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작년 11월 ‘대선 댓글 조작’ 지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항소심(2심)의 실형 선고가 난 직후 이 사건 주심(主審)이었던 김민기 부장판사에게 전화해 “2심 판결로 대법원이 부담을 덜게 됐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얘기가 법원 안에서 퍼지고 있다. 이 같은 대화가 있었는지 묻는 본지 질문에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 공보관을 통해 “확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도 “그 부분은 말씀드리기가 좀 어렵다”고 했다. 이상한 것은 두 사람 모두 “아니다”라고 부인하지 않는 것이다. 대법원 상고가 확실했던 김 지사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장이 당시 이런 말을 했다면 심각한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고법 형사 2부(재판장 함상훈)는 작년 11월 6일 항소심 선고에서 김 지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김 지사가 지난 대선 때 ‘드루킹’(필명) 김동원씨 일당에게 대규모 댓글 조작을 지시해 네이버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고, 이 ‘댓글 조작’을 대가로 드루킹 측근에게 일본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안한 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김민기 부장판사는 이 항소심 재판에서 쟁점을 정리하고, 판결문 초안(草案)을 쓴 주심 판사였다.
여러 법원 관계자들은 “이 선고 직후 김명수 대법원장이 주심인 김민기 부장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수고했다. 2심 판결로 대법원이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이 말했다는 ‘대법원 부담 경감’ 발언의 정확한 취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법원 안에선 이 발언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해석이 나온다. 하나는 대법원이 ‘김경수 무죄’ 선고를 하는 부담이 줄어들게 됐다는 뜻이란 해석이다.
이 사건 1심은 2019년 1월 김 지사의 업무방해 혐의뿐 아니라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로 판단했다. 그런데 2심은 드루킹 일당의 댓글 조작이 정확히 누구의 선거운동을 도운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를 선고하고, 업무방해 부분만 유죄로 인정했다. 대법원이 이 사건을 무죄 선고하게 된다면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업무방해 부분만 파기하면 되기 때문에 그만큼 부담을 덜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반대 해석은 2심도 김 지사 사건의 핵심 혐의인 업무방해 부분을 유죄로 선고했기 때문에 대법원이 2심 판단을 수용해 ‘김경수 유죄’를 선고하는 부담이 줄어들게 됐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법원 관계자들은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큰 논란을 낳을 수 있는 발언”이라고 했다. 김 지사 사건은 작년 11월 6월 항소심 선고가 난 뒤 같은 달 20일 대법원에 상고됐다. 현재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대법원의 3개 소형 재판부 중 하나인 제3소부(小部)에 배정됐고, 주심은 이동원 대법관이다. 이 사건은 여권의 차기 대선 구도와도 맞물려 있어 향후 대법원장과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 전원합의체의 재판장인 김 대법원장이 이 사건 결론을 미리 정해놓은 듯한 발언을 일선 판사에게 해 대법원 재판 신뢰를 크게 훼손할 여지를 스스로 만들었단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김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이 특히 아끼는 판사”라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이 회장을 지낸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원이다. 2018년 김 대법원장이 ‘사법 개혁’을 논의하라고 대법원에 만든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에 김 부장판사는 단원으로 참여해 중추적 역할을 했다. http://naver.me/5RcrEWm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