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과 존재 사이에 존재론적 지적체계가 정립되듯이 변화와 정신 사이에 관념론적 문화 체계가 정착되어왔다. 자연이 있기에 존재가 가능하듯이 문화가 있기에 정신의 가치가 빛나왔다. 자유의지를 억누를 기제로서의 결정론을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은 스스로를 재발견한다. 실재론이라는 형이상학적 세계를 지향했기에 유명론이라는 경험적 세계에서 균형을 잡아가듯이 존재적 관점에 대한 이해가 인식론을 부양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해석을 다양하게 이끌어낸다. 이처럼 인간의 알고자 하는 욕구는 본능이자 인간과 세계가 소통하는 본질적 요소라 하겠다. 앎은 인간 현실의 혼연함을 벗어나기 위한 근간이자 지성적 인식에 의해 지혜에 이르는 길이기도 하다.
물질 의존의 생명 공동체만이 전통적으로 존재해온 정신적 공동화(空洞化) 사회에서 물욕(物慾)에의 집착은 욕망사회의 저변을 형성한다. 집착은 가진 것 없는 자들의 한계성이자 물욕사회의 특징이다. 물질적 가치를 욕망하는 사회는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정신적 가치에 이르지 못한다. 누리려고만 하지 도전하려는 의지는 윤리도덕에 없다. 누리기 위해 애쓰고 편하기 위해 애쓰는 물욕과 욕망에 종속된 윤리도덕적 사회가 우리의 모습이자 현실이다. 목표가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사회와 욕망이 현실을 지배하는 기술사회가 대응하며 인간은 요건을 편리로 바꾸고 물질을 가치로 드러내왔다. 현실에서 과학이 실종되고 문화적 가치들이 퇴장하며 감각과 욕망이 두각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런 현상을 이해할만한 지배적 사고(思考) 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경험 우위의 현대인에게 자신의 세속적 결핍과 갈망을 대신해 주는 것은 기술이다. 기술 만능의 차용 사회일수록 기술소비사회를 지향한다. 기술과 그 소비로 풍요로운 우월적 공동체 사회를 형성할수록 더욱더 기술 의존도를 높인다.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대중사회일수록 자신들의 나약한 순수함을 보상받고자 선동적 포퓰리즘(Populism)을 갈망한다. 정치적 제도로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집약된 기술과 의도된 정치윤리가 사회적 근간을 형성하며 무능력한 매너리즘 사회는 허황된 주인의식으로 귀결된다. 새로운 기술과 변화된 정치윤리로 양육된 인조인간의 탄생이다. 기술소비사회에서 위계적 인간법칙과 윤리적 자연법칙은 거추장스럽다. 민중의 포퓰리즘적 정치윤리가 전통적인 사회적 기제(機制)들을 기계화시킨다. 인간의 심리작용까지 프로그램화시킴으로써 모든 사회적 관계망도 네트워크라는 천라지망에 가두어버린다. 프로그램화된 인간 사회에서 창조적 인간의 정신세계는 가장 불필요한 오류 영역이기에 재부팅 시켜야 할 요소들이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회일수록 수구적이며 사대적이자 체제적인 규범들을 관행으로 이어가며 강요된 윤리도덕을 광범위하게 확산시킨다. 윤리도덕이야말로 전통에 가두어진 합의될 수 없는 가치관이다. 전통에 대한 시대적 인식은 개인들의 지적 호기심이자 용기이며 창조의 동기로서 새로운 사회적 가치관을 형성해낼 시대적 올바른 삶의 흐름이라 여겨진다. 삶의 가치관을 스스로 지워가는 패배적 관행과 가치부재의 물질만능의 전통을 벗어나는 길이야말로 진정한 개인의 자유의지이자 공동체를 향한 개인의 결정적 지향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희극이 감상적이기에 과거를 지향한다면 비극은 고결하기에 미래를 규율하고자 한다. 개념의 상대적 가능성은 언제나 통약불가능성에 대응해왔다.
