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치칼라(러시아 어: Махачкала, Махачкала́, Machačkala, Makhachkala 아바르 어: МахIачхъала, 쿠마크 어: Магьачкъала, 라크 어: Aнжи 안지, 문화어: 마하츠깔라)
마하치칼라는 러시아 다게스탄 공화국의 수도이자 북(北)카프카스 연방관구의 최대 도시로 러시아 서남부의 경제, 행정, 정치, 과학, 문화 중심지다. 카스피해 서해안에 위치해 있다. 마하치칼라는 다민족 사회로 이곳에서는 러시아인이 오히려 5% 남짓에 불과한 소수 민족이고 아바르인(26.7%)과 쿠미크인(19.17%) 등 이슬람계가 대부분이다. 체첸공화국 수도인 그로즈니에서 나가는 송유관의 종착지다.
개관
마하치칼라는 러시아 다게스탄 공화국의 수도이자 북(北)카프카스 연방관구의 최대 도시로 러시아 서남부의 경제, 행정, 정치, 과학, 문화 중심지다. 카스피해 서해안에 위치해 있다. 러시아 최대 이슬람교 성전의 하나인 마하치칼라 그랜드 모스크가 유명하다.
마하치칼라는 설립 초기에 마을의 명칭으로 러시아 황제의 이름을 사용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소련 붕괴 이후 마하치칼라는 이슬람 반군의 다게스탄공화국 침공으로 북부 코카서스 지역에서 러시아연방과 무장세력 사이의 충돌이 재개되면서 촉발된 제2차 체첸전쟁의 여파로 반군의 폭동에 시달려 왔으나 최근에는 사태가 꽤 진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하치칼라는 인종 구성이 복잡한 다민족 사회다. 2010년 인구센서스 결과를 보면 러시아인은 5.4%에 불과하고 이슬람계 민족이 압도적 다수다. 민족별로는 아바르인(Avars, 26.7%)과 쿠미크인(Kumyks, 19.17%)이 제일 많고 그 뒤를 다르긴인(15.3%), 레즈긴인(12.71%), 라크인(12.35%), 타바사란인(2.02%), 루툴인(1.24%), 아제르바이잔인(0.91%) 등이 잇고 있다. 여러 민족이 함께 살고 있으므로 당연히 여러 언어가 사용되고 있으나 최대 인종인 아바르인들이 체첸어를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러시아어로 소통한다.
이웃한 체첸 공화국의 수도이자 유전 도시인 그로즈니에서 카스피해로 나가는 송유관의 종착지로 석유 관련 기업이 많다. 기계, 화학, 섬유 산업 등도 발달했고 석유와 목재, 목화, 설탕 등을 수출한다.
역사
마하치칼라 인근에 있던 타르키 마을은 역사가 15세기, 또는 그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의 마하치칼라는 1844년에 요새가 쌓아 올려졌을 때에는 1722년에 마하치칼라를 방문한 표트르 1세의 이름을 따서 페트롭스코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페트로프스코예라는 이름의 요새로 출발했다. 제2차 러시아-페르시아 전쟁(1722~23)을 지휘하기 위해 1722년 이곳에 머문 적이 있는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러나 현지 최대 민족인 쿠미크인 사이에서는 안지 칼라(Anzhi Qala), 즉 진주요새로 알려졌었다(쿠미크어로 Anzhi는 진주, Qala는 요새를 의미). 1857년 이 요새에 도시의 지위가 부여되면서 이름이 페트로프스크로 바뀌었다. 1857년에는 페트롭스크포르트시가 되었다.
페트로프스크와 블라디카프카즈(현재의 북오세티아알라니아) 및 바쿠(현재의 아제르바이잔)를 연결하는 철도가 1894년 부설됐다. 러시아 내전 때인 1919년 1월 영국 공군의 2개 비행대대가 페트로프스크를 기지로 삼아 아스트라칸을 비롯한 볼셰비키 진영에 대한 폭격 작전에 참여했다. 페트로프스크는 같은 해 8월 영국 공군부대가 모두 철수한 뒤 1920년 봄 적군에 함락됐다.
소비에트 혁명의 일환으로 군주제나 종교와 관련된 지명이 모두 바뀌게 되면서 페트로프스크는 1921년 5월 다게스탄 혁명가 마고메드-알리 '마하치' 다하다예프의 이름을 따서 마하치칼라로 개칭됨과 동시에 새로 탄생한 다게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가 됐다. 마하치칼라는 1970년 5월 14일 지진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곳은 소련 시절 해군의 비밀스러운 시험기지로 사용되면서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후 1992년 3월 신연방조약에 따라 다게스탄 자치공화국으로 바뀌었고 마하치칼라도 다게스탄 자치공화국 수도가 됐다. 국제위기그룹(ICG)은 2013년 보고서에서 마하치칼라에 대해 “건설 붐과 치솟는 땅값에 기반시설, 교통, 주택, 사법 및 행정 업무 등 도시 재건에 대한 연방정부의 막대한 자금 지원까지 가세한 덕분에 인구가 거의 100만 명에 이르렀고 엄청난 경제적 자원을 확보한 도시”라고 묘사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지저분한 거리, 황폐한 건물, 부실한 전기·수도·가스 시설, 무분별한 건설, 미흡한 도시계획, 열악한 대중교통 등 심각한 문제점들이 한눈에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소요
분쟁 지역인 체첸 공화국과 가까운 마하치칼라는 도시 안팎으로 중무장한 보안군이 깔려 있다. 2011년 11월 25일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마하치칼라에서 보안군에 의해 자행되는 불법 행위의 종식을 요구하는 군중 시위가 벌어졌다. 2011년 12월 15일 러시아의 탐사 보도 전문기자이자 중립적인 신문 체르노빅의 설립자인 가즈히무라트 카말로프가 암살로 보이는 총격으로 사망했다.
지리와 기후
마하치칼라는 타르키타우산과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좁은 평원의 북쪽 끝에 위치하며 카스피 서해안을 따라 70km 이상 뻗어 있다. 마하치칼라는 북카프카스, 트랜스카프카스, 남부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 서부 지역과 이어지는 항구 도시다.
마하치칼라는 시원한 반건조 기후다. 햇살이 더 많은 여름은 따뜻하고 비교적 건조하며 겨울은 시원하고 비교적 습기가 많다. 그러나 비교적 위도가 낮고 러시아 기준으로 매우 온화한 카스피해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겨울 내내 흐린 날씨가 많다. 가장 비가 많이 오는 시기는 9~11월까지인 가을이다.
교통
마하치칼라는 우이타시공항을 통해 러시아 도시들과 이어진다. 북카프카스 철도를 경유하는 러시아 철도는 마하치칼라를 오가는 화물 및 여객 수송을 담당한다.
카스피해 국제항은 원유, 석유, 건설자재, 곡물, 목재 등을 취급하며 24시간 가동된다. 이 항구는 다른 러시아 항구뿐만 아니라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발트 제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이란, 터키, 중앙아시아 등과도 연결된다. 카스피해항구 안에 있는 역을 통해 북카프카스 철도망을 곧바로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