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환하게 제 꼬리에 불을 붙인다 불안이 오기 좋은 날이다 앙큼한 고양이의 긴 그림자를 밟고 경우의 수 신을 신고 불안이 온다 잠겨 있는 창과 커튼, 커튼은 미동도 없어 점점 커지고 불안, 숨겨놓은 자식 이름 같고 갚아야 할 빚 같은, 불안은 암막 커튼처럼 어둡게 낄낄거리며 세상에서 제일 두꺼운 인간의 피부를 뚫고 소리도 없이 무거운 납 옷을 입고 쓸데없는 질문을 해대는 호모사피엔스 후예의 머리를 뭉개며 바늘구멍 같은 의심의 틈 속으로 홍수로 범람한다
베개에 시커멓게 탄 달 부스러기,
입술에서 흘러내린 눈물,
너,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불안한 것들은 다
이 음절의 이름이다
-『김포신문/김부회의 시가 있는 아침』2023.09.01. -
〈조미희 시인〉
△ 시인수첩 등단
△ 2019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수혜
△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시집 '자칭 씨의 오지 입문기', '달이 파먹다 남긴 밤/ 2023'
그리우면 그립다고 입 밖으로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더 그리워질까 봐 두려운 것이다. 인식이란 인식 그 자체로 인식보다 더 큰 인식이 되는 것이 불안이라는 증세다. 의학적인 증세라는 말을 사용해 본다. 症勢는 병이다. 본래 크기보다 더 커질 수도 있고 쉽게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 불안이다. 그래서 시인은 /불안한 것들은 다 이 음절의 이름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철학에서 말한다. 허무로부터 비롯되는 위기적 의식이라고. 다 좋은 말들이다. 중요한 것은 그 불안이라는 병증은 내가 가장 잘 치료할 수 있는 의사이며 약사라는 것이다. 스스로 신뢰하자. 숨겨놓은 자식도 없고, 갚아야 할 빚도 없다. 그저 불안의 한 망상이라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믿을 때 불안은 치유되는 법이다. 말짱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