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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 감독의 신작 <고고 70>에는 조승우와 신민아 이외에 한 명의 주연배우가 더 있다. 노브레인을 결성해 명반 <청년폭도맹진가>를 만들었고 현재 문샤이너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차승우다.
[와일드 토크: 차승우] 노 브레인, 문 샤이너스 그리고 <고고70>
<고고 70> 음악 자문에서 갑자기 조승우, 신민아와 함께 주연배우가 됐다.
최호 감독님이 공연을 몇 번 보러 오셨었다. 처음에는 음악 자문 이야기가 나오다가 조연으로 한 번 출연해볼 의향이 없겠느냐 물어보시기에 에이 제가 뭘 그런 걸 합니까, 했는데 이야기가 계속 오가다 보니 아예 만식이 역으로 캐스팅이 돼 버렸다.
솔직히, 잘생겨서 캐스팅됐다고 생각하지?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다.
고마울 건 아닌 게, 나는 나도 잘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래가지고 기자 일을 어떻게 하나.
영화 작업은 처음인데 아무래도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처음에는 그랬는데 결과적으로는, 괜찮았다. 일단 음악 영화고, 역할도 기타리스트고 하니 그냥 자연스레 하면 되겠구나 싶었지. 감독님도 계속 강조했던 게 “연기를 하자 마라”는 거였다. 내가 뭐 연기에 대한 입장이나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예 무개념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감 없이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나는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해서(*이 인터뷰는 시사회 전에 진행되었습니다). 가 편집본을 보니 어떻던가.
되게 재밌던데. 촬영할 때 즐거웠던 기억 같은 것도 다시 환기가 되니까 그게 연결되면서 느낌이 새롭더라.
앞으로도 영화를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가.
아니, 전혀. 그런 생각은 없다. 그저 내가 해오던 일의 연장이라는 느낌뿐이지 뭐. 그냥 뭔가 더 넓은 시각으로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본다. 내가 무슨 전문 연기자가 돼서 자꾸 영화에 나온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끔찍해?
한국 영화계의 내일을 생각하니 끔찍하다(웃음).
차승우라면 언제나 천재 뮤지션이라는 수식이 따라붙는다. 고1 때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뒤 시나위에 발탁됐던 것도 그렇고, 고등학교 때 이미 노브레인을 결성해 완성도가 가장 높은 음반들을 만들었던 것도 그렇다. 그런데 그렇게 옆에서 자꾸 천재, 천재 하면 아무래도 의식이 되고 부담이 될 만하다.
아니 난 좋은데? 결국 좋다는 이야기잖아. 내 나름대로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확실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니까, 내 모습이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지는 면이 있다는 것 아닌가. 난 그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뭐 그런 것 가지고 부담감까지야.
천성이 밝고 명랑한가?
아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렇게 됐다. 내일 죽을 지도 모르는데 이왕이면 만족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아마 노브레인을 관둔게 그런 생각을 한 계기였던 것 같아.
지금은 손경호(원더버드), 최창우(3호선 버터플라이), 백준명(게토밤즈)와 함께 문샤이너스를 하고 있지 않나. “진정한 의미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록큰롤 밴드”라고 설명했는데 그 ‘진정한 의미’라는 게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내가 생각하는 록큰롤은 일단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게 정수다. 하나의 놀이로써 인식될 수 있었으면 한다. 음악 장르로써의 록큰롤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레저가 될 수 있는 것이고. 아무튼 제일 중요한 건, 쉽고 재미있게 가자!
그게 라이프 스타일이라면, 본인도 그렇게 살고 있나?
물론이다.
그런데 쉽고 재미있게 산다는 게 본인이 선택한다고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본인이 선택해야지만 그렇게 될 수 있는 거다.
환경이라는 게 있지 않나. 이명박도 있고.
그렇지. 이명박이 있지. 이명박이 있음으로서 더 재미있어질 수 있는 거다. 록큰롤을 하는 거에 있어서 상황전개가 좀 더 스펙터클하게 되고 말이야. 어찌 보면 가사를 쓰는 것에 있어서도 소재들을 제공해주고 있는 거다. 꼭 저항은 아니다. 재료가 된다는 것이지.
