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주말을 이용해 설악산 공룡능선을 다녀왔다. 이왕 자랑할 거라면 다녀 와서 바로 올리면 좋으련만 법벌이를 하다 보니 이틀이나 지나 버렸다.
워낙 더위를 타는 체질이라 여름산은 가능한 피한다.
나는 산에서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느낀다.
작년에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 이맘 때쯤에도 완전 한여름 찜통이었다. 역대급 무더위를 견뎌야만 했던 올해는 다행이 가을이 빨리 찾아 왔다.
이날 대청봉은 4도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산행 들머리 설악동 아침 기온은 8도, 한낮 공룡능선에도 영상 15도 정도의 서늘한 날씨여서 산행하기 좋은 날이었다.
원래 다섯 명이 가기로 했는데 한 명이 빠져서 네 명이 산행을 했다. 불참한 사람이 앞장 서서 산행 날짜를 고르고 등반 코스를 정했는데 정작 당사자가 빠진 것이다.
하루 전 갑작스런 컨디션 난조가 원인이다. 이렇듯 나이가 들수록 돌발상황이 자주 생긴다. 나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56년생, 58년생, 60년생, 62년생, 산행 동지 네 명이 공교롭게도 두 살 터울이다. 이날 빠진 선배가 미안했던지 안전 산행을 격려하는 문자를 여러 번 보냈다.
새벽 3시 30분 설악동을 출발했다. 헤드랜턴 불빛에도 이정표 사진이 흐릿하게 나왔다.
비선대를 거쳐 양폭대피소를 지나자 서서히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공룡능선 들머리 무너미 고개다. 왼쪽으로 가면 대청봉, 오른쪽이 공룡능선이다.
신선대로 가는 벼랑길이 조금 빡세다. 날이 흐려서 이날 대청봉 일출은 보기 힘들었을 듯하다.
신선대에서 본 주변 풍경이다. 앞뒤 좌우 어디를 봐도 절경이 펼쳐진다.
능선길에는 고사목도 있고 좁은 돌틈에서 꽃을 피운 구절초가 보인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담은 인증샷, 뒤편으로 멀리 울산바위가 보인다.
공룡능선 중간 지점에 있는 촛대바위다.
촛대바위에서 본 주변 풍경이다. 이곳도 신선대 못지 않게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1275봉에 도착했다.
공룡능선의 명물인 킹콩바위다.
공룡능선 곳곳에 막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문득 김영랑 선생의 시가 생각났다.
예전에 달달 외운 시였는데 오늘 같은 날 더욱 가슴에 다가오는 시다. 1930년에 발표했다는 이 시의 전문은 이렇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붉은 감잎 날아와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세존봉이 보이면 공룡 산행 막바지다.
드디어 마등령 삼거리에 도착한다. 잠시 물을 마시며 한숨 돌린 후 오세암으로 향했다.
오세암 도착, 어쩌다 보니 올해 오세암을 두 번째 오게 되었다.
봄에는 백담사에서 오세암을 올랐고 이날은 공룡능선을 탄 후에 내려온 것이다. 오세암은 봉정암과 함께 내가 아주 좋아하는 암자다.
아기 부처가 있는 동자전이다.
오세암에는 전설이 여럿 전한다. 그중 하나가 정채봉 선생이 쓴 동화 오세암이다. 한 스님이 길거리를 떠도는 오누이를 만난다.
다섯 살 남자 아이 이름은 길손, 누나는 감이다. 누이는 시각 장애인으로 눈이 감겼기에 감이라 부른다고 했다.
길손은 개구쟁이면서 묘한 총명함이 있다. 스님은 아이들을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었고 산 아래 있는 큰절로 데려온다.
오세암의 원래 이름은 관음암이었는데 오랫동안 버려진 암자였다. 스님은 수행을 위해 관음암으로 향했다.
길손이 따라 나섰다. 앞을 못 보는 감이는 큰절에 남고 길손과 함께 관음암에 도착했다. 스님은 관음암 곳곳을 수리하면서 수행을 시작한다.
식량이 떨어져 스님은 마을로 탁발을 나온다. 그러나 큰눈이 내려 관음암으로 올라가는 길이 막힌다.
어쩔 수 없이 눈이 녹은 봄에서야 관음암에 간 스님, 길손은 스님을 기다리다가 굶어 죽었다.
이후 5세 아이가 부처가 된 곳이라 해서 관음암이 오세암으로 바뀐다. 누나 감이는 동생 길손의 공덕으로 눈을 뜬다.
이 동화는 오세암에 전해오는 전설을 바탕으로 정채봉이 써서 유명해졌다. 나는 오세암을 갈 때마다 이 동화를 떠올린다.
오세암에서 제공하는 점심 공양을 달게 비웠다. 입가심으로 맛있는 오세암 감로수를 한 잔 마시고 백담사로 향한다.
백담사로 가는 길에 꼭 만나게 되는 영시암이다. 봉정암과 오세암 등 설악산 순례길의 중간 휴게소라 할 수 있다.
