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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공영방송은 국정교과서 ‘공범’ | ||
여-야, 보수-진보, 보편상식 대 몰상식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 ||
정운현 | 2015-10-15 16:00:51 |
작금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는 학문적으로 시시비비를 다투는 학계 차원의 논쟁이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 전쟁이다. 정파적으로는 여-야, 이념적으로는 보수-진보, 그리고 우리사회의 보편상식 대 몰상식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자고로 전쟁은 무승부가 없다. 치열한 공방이 오고 간 뒤에는 확연하게 승패가 갈리며 진 쪽은 치명타를 입게 된다. 이번 역사전쟁에서 어느 쪽이 이기고 어느 쪽이 지든 간에 그 피해는 교과서 소비자인 학생과 일반국민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국민대통합을 들고 나왔다. 임기 절반을 넘겼지만 국민대통합은 여태 별다른 성과를 낸 것이 없다. 이번에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지시 한 마디에 온 나라가 반으로 쩍 갈라졌다.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위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이 필요하다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국민통합은커녕 되레 국민 분열만 가중시킨 꼴이다. 정치적으로 여야가 나뉜 것은 그렇다고 쳐도 일반 국민들을 둘로 나눠 반목시키는 행위는 지도자가 할 일은 아니다.
박 정권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다가올 양대 선거를 앞두고 나온 선거전략이라는 것이 중평이다. 유권자를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 내 편은 묶고 네 편은 분열시키자는 전략이 그것이다. 이미 그런 현상은 곳곳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국정화를 두고 시민단체 들에서 ‘역사쿠데타’라고 비판하자 여권에서는 “역사쿠데타는 노무현”이라며 맞받아치고 나왔다. 이는 친노-반노 전선 형성을 꾀하려는 술책임을 모르는 이 없거니와 한 마디로 벌 받을 짓이다.
문제는 다시 언론이다. 그중에서도 대중 파급력이 큰 거대 공영방송이다. 교육부가 국정화 방침을 밝힌 지난 12일 양대 공영방송의 보도는 매우 저급하고 실망스러웠다. 제대로 된 보도였다면 정부가 2017년부터 국정교과서를 펴내려고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야당과 학계·학부모·시민사회단체가 기를 쓰고 이를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려주고 나아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짚어주었어야 했다.
또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한 헌법정신과 교육의 다양성을 권고한 유엔 인권규약의 정신도 곁들였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이날 두 방송의 보도는 본질은 비켜간 채 국정교과서를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며 교육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데 급급했다.
‘영향력 1위’의 KBS는 이날 집필진 구성 문제를 장황하게 보도했다. 그러나 정작 새로 구성될 국정교과서 집필진을 둘러싼 문제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주도한 ‘새역모 역사교과서’는 역사에 문외한인 필자들이 참여해 만든 엉터리 역사교과서로 정평이 나 있다. 이번 국정교과서 사태에 대해 역사학계에서 집필 거부가 잇따르면서 정부는 ‘다양성’을 내세워 각계의 비전공자들을 필자로 참여시킬 가능성이 커졌다.
현 추세대로라면 국정교과서는 일본 ‘새역모 교과서’의 판박이가 될 공산이 매우 크다. KBS는 수년 전 뉴라이트가 펴낸 ‘교학사 교과서’의 실패사례를 교훈으로 들려줬어야 마땅하나 애써 외면한 것으로 보인다.
당일 방송3사 중에서 국정교과서 문제에 가장 많은 보도를 한 MBC 역시 겉핥기식 보도, 편파보도에 그쳤다. MBC는 “새로운 교과서는 국민을 통합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역사 교육의 토대가 될 것”이라는 황우여 교육부장관의 발언을 앞세우면서 노골적으로 정부 편을 들었다.
특히 MBC는 현행 교과서가 ‘좌편향 돼 있다’는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면서 역사학계 등 각계의 비판여론에 대해서는 ‘반대를 위한 반대’ 혹은 ‘정쟁거리’ 정도로 축소 보도했다. 정부 당국자의 입을 빌어 국정교과서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세계에서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 베트남, 몽골 등 극소수에 불과한 사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KBS에 이어 MBC도 정권의 나팔수를 자임하고 나선 꼴이다.
두 공영방송의 편파·왜곡·부실보도는 어쩌면 현 체제 하에서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KBS, MBC 두 방송사의 경영 및 감독 책임그룹은 그릇된 역사관을 가진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KBS 이사장은 친일 문제 등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관이 뒤틀려 있는 사람이다.
그가 이사장에 취임한 뒤로 KBS 보도는 뉴라이트 성향의 극우 역사관을 추종하고 있다. MBC 이사장은 ‘빨간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는 제1야당의 대표는 물론이요, 심지어 판사나 검찰까지도 상당수가 빨갱이로 보고 있다. 이밖에도 두 방송사의 이사들 가운데는 편향된 이념과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인사들이 적지 않다. 혹자는 “이 보다 더 나쁠 순 없다”고 비꼬기조차 한다.
이들은 추천, 임명과정에서부터 전력, 자질 등을 두고 논란이 됐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를 ‘공산주의자’라고 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에 대해서는 야당이 해임건의안을 준비 중이다. 때 아닌 사상논쟁에 이어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이 터져 나왔는데 과연 우연한 일일까.
정부가 문제의 인물들을 공영방송 이사로 임명한 것은 다가올 양대 선거에 대비한 사전포석이라는 견해가 많다. 2017년은 박정희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다. 때마침 대통령선거를 맞아 양대 공영방송의 국정교과서 홍보전은 극에 달할 것이 분명하다. 이미 그들은 현 정권과의 ‘공범’을 자처하고 있다. 공영방송 MBC와 KBS는 ‘청영(靑營)방송’으로 간판을 바꿔달아라. 그게 솔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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