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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김성령
<이방인>은 <두 도시 이야기> 만큼 책 읽기에 어려움이 없었고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이방인>이 대부분 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책의 시작 부분일 것 같다. 여태껏 내가 읽었던 책 중에서도 이 책만큼 시작부터 다소 어두운 분위기로 출발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때문에 책을 읽으며 집중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시작은 좀 지루하고 집중을 잘 못했지만 결론적으로 책을 늦게 빌렸는데도 다 읽을 수 있을 만큼 몰입도가 좋았다.
저번 주 책을 읽으며 내가 너무 줄거리에만 집착하는 것을 깨달았다. 요번 주는 조금 다르게 주제를 찾기 위해 의문점을 가지도록 노력했다. 내가 의문을 가졌던 소재 중 하나는 바로 태양이다. 처음 태양과 뜨거운 열기에 대해선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뫼르소와 태양이 같이 나올 때마다 좋지 않은 일만 일어나는 것을 깨닫고 의문을 가지게 됐다. 특히 아랍인에게 다가간 후 총을 쏠 때 등장했던 태양은 의미가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해변을 따라 걸으며 느껴진 뜨거운 열기는 정말 말 그대로 뜨거운 온도를 표현하는 것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뫼르소의 복잡한 심정을 표현 한 것으로 이중성 의미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머니의 죽음 때 등장한 태양도 복잡함과 괴로움은 나타내는 것 같다. 태양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태양과 뜨거운 열이 등장하면 일단 그 후에 일어날 일 혹은 전에 일어난 일이 매우 부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조금이나마 예상 할 수 있었다.
태양보다도 더 의문이 생기고 이해 할 수 없었던 건 주인공 뫼르소이다. 뫼르소는 이 책에서 매우 자유롭고 정직한 사람으로 묘사되어있다. 어떻게 보면 자유로움과 정직함은 그 사람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책 앞 쪽에서도 나와 있듯이 이 책에서의 자유와 정직은 우리 생활에서의 기준과 달랐다. 때문에 이 두 가지가 뫼르소를 항상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시작으로 사형 전까지 그는 거짓말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분명 더 나은 상황을 겪었을 것이다.
이번 책 역시 다 읽고 나니 더욱 복잡했다. 나는 이것이 고전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고전은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나서도 생각을 하게 만든다. 따라서 고전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뫼르소의 정직함이 사형으로 가는 것을 보고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나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거짓말로 상황을 쉽게 끝내거나 좋은 마무리를 한 적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상황을 뫼르소의 행동보다 더 쉽게 이해한다. 이런 상황이 오히려 정직한 상황보다 옳다. 라는 잘못된 윤리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뫼르소의 정직함이 나에게는 어리석음으로 보인다.
옛날부터 교회에서 선의의 거짓말도 결국 거짓말이라는 것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성경에서 남의 죄를 드러내지 말고 덮어주라고 하는 말씀을 본 이후로 거짓말을 종종 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조건 맞는 행동이라고 확신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의 신앙으론 결론을 낼 수 없다. 거짓말은 좋지 않고 남의 죄를 드러내는 것도 좋지 않다. 그러면 도대체 남의 죄를 선의의 거짓말로 덮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대체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 또한 책을 다 읽고 찝찝하지 않은 주제를 찾는 것은 성공하지 못했고 의문으로 마무리 짓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전보다 아쉽지는 않다.