법은 인간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자 하는 고형적 체계성을 가진다. 자연 상황을 벗어난 문명사회에서 인간의 의식체계는 항시 규범성을 동반했으며 그것은 결국 법적 차원의 상황으로 이행되어 왔다. 통시적 자연 상황은 언제나 공시적 인간상황에 가압적 기제로 제기되어왔다. 삶에 대한 규율과 그 확립을 요청해온 것이다. 규범적 차원을 현실화하기 위해 사회적 인간은 종합하고 정리해 연역과 분석에 애써왔다. 분석하는 인간/ 논리적 전개를 추구하는 인간/ 종합적 규범체계를 설정하는 인간/ 그것은 전통 속의 공시적 인간 상황이자 자연 상황을 벗어난 문명사회 인간 본연의 실체적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합리화의 도구로 살아갈 것인가 부조리의 모순에 도전하며 나아갈 것인가는 선택적 삶의 의지일 뿐이다.
인간 존재는 근원적으로 유연하기에 선택의 자유가 언제나 삶의 저변을 형성해온 것 같다. 우리가 스스로 낯설어지고 차별화되며 소외됨을 인지하지 않고서 어떻게 자신의 의식적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미래를 미리 차입하거나 과거를 도입해 현존을 재단할 수는 없다. 비교가 가치로/ 차별이 극복으로 승화됨이 현존의 조건이다. 대응 능력이 부족한 어린 시절에는 난관에 부딪쳤을 때에 구속적 의식에 빠질 수 있겠지만 청년시절에는 도전의식을 통해 자립적 의식을 갖추기도 한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의지는 스스로가 낯섦에 도전하는 것이며 차별화되는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합리적인 규범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합리성에는 인본주의적이며 계몽주의적이자 자기 우월적 폐쇄성이라는 독소를 내재하고 있기도 하다.
근대의 계몽주의가 인간 지식의 합리화 과정이었다면 현대의 실증주의는 그런 지적체계를 벗어난 감각적 경험의 세계라 하겠다. 결국 현대에 와서 인간의 모든 노력은 스스로의 지적 한계성을 인식하며 감각으로 집약된 경험적 기술로 전환되고 있다. 인간 활동의 대체 기제로 가상세계를 창조해 기술소비사회로 진화해가고 있다. 전통적 지식체계가 감각적 기술체계로 대체되며 인간정신의 초월적 창조세계도 함께 상실하고 있다. 자연이라는 영역과 지성이라는 영역은 항시 지적 연계 고리를 통해 인간의 문명을 형성해왔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반성적 접근과 현실적 갈등의 해소라고 하는 새로운 실존적 성취를 통해 지적인 현실성을 이룩해온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경험적 기술에 의존도를 높이면서 정신 자체의 숙성이라 할 만한 앎의 탐구 세계를 허물어가고 있다.
기술의 감각적 편리함은 시대적 갈등을 통해 발생하는 지적 자각의 새로운 성취라 할 만한 정신적이고 고투적인 자각능력을 스스로 잃어가고 있다. 놀라운 인지적 혼란이자 인식적 전환이다. 보편적 지식체계가 구태의연해지며 감각적 기술소비사회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완벽함을 자랑하는 기술소비사회에서 인간의 지성은 허접하다. 어린아이에게 다가온 모바일 세상은 성장의 체험을 외면한다. 인공지능이 바둑의 세계를 평정했듯이 빅 데이터가 모든 인간의 지적인 성취를 비웃고 있는 상황이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 위해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이용후생이라는 기술 소비에 집약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식사회가 닫히고 기술사회가 열린 것이다. 기술의 작동원리가 지식이 될 수는 없다. 거기에는 기기 내부에 설정된 명령어에 따른 현상의 반복적이고 논리적인 대응 방식만이 놓여있기에 체계적이며 위계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그 어떤 정신적 추구도 없다.
