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하는 아내에게
오는 2018년 5월 19일 (5/20일 일요일이 원래 정식 퇴임 날)은 당신이 23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년퇴임하는 날입니다. 강산이 두 번 변하도록 열심히 일한 당신에게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내가 당신을 만난 지는 40년이 되었고 결혼한지는 39년차입니다. 그동안 가정사의 짧은 역사 속에 스며든 우여곡절은 많았습니다. 특히 자식들 건사하며 가난이 자아낸 격랑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오늘의 가정을 평화롭게 지켜낸 것은 무엇보다도 당신의 힘과 당신의 결기와 굳센 의지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여성의 힘이며 어머니의 힘이었습니다. 평범한 듯 그러나 잊기 쉬운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당신은 고등학교 교육이 전부이었고 나는 대전공업고등전문학교 교육이 전부이었으나 당신은 어린나이에 세무사 사무장을 역임하였고 나는 서울시 하급공무원이었습니다. 당신을 처음만난 것은 1979년 1월 3일 서울행 금남여객 직행버스 안에서 당신은 차멀미에 시달렸고 나는 당신 등을 두드려주면서 양옆 좌석의 창문을 열게 하여 추운바람에 환기를 시켜주면서 용산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고맙게도 추위에 떨며 창문을 열어주신 좌석승객에게 고맙다는 말도 건너지 못하고 하차하려는 순간 당신이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 연락처를 요구하고 나에게 명함을 건네줬습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당신을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당신의 가정사를 몰랐지만 후에 당신의 고조부가 소론의 영수 윤증의 수제자란 사실을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도 인자하신 풍양조씨 할머니를 모시었고 인간의 도리를 윤증선생의 학풍에 따라 비록 구차한 살림 속에서도 지켜왔으며 특히 어려운 시절 당신의 가정도 가난의 일상을 살면서 장날이면 할머니께서 보리밥을 많이 하여 오가는 배고픈 사람을 불러들여 같이 나눠 잡수시던 세월도 몇 십 년을 하셨다니 보통정성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의 고조부님은 후학을 많이 배출하여 공주논산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한학자는 모두 윤증선생과 당신 고조부님의 후학들이었습니다. 그 중 한 분이 우리 집안의 종회장님이었습니다. 회장님은 당신의 고조부님의 제자로서 항상 선생님의 덕망을 그리워하고 사모했습니다.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데는 회장님의 적극적인 관심이 작용하였고 나는 당신과 행한 구식결혼식장에도 신랑으로서 당신을 맞으려가는 윗분이 아버지 대신 회장님이 동행 했습니다 평생 선생님 댁을 한번 가보고 싶고 선생님 손자도 보고 싶다고 하셔서 아버지가 허락하셨습니다. 장인어른은 공주 노인회장과 논산 노인 회장을 몇 년간을 엮임 하셨습니다. 이곳 유지되시는 분들의 아버님과 조부님들이 장인증조부님의 후학들이기 때문이기에 그 영향이 큰 듯합니다.
당신과 내가 만나게 해준 분은 우리집안의 종회장님이시고 당신의 할머님이시었습니다. 당신과 내가 살아오면서 얄팍하나마 인간의 한계, 삶의 숙명적 어려움과 고달픔을 철저히 인식하고 어차피 고난과 고통은 모든 인생이 피해갈 수 없는 것이기에 사랑과 이해를 통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지혜는 서로간의 포용과 화합의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란 것을 당신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고뇌와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숙명적 존재란 것을 생각하고 때로는 종교적 상념으로 일체의 사유를 믿고 기우리는 자세를 취하면서 살아갑니다. 고난의 역정을 밟고 가는 수많은 인간들 이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이라면 살아가는 동안 이상향을 꿈꾸고 지향하며 살아가는 것 또한 우리들의 삶의 갈망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태어나 삶을 잇는 서러움을 절감하면서도 당신과 같은 소박하고 따뜻한 인간의 향기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나는 알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생사여일(生死如一)의 입장에서 삶과 죽음을 하나로 여기며 비록 그리 높은 지혜는 아닐지라도 무슨 일이든지 죽을 각오로 수많은 세월을 보냈기에 오늘날 우리의 삶이 객관적 입장에선 보잘 것 없고 삶은 여전히 고달프지만 우리들 자신에게는 보람된 삶이되었습니다.
당신이 정년을 퇴임하고 다시 마주하는 세상은 또 다른 세상 속에 새로운 장면이 펼쳐질지 모릅니다. 어제의 애잔함과 오늘의 아픔을 뒤로하고 내일의 꿈을 재촉하는 새로운 종소리가 울리기를 기대합니다. 봄이 무르익어갑니다. 녹음방초의 향연이 5월의 산야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새로운 세상을 위하여 온몸에 이채로운 정감으로 휘감으며 봄바람은 따스하게 볼 깃을 적십니다. 아직도 당신은 수줍음이 진득이 배어있는 자세로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커피 향을 즐기고 장미를 좋아하며 이기적인 현실과 격을 두고 양심적이며 탐미적인 개성이 돋보이고 서정을 좋아하고 이채로운 정감을 좋아하는 당신은 삶의 과정에서 켜켜이 박힌 슬픈 진실 그 서럽고도 아름다운 애환의 속삭임 속에서 당신의 채색으로 봄바람 부는 푸른 벌판을 가슴 벅찬 감동으로 휘몰아가고 있습니다. 아름답습니다. 삶의 뒤안길에 남겨진 애환의 기억들 스치고 지나쳐온 숱한 인연들 그 기억과 인연 속에서 그 소중한 가치들을 외면하지 않고 살아온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땀 흘리지 않고 거두는 열매는 없습니다. 당신은 땀보다 피와 눈물의 고난으로 결실된 열매이기에 어려웠던 시절 숙명처럼 단단히 달라붙은 고단한 세월을 처연하게 살아낸 당시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모진세월에도 낮과 밤이 있고 빛과 어둠이 있었건만 어두웠던 밤의 기억은 묻어두고 환한 낮의 기억만을 표현하는 성실한 지성의 태도에 경의를 표합니다. 당신은 항상 소박한 옛것에 대한 그리움 실바람에도 가녀리게 흔들리는 순수이미지 희생과 헌신의 상징이 된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함께하는 당신과 나는 이제 변화하는 세월을 맞이할 지도 모릅니다. 마음과 신체의 건강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당신이 건강한 세월을 오래 향유하기를 합수고대 합니다. 우리들의 대강의 역사는 마무리되어가고 남은 세월 같이 가는 세상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진심으로 정년을 축하드리며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당신에게 감사하고 고맙다는 뜻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정년을 축하드립니다.
2018년 5월 16일
율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