할 수 있는 김성령님. 이방인의 첫 문장인 ‘오늘, 엄마가 죽었다.’는 소설 속 유명한 첫 문장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이어지는 문장은 ‘아니 어쩌면, 어제. 나는 잘 모르겠다.’입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일반적이지는 않죠. 님도 처음 부분에서 다름을 감지하셨고, 그 다름을 ‘어둡다’고 표현하셨네요. 처음부터 민감하게 잘 몰입하셨습니다. 엄마가 오늘 죽었는지 어쩌면 어제 죽었는지 모르겠다는 뫼르소의 태도는 앞으로 이어질 뫼르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뫼르소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보여주기도 합니다. 첫 문장이 모든 것을 말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햇빛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햇빛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의 분위기, 암시하는 바를 유추해 보셨는데 주도적인 자세로 읽어낸 점 매우 칭찬합니다. 선생님도 이번 주 할 수 있는 님의 감상문이 아쉽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오민경
이번 주에 읽은 책은 <이방인>이다.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꽤 있었다. 특히 2부부터는 책이 흘러가는 내용도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책 제목에서부터 말하고 있듯이 작가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읽는 사람에게도 책 속의 사람들에게도 이방인으로 여겨지는 뫼르소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비록 그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직장과 환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하는 생각과 행동만큼은 사람들에게 이방인처럼 여겨졌고 그도 그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나 역시 책을 읽는 동안 뫼르소가 책에 나온 보통 사람과는 다른 행동과 생각을 한다고 느꼈다. 특히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슬퍼 울지 않고 또한, 재판 동안에 아랍인을 죽인 동기가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부분은 뫼르소가 한 말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비웃는 장면이기에 그가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나중에는 그가 자신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생각해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인식해서였는지 뫼르소는 책 속에서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해서 나를 좀 원망했다. 나는 내가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으며, 절대적으로 똑같다는 것을 그에게 분명히 말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뫼르소에게 동정심을 느꼈다. 왜냐하면, 나도 뫼르소가 이 말을 하기 전까지는 그가 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그를 이상하게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가 정말 이방인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 구절을 읽은 뒤 그 역시 세상에서 이방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살고 싶었기에 그런 마음을 이 구절에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사람들과 자신이 절대적으로 똑같다고 말하는 뫼르소에게는 사람들과 다른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가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절대적으로 똑같다고 증명해야 하는 상황을 겪고 있는 뫼르소가 안타까웠다.
하지만, 정말 이방인이라는 말이 뫼르소에게만 해당할까? 아닐 것이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어디서든 이방인이 될 수 있다. 처음엔 낯설고 모두가 나와 다른 세계 사람처럼 생각되지만, 나중에 그들에게 동화되면 그제야 우리는 이방인이 아니게 된다. 이로 인해 뫼르소는 다른 사람들에게 동화되지 못했던 것일 것 같다. 그렇기에 단순히 뫼르소는 생각이 다른 사람이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삶은 선택한 사람인 것 같다.
이번 책이 어려운 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어려웠고 발문지에 답하지 못한 답도 있다. 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인 것 같다. 나는 감상문을 쓰면서 10번도 넘게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감상문은 좀 정신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하는 생각이 맞는 건가 의심이 든다.
감사하는 오민경 님. 뫼르소에 대해 여러 가지로 생각해보고, 이해해보려고 애쓰셨네요. 칭찬합니다. 뫼르소의 특히 뫼르소의 독백을 근거로 유추해 낸 점이 좋습니다. 뫼르소는 아랍 사람을 죽이긴 했지만, 알제리를 식민지배하고 있는 프랑스 태생이라는 이유로 사실 사형까지 당할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장례식에서 엄마를 위해 울지 않았고, 엄마의 나이를 모르며, 커피까지 마시고, 장례식 다음날 데이트를 했다는 그의 이번 행동이 강력하게 작용하면서 이상한 사람 혹은 이방인으로 몰리며 사형을 선고 받습니다. 뫼르소는 그것을 받아들이고요. 분명한 건 뫼르소는 엄마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에요.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그의 태도가 과연 그의 죄를 무겁게 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될지에 대해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0번도 넘게 생각을 바꾸어 가며 능동적으로 인물에 이입되려고 독서하는 자세 훌륭합니다.
닮아가는 윤하진
제목 : 정직한 사람
주제문 : 책을 읽은 후 생긴 의문들
고전들이 으레 그렇듯 이번 주 월드리더스쿨 도서인 <이방인> 역시 제목만 봐서는 무척 어려운 책처럼 보였다. 그러서 어려울 것을 각오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을 때 나는 책의 두께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책이 무척이나 얇았다. 게다가 글씨고 그렇게 작은 편이 아니었다. 책이 너무 짧아서 나는 원서번역본이 아닌 너무 요약된 책을 빌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어서 책을 다시 빌려와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찾아보았는데 다른 번역본들도 다 그 정도 분량이었다.)
생각보다 분량은 무척이나 적은 책이었지만 여전히 걱정되긴 마찬가지였다. 보통 이런 책일수록 내용이 더 어렵고 심오한 편이기 마련이니 말이다. 게다가 창작과정 도서였기 때문에 분량이 짧은 만큼 더 어려우면 어려웠지 결코 쉽게 읽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 일? 책은 그냥 가벼운 소설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쉬웠다. 진짜 거짓말 안 보태고 완전 술술 읽혔다. 게다가 내용도 재미있어서 나는 책을 빌려온 날 전체 분량의 3/4을 읽을 수 있었다. 어려운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쉽게 읽히다니 이런 횡제가 따로 없었다.