문샤이너스가 아직 정규앨범을 낸 상태는 아니지만 어쨌든 공연도 하고 싱글앨범도 냈다. 그런데 결성 초기에는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 들었다.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많이 엉망이었다. 일단은 우리 끼리 체계가 잡혀있지 않았다. 그렇게 공연을 하다 보니 멤버들 사이에 화학반응이 좋을 수도 없는 거고. 자연히 관객들과의 화학반응도 좋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그 때 우리가 되게 짜쳤어.
차승우가 컴백한다고 했으니 사람들은 노브레인의 음악을 기대했을 테다.
맞다. 그때 그건 좀 부담스러웠다. 아무래도 노브레인 때 팬들이 많이 찾아왔고, 얘가 이번에는 뭘 들려줄까 기대하는 심리가 분명히 있었다. 그게 빤하게 읽히니까 내 스스로도 초조할 수밖에. 검증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야. 첫 번째 공연을 하는데 하품하면서 나가는 사람도 있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어찌된 영문인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서 있었다. 내가 웬만해선 공연하면서 냉정해지지 않거든. 그런데 확 식으면서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한 건지 의문스러워지더라.
왜 다른 음악을 하고 싶었던 건가.
다른 음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쉽고 재미있는’ 음악을 할 뿐이다. 물론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색깔이 다르니까 당황했겠지. 그런데 나로선 계속 물이 고이면 썩는다고 노브레인식 펑크스타일에 얽매이다보니 내게 잠재된 가능성 자체가 좁아드는 느낌이 들었거든. 그래서 일단은 확 풀어놓고 가능성을 열어보자, 그런 생각이었다.
문샤이너스는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들어와 만든 밴드다. 일본에선 많이 배웠나?
전에는 체계화된 음악 교육이라는 걸 받아본 일이 없었다. 그냥 혼자 알아서 한 거였는데 막상 교육을 받아보니 크게 별 다를 건 없던데. 그래도 좋았어. 어쨌든 숨을 돌리려 간 것이었지 공부를 하러 간 건 아니었으니까.
숨을 돌려야 할 필요가 있었나.
그렇다. 노브레인만 5, 6년을 했다. 막상 거기서 나오니까 너무 많은 생각들이 쏟아지는 거라. 일단 집에 틀어박혀서는 아무 답도 안 나오는데 계속 고민만 거듭했다. 그러다가 환경이라도 바꿔보자, 했던 거다.
솔직하게 말해서, 노브레인은 왜 탈퇴한 건가. 본인이 만든 밴드인데.
음. 가장 중요한 건 그거야. 역시, 음악적으로 마찰이 있었다. 처음부터 노브레인이 가져왔던 시스템이 있었는데, 내가 작곡을 하면 다른 멤버들이랑 잼을 해보고 연습을 하면서 편곡을 가한다던가, 그렇게 뼈대 위에 살을 붙여 완성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나머지 멤버들도 나이 먹고 음악을 해감에 있어서 뮤지션으로서의 자의식이 생겼던 거지. 나도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러다가 갈등이 생겼다.
싸웠나?
아니, 차라리 싸웠으면 내가 나간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을 것 같다. 그냥 갈등이 조금씩 쌓이다보니. 그냥 순간적으로 나 안 할래, 그러고 나왔다. 친구들도 나한테 많이 데인 상황이니까 그래 잘 가, 했던 거다. 아주 어려운 상황은 없었다.
‘데였다’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어떤 면에서 그런 게 있었나.
당시에는 내게 그런 게 있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내가 독식을 했다는 표현이 맞다. 어쨌든 노브레인 초반에는 그게 당연한 것이었는데 나중에 벽이 생겨버린 거다. 딱 꼬집어 말하자면 어떤 멤버가 노래를 하자고 가지고 오면 내가 “이건 노브레인이 할 게 아니다”면서 딱 자른다거나, 그런 일이 되풀이됐다. 친구들도 좋지 않은 감정이 쌓일 수밖에 없지.
어쨌든 노브레인 음악에 대해 각자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나는 이걸 한 데 모아서 구체화시킬 수 있는 게 내 몫이고 나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말이다.
이제 와 그게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판단하나?
그건 아니다(웃음). 그 때 상황에선 그게 옳았다고 본다.
