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7월에 최다 왜?
체온상승으로 혈류 속도 느려져… 1℃ 오를수록 사망률 2.1%씩 ↑
골든타임 늦으면 마비 등 후유증… 전문 시스템 갖춘 병원 찾아야
중앙대병원 신경외과 남택균(왼쪽) 교수와 영상의학과 변준수 교수가 출혈성 뇌졸중 환자의 뇌동맥류에 백금으로 된 미세 코일을 넣어 혈관 터짐을 막는 시술을 시행하고 있다. 중앙대병원 제공
뇌졸중은 흔히 ‘환절기 혹은 겨울 불청객’으로 알려져 있지만 요즘 같은 한여름에도 자주 발생한다. 26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3년간(2017~2019년) 월별 뇌졸중 진료 통계를 보면 7월에 62만1959명이 병원을 찾아 가장 많았고 1월(61만9802명) 3월(61만6549명) 8월(61만4915명) 10월(61만4886명) 5월(61만3798명) 12월(61만2326명) 순이었다.
추운 겨울에는 갑작스러운 기온 저하로 혈관이 수축해 혈압이 오르고 이로 인해 혈류 속도가 빨라지면서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이 많다. 반면 여름에는 체온 상승으로 혈관이 팽창하면서 혈류 속도가 느려지고 뇌 등 주요 장기로 가는 혈액량이 줄어 뇌졸중(특히 뇌경색) 위험이 높아진다. 무더위로 인한 탈수 또한 여름철 뇌졸중의 원인이 된다. 땀을 많이 흘리고 활동량이 늘면 몸 속 수분이 급격히 줄며 혈액의 점도가 높아져 혈전(피떡)이 생기고 이게 혈관을 막아 뇌경색을 일으킬 수 있다. 또 실내 냉방으로 체온이 떨어진 상태에서 기온이 높은 바깥으로 나가거나 찬물 목욕을 오래하다가 갑자기 외부로 나올 경우에도 급격한 체온 변화로 인해 혈액 흐름이 정체되면서 혈전이 생겨 혈관이 막힐 수 있다.
미국 심장학회는 기온이 32도 이상 되면 뇌졸중 위험이 66%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영국 런던대 연구에 따르면 여름철 온도가 1도 오를 때마다 뇌졸중 사망률이 2.1%씩 증가했다.
중앙대병원 뇌졸중클리닉 박광열 신경과 교수는 “뇌졸중의 계절적 요인은 일률적이지 않으며 사계절 발생할 수 있다. 고혈압 치료가 잘 안됐던 예전에는 뇌출혈과 뇌경색이 반반 정도로 발생했으나 최근에는 뇌출혈과 뇌경색이 2대 8로 뇌경색이 훨씬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소 동맥경화나 고혈압, 당뇨, 심방세동(불규칙한 심장박동)을 갖고 있거나 고령인 경우, 가족 중에 뇌졸중 병력이 있는 경우 여름철에도 혈관 건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뇌출혈이나 뇌경색은 치료가 늦어지면 마비, 언어장애, 치매 등 후유증을 겪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치료 가능한 병원을 빨리 방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 뇌졸중으로 희비가 엇갈린 두 사례가 있다.
택배 노동자 윤모(59)씨는 얼마 전 35도 넘는 찜통더위에 마스크를 쓴 채 일하다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졌다. 구급차에 실려 서울의 유명 종합병원 응급실로 실려갔지만 중환자실 여유 병상이 없었다. 뒤늦게 응급처치가 가능한 다른 병원을 찾았으나 치료가 늦어져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김모(75)씨는 TV를 보다가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고 왼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증상이 생기자 가족 도움을 받아 35분 만에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 닿았다. CT검사에서 머리의 혈관이 막혀 있는 것이 발견됐고 혈전을 녹이는 약물을 투여해 막힌 혈관을 다시 뚫었다. 다음 날 팔다리 마비 증상은 회복됐고 김씨는 1주일 뒤 별다른 후유증 없이 퇴원했다.
뇌졸중이 발생하더라도 골든타임인 3시간 안에 치료 가능한 병원에 도착하면 회복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심평원의 ‘급성기 뇌졸중 적정성 평가’자료에 의하면 뇌졸중 증상 발생 후 병원에 도착하는 시간은 평균 214분으로 34분 정도 지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에 도착하면 혈압·체온·심장상태 체크, 뇌혈관 영상 촬영 등을 통해 뇌의 어느 부분이 얼마나 손상됐는지 평가하는 데 약 40~50분, 최대 1시간 정도 걸린다. 따라서 집이나 일터에서 뇌졸중 의심 증상이 생기면 이런 평가 시간을 감안해 적어도 2시간 안에 병원에 도착해야 혈전 용해 약물 투여(뇌경색인 경우) 등을 통한 혈관 재개통으로 골든타임 3시간을 지킬 수 있다.
병원은 되도록 뇌졸중 집중 치료 시스템이 갖춰진 곳으로 가는 게 좋다. 신경과와 신경외과, 영상의학과, 재활의학과 등의 협진을 통해 신속한 진단과 치료가 이뤄져야 재발과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중앙대병원 뇌졸중클리닉의 경우 신경과와 신경외과 전문의와 전문 간호사가 24시간 응급의료센터에 상주하며 언제 뇌졸중 환자가 찾더라도 도착 1시간 안에 CT와 MRI 등 영상검사와 혈전용해 시술 등 응급치료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올해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공개한 ‘세계 병원 평가(World’s best specialized hospitals 2021)’에서 전 세계 28위에 오를 정도로 뇌졸중 치료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뇌경색 환자의 혈전용해술 시행 시 (전공의들에게 맡기는) 대다수 다른 병원과 달리 교수들이 모든 프로세스를 직접 모니터링한다. 아울러 한국인 뇌졸중 발병 원인의 30%를 차지하는 ‘대뇌 소혈관질환’ 치료에 특화돼 있다. 박 교수는 “한국인은 0.1~0.4㎜인 작은 혈관이 터져 뇌출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 연구에서 소혈관에 칼슘이 쌓여서 혈관이 딱딱해지고 혈압이 상승해 혈관이 터지는 문제가 잘 생기며 칼슘이 쌓이는 것은 비타민D 부족 때문이란 사실을 국내 처음으로 밝혀내 치료 및 재발방지에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뇌출혈의 경우 신경외과의 긴급 수술이나 영상의학과적 시술이 필요할 수 있다. 특히 뇌혈관이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는 ‘뇌동맥류’가 터져 생기는 ‘지주막하출혈’은 생명을 위협하는 긴급 상황이다. 이 병원 변준수 영상의학과 교수는 “뇌동맥류 파열 같은 출혈성 뇌졸중의 경우 최근 ‘코일 색전술’이 선호되고 있는데, 백금으로 된 미세 코일을 뇌동맥류 발생 부위에 삽입해 혈관 파열을 막는 방법으로 두개골을 열지 않고 팔이나 사타구니 혈관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회복도 빠르고 효율적”이라고 했다.
뇌졸중 치료 방법의 선택에 있어 많은 의료진의 지식과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집단 지성이 필수적이란 얘기다. 남택균 신경외과 교수는 “신경외과, 신경과, 영상의학과 등의 경험 많은 세부 전문의들이 뇌혈관팀을 구성하고 SNS 메신저를 활용해 365일 24시간 실시간으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더 나은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