이번 주 책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었지만 전부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선 책을 읽는 내내 나왔던 것인데 주인공인 뫼르소는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이 때문에 나는 책을 읽으면서 뫼르소가 정신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해야할 일을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뫼르소의 행동 때문에 나는 작가가 주인공을 이렇게 그리면서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뫼르소의 행동들에 대한 의문은 책 뒤에 있는 ‘미국판 서문’을 보고 풀리게 되었다. 작가는 뫼르소가 그런 행동을 한 이유가 정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삶을 좀 더 쉽게, 간단하게 살기 위해 자신의 상태를 가식적으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낌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꿔서 말하면 뫼르소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매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자신의 상태와 감정, 행동들을 억지고 만들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글을 읽고 나는 작가가 가식적으로 꾸미고 다니는 우리의 삶을 고발하기 위해 이런 책을 저술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평소에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귀찮은 일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까봐 사실이나 감정, 느낌들은 은폐하거나 과장 혹은 축소하는 행동들을 빈번하게 저지르는 것 같다. 작가는 그런 우리들의 행동을 일깨워주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글을 읽고 나에게는 여러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첫 번째 의문은 그가 정직하다는 것이다. 뫼르소는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며 슬퍼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행동을 보이는 뫼르소가 정직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즉 장례식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해 억지로 꾸며낸 모습이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다른 몇몇 동의가 되는 부분들이 있기도 하지만 이 부분은 절대 동의할 수가 없다.
가족이나 친한 사람이 죽게 된다면 누구나 슬퍼할 것이다. 이것은 나도 겪어 봐서 잘 알고 있는데 이 슬픔은 일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진심으로 그 사람을 위해서 슬퍼하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다.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이것은 전적으로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또 다른 질문은 그가 언제부터 그런 정직한 모습을 보였는지 이다. 그는 어떤 환경에서 자랐기에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혹시 선천적인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변한 계기가 있을까? 계기가 있었다면 도대체 어떠한 것이었기에 뫼르소는 이러한 모습으로 변화된 것일까? 언제나 거짓으로 꾸미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에 회의감을 느낀 것일까? 이것은 아직 답할 수 없지만 앞으로 계속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며 궁급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태양이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고 말한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너무 뜬금없이 이유로 태양이 나오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아마 작가가 여기서 태양을 언급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처음에는 그저 소설 같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내용의 의미를 알게 되니 고전이 괜히 고전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그저 소설처럼 가볍게 읽는 것이 아닌 결말을 알고 읽는 만큼 좀 더 그 결과를 위해 작가가 배치한 복선들을 차근차근 생각해보며 읽어보고 싶다.
닮아가는 님. 이방인을 읽으며 의문을 갖고, 그것을 풀어가려고 했으며, 또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것을 보며 정직하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며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정리해 가셨네요. 칭찬합니다. 님이절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지점이 바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요 부분입니다. 사랑하는 엄마가 죽으면 다른 사람들처럼 울고 며칠간 슬퍼해야만 하는 것인가, 눈물을 흘리지 않고 그저 일상생활을 이어나갔다며 그사람은 누군가를 살인할 수밖에 극악한 사람인가, 그리고 뫼르소가 지은 죄에 대해, 정작 주인공인 뫼르소는 배제하고 다른 이들이 자신의 사고 안에서 이해하고자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며, 그러면서 판단하려 하는 게 타당한가 등에 대한 물음을 제시합니다.
까뮈는 실존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기에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뫼르소를 판단하는 사람들은 인간 '실존'(존재)보다 ‘본질’로 평가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마땅한 도리를 앞세웁니다. 그래서 까뮈는 살인을 해서 사형을 당하는 게 아니라, 원래 범죄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혹은 이미 범죄자)이기 때문에 살인하게 되었고, 그렇기에 사형당해야 마땅하다고 결론 짓습니다. 까뮈의 이런 물음에 대해서 닮아가는 님은 또 어떤 생각을 개진해 나갈지 궁금합니다.
명철한 나혜린
누군가가 죽는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 수그러드는 그런 감정이 아니라 오래도록 그 사람이 생각나고 함께한 추억이 떠오를 때면 기분이 좋다가도 속상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남도 아닌 어머니의 장례식인데 그다지 슬퍼하지도, 또 장례가 끝난 다음 날 여자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주인공 뫼르소의 모습을 보면서 검사와 배심원, 방청객들과는 다를 것 없는 반응일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는 도중에도 사람을 죽이고는 반성하지 않는 모습, 세상을 살아가는데 정말 의미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주인공에게 책이 끝날 무렵에도 딱히 호감이 가지 않았다.
