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우 기자 입력 2021.08.30 03:00 홍윤철(서울대 예방의학과 교수) 코로나19 공동대책위원장은 지난 27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진행된 본지 인터뷰에서 “현 사회적 거리두기 체계로는 확진자를 줄일 수 없다”며 “억제와 규제 중심의 방역 대책은 모두에게 불행할 뿐”이라고 말했다. 홍 위원장은 “K방역이 성공했다며 정부가 취해있을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김지호 기자 ‘코로나 팬데믹’ 고통의 터널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고강도 거리 두기 조치에도 불구하고 확진자, 중환자, 사망자 발생 규모가 오히려 커지는 추세다. 정부는 올 들어서만 14차례 거리 두기 단계를 연장할 뿐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이런 가운데 방역 전문 학회인 대한예방의학회와 한국역학회가 구성한 ‘코로나19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26일 “정부의 방역 시스템이 붕괴 직전의 한계 상황에 놓였다”는 긴급 성명을 내놨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코로나 발생 초기에는 효과적이었으나, 4차 대유행이 번지는 지금은 이동량 감소 효과가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성명을 발표한 홍윤철(서울대 예방의학과 교수) 공대위 위원장은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몇 달 안에 확진자가 최대 1만명까지 늘 수 있다”며 “거리 두기 중심의 방역 체계에 대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지금 방역 체계로는 확진자 못 줄인다 -고강도 방역 조치에도 불구하고 4차 대유행은 더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말하는 이른바 ‘K방역’ 시스템이 진짜 ‘붕괴 직전’인가. “올 6월 초 만해도 일평균 확진자는 400명대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700명대로 뛰더니 이후 순식간에 1000명에서 1500명으로 다시 2000명대로 급증했다. 두 달 새 5배로 늘었다. 이 기간 동안 전국에 3~4단계 고강도 방역 조치가 취해졌는데도 확진자가 계단식으로 꾸준히 증가한 것이다. 공대위가 구글의 이동량 통계를 분석해보니 작년 초 1차 유행 때는 거리 두기 조치로 이동량이 33% 줄었으나 4차 대유행 이후엔 0.57%만 감소했더라. 정부가 지난 2월부터 거리 두기 단계를 계속 올려왔지만 그걸로는 확진자를 줄일 수 없다는 걸 지금 경험하고 있다. 사실 정부에 확진자 감축 전략은 없는 것 같다. 언젠가부터 정부가 확진자를 줄이겠다는 이야기를 안하고 있다.” -정부가 효과가 떨어진 사회적 거리 두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의 방역 전략은 ‘백신 접종’ ‘사회적 거리 두기’ 투(two) 트랙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확진자를 줄이지는 못하지만 유지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이 틀린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젠 변이 바이러스가 문제다. 정부는 9월까지 국민 70%에게 1차 접종하면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 보는데 과연 그럴까? 이스라엘은 2차 접종률이 70%가 넘지만 하루 1만명 넘게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2차 접종률 70%도 이런데, 1차 접종률 70%가 되면 괜찮을까’라는 의문을 당연히 가져야 한다. 상황이 변하면 전략이 바뀌어야 하는데 정부는 여전히 한정된 전략만 갖고 있다.” 지난 2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온라인 ‘경영 콘서트’에서 홍윤철 서울의대 예방의학과 교수가 ‘코로나19의 도전, 그 이후의 전략’이란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유튜브 -정부는 하루 확진자 2500명이 나오는 상황이 지속되면 우리 의료 체계가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지금 상황은 감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데. “방역 지표 가운데 ‘방역망 내 관리 비율’(신규 확진자와 접촉된 후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자가 격리 상태에서 확진된 사람 비율)이라는 게 있다. ‘감염의 원인이 된 지표 환자를 찾아내 확산세를 차단할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다. 나는 이게 모든 방역 지표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방역망 내 관리 비율이 높으면 정부의 방역 시스템 안에서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 관리가 잘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작년 초 만해도 이 비율이 70%대를 유지했지만 지금은 36% 수준까지 떨어졌다. 더 중요한 것은, 들쑥날쑥하는 다른 지표와 달리 이 지표는 한 번도 반등하지 못하고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확산세가 정부 관리망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비율이 30%까지 떨어지면 하루 확진자가 6000~7000명, 최대 1만명까지 갑자기 증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 의료 체계로는 감당이 안 된다.” 국민이 고통받는 K방역, 성공이라 할 수 없어 -정부는 이른바 ‘K방역’ 성과를 자화자찬했다. 최근엔 ‘11월까지 집단면역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10월로 앞당기기도 했다. “K방역은 성공이라고 할 수 없다. 확진자가 줄고 국민이 편안한 생활을 해야 성공이지 국민이 고통받는 상태는 성공이 아니다. 최근에 논의되는 ‘위드 코로나’(코로나와 함께 살아가기)가 달성되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백신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적극적으로 구매에 나서지 않아 실기한 것이다. 작년 여름부터 진작에 백신 구매에 나섰다면 접종을 원하는 사람이 줄을 섰는데 국내 물량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정부가 ‘백신 인센티브’를 내놓고 있지만 좀 이상하지 않나? 백신이 많이 있어도 맞겠다는 사람이 없을 때 유인책으로 내놓는 게 인센티브다. 맞고 싶어도 없어서 못 맞는데 무슨 인센티브인가. 우리 국민은 백신 접종에 대한 저항이 센 편도 아니다. 