기술과 소비가 견인하는 세상이다. 그것은 바로 감각적 활동의 기계화적 세계이자 탈-존재화된 소비적 환경이며 설계된 논리의 반복적 체계이기에 정신의 주체적 노력을 증발시키는 건조한 기술사회를 탄생시킨다. 세탁기의 원리를 알고 쓰지 않으며 벽걸이 에어컨 내부에 곰팡이가 무한증식해도 안 보이면 무관심할 뿐이다. 함께하는 자연이 아닌 함께하는 기술 소모의 현장이다. 거대 권력이 모바일로 개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고 길거리에서조차도 안면인식 기술에 노출되는 공포사회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는커녕 주인의식조차도 사라져버린다.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가 전혀 불필요한 깜깜이 세상에서 이용에만 만족하기에 그 어떤 대상도 탐구의 대상이기보다는 이용과 사용의 감각적 소비의 대상일 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자연사회에서 기술에 의지하는 대중기술사회로의 이행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용과 사용과 활용의 소모적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것은 서로가 주고받는 유통사회이지만 유통의 종료와 함께 서로의 관계 설정도 사라지는 그야말로 냉혹한 대중소비사회이기도 하다.
세계의 혼돈과 모순을 넘어 조화로운 정신에 합리적 통일성을 지향해오던 인간 우위의 인본주의적 정신세계는 이제 기술 우위이라고 하는 전 지구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에 자신의 존재를 내맡김으로써 혼돈 없고 모순 없는 기술 만능의 사회에서 인간의 정신세계를 지워가고 있다. 인간의 천품이 기술의 부품으로 바뀌고 있다. 원인의 긍정을 통한 세계 이해의 역사에서 이제는 결과의 부정을 통한 세계 이해라는 결과론적 부정인식론이 현실을 바꾸고 있다. 존재의 내적 필연성의 원리가 사라지고 기술의 논리적 필연성이 등장해 결과 만능의 부품 사회를 이룩해가고 있다. 결과를 이용해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사회적 현상들이 누적되며 이제 사회 모든 직업적 영역에서조차도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치화하는 개인의 독자적 정치이념이 등장하고 있다. 실생활이 기술로 유지되듯이 모든 집단 또한 정치에 의존하고 있다. 기술소비가 삶이 되었듯이 정치이념이 직업이 되었다.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 육체의 주인이 기술이 되고 정신의 주인이 정치가 된 시절이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편하게 살고자 모두는 지성부재의 착한 천민을 자원하는 모습이다.
인륜의 도리나 질서가 공동체에 구속적 사유를 발생시켜온 것이 우리의 전통이라면 서구 근대인들은 지식 기반의 규범사회를 만들어 스스로의 지성으로 시대적 세계관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서구의 기술이 수학적 지성에 의한 결과적 창조물이라면 우리는 물욕적 욕망에 의한 종속적 소비사회를 구성할 뿐이다. 수많은 소비적 파생물과 불순물들이 이 사회를 오염시키며 정치를 수단화하고 있다. 그것은 자연(농업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한 종족들의 공통된 운명이다. 종속된 기술사회는 창조적 지식 탐구에의 의욕이 불가능하기에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없으며 오직 감각적 소비의 즐거움에서만 위안을 받고자 애쓴다. 창조적 애씀이 아닌 소비적 애씀이라는 파생상품들로 가득하다.
아직도 세계가 인과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농업인의 역사인식 속에서 자연의 미물(微物)이라는 농경 사회의 존재적 인식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결과에 대한 합리적 접근과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의식이야말로 자연의 절대를 벗어나 인간의 보편으로 나아갈 자기의식적이며 정신 주체적 삶의 요소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먼저 와버린 기술소비사회에서 그와 같은 연계적 맥락들은 단절될 수밖에 없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던 지적 정서의 순수함조차도 디지털 저장기술로 대체된 시대이다. 기술 집약의 기계적 편리가 인간의 사유까지 몰-개성화시키고 있다. 정신과 감각까지 기계화로 매몰시키는 소비 기술사회가 인간에게 절대적 종속을 요구하며 새로운 기술 소비사회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