책의 제목인 이방인은 보편적인 생각을 가진 일반 사람들과는 반대로 자신만의 생각을 고집하고 그 이유로 비판받는 소수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요즘 흔히 인싸, 아싸라고 불리는 단어가 있다. 인싸는 ‘인사이더’의 줄임말로 어떠한 소속 안에서 주가 되고 집단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그런 존재를 의미한다. 반대로 아싸는 ‘아웃사이더’의 줄임말로 그 사람이 속한 집단에서 겉돌거나 아니면 집단에 속하지 조차 못 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뫼르소는 요즘 말로 표현하면 ‘아싸’ 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뫼르소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생각과 주장을 가지고 사는 뫼르소는 결국 사형을 당하게 된다. 사람을 죽인 것보다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큰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재판이 이루어졌고 판결이 난 것이다. 삶에 무관심하고 무의미하게 느꼈던 뫼르소였지만 죽기 직전에 다다르니 세상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었고 매우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던 뫼르소가 말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한 번에 파악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뫼르소가 책에서 보여준 여러 모습 하나하나는 매우 인상 깊었고 놀라웠다. 진정한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무엇이 더 가치 있는 삶인가에 대한 고민은 해보았어도 본질적인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해 보지는 않았었는데 <이방인>을 읽으면서 그 본질에 대해서 고민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길지 않은 소설에 세 번의 죽음이 담겨 있어 시작 중간 끝 모두 죽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소설이 무거우면서도 재미있었다.
나혜린 님. 책을 참 잘 읽었네요.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도 잘 정리되었네요.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셨군요. 앞으로도 여러 가지 방향해서 고민하게 될 질문입니다. 최고의 답을 찾아가길 응원할게요. 최고의 답은 가까이 66권에 있습니다.
당당한 장지명
엄마의 죽음을 시작으로 자기의 죽음으로 끝나는 뫼르소의 삶을 적은 “이방인”은 이때까지 읽은 인문고전 중에 제일 재밌었고, 내용이 쉬워서 좋았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이 책의 첫 문장은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가족, 친척, 등 친한 사람들이 죽으면 매우 힘들어하고 슬퍼하지만, 뫼르소는 첫 문장처럼 아무 감정이 없었다. 엄마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이 이상했다. “죽음” 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무서워서 떠는데, 그는 멀쩡하듯이 말했다.
이와 관련해서 마리랑 뫼르소랑 서로 사랑하냐고 물었을 때, 뫼르소는 사랑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서로 영화도 보고 수영도 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입맞춤도 했는데, 사랑하지 않다고 말 한 것은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무의식에서 말한건지, 그냥 자기감정 그대로 말한건지 책을 읽으면서 잘 몰랐다. 근데 이런 모습들이 책 제목과 잘 어울렸다. 이방인은 “stranger”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뫼르소는 정말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식 말고 오직 자기만의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이방인이라고 생각한다.
뫼르소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사형 받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그토록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가고, 재판에서 일반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서 사형까지 오게 된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됐다. 근데 이 말이 그를 더 이방인으로 만들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가 죽기 전에 원래 사회의 세계를 깨달아서 왠지 모르게 묘하면서 좋았다. 위의 대사가 한편으로는 괴짜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자기 생각을 있는대로 말하니까 멋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뫼르소의 이방인 같은 삶이 정말 신기했고, 한 번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짧고 내용도 재밌어서 쉽게 쉽게 읽었던 것 같다. 나도 가끔 이방인처럼 내가 생각하고 꿈꿔왔던 삶을 살고 싶을 때가 많다. 언젠가 한번 그런 것을 해보고 싶다.
당당한 장지명 님. 이 책이 정말로 엄마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자신의 죽음으로 끝나네요. 이렇게 두 개의 죽음이 나열된 것을 보니 느낌이 새롭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도입입니다. 뫼르소라는 strange한 하나의 인간이 낯설기도 하고, 납득이 가기도 했군요. 사귀는 여자에게, 결혼을 할 수 도 있다고 했으면서도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꽤 충격적입니다. 게다가 그것을 매력적으로 보고, 다른 여자에게 자신이 대체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여자친구도 만만치는 않네요.
그런데 이런 이상한 인물인 뫼르소가 주인공인 <이방인>이 1957년에 까뮈의 노벨상 수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읽히고 있다는 (그것도 무척 쉽고, 재밌게) 것은 뫼르소에게 동감한 인물이 그만큼 많다는 역설이 되지 않을까요? 당당한 님처럼 우리 안의 뫼소르를 찾아가 보는 것도 흥미롭겠어요.