집단면역은 코로나 종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나온 개념인데, 이제는 변이 바이러스 때문에 집단면역이 가능하지 않다. 이제는 ‘위드 코로나’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다만 무턱대고 ‘위드 코로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룰 수 있는 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 -거리 두기 효과가 떨어졌어도 섣불리 방역 완화 조치를 하기는 어렵지 않나. 델타 변이에 대한 대비가 없는 상황에서 방역 완화는 독(毒)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델타 변이 대처에 대해 정부 대처가 적극적이지 못했다. 변이 접촉자 관리는 훨씬 더 밀도 있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기존 바이러스 접촉자 관리도 잘 못하고 있으니, 변이 관리를 제대로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정부의 방역 완화 조치가 국민의 방역 의식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맞는 얘기다. 정부는 지난 6월 ‘백신 접종자는 야외에서 마스크를 풀어도 좋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방역이 이제 크게 완화됐다’고 받아들였다. 정부 자문 기구에서도 ‘정부가 위험한 메시지를 줬다’고 지적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야외에서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것 자체는 사실 과학적이지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문제는 ‘메시지’다. 국민에게 잘못된 인식을 준 것은 정부의 실수였다.” 방역 인력 대폭 확충해야…국민의 자발적 ‘동선 기부’도 필요 -정부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K방역이 성공했다며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는 새로운 방역 정책을 짜야 한다. 정부 주도, 행정 명령 중심의 방역 정책에서 벗어나 이제는 ‘국민 참여형’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현재 거리 두기는 소상공인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새로운 방역 정책의 목적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완화해서 국민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억제·규제하는 방식은 모두가 불행해지는 정책이다.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과 접촉한 사람들을 관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확진자를 줄여 4차 대유행을 진정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방역의 기본 원칙은 ‘3T’(trace-test-treat·추적-검사-관리)다. 이 중 시작 단계인 ‘추적’이 제일 중요하다. 시작점을 놓치면 확진자를 줄일 수 없다. 방역 인력을 대폭 늘려 접촉자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역학 조사 인력은 일일 확진자가 400명 나오던 6월과 동일하다. 확진자가 그때보다 5배 늘었는데 방역 인원은 그대로다. 정부가 인력 확충 계획은 갖고 있지만 하세월이다.” -방역 인력 확충으로 확산세를 잡을 수 있다면 왜 정부는 방치해 온 건가. “투트랙 전략, 즉 백신과 거리 두기만으로 확산세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력 확충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책의 우선순위로 정하고, 재원 투입·교육 훈련 등 전(全) 정부적 역량이 투입돼야 한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일이므로 엄청난 노력을 했어야 했다. 최근에는 일선에서 방역 인력이 이탈하고 있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의료진이 ‘더 이상 힘들어서 못 하겠다’며 뻗어버리고 있다. 인력 충원 없이는 못 버틴다. 정부가 지금 당장에라도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정부가 거리 두기를 통해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참여 방역’을 강조했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 “우리나라의 IT 기술 수준에선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한 밀접 접촉자 관리가 충분히 가능하다.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고 사람들의 동선을 실시간으로 파악해서 확진자의 동선과 본인의 동선이 겹칠 경우 이를 즉각 알려주는 앱이 이미 나와 있다. 동선 정보는 정부도 모르고 오직 본인만 확인할 수 있다. 방역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재 상황에서 접촉자가 누구인지,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데만 2~3일씩 걸리고 그새 또 다른 확산이 발생한다. 대다수 국민이 동선 관리 앱을 설치해 ‘동선 기부’에 나선다면 거리 두기 단계를 낮추면서도 감염 확산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우리는 과거 IMF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국민 스스로 나서 국가를 위기에서 건진 것이다. 동선 기부도 금 모으기와 같은 맥락이다.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도 참여하는 게 낫다.” ☞홍윤철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우신고와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현재 서울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로 서울대 공공보건의료진흥원장을 맡고 있다. WHO(국제보건기구) 정책 자문관으로 활동하며,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코로나 팬데믹(대유행)까지 전염병 관련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를 결정하는 데 자문 역할을 하는 전문가 기구 ‘생활방역위원회’의 위원이기도 하다. 대한예방의학회·한국역학회로 구성된 ‘코로나19 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최근 “현재의 사회적 거리 두기와 방역 정책으로는 4차 대유행을 극복하기 어렵다. K방역이 붕괴 직전의 한계에 치닫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