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축일을 맞이하여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 가정에, 여러분 위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태양이 구름에 가려 빛나지 않을지라도,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습니다.
사랑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나는 사랑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침묵 속에서 계시더라도,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이 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쾰른 땅에 군사용으로 건설된 지하 동굴 속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누가 이 시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시를 쓰신 분이
얼마나 깊은 믿음을 가진 신앙인이었는가를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전쟁의 막바지에 어둡고 습기 찬 동굴 속에서도 이 분의 눈은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있었고,
이 분의 마음은 따뜻한 사랑에 차 있었으며, 마치 하느님이 안 계신 듯 침묵만 지키시는 절망과 공포 속에서도,
이 분의 믿음은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께 희망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부활 대축일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무죄하면서도 참혹히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묻히신 후,
마리아 막달레나가 누구보다도 먼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전혀 뜻밖에 텅 비어 있는 무덤을 보았을 때, 그녀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잘 모시고, 그분께 대한 마지막 정성으로 향유를 바르고 싶어 했던 막달레나는
망연자실하여 사도들에게 뛰어가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죽은 모습이나마 다시 볼 줄 알았던 마지막 희망,
한 가닥 위안마저 앗아간 듯한 빈 무덤에서, 우리는 또한 어둡고 암담한 우리 사회현실의 반영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막달레나의 다급한 보고에 접한 두 제자는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차례로 용기 있게 빈 무덤 안으로 들어가 ‘믿게' 됩니다.
그들이 육신의 눈으로 본 것은 빈 무덤 뿐 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침묵과 공허만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서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죽은 예수는 부활하여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셨던 것입니다.
더구나 오늘 복음을 좀 더 읽어 내려가면,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실망과 좌절에 젖어서도 빈 무덤을 지키며 울고 있는 막달레나에게 "왜 울고 있소?
누구를 찾고 있소?"하고 물으시며 막달레나의 이름을 친히 불러주시는 예수님이 서 계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나팔을 울리고 환영 인파가 환호성을 올리는 가운데 화려하게 등장하는 분이 아닙니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무덤가에서 당신을 찾는 이에게 조용히 몸을 드러내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도 삶에 지치고, 세상에 실망할 때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억울하고 슬플 때, 괴롭고 아쉬울 때, 자신의 한계와 무기력을 뼈저리게 느낄 때,
주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따로 불러 위안을 주시며, 당신께로 모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인간의 눈에는 빈 무덤처럼 보이는 이 세상 위에 현존하시며,
인간의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방법으로 인류의 역사를 살피시고 이끌어 나가시는 분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실 때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화됩니다.
한 때 비겁하던 제자들이 누구보다도 먼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까지 바쳐서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주님을 믿고, 그분 안에 사는 이들에게는 이제 인종이나 민족의 차별,
자유인이나 노예의 차별도 없고, 남녀의 차별도 없으며, 모두가 형제자매요, 그리스도 안에 하나입니다(갈라 3,28참조).
참으로 인간이 변하고, 사회가 변합니다. 이기주의와 죄악의 세상이, 사랑과 진리와 정의로 가득찬 하느님 나라로 변화됩니다.
믿는 이들은 모두 한 마음 한 뜻이 되었고, 모두가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가난한 사람이 없었던 초대교회가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그 주님의 사랑으로 변화된 하느님 나라 그것이었습니다(사도 2.43-47 ;4.32-37 참조).
누구인가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이 형제로 보이면, 그것으로 새 날이 밝아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이는 누구든지 이같이 모든 이를 형제로 보고 사랑하는 새 사람들이 될 것이고,
그들과 함께 인류역사에 새 날이 밝아올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그처럼 변화되어야 합니다. 영성체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이 되고, 동시에 그 사랑을 본받아서 우리 역시 서로 사랑하고 나눔으로써,
참으로 그리스도를 기초로 한 형제적 공동체인 교회를 이룩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빈 무덤과 같은 오늘의 현실 속에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가운데 살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부활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의 축일입니다.
또한 부활절은 그 약속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축일입니다.
태양이 구름에 가려 빛나지 않는다 해도 태양을 볼 수 있고,
사랑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해도 사랑의 힘을 믿을 수 있고,
하느님께서 침묵을 지키시는 것 같은 때에도 하느님을 믿고 희망할 수 있는 신앙의 축일입니다.
이 신앙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사는 우리는 행복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 빛이신 주님과 함께 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1987년 김수환 추기경님의 부활메시지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