겸비한 황지훈
책을 다 읽고 나니 왜 감상문이 반 페이지 밖에 채워져 있지 않은지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책을 읽고 나서도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읽었는지에 대한 직감이 확 와닿지 않는 신비로운 책이다. 그만큼 명확하지 않으며 정말 책의에 자주 나오는 표현인 ‘바람 같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 책 맨 앞부분에 나와 있는 알베르 카뮈의 서문과 그가 이 작품이 연극으로 각색되려고 할 때 보냈던 편지를 먼저 읽었다. 이 부분에서부터 벌써 책의 무거움이 느껴졌던 것 같다. 서문에서 나오는 표현인 “여전히 좀 역설적인 뜻에서 한 것이지만, 나는 내 인물을 통해서, 우리들의 분수에 맞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를 그려보려고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라는 부분이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책의 내용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가를 계속 생각하게 만든 주요한 문장이었다. 그리고 이 책이 나에게 더욱 머리가 쪼개질 듯한 고통을 주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 책의 전체적인 문체는 매우 메마르다. 뫼르소라는 인물 자체도 메마른 인물인 것 마냥 묘사된다. 그리고 우리는 책을 뫼르소의 내면만을 알면서 읽기 때문에 쉽사리 뫼르소를 사회 부적응자 정도로 파악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뫼르소는 절대 사회 부적응자라던가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된 히키코모리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꽤 정상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원초적으로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저자가 말했듯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거짓말을 단순히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사실처럼 이야기하는 것으로만 정의 내리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 수용하는 것들까지로 거짓말의 범위를 넓힌다. 가식적인 동의나 웃음 따위 같은 것들 말이다. 뫼르소는 그렇게 보면 정말 진실되고 순결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 거짓 행동, 거짓 눈물을 보이지 못하고 본인의 일차적 욕구를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그가 어떻게 보면 가장 정의로운 인물로 파악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뫼르소는 마지막 사형 직전 사제 앞에서 본인이 살아온 세계를 부조리한 세계라고 칭한다. 세상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가장 순진하고 진실한 자가 재판에서 제대로 된 논증도 없이 눈물이 없었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는 것을 보면 매우 부조리하다고도 볼 수 있다.
작가가 가장 공을 들여 쓴 것 같은 부분은 계속해서 잠잠하던 뫼르소가 흥분하고 사제에게 말하는 때인 것 같다.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라는 부분에서 진리라는 표현이 가장 눈에 띄었다. 내가 흔히 생각하는 진리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결과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책의 마지막 쪽과 함께 이 대목에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 책도 진리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책에서도 등장하지 않았을 법한 뫼르소라는 특이한 인물을 통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의문부호를 던지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책 마지막 쪽에도 정말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만큼 복잡한 표현이 있었다. 바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이라는 표현이었다. 정다운과 무관심은 정말로 상반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 표현이 책의 마지막 어구와 조금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구경꾼들의 증오의 함성은 뫼르소를 덜 외롭게 해주는 것이라고는 해도 정답지 않은 관심이다. 그가 재판을 받을 때 그에게 쏟아졌던 것도 그러한 종류의 것이었다. 정다운 무관심이라는 표현이 언뜻 보기에는 합리적이지 않아 보여도 책을 통해서 비추어 보았을 때는 가장 합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책이 워낙 어려웠던 탓에 내 생각이 딱 한 줄기로 정리되었다기보다는 이 부분 저 부분에 대한 단순한 생각들의 나열에서 끝난 것 같아 아쉽다 책을 읽으면서 해소되지 않은 의문부호들이 많았었던 점도 마찬가지이다. 분량이 길지 않은 짧은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담긴 메시지가 왜 이 책이 인문고전으로 읽히는가를 명확히 드러내 준 것 같다. 다음 주 감상문에는 조금 더 맥락 있고 짜임새 있는 감상문을 써보도록 노력하겠다.
겸비한 님. ‘우리들의 분수에 맞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 ‘거짓말’ ‘부조리’ ‘진리’ ‘정다운 무관심’ 등 여러 포인트에서 의미를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 보셨네요. 특히 정다운 무관심에 대한 해석에 공감이 갑니다. 머리가 쪼개질 정도로 고통을 받으며 책을 파고들었다니 매우 훌륭합니다. 요즘 겸비한 님 스스로 진리를 찾아 나서고 있기에, 인문고전을 읽으며 저자가 말하는 진리, 구원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듯 보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들의 분수에 맞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가 아닌 '진짜 그리스도'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