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영화를 먼저 볼 수 있게 배려해주신 익무에 감사드립니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실화를 알고 있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에게 다르게 다가갈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어떤 비극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 말이죠. 이건 느슨하게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교한 실화가 아니어도 똑같다는 이야기죠. 우리는 모두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타이타닉 초반부의 찬란한 청춘의 빛을 발하는 디카프리오의 모습을 보며 아름다움과 서글픔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그가 운이 좋아서 획득하게 되는 티켓을 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러니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것은 영화 속 맥락의 감정이 아니라 이미 결말을 알고 있기에 느낄 수 있는 특이한 감성입니다.
물론 감독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그 점을 십분 활용하여 그 감정의 어긋남을 극대화시키기도 합니다.
오스카 그랜트.. 는 어떤 영화일까요.
사실 한국사회에서 이 청년의 사건이 익히 알려진 이야긴 아닐 겁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어느부분 감독이 의도한 바가 한국 관객들에게 완전히 전달되기엔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마치 관상을 외국인에게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린 실제 역사에서 그 사건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가오는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 인물들을 보며 애틋함을 느끼지만 그 사건을 모른다면 영화는 완전 달라지죠.
저는 사실 오스카 그랜트의 이야길 알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영화화 소식을 듣고 꽤 기대하기도 했고 평이 좋단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하기도 했어요.
이 차이점은 영화의 전반부를 대하는 감성에 영향을 줍니다.
이 영화는 충격적인 오프닝을 제외한다면 조금 불량하고 조금 재미있으며 조금 불우한 오스카 그랜트라는
22살의 청년이 겪는 특별하지만 일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부분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는 하루를
꾸준히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몇 가지 이야기들이 나열되며 우린 오스카 그랜트의 과거, 인간관계, 인성,
그리고 각오 따위의 정보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죠. 하지만 어떤 극적인 순간이라던가
영화화 해야만 하는 독특한 순간은 없습니다. 잔잔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 그의 하루는
사실 전제를 깔고 보지 않는다면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 전제가 무엇인지는 영화를 보신 분들은 다들 아실겁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가 잔잔하고 아름답고 소소한 일상을 나열할 때마다 슬퍼지고 말았습니다.
아마 사건을 알지 못한 관객들이 영화를 대하는 것과 굉장히 다른 감정이었을 거에요.
이 영화는 왜 이런 방법을 택했을까요? 우린 비극의 주인공이 된 오스카 그랜트의 사건은 뉴스로 접할 수 있지만
그것이 얼만큼 불행한 일인가에 대해선 가늠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바다 건너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타인에게 벌어지는 일을 받아들이는데에는 거울효과가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정도로 구분된 타인에 대해서 그러한 공감을 일으키기 어렵습니다. 부당한 사건이라는걸 알면서도 말이죠.
우리가 뉴스로 접하는 용산참사라던가 크레인 위에 올라간 노동자 이야기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대해
큰 감정의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도 누군가의 죽음이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진 않을 겁니다.
다만 그것은 자신과의 연결성 문제죠.
감독은 오스카 그랜트의 비극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그가 누구인지를
가감없이 소개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아주 특별한 그의 하루, 하지만 우리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하루를 고스란히 들고 와서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어머니의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예쁜 백인여성에게
호의적으로 안내를 하고, 지하철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새해 축하를 하는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공감이 가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이 사건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의 일상을 뒤쫒는 여정이
지루하다고 느끼면서도 후반부 '그 사건'의 순간 충격에 휩싸이는 것은 다행히 감독이 소개해준 그의 일상이
오스카 그랜트라는 인물을 우리의 인식 안에 잘 심어줬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연출은 영리합니다.
무의미해보이는 사건의 나열은 사실 하나 이상의 정보를 촘촘히 담고 있고 어떤 순간에도 감정을 증폭하거나
과도하게 드러내서 관객이 드라마틱하게 인물을 생각하지 않게 합니다. 물론 과도한 미화도 하지 않습니다.
앞 뒤에 붙어있는 실제 장면들은 이러한 요소들을 흩어지지 않게 잘 묶어주는 노끈과 같습니다.
덕분에 와인스타인 컴퍼니 로고 이후부터 엔딩 크레딧 마지막까지 영화는 단단하게 고정되어있고
사건을 알던, 모르던 강렬한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외적인 이야길 하자면.
불량함을 마음속에서 처리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것을 혐오하는 것 일 겁니다.
하지만 그런 무분별한 혐오는 사회를 병들게 하고 약자를 아프게 합니다.
그것이 실존하는 위험이라 할 지라도, 우린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특히 함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동시대인으로서 책임감있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인과를 무시한 결과만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정확한 지적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못배운 놈들은 이래서 문제야. 가 아니라 왜 남들처럼 배울 수 없었는가. 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죠.
오스카 그랜트는 감옥에도 다녀오고 마약도 팔던 청년이죠.
앞으로 다신 안 그랬을 거라고 확신할 수도 없죠.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린 그걸 혐오하기 전에 그걸 인정하는 일이 우선되야 합니다.
혐오와 증오가 다수가 되어가고 있는 한국사회에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였어요.
+배우들 연기가 정말 훌륭합니다.
++ 연출이 은근 세련됐더군요.
첫댓글 지금 예고편보고왔어요 영화관에서 꼭보고싶네요. 그래서 글은 그뒤에 정독할 예정~^^ 남자배우는 처음보는 배우네요!
그..뭐시당가.. 크로니클에 나왔었어용 +_+
오, 익무하시는군요! 저도 이 영화 보고 왔어요.
오 같이 보셨군요 :-)
영화 보구 봐야지 했었는데 글이 잼있어서 다 앍어 버렸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