뒷담화는 아니고. 노브레인의 <난 내게 반했어>가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 진영에서 로고송으로 사용되지 않았나. 그래서 욕을 많이 들었다. 본인이 만든 밴드가 그런 식으로 거론되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
씁쓸하긴 한데. 어쨌든 그건 걔네들이 알아서 해야될 일이다. 난 문샤이너스나 열심히 하면 되는 거고.
노브레인이 정치적인 밴드였다고 생각하나.
아니다. 우린 100퍼센트 즐거움을 위해서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소비는 그렇게 됐다. 특히 초반 앨범 같은 경우는 운동권 민가에서나 나올법한 가사들이 등장하면서 하나의 정치적 성향을 띠었다.
그런데 그 정치적이라는 것도 가사의 소재가 될 순 있겠지만, 우리가 무슨 정치적 소신을 가지고 그렇게 쓴 건 아니라는 거다. 우린 그냥 즐기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했을 뿐이다. 즐기는 거다. 이 주제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즐겁고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노브레인이 이명박 진영에 붙었다고 평가하더라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지 않나.
그건 아닌 것 같다. 지금 시점에서 친 이명박이냐 반 이명박이냐는 정치적인 이슈가 아니라고 본다. 그저 인간적이냐, 혹은 인간적이지 않으냐, 그 차원이다. 나는 정치적 소신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나도 이명박이 아주 잘못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건 비인간적인 것이니까. 그런 이야기다.
명쾌하다.
아니, 사람이 원채 단순해서 그렇다(웃음). 록큰롤이 매개가 된다면 저항이나 반발도 하나의 오락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아니 꼭 록큰롤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 널리 불리워지고 그러면서 아주 바람직한 형태의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해.
2000년도에 노브레인이 안티 서태지 운동에 앞장섰었다.
하도 난리를 쳐대니까 솔직히 꼴사나운 것도 있었고. 서태지의 음악을 비판하는 건 아니었다. 그럴 위치도 안 되고. 하지만 미디어가 앞장서서 아주 기형적으로 팬덤을 만들어나가는 게 아주 꼴 보기 싫었다. 문화대통령이니 뭐니 하면서 난리법석을 떠는데. 그렇게 일변도로 가는 건 좋지 않다. 아주 심각한 의미 부여를 한 건 아니었고, 아까도 말했듯이 쉽고 재미있게 놀자는 맥락에서 공연을 했다.
요번 앨범은 들어봤나?
들어봤다. 잘 만들었던데? 이것 저것 다 섞여 있더라고. 역시. 아주 트렌디하고 말끔하고. 그런데 역시 내 스타일은 아니고.
문샤이너스가 문화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하지?
글쎄. 그건 그 때가서 생각해보지 뭐(웃음). 그런데 서태지의 방식과는 다르게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아까 이야기했던, 쉽고 재미있는 삶의 방편이 될 수 있고 여가가 될 수 있는 그런 문화를 여러 사람들과 논의해서 잘 만들어야겠지. 만약 그런 입장에 설 수 있다면 말이다.
당신은 뭔가를 바꾸고 싶은 사람인가?
만약에 남들이 바꾸지 않는다면 내가 바꾸고 싶은 마음은 있다.
어떤 걸 바꾸고 싶은데?
정치든 사회든 문화든 모조리 다. 유니크하게 바꿔야지. 그러면서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참 어려운 이야기이긴 하다.
유니크라는 게 제한된 사람들이 즐기기 때문에 유니크라 불릴 수 있는 건데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이라면 그건 이미 본질에서 멀어진 것 아닐까?
듣고 보니 그렇네.
만약 유인촌 장관 대신에 문화부 장관이 되었다, 가정을 해보자. 뭘 제일 먼저 바꾸고 싶나.
일단은 문화쪽에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뒤로 이쪽에 예산 투입이 줄어드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재능과 능력이 있는데 돈이 없어서 앨범을 내지 못하는 친구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지원제도가 있었다. 내가 받아본 적은 없지만 참 좋게 생각하고 있었거든. 지금은 없다. 정권이 바뀌고 다 사라졌다. 영화계도 마찬가지 아닌가?
정부에서 문화를 수익산업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 사람들에게는 그런 개념 밖에 없는 것 같아. 창작의 환경은 어느 정도 보장을 해줘야 한다. 그래서 문화부라는 게 존재하는 것 아닌가.
그러게. 차라리 경제부랑 통합시키든가.
