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숙련된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H-1B 비자 프로그램 신청자에게 10만 달러(약 1억 4000만원)의 수수료를 내도록 대폭 인상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고 영국 BBC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행정 명령에는 프로그램의 "남용"이 언급되어 있으며 지불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입국을 제한할 것이란 내용이 담겨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터리 공장을 짓다가 일주일 가량 열악한 시설에 끌려가 비인도적인 구금을 당한 한국인 근로자들이 숙련되지 않은 미국인 노동자들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공언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는 기업들에게 막대한 비자 수수료를 부담하도록 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하는, 앞뒤가 다른 행동을 또 한 것이다.
비평가들은 오랫동안 H-1B 비자가 미국 노동력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해 왔으며,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를 포함한 지지자들은 H-1B가 미국이 전 세계 최고의 인재를 유치할 수 있게 해준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또 다른 명령에 서명, 100만 달러(14억원, BBC는 파운드로 표기했는데 오자였는지 모르겠음, 파운드가 맞다면 18억원)부터 시작하는 수수료를 받는 대가로 특정 이민자에 대한 비자를 신속하게 발급할 수 있는 새로운 "골드 카드"를 설정했다.
트럼프의 명령은 21일부터 발효될 예정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기업이 6년 동안 신청자 한 명당 동일한 금액을 지불하는, 연회비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는 결정해야 한다. 그 사람이 정부에 연간 10만 달러를 지불할 만큼 가치가 있는지, 아니면 자국민을 고용해야 한다"면서 "모든 대기업이 동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나중에 캐롤라인 리빗 백악관 대변인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10만 달러의 수수료가 일회성(one-time) 지불이 될 것이라고 알렸다. 손발이 따로 논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H-1B 비자는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의 고숙련 기술직에게 발급되는 비자로, 2004년부터 추첨을 통해 매년 8만 5000건만 발급되고 있다. 기본 체류기간은 3년이며 연장이 가능하고,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영주권 신청도 가능하다. 지금까지 H-1B 비자에는 모두 1500달러에 이르는 다양한 관리 수수료가 부과됐는데 이를 무려 66배 올린 것이라고 BBC는 전했다. 동아일보는 종전 1000달러에서 100배 올렸다고 다르게 보도했다.
미국 시민권 및 이민국(USCIS)의 데이터에 따르면 다음 회계연도의 H-1B 비자 신청은 약 35만 9000건으로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회계연도에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수혜자는 아마존이었고 거대 테크 기업인 타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애플, 구글이 그 뒤를 이었다.
아마존은 전날 늦게 H-1B 비자를 소지한 직원들은 미국에만 머물러야 한다고 지시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입수한 내부 권고에 따르면 회사는 해외에 있는 직원들이 "가능하면 내일 마감일 이전에 귀국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령이 발효되기 전에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은 "추가 지침이 제공될 때까지" 미국 재입국 시도를 피해야 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투자은행 JP 모건도 비슷한 내용을 직원들에게 공지하거나 이메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의 주요 무역 단체인 나스콤은 이 칙령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하루의 기한이 "전 세계 기업, 전문가 및 학생에게 상당한 불확실성을 야기했다"고 말했다. 인도는 지난해 H-1B 비자의 최대 수혜국으로 승인된 신청의 71%를 차지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정부 데이터를 인용해 보도했다. 중국은 11.7%로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왓슨 이미그레이션 로의 창립 변호사인 타미나 왓슨은 BBC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의 서명이 대부분 중소기업과 신생 기업인 많은 고객들의 "관에 못을 박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거의 모든 사람의 가격이 책정될 것이다. 진입점으로서의 이 10만 달러는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많은 중소기업이 "실제로 그 일을 할 근로자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왓슨은 "고용주가 외국인 인재를 후원할 때 그들은 종종 그런 직무를 수행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틀러 멘델슨 PC의 이민 및 글로벌 모빌리티 실무 그룹 의장인 호르헤 로페즈는 10만 달러 수수료가 "기술 부문과 모든 산업에서 미국의 경쟁력에 제동을 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회사는 미국 외의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실제로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H-1B에 대한 논쟁은 이전에 트럼프 팀과 지지자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켰고, 비자 찬성자들은 트럼프의 전략가로 통하던 스티브 배넌 같은 반대론자들에 맞섰다. 트럼프는 지난 1월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H-1B에 관한 "논쟁의 양측"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트럼프는 선거 운동 기간 테크업계의 지지를 끌어내려 노력하면서 대학 졸업생을 위한 영주권을 제안하는 등 인재 유치 과정을 더 쉽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올 인 팟캐스트에서 "회사에서 일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면서 "이들을 모집하고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 첫 임기 초, 트럼프는 사기 탐지를 개선하기 위해 H-1B 신청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신청 거부률은 버락 오바마 시절 5~8% 사이, 조 바이든 시절 2~4% 사이였던 것과 비교해 2018 회계연도에 사상 최고치인 24%로 증가했다. 당시 테크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H-1B 명령을 비판하며 반발했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포고문과 관련,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하여금 현재 미국 밖에 있는 외국인이 비자를 신청할 때 수수료가 동반되지 않을 경우 비자 승인을 제한하도록 지시하며,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경우엔 개별 사례별로 예외를 허용한다"고 설명했다. 빠져나갈 구멍 하나를 만들어 놓고 예외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