영시암을 둘러 본 후에 영시암에서 제공하는 봉다리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백담사로,, 힘든 산행에서 믹스커피는 완전 꿀맛이다.
한 선배는 두 개를 타서 마셨다.
드디어 백담사에 도착, 입구에 있는 금강문이다. 산행을 다녀온 후 이날 빠진 선배한테 사진 몇 장을 보냈다.
바로 답장이 왔다. 가을이 가기 전에 다시 한번 설악산을 가자고 한다. 올 가을은 조금 길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이날 산행 코스 약 18km
03시 30분 설악동 출발
04시 20분 비선대
05시 30분 양폭산장
06시 30분 무너미 고개
07시 20분 신선대
08시 50분 촛대바위
09시 30분 킹콩바위
10시 40분 마등령 삼거리
11시 40분 오세암 도착
12시 30분 오세암 출발
13시 20분 영시암 도착
13시 50분 영시암 출발
15시 10분 백담사 도착
*휴식포함 총 산행 시간 11시간 40분
충분히 쉬면서 살방살방 걸었다.
첫댓글 오매
벌써 단풍이 들어부렀네요
저는 막연하게 꿈꾸던 설악산행은 이제 접어야겠습니다
어릴 때 다친 왼쪽 무릎이 삐거덕거려요 ㅎ
장장 11시간 40분
장하십니다
부럽고요
세월의 바람에 갈고닦아진
반질반질한 바위들
여행이랍시고 비행기 타고 멀리 갈 필요 없어요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 저렇게 버티고 있는데 ...
우왓~ 반가운 가리나무님을 오랜만에 뵙습니다. 제가 요즘 카페 출입이 뜸하다 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공룡능선의 사진을 많이 올렸으니 설악산행 못한 아쉬움을 사진 구경으로 대신하셨으면 합니다.
산을 다니다 보면 정말 우리나라 산천 풍경에 푹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금수강산이라고 했나 봅니다.
언제 가도 좋은 설악산은 유독 아름답지요. 가리나무님의 멋진 가을을 빕니다. 항상 건강하시구요.
감사합니다
사진 한 장 한 장 감탄이에요.
지금이자리님 안녕하세요.
이날 날씨가 조금 흐려서 사진이 선명하지 못해 아쉽답니다. 공룡능선에 가을꽃이 피기 시작하던데 들꽃은 언제나 아름답지요.
이자리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룡능선~~^
꿈속에나 가볼까요?
간다간다 하면서 이젤 무릎이 션챦아 몬가유?
유현덕작가님
산행글도 멋지고~^^
함께 산행한듯 합니다
완죤 축하 합니당~^^
꼭지님, 잘 지내시지요?
꼭지님처럼 공룡능선을 간다간다 하면서 영영 못간 사람이 우리집에도 한 사람 있답니다.ㅎ
꼭지님은 여전히 현역으로 항상 명랑 쾌활하게 사시니 설악산쯤 못 가셨어도 멋진 인생 후반전을 보내고 계십니다.
요즘 아침 저녁 서늘해서 참 좋은 날들이네요. 평화로운 밤 되시기 바랍니다.
갈데 없어 설악산 갔다니 앞으로는 갈데 있어
서울 남산 가게되면 같이가서 막걸리 한잔
같이하세....(^_*)
ㅎ 반가운 적토마 선배님이시네요.
오지 말라는 곳은 없으나 막상 갈려면 딱히 갈 데가 없을 때가 있더군요.
그러고 보니 적토마 선배를 오프에서 뵌 지가 한참 됩니다. 남산이든 뒷산이든 조만간 오프에서 만나 한잔 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항상 건강한 날들 되시구요.
@유현덕
그려~ 설악산에 가서 흔들바위 돌릴 힘으로
서울시내에서 조만간 막걸리 잔이나 돌리세...
고생하셨읍니다 그러나 보람있죠 오세암에서 비탐길 만경봉을 오르면 공룡및 용아장성까지 전체를 볼 수 있는데 아쉽군요 저는 토요일 설악산 울산바위 비탐방인 서봉을 갔다왔읍니다 흔히 말하는 울산바위는 동봉을 말합니다
우와~~ 너무나 멋진 풍산님이십니다.
접때 어느 뒤풀이 자리에선가 풍산 선배님이 산을 좋아하신다는 말을 듣긴 했어도 이 정도 일 줄은 몰랐습니다.
오세암 만경봉까지 오르셨다니 대단한 열정이십니다. 저는 봉정암 사리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용아장성만 봤는데 만경봉에서 보는 용아장성의 장엄한 풍경을 상상해 봅니다.
울산바위 서봉도 오르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우리 카페에 왕년이 아닌 이런 진짜 현역 산꾼이 있을 줄이야. 풍산 선배님 모쪼록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산행 하시기를 바랍니다.
설악산 공룡능선의 장엄함 속에
김영랑 시인의 시와
오세암 전설까지 어우러져
한 편의 멋진 수필을 읽은 듯합니다.
