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나서면 느닷없이 시원해진 날씨. 계절 사이에도 문이 있는 모양이다. 안과 밖이 문짝 하나 차이이듯 여름과 가을도 하루 차이이지 않을까. 여전히 볕은 뜨겁고 멀리 매미 울음 들리는 것 같고 잎들은 무성하고 푸릇하지만, 구월이 되면 가을.
출근길 버스 안 승객들을 둘러보다가 어제 아침과 다른 점을 발견한다. 그 누구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다. 대신 멀거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애틋함을 느낀다. 각자 생각이나 마음은 다르겠지만 하여간 걷잡을 수 없는 세월의 무상함을 어느 한편 느끼고 있지 않겠는가. 물론 나도 그들 중 한 명이다. 창밖엔 진한 햇빛과 그만큼 진한 그늘이 있고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자연이 있고 어제와 다를 바 없는 거리 위에는 걷거나 머물러 있는 보통의 사람들. 그럼에도 나의 눈은 자꾸 달라 보이는 것들을 뒤적이고 있다. 그러니까 가을을 만들어가는 것은 나 자신이다.
마음에 단풍이 물들려 한다. 낙엽이 떨어지려 한다. 그러나 아직은 이르다. 이것이 초가을 감각. 초가을 생각. 아직은 쓸쓸해지기 전. 잠깐 동안 상념에 빠져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덧 내려야 하는 정류장.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드는 것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이 재미난 일이다. 가을은 또 그런 일들로 가득한 계절이고, 그러니 책 읽기에도 좋은 계절. 읽기란 생각의 다른 이름이니까. 좋은 날씨에 책 읽기라니 어불성설이네. 피식 웃는다. 독자로 가득할 오늘의 서점을 은근히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