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 장터로
대한이 지나니 추위는 누그러져 물러간다. 일월 넷째 화요일이다. 며칠째 포근하고 흐린 날씨가 이어졌다. 아침부터 봄을 재촉하는 비가 하루 종일 부슬부슬 내렸다. 응달 계곡 두꺼운 얼음장을 녹여줄 비였다. 나목으로 겨울을 나는 나무에게 수액이 오르도록 하는 비인지도 싶었다. 다가오는 절기 입춘 전후로 반짝 추위가 있긴 하겠지만 봄을 이기지 못하는 겨울임은 분명하다.
날씨를 핑계로 집안에 머물 수 없었다. 점심 식후 우산을 받쳐 쓰고 산책을 나섰다. 마침 시내로 나가 봐야 할 일도 한 가지 있었다. 쓰고 있는 압력 전기밥솥 내솥이 오래되어 코팅이 벗겨져 갈아야 할 처지였다. 현관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나가니 아파트 뜰은 젖어 있었다. 남산교회를 지나 창원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비가 오는 중에 우산을 받쳐 쓴 산책객들을 볼 수 있었다.
창원대학을 에워싼 정병산 산허리는 운무가 걸쳐 수묵담채화를 보는 듯했다. 산책로 길섶에서 나목들은 투명한 물방울을 달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꽃눈이 도톰해지는 산수유나무와 벚나무와 배롱나무는 가지마다 빗물이 방울을 만들었다. 기온이 내려갈 고산지대라면 상고대가 펼쳐질 기상 현상이었다. 우중 발품을 팔아 길을 나섰더니 나뭇가지 매달린 물방울을 완상할 수 있었다.
한때 창원천 웅덩이엔 얼음이 꽁꽁 얼어 아이들이 나타나 놀기도 했다. 그 얼음은 날씨가 풀리니 다 녹아 흔적조차 없다. 창원천 상류가 되는 비음산 응달 너럭바위에 얼어붙은 빙판도 모두 녹았을 테다. 하루 종일 부슬부슬 비가 내렸으니 누적 강수량이 제법 되는 듯했다. 창원천 냇물이 조금 불어 수량이 늘었다. 백로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나타나 먹잇감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반지동 대동아파트를 지나 봉곡동으로 건너갔다. 유목교 다리에는 비닐 천막을 두른 과일상들이 보였다. 1일과 6일은 지귀 오일장날이라 우중에도 장이 섰다. 비가 와 오가는 손님들의 발길이 뜸했다. 지귀 장터로 들어가 보니 생선이나 채소를 파는 상인들이 천막을 쳐 놓고 물건들을 진열해 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119센터 후문 부추전을 부쳐 막걸리를 파는 노점은 열리지 않았다.
봉곡동 주택가를 지나 명곡교차로 근처로 나갔다. 쿠쿠밥솥 대리점으로 가니 미리 연락이 닿은 밥솥 모델 내솥이 준비되어 있었다. 내솥을 들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지귀 장터로 향했다. 아까 지나친 장터 골목으로 들었다. 비가 와 손님이 적은 장터라 썰렁했다. 한 아낙이 팔려고 준비한 손부두가 여러 모 남아 있어 한 모 샀다. 그 곁의 풋고추와 대파도 한 단 사 손에 들었다.
약하게 내리던 비가 그쳐가고 있어 우산은 접어도 되었다. 봉곡동에서 창원천으로 나가 천변을 따라 걸었다. 반지동 대동아파트 앞을 지나 천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올겨울에 여러 차례 오가는 수변 산책로다. 창원천 건너 창이대로에는 차량이 드물게 지났다. 날이 저물어 가니 천변으로 나온 산책객이 줄어 한산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정병산 운무는 여름 장마철 풍경 같았다.
아까 지나치면서 봐둔 천변 나목 나뭇가지에 달린 투명한 물방울은 여전했다. 한 달 뒤 산수유나무부터 화사한 꽃을 피우지 싶었다. 연이어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릴 테다. 내가 거제로 떠나 찾아오지 않아도 천변에 도열한 나무들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이 피고 지고 할 것이다. 낙엽 한 장 뒹굴지 않은 빗물에 젖은 산책로는 소방차가 물을 뿌려 씻어 놓은 듯 깨끗해 보였다.
자투리 쌈지공원에서 메타스퀘어가 우람한 가로수 길을 걸었다. 반송공원 비탈 경사면에 심겨진 개나리도 봄을 맞을 낌새를 보여주었다. 무성하게 드리웠던 가지들이 정리되어 꽃눈이 적긴 하나 곧 봄소식을 알려줄 태세였다. 예전 도지사 관사로 가는 길목 언덕 개나리는 넌출을 드리우듯 가지가 무성했다. 달포쯤 지나면 벚꽃보다 먼저 화사하게 필 개나리꽃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21.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