정말 뭐하러 문화부가 있는지 모르겠다. 월드컵, 올림픽 가서 같이 태극기 흔들라고 만든 건 아니잖아.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유난히 각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부모님이 나 3살 때 이혼하셔서 할머니와 외삼촌이 중간에 거두셨다. 슬픈 건 없다. 오히려 그래서 가정사에 대한 스트레스나 영향 없이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잘 자란 것 같아. 캡이지. 만약에 내가 부모님 밑에서 평범하게 자랐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거다.
할머니가 음악하시는 걸 찬성하셨나?
오히려 가장 지지해주셨다. 전자기타를 처음 사주신 분도 할머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게, 중학교 1, 2학년 때 TV보고 아직 제대로 치지도 못하는 기타 들고 뚱뚱거리고 있으니까, 할머니가 주방에서 밥하시다 말고 아이고 내 새끼 잘한다, 그랬거든. 늘 그러셨다. 아마 날 가엽게 여기는 것도 있었을 거다. 부모 밑에서 못 자라고 할머니 밑에서 자란다고. 혹시라도 비뚤어질지 모르니 그냥 하고 싶다는 거 다 시키자고,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 공부하라는 소리도 한 번을 안 하셨다. 나도 잠시 방황한 시절이 있었는데 할머니 괴로워하시는 모습 보기 싫어 금방 정신 차리고 음악에 전념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아예 공연활동 다니고 그랬으니까.
음악 말고도 좋아하는 게 있을까.
술 마시는 거, 그리고 영화 보는 거!
영화를 많이 보나?
고전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큐브릭 영화도 좋고 히치콕 영화도 좋다. 공포 영화를 특히 좋아한다. 또 <록키 호러 픽쳐쇼>. 정말 보고 또 보고 몇 번씩 보았다.
<록키 호러 픽쳐쇼>같은 경우는 아예 뮤지컬에 출연해도 재미있겠다. 딱 맞을 것 같은데. 미트로프 역도 좋고.
안 그래도 뮤지컬 들어왔었다. 그런데 시간대가 안 맞아서 거절했다. 정말 백 번 넘게 본 영화라, 시간만 맞았으면 분명 했을 거다.
시드 비셔스가 죽지 않고 섹스 피스톨즈가 해체하지 않았으면 세상이 바뀌었을까?
아니. 섹스 피스톨즈는 1집으로 일단 막을 내렸기 때문에 그냥 낭만적인 느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음악적으로 뭔가를 제시할 수 있는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말이다. 물론 그게 펑크지. 아주 막장을 달리는. 멋있잖아.
클래쉬가 변하고 5집에서 6집으로 갈 때 메탈리카가 변하고 하물며 노브레인의 음악이 대선 캠프 로고송에 사용되는 걸 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봐라. 어렸을 때나 치기어리 게 뭔가 바꾸고 싶어 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러는 거지, 어른 돼서 세상 좀 알고 그러면 그게 좋은 태도가 아니야.” 대체 어른이 된다는 게 무엇일까.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일은 없다. 그런데 아마도 이명박을 지지하는 게 그들이 말하는 어른스러움이 아닐까 싶다. 하긴 어른들도 좋아하는 록큰롤이라는 게 조금 어폐가 있긴 하다. 원래 처음 발생부터가 젊은이들의 음악이었으니까. 공연에 찾아오는 40대 이상 관객분들도 계시는데, 그분들은 그 쪽에서도 아마 좀 뉴타입이 아니겠나(웃음).
예전에 <페이퍼>와 했던 스트리트 인터뷰 기억하나? 정말 인상적이었다. “에이 씨, 뭐 그런 거 있어요.”
하하하. 기억난다. 아직 고등학생이었을 때 같은데. 홍대 앞에 특이하게 하고 앉아있는 애가 있으니까 기자가 다가와서 이런 저런 질문을 해대는 거다. 피어싱 아프지 않았느냐, 뭐 이런 질문. 그러다가 뭐 하는 사람이냐고. 음악 한다고. 무슨 음악 하냐고. 펑크 음악 한다고. 그게 어떤 거냐고. 설명하려다 그냥 귀찮고 짜증나서 “에이 씨, 뭐 그런 거 있어요” 해버렸다(웃음). 음악이란 게 설명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정말 진심으로 궁금하면 직접 들어보든가.
진행_ 허지웅 기자 (프리미어 '와일드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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