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대에 올라
내가 즐겨 가는 산행이나 산책 코스는 철마다 행선지가 다르게 정해진다. 봄날이면 북면이나 여항산 일대로 나가 야생화 탐방이나 산나물을 채집한다. 여름은 장마와 더위 속에도 근교 참나무 숲을 찾아 알탕을 즐기고 영지버섯을 찾으려 길을 나선다. 가을에도 산자락이나 강가를 누비면서 제철에 피어난 들꽃을 완상한다. 겨울은 산을 찾기도 하지만 바닷가나 강둑으로 자주 나간다.
래도록 대중교통으로만 이동해 당일 여정으로 낙동강 중하류 양쪽 내 발자국을 구석구석 남기고 있다. 수산다리 근처와 한림 강둑은 동네 어귀 정도 여기고 함안창녕보도 예사다. 을숙도나 다대포는 물론 해운대나 기장 해변까지 둘러온다. 삼랑진에서 물금 일대는 가벼운 발걸음이다. 남지나 적포까지도 올라가 봤고 합천 창녕보를 건너 달성 구지와 현풍 도동서원까지도 다녀왔다.
논란이 많았던 4대강 사업 이전에도 나는 낙동강 강가로 자주 나갔더랬다. 지금 강둑은 시원스럽게 자전거 길이 뚫려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을 더러 볼 수 있다. 낙동강 하류에서 산악지대가 길고 멀어 자전거 길을 내지 못한 구간이 있었다. 접근성과 경제성이 떨어짐도 이유였지 싶다. 김해 생림면 도요에서 상동면 용산 구간으로, 근래 그 산비탈 벼랑으로 임도 성격의 길이 생겼다.
일월 넷째 토요일 아침이었다. 가끔 산행을 함께 나서는 대학 동기와 함께 길을 나섰다. 둘은 창원중앙역에서 순천을 출발해 포항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탔다. 잠시 뒤 진영을 거쳐 한림정역에서 내렸다. 역사를 빠져나와 북쪽 들판을 걸어 모정으로 갔다. 예전엔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넘어야 했으나 근년에 폐선 모정터널을 자전거 길로 만들어 놓아 쉽게 지나니 한림 마사마을이 나왔다.
마사터널을 빠져나간 카페 쉼터에서 곡차를 비우면서 밀양강이 흘러오는 방향을 바라봤다. 삼랑진 뒷기미였다. 오토캠핑장을 지나니 둔치는 낙동강 레일파크공원에 파크골프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기초 자치단체는 경전선 폐선 터널에 와인 동굴을 만들어 관광객을 모으려고 애를 썼다. 밀양강이 흘어와 낙동강에 보태지는 지점이었다. 세 갈래 물결의 나루이니 당연히 삼랑진(三浪津)이었다.
강심으로는 경전선이 경부선으로 합류하려는 육중한 철교가 걸쳐 지났다. 예전 낙동강을 건너는 폐선 철교는 레일바이크로 설치해 관광 자원으로 꾸며졌다. 철교 상판 전망대에 올랐더니 주변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제방에서 배수장을 자니니 창암마을이 나왔다. 길에서 만난 노부부에게 도요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아주 먼 곳이라면서 갈 길이 많이 남았다고 우리를 걱정해주었다.
과수원 비탈을 올라 부산대구 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나뭇단을 묶어오는 노인에게 길을 물어 산비탈을 개척 산행으로 넘었더니 양지마을이 나왔다. 강변의 도요 문화공원에서 가져간 도시락과 곡차를 비웠다. 도요는 음성나환자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라 오랜 세월동안 바깥과 단절되다시피 고립된 지역이었다. 절과 교회도 보였고 폐교가 된 학교 자리는 문화 창작소로 바뀌어 있었다.
둑길이 끝난 습지공원엔 자동차를 몰아온 외지인들이 몇몇 보였다. 강변에서 선로사 가는 길을 따라 갔다. 선로사 들머리부터 우리가 가려는 벼랑으로 뚫은 길고 긴 임도가 시작되었다. 맞은편에서 용산에서 산책 나온 이들을 드물게 만날 수 있었다. 강변의 전망대로 내려가 남겨둔 곡차를 마저 비우며 유장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왔다. 삼랑진을 지나온 강물이 물금으로 흘러갔다.
강변은 벼랑이 가파르고 높아 임도를 내기 쉽지 않은 구간이었다. 임도는 대부분 비포장이었으나 비탈이 심한 구간은 시멘트포장이었다. 전망대에 서니 물금의 임경대에 올라 바라봤던 황산강 풍광에 못지않았다. 신라 하대 최치원이 남긴 한시가 떠올랐다. 저기 아래는 용산 나루와 강 건너 가야진사였다. 산모롱이를 돌아 용산초등학교 앞으로 가 김해 시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21.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