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구 다리 건너에 사시는 철수 형을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비보가 직장에서 나주로 1박 2일 워크샵을 간다고 비우기에 나도 사람 만나러 간다고 했다.
전날 처가에서 쌀 두 포대를 챙겼더니 차가 묵직해진 느낌이다.
곡성 도림사 계곡이나 청계 계곡이나 건너 문덕 고리봉의 천만리 장군 묘소 아래 계곡을 생각하다가
그래도 지리산에 가기로 한다.
점암 아이들이 내년에 칠선계곡 오르자 한 것이 생각나 칠선탐방 예약을 확인했더니 다 찼다.
그냥 비선담까지 다녀오기로 하고 하고 추성주차장으로 운전한다.
중간에 들러갈 명소를 생각하다가 시간나면 벽송사나 서암에 가면 된다고 바로 간다.
순천에서 남원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지리산휴게소에서 충전을 한다.
인월로 들어가 산내면 실상사 앞을 지나며 들어갈까 하다가 참는다.
지라신 둘레길을 제대로 걸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바보가 퇴직하면 같이 걷자고 해 볼까?
11시가 다 되어 추성주차장에 닿는다.
예전 어느 가을 해찬솔 회원들과 아침에 준비운동하고 대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천왕봉에 올랐던 곳이다.
뙤약볕에 차를 세우고 스틱을 가지러 차에 한번 되돌아왔다가 마을 시멘트 길을 오르니 11시다.
두시간이면 비선담에 가겠지.
뜨겁고 가파른 마을 안길 거리엔 사람이 없고 길가 팬션 앞엔 차들이 가득하다.
마을 벗어나 인조돌이 깔린 길도 계속 직선 오르막이다.
그늘을 찾아 오른다.
고개가 나타나고 길이 휘어진다. 저 아래 계곡이 깊다.
두지동 마을 가게에도 사람이 없다. 원추리가 많고 노랑 꽃도 철제 안내판 뒤로 꽃밭이다.
뽕나무인지 큰 나무 아래 앉아 셀카를 찍으며 물을 마신다.
쉬지 바로 일어나 돌계단을 내려가 대나무길 입구에서 바위에 앉아 조금 쉰다.
푸른 소가 나타나는 계곡을 지나니 계속 숲길이다. 계곡은 저 만큼 아래다.
계단이 계속 나타난다. 다섯걸음 네 걸음 걸음 수에 맞춰 숨을 쉬다가 나중엔 한걸음에 한번 쉰다.
긴 계단의 끝 벤치에 앉아 앞의 나무를 보며 배낭을 벗고 소주를 마신다.
한시간쯤 걸었다. 다시 챙기고 잠깐 내려간다. 계곡은 멀리서 소릴 낸다.
선녀봉을 지나며 저쪽에 남녀가 사진을 찍고 있어 나도 바위 사이로 내려가 찍고 온다.
옥녀봉은 금방인데 비선담은 얼른 나타나지 않는다.
흔들철다리 뒤에 안전쉼터가 보인다. 비선담이다.
10분쯤 더 올랐을까, 마지막 통제소다. 사람은 없다. 더 올라갈 자신은 없다.
계곡출입금지가 열 곳에 붙어 있다.
조금 더 오르다가 계곡으로 내려가 바위와 물을 건너 큰 바위 뒤로 숨는다.
출발한 지 두시간 만에 숲속의 뜨거운 공기를 마시며 잘 올라왔다.
삼겹살을 굽고 작은 식탁도 편다.
캔맥주 하난 물에 담아두고 600ml 소주병도 담궈둔다.
건너편 계단 철난간이 바로 보이지만 윗몸을 숙이면 감춰질 것 같다.
삼겹살에 큰 잔에 술을 마시니 금방 호기로워진다.
옷을 입은 채로 물속으로 들어간다. 발이 닿지 않는다.
매끄러운 암반을 내려오는 하얀 폭포 위에 눕는다.
그 모습을 찍자고 본을 가져온다.
