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전북 전주시 완산구 동완산동 산 1-9
성인 남종삼의 아들 남명희와 홍봉주 아들이 떠밀려 수장되어 순교한 바위
전주시 완산구 서(西)서학동에 위치한 초록 바위는 전주교를 건너면 전주천 쪽으로 내밀어 있는 산줄기를 말하며 지금은 길이 생겨 끊겼지만
전주천에 연결된 낭떠러지였다.
그 모체격인 곤지산은 조선 말엽 동학교도들의 처형장으로 행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곳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남종삼의 큰아들 남명희와 역시 새남터에서 남종삼과 함께 순교한 홍봉주의 아들을
이곳 초록 바위 위에서 전주천으로 밀어 수장시켜 처형한 곳이다.
남종삼(南鍾三, 호 煙波, 1817~1866, 요한)이 처형되고 난 후 부친 남상교(南尙敎, 호 雨村, 1783~1866, 아우구스티노)와 큰아들 남명희(南明熙, 1853~1867)는
공주 감영으로 이송되었는데, 할아버지와 손자를 한 감옥에 가두지 않는다는 국법에 따라 14세였던 남명희는 전주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전주 감영으로 이송된 남명희는 국법에 따라 성인(15세)이 되는 이듬해까지 처형이 연기되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전라 감사는 이 어린 소년을 꼭 살려 주고 싶어 “너는 내년이면 성인이 된다. 그때까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국법에 따라
나는 너를 죽여야만 한다. 그러니 제발 잘 생각해다오.” 하며 회유했지만 끝내 그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마침내 남명희와 홍봉주 아들은 성년(15세)이 된 이듬해 이곳 전주천 옆의 초록 바위에서 교수형으로 죽인 다음 그 시신을 전주천 밑에 밀어 넣었다.
이로써 남씨 집안은 3대가 순교의 화관을 받은 셈이다.
병인박해 때 서울 인근에서 체포되어 의금부로 연행된 남종삼 성인과 홍봉주(洪鳳周, 1814~1866, 토마스)는 이선이(李先伊, 배교자),
최형(崔炯, 일명 치장, 1814~1866, 베드로), 정의배(丁義培, 1795~1866, 마르코), 전장운(全長雲, 일명 승연, 1810~1866, 요한) 및
베르뇌(Berneux, 張敬一, 1814~1866, 시메온) 주교 등과 함께 문초를 당하고 그해 음력 정월 21일 서소문 밖 사거리에서 참수되었다.
이어 남종삼의 부친 남상교는 공주 진영으로, 장자인 남명희는 전주 진영으로 잡혀가, 공주와 전주에서 각각 순교했고,
처 이조이(李召史) 역시 1875년 유배지 창녕에서 물고(物故)로 표현된 형벌(장살형)로 순교했다.
남종삼과 함께 러시아의 남침을 물리치는 방법은 프랑스, 영국과 조약을 맺는 길 뿐임을 흥선 대원군에게 건의했던 홍봉주 토마스의 아들도
남명희와 함께 초록 바위에서 순교한 것이다.
그러나 남종삼의 차남 남규희(南揆熙) 및 그의 여동생 데레사와 막달레나 등은 경남 창녕에서 함께 귀양살이를 하였고
그 후 몇 차례 이주를 하다가 1894년 갑오개혁으로 부친이 홍봉주 등과 함께 신원(伸寃)되면서 종의 신분에서 풀려나 자유인이 되었다.
▒ 곤지산(坤止山) 초록 바위
곤지산은 싸전다리 건너 오른쪽에 위치한 봉우리다.
곤지산보다는 초록 바위로 더 알려진 곳이고 전주천 좌안 도로가 뚫리면서 심하게 잘려나간 곳이다.
북쪽의 건지산에 대응하는 남쪽의 봉우리라는 의미의 곤지산으로 전주부성의 북문과 풍남문을 잇는 선상에 위치하고 있어
곤지산에 올라보면 전주부의 중심축을 조망할 수 있었다.
곤지산 및 초록 바위를 물로 공격한다 해서 붙여진 “공수내”라 했다 하기도 하고, 그 때문에 바위에 늘 이끼가 껴 있어서 “초록 바위”라 하기도 했다 한다.
초록 바위 앞 전주천변은 전주 역사에 회한의 설움을 담고 있는 곳이다.
초록 바위는 전라 감영의 형장으로 유명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초록 바위 벼랑에는 북풍에 시달리며 굽어 자란 소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고, 그 소나무의 북쪽 가지들은 다른 가지에 비해 눈에 띄게
길이가 짧았으며, 참형당한 죄인들의 머리를 소나무가지에 효수하여 천변에 모인 수많은 구경꾼들에게 전시했다고 한다.
▒ 남종삼 순교자 가문의 신원(伸寃)
남종삼 성인이 순교한 후 아버지 남상교 아우구스티노도 체포되어 공주 감영에 수감되었으며 그해 2월 3일 관직을 사적(仕籍)에서 삭간(削刊) 당하고
옥중에서 거듭 배교의 유혹을 받았으나 단호히 이를 물리치고 그해 음력 3월 3일 옥중에서 순교하니 그의 나이 83세의 고령이었다.
남종삼의 아들 명희(明熙)는 14세 어린 나이에 전주성 밖 초록 바위에서 순교하였다.
아내 이조이도 창녕현에 관노비로 유배되어 9년간 온갖 고초를 겪고 순교하여 남종삼 아우구스티노 순교자 집안에서 3대에 걸쳐
4명이 순교의 영광을 입었다. 1875년 남은 세 자녀가 노비에서 풀려났으며 1894년 갑오경장으로 남종삼 순교자의 가문은
신원설치(伸寃雪恥,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 버리고 창피스러운 일을 씻어 버림) 복권되었다.
▒ 가장 중요한 것 알면 (초록바위에서) <김영수> ▒
아무리 나이 어려도
가장 중요한 것 알면
세상 쯤은 가소로운 것입니까
간절히 하늘 바라보던 소년들
바위 끝에서 전주천 물속으로 떠밀린 곳엔
지금도 나무들 무성합니다
나는 철없이 어른된 부끄럼으로
휘어진 가지 하나 멋적게 잡아봅니다
나는 무엇으로 소년이 될까요
내가 하늘 설레는 눈빛으로
먼 추억의 동요 부르면서
거룩한 약속 기억하면서
초록바위 오르는 날, 내 안에도
마침내 소년 하나 눈 뜰까요
숲이 평화로운 것은
나무들이 저마다 깨어
하늘을 숨 쉬고 있음입니다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