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과 미래] 품위 있는 삶
출처 매일경제 : https://www.mk.co.kr/news/contributors/10989083
우리는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막말과 주먹질을 서슴지 않고 편법과 협잡을 당연시하는 삶을 바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악의를 품고 타인을 속이거나 해치면서 쾌감을 느끼는 사이코패스가 되려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이런 공통 감각이 무너질 때 도덕은 타락하고, 사회는 양극화하며, 공동체는 분열한다.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철학'(김영사 펴냄)에서 토드 메이 미국 클렘슨대 교수는 좋은 사람의 바탕에는 품위(decency)가 있고, 품위 있는 사람이 정치를 할 때 좋은 공동체가 이뤄진다고 말한다. 여기서 품위 있는 삶이란 타자를 인정하고 배려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다. 가령 지하철에 탈 때 줄 서서 차분히 기다리는 사람, 승하차할 때 잠깐 멈춰서 내리거나 타는 사람이 있는지 살피는 사람은 품위 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다른 사람도 해야 할 일이 있고, 나와 마찬가지로 바삐 움직이고 있다는 걸 의식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품위 있는 삶을 위한 네 가지 근본 조건을 이야기한다. 오랜 시간을 들여야 이룩할 수 있는 계획이나 관계에 참여하기, 인간의 궁극적 한계인 죽음을 인식하며 인생 방향을 설정하기, 음식·주거·수면 같은 생물학적 욕구 충족하기, 자기 주변을 배려하고 애착을 느끼는 기본 심리 욕구를 충족하기다. '잠깐 멈춤'처럼 모두 당연하고 평범하다.
품위는 위대하지 않다. 우리를 남을 위해 희생하는 이타주의자,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영웅, 이상을 위해 생애를 던지는 성인으로 만들지 않는다. 품위 있는 삶은 인간의 기본 욕구를 충족하고, 의미와 가치를 따지는 평범함에 바탕을 둔다. 타인의 모범이 되라고 부추기기보다 힘 닿는 한계 안에서 최대한 타인을 생각하고 공동체를 고민하며,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이나 지구 전체를 살피면서 겸손하게 살도록 이끌 뿐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목적이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좋은 삶)라고 했다. 흔히 이 말을 행복(happiness)이라고 옮겨왔는데, 번창(flourishing)이 더 적합한 말이다. 영혼이 극단에 휩쓸리지 않고 아름다움, 절제, 지혜, 관용 같은 중용의 덕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은 나날이 번영한다. 한마디로 품위를 지켜야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품위는 우리를 하루하루 더 나은 존재로 만들고, 갈수록 인생을 의미 있고 풍요롭게 만든다.
품위가 삶의 바탕을 이룰 때 개인도, 공동체도 미래에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가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기보다 타인의 존엄과 평등을 존중하고 겸손히 자신을 성찰하는 품위의 공동체가 됐으면 좋겠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빛명상
고요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되돌아보고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현실에서 자신의 모습과 행동에 실제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바라보라.
아무리 마음을 다 잡아도,
그 어떤 반성과 참회를 거듭하여도
차마 벗어던지지 못하는 마음의 그물, 그 보이지 않는 굴레를 훌쩍 뛰어넘어 훨훨 자유롭게 날아가는 사람.
무엇에도 얽매임 없이 거침없이 있는 그대로 즐겁고 행복한 사람,그러한 사람을 만들어 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우주의 힘이다.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빛명상을 통해 관조하고 또 관조하고
초광력超光力을 한가득 담을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키워나가야 한다.
당신은 가만히 앉아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다. 조용히 앉아 내면에 귀 기울이는 것 자체가 낭비요, 소모요, 비생산적으로 여겨져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학회장님은 관조, 바라보기를 통해 나 자신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이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왔지만 지금, 몸도 마음도 지쳐 있지 않은가? 설령, 성공의 자리에 앉더라도 몸과 마음의 갈증과 피로는 그 무엇으로도 치유가 안 되지 않는가?