상체 위로 튀어오르는 물을 찍으며 웃다가 입을 다물다가 셀카를 찍는다.
그러다가 다시 물로 미끄러지려고 바위 위에 폰을 놓고 들어간다.
물 속에 들어갔다 올라오는데 검은 헨드폰이 물 속에서 이파리처럼 출렁이며 가라 앉고 있다.
발은 닿지 않고 손을 내밀 여유도 없다.
폰은 어디로 사라졌다.
잘 사라졌다. 그만 바꿀 때도 되었다.
오늘 찍어 놓은 사진이 아깝다. 노는 모습 자랑하느라 바보에게 4장인가 카톡으로 보냈는데 전송이 되었기를 빈다.
다시 바위 뒤로 돌아와 남은 술을 마신다.
소주는 남겨 둔다.
2시가 다 되어 챙겨 일어난다.
내려오는 길은 쉬지 않고 빠르다. 사진 찍을 일도 없으니.
3시 반쯤에 다시 차로 돌아온다.
폰이 없으니 철수 형께 연락도 안 되고 어디 들르고 싶은 생각도 안 든다.
그래도 나오다가 벽송사로 올라간다.
서암정사 입구 삼거리에 차를 세우고 200m 경사를 걷는다.
구비 두어개를 도니 벽송사다.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구간이다.
입구를 확인하며 꼭 걸을 수있기를 바래본다.
전각이 많이 늘었다. 윗쪽엔 또 노랑 목재으 한옥 건물이 새로 들어 준공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소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수첩에다가 뭐라 끌적이다가 소나무를 그려본다.
건너 전나무 끝에 앉아 까지인지 까마귀인지 두마리가 계속 울어댄다.
폰 없이 눈으로 마음으로 자연과 사물을 보자고 맘먹어 보는데 안된다.
사진 찍는데 버릇이 깊어졌음을 알겠다.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 자신없다.
다시 걸어내려와 실상사 앞을 지나며 들어갈까 망설인다.
찍을 수 없으니 지나친다.
뱀사골 달궁 마을을 지나 성삼재를 넘는다.
비선담에서 임병식에게 전화했더니 꺼져 있다 했다.
철수 형은 연락해 산동에 들러 병식을 태우고 오라했는데 어찌할까 망설이다가 그냥 구례읍을 지난다.
양홍원의 가게는 열려 있다.
군청 로터리를 지나며 군수가 된 장길선에게 전화라도 해볼까 하다가 웃는다.
5시 반쯤 신월리 철수 형 집앞에 닿는다. 형 차는 안 보이고 문도 잠겨 있다.
차를 그늘에 세워두고 버스 정류장 밖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퇴근시간이 된 차들이 꼬릴 물고 지나간다.
이쪽 저쪽을 걷다가 섬진강 책사랑방 김사장한테 갈까 하다가 그 사이에 철수형이 오면 어떨가 하며 못 간다.
그러다가 공중 전화 찾아 바보에게 전화해 철수형한테
나 전화없다고 얼른 집으로 오라고 전화해 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이 난다.
차를 끌고 구례구역 앞 문닫은 식당에 차를 두고 역 주변을 찾아도 전화기는 안 보인다.
다시 돌아오니 형의 차가 있고 형이 안에 계신다. 6시 40분이다.
형이 웃으며 씻으라는데, 배가 고프니 얼른 먹기부터 하자 한다.
건너 매운탕집에 가니 재료 소진이라해 다시 돌아와 예쩐 우리가 먹었던 코다리찜 집으로 들어간다.
나 혼자 소주와 맥주 한병씩 마시고 형은 물만 마신다.
계산하려니 형님이 월급을 탔다고 계산하신다.
형 집에 가 술을 더 달라하니 도자기에 담긴 전통주를 따뤄 주신다.
남은 건 내일 가져가라고 해 두어잔 마시고 형님의 유튜브 시청 방법을 듣다가 거실에서 주신 침낭을 깔고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