게 득세부렸다는 말씀을하시며,
외할머니와 생이별 하신 멍에를 갖고사셨답니다.
제가 호주에 살때~
수도 켄베라 한국관에서
한국전쟁의 참담한 모습과 벌거벗은 아이들,남루한 저고리밑으로 젖을 물리는 무표정한 어머니의모습, 60년대 현재 서울 모습등~그 당시 80년도인데도...
한국의 정치인들이 켄베라 국회의사당 견학도 많이다녀가면서~
30대 중반의 열정은 시드니로 돌아오는 차속에서 내내 열변을 토했던 애국학생(?)이~ 지금은 그때 그시절 그리워하며..
거제도 만해도 굉장히 배타적입니다
자기 마을사람만 사람이고 타지방에서 온 사람은 배타하는 무지와 깨지 못한 시절이라 더 ....
한국이 젤 가난한 나라라고 구제품과 배급식품을 받았지요
애들은 배가 고프고 남루한 옷차림에다 씻지못해 거지꼴이었지요
@라아라 이만큼이나 잘 사는나라가
된건
모두의 한맺힌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파독이다 월남참전이다
이민이다 등으로 일구어낸 절규며 집념이었지요
@라아라 맞습니다!!
이를 악물며 굳건한 정신력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궈낸 초석이 되었지요.
나라위해 죽음바친 숭고한
님들때문에 오늘 한국이
있지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산천님
애국 선열들을 잊지않고
더 열심히 좋은나라를 만들기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우리선친께서도 참전용사이셨는데
다행이 살아남으셨지요.
이제는 저 먼곳에 계시지만 그시절 이야기를
자주들려주셨는데...
이맘때가 되면 더욱 아버님이 그리워집니다..
지금 전철역입니다
KBS클래식음악회갑니다 더 곤써트요
아버님이 참전용사셨군요
그 시절이었으면 ....
대단히 힘든 상황속이었던 그시절을 추억하시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