18km 대장정을 안전하게 마치고
돌아오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유현님 덕분에
눈과 마음 호강하고 갑니다~^^
역시~ 봄의향기님은 제 글 오랜 찐독자임이 분명합니다. 정성 가득한 댓글에서 바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톡톡수다방에 봄의향기님 같은 분이 계시니 수피 방장님이 더욱 든든할 겁니다.
오세암은 묘하게 옛날부터 정감이 가는 사찰입니다. 가는 여정은 힘들어도 그곳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으니 자꾸 가고 싶은가 봅니다.
진정성이 담긴 향기님 댓글 읽으니 저도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평온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11시간 40분 걸린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하신 유현덕님 산행기를 읽으며 행복해 집니다.
한 때 전국산을 매주 토요일마다 울친구들과 누비고 다니던 즐거운 추억이 유현덕님 산행기를 읽으며 되살아 납니다.
멋진 설악산 사진들과 함께 오신 유현덕님을 환영하며 고마움 함께 전합니다. ^^*
매주 산행을 하셨다니 수피 방장님도 한때는 대단한 산꾼이셨습니다. 저의 산행기로 행복해지셨다니 글 올린 보람이 있습니다.
저는 내년 2월까지 산행 계획이 이미 쫙 짜여져 있네요. 가고 싶은 산은 많고 시간은 없고,,
그게 늘 고민이랍니다.ㅎ
종종 산행기를 올리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쪼록 톡수방의 게시물이 다양해서 방문객들로 붐비는 방이 되기를 바래 봅니다.
자랑해도 됩니다
멋지게 다녀오셨네 고산나무도보이고
글도 사진도 잘보았습니다
아하~ 인애님께서 오셨군요.
제가 워낙 저렴한 인생을 살아온 탓에 자랑할 게 몸으로 때우는 이런 것밖에 없답니다.ㅎ
인애님이 저의 산행기를 좋게 읽어주시니 다행입니다. 고운 밤 되시기 바랍니다.
유현덕님 제눈에는 안 보였습니다
그래서 많이 궁금했지요 ㅎ
정말 ~
곧 단풍이 들겠어요
ㅎ 밤사이 서초님 다녀 가셨군요. 이제서야 점심 시간 이용해 카페 들어와 지각 답글 답니다.
제가 한동안 카페 출입을 하지 않았더니 서초님의 맛있는 김밥 소식을 이제서야 접했습니다.
재주 많은 팔방미인에다 예술 감각 탁월하신 서초님이시지요. 배푸는 그 마음도 아름답구요.
서초님의 활발한 카페 활동을 응원합니다.ㅎ
대단합니다
설악산을
오르시다니??
난
케이블카 타고
올라본 게 전부인데
부럽습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자랑해도 됩니다~^^
벼리님, 케이블카 타고 권금성 올라 가셨으면 님도 설악산에 오른 셈입니다. 권금성에서 보는 설악 풍경도 무척 아름답지요.
제가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체력이 되니 종종 설악을 오르려고 한답니다.
저의 자랑을 이쁘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ㅎ
벼리님도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와우
대단햐유 짝짝짝짝짝 파이팅
임파스블님, 이 코스가 보통 10시간 정도 걸린답니다. 그래서 대단한 정도는 아닐지라도 무사히 완주한 제가 대견하기는 하답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현덕 https://youtube.com/shorts/sPChnfxcOXM?si=ZL93YqVt_nkDPEoq
캬아
산행을 다니시니
젊습니다요
평생 저는 산행을 못갔어요
션찬은 체력으로는
감히 민폐를 끼치기나 하겠지요
리야님이 비록 산행은 못 하셨을지라도 다른 것들로 삶을 채우셨으니 충분히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저한테는 없는 재능을 리야님은 갖고 있기도 하구요. 감사함으로 충만한 멋진 인생 후반전을 즐기고 계시는 리야님이십니다.
모쪼록 앞으로도 건강하고 평화로운 날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좋은계절에
잘다녀오셨네요
이런 산행기를
읽으면 힐링이 되곤 하지요
제가 40대에
제일 긴산행은
한라산 등반7시간
했어요
이제는
긴산행은
무리고
둘래길 다녀요
백담사 입구에
콘도에 묶으면서
계곡을 따라
가족과 올라가는데
계곡이 깊은지
물이 너무 파랗던기억이
나네요...
항상 건강하시고
응원합니다~~^^
문선이님 다녀가셨군요.
저도 다른 분들 산행기를 보면서 힐링할 때가 자주 있답니다. 제가 못 간 곳을 사진으로 대신 구경하는 맛도 괜찮더군요.
한라산 7시간 산행, 당시는 힘들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무척 뿌듯할 겁니다.
백담사에서 백담 계곡도 가신 모양이네요. 백담사에서 설악산 오를 때면 만나는 수렴동 계곡 물소리가 참 시원합니다.
문선이님, 가끔 이곳에 산행기를 올릴지도 모르니 그때 또 구경 오시길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