이제, 당신은 수십 년간 하루도 쉬지않고 기관차처럼 달려온 당신의 몸과 마음을 불러놓고 긴 숨을 쉬어야 할 차래이다.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쫓기는 심정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해야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잊고 두 발을 졸졸졸 흐르는 내면의 개울물에 담그는 것이다. 그저, 나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당신은 빛VIIT을 잘 받는 순수한 상태가 되려면 ‘바라보기(관조)’를 해야 한다.
우선, 두 눈을 감고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보라. 입은 살며시 다물고 코로 숨을 쉬라. 당신은 살아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당신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숨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라. 숨은 당신과 우주를 연결하는 탯줄이다. 숨이 차고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바라보노라면 당신은 숨에 지배된다. 당신이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숨이 당신을 이끌어 간다. 서서히 숨은 길고도 달콤해 진다.
그리고 나서 당신의 몸을 바라보라. 불편함, 아픔, 찌릿찌릿 감전 된 듯함, 막힌 곳이 뚫리는 듯함, 싸하게 밀려오는 몽롱함, 코끝을 스치는 들꽃 향 모두 바라보라.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흘러가는 개울물처럼 바라보라. 서서히 당신의 몸은 전혀 다른 몸으로 깨어나기 시작한다. 당신 속의 새로운 당신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이제 당신은 자신의 내면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고요히 바라보라. 내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라. 성별, 성격, 자라온 환경, 취향 등 나에 대한 모든 정보를 마치 영화를 보듯이 바라보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보다는 남의 말에 대해 정확히 평가를 내린다.
‘저 사람은 저 부분만 고치면 더 좋아질텐데.’
‘아무개 씨는 어떤 단점이 있단 말이야.’
우리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타인에 대한 특징이나 단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지적해낸다. 이제, 당신은 자신을 타인으로 여기고 자세히 바라보라.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해당사항이 있는지 표시해보라.
육체적 정신적 병이 있는가?
마음에 근심이 있는가?
인간관계에 갈등이 있는가?
경제적으로 힘든가?
장래가 걱정되는가?
성격상 불만이 많고 쉽게 무기력해 지는가?
과거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가?
이 질문에 ‘네’라고 표시한 개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당신의 내면은 그만큼 많은 정화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럴 경우 빛VIIT을 잘 받기 힘들다. 만약, 당신이 여기에 해당 한다면 자신을 바라보아야한다. 지속적인 바라보기를 통해 당신의 의식에 들러붙어 있는 앙금들, ‘불순물’들을 깨끗이 떨쳐낼 수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초개인 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의 대가 켄윌버. 그는 철학, 종교, 인류학, 신과학, 사회학 분야의 대 사상가이다. 그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의 눈’이 있다고 하면서, ‘감각의 눈’, ‘이성의 눈’, ‘관조의 눈’을 제시했다. 마지막 ‘관조의 눈’을 뜨기 위해 좌선, 진언, 내면의 기도 등 명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말한다.
“닫고 있던 관조의 눈을 떠라. 그러기 위해서는 수행을 하라, 영성을 키워 이 세상의 본질을 직시하라.”
이 시대의 영적 지도자인 틱낫한 또한 ‘마음을 멈추고 바라보라.’고 권한다. 이를 통해 내면의 거울에 낀 먼지를 깨끗이 닦아내길 바란다.
숨을 들이쉬면서, 나는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안다.
숨을 내쉬면서, 나는 숨을 내쉬고 있음을 안다.
숨을 들이쉬면서, 나는 나 자신을 꽃이라 생각한다.
숨을 내쉬면서, 나는 신선함을 느낀다.
숨을 들이쉬면서, 나는 나 자신을 산이라고 생각한다.
숨을 내쉬면서, 나는 산처럼 흔들리지 않음을 느낀다.
숨을 들이 쉬면서, 나는 나 자신을 고요한 물이라고 생각한다.
숨을 내쉬면서, 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
숨을 들이쉬면서, 나는 나 자신을 무한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숨을 내쉬면서, 나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출처 : 해독제 2012년 7월 7일 초판 1쇄 P. 173~177
귀한 빛 의 글 볼수 있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귀한빛글 감사합니다.
빛말씀 감사합니다.
귀한빛의글귀,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빛명상을 하며 관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빛의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