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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이순신 함대 출전 전과 기록 >
이순신 함대 1차 출전 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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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전함
조선 - 27척
일본 - 53척 (옥포 35척, 합포 5척, 적진포 13척 등)
격침
조선 - 없음
일본 - 42척
전사자
조선 - 없음
일본 - 6920여 명
부상자
조선 - 2명
일본 - 너무 많아 셀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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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함대 2차 출전 전과 (당항포 해전 및 율포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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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침
조선 - 없음
일본 - 69척 (나포 3척은 불쌍해서 제외해주고 69척입니다.)
전사자
조선 - 10여명
일본 - 10120여 명
부상자
조선 - 50여 명 (이순신 장군도 어깨를 다침)
일본 - 파악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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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함대 3차 출전 전과 (한산도 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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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침
조선 - 역시 없음
일본 - 59척 (주력전함 35척 포함)
전사자
조선 - 10여명
일본 - 8980여 명 (400여 명 한산도로 도망하였으나 결국 190명 만 살아서 돌아감)
부상자
조선 - 10여명
일본 - 셀수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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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함대 4차 출전 전과 (연합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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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침
조선 - 없음
일본 - 100여 척
전사자
조선 - 6명
일본 - 3800명
부상자
조선 - 역대 가장 많은 25명 (최고기록으로 많이 사망)
일본 - 역시 셀수없음. 역대 가장 많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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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점함대는 대략 〈조선 1 : 일본 7〉의 비율. 조선 해군은 이순신 장군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남해안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임진년 5월 4일, 제 1차 출전 이래 총 4차에 걸쳐 17회의 크고 작은 해전을 전개하여 적선의 격침, 나포가 207척이었고 수리 불가능할 정도로 대파한 적선은 152척이었다. 또 왜병 33,780명을 격살하였다. 이에 비해 조선 해군은 단 한 척의 전선 손실도 없었고, 인명 손실은 전상, 전사자를 모두 합하여 243명에 그쳤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세계의 어떤 전쟁에서도 특히 해전에서는 이런 기록이 없었다.
적선 격침 및 대파 : 359 대 0
사상자 : 33,780 대 243
아마도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조선 해군의 대제독 이순신의 이 불멸의 기록은 세계 해전사에 영원히 신화로 남을 것이다. 그는 36번의 크고 작은 해전에서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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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군신, 도고 헤이아치로 제독이 보는 이순신 장군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준 전쟁이 쓰시마 해전이다. 여기서 일본은 3배에 달하는 러시아 함대를 전멸시켰으며 결국 이 해전은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구심점이 된다. 도고 헤이하치로는 바로 이 해전을 승리로 이끈 제독이며 일본에서는 '군신'이라는 칭호를 받는 영웅이다.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전승축하연이 마련되었고 그 자리에서 한 기자가 영국의 넬슨[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른 영국 해군제독. 영국의 영웅 - 해전사를 연구할 때 항상 거론되는 유명한 인물이다]과 도고 자신과 비교한다면 어떻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도고는
"넬슨은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비슷한 수준의 함대를 가지고 싸워서 이겼다.(25 대 30 정도) 그러나 나와 나의 함대는 러시아의 발틱함대의 3분의 1 규모로써 이겼다."
라고 말해 자신이 넬슨보다 우위에 있다는 표현을 한다.
그러자 기자왈, 그렇다면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면 어떻느냐 하자,
"이순신 장군에 비하면 나는 일개 하사관에 불과하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나의 함대를 가지고 있었다면 세계의 바다를 제패했을 것이다."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러시아 함대와 일전을 치르기 위해 도고는 이순신 장군의 영혼에 기원하는 의식을 갖기도 했으며 일제 때는 일본의 해군 사령부가 있던 경남 진해에서 약 40km 떨어진 통영 충렬사에 가 주기적으로 진혼제를 지내는 것이 일본 해군의 중요 행사 중 하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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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학자 발라드라는 사람은
"영국 사람으로서 넬슨[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른 영국 해군제독. 영국의 영웅]과 견줄만한 사람이 있다는걸 인정하긴 항상 어렵다. 그러나 그렇게 인정될만한 인물이 있다면, 그 인물은 바로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위대한 동양의 해군 사령관 이순신 장군 뿐이다."
이렇게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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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잘못알고 있는 이순신의 학익진
우리는 흔히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은 그냥 보통의 평범한 학익진이 아니다.
이순신 장군이 사용했던 학익진은 사실은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할수 없는 진법이라고 할수 있다.
모든 진법이 약점이 있듯이 학익진 역시 약점은 존재한다.
그 약점의 첫번째는 이런 진형에서 함포의 사거리가 충분치 못하거나 정확도가 떨어질 경우, 함포의 영향을 받지 않는 중심부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런 진형을 상대하는 측이 충분한 이동속도(여기서는 배의 속도)를 가지고 있고 원추형의 진을 구성해 중앙을 빠르게 돌파하는 종심돌파를 통해 진의 중앙을 깨고 좌측이나 또는 우측으로 돌아 들어가면 순식간에 상호간의 위치, 즉 횡대와 종대의 위치가 반대가 되고, 병력은 반으로 나뉘어져 각개격파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이 두가지 약점을 가진 학익진을 도리어 개량해버렸다.
즉 이순신 장군은 학익진의 이 두가지 약점을 없애 버린 것이다.
개량형 학익진... 즉 새로운 진법을 만들어냈다고 할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이순신 장군이 왜 많고 많은 진법 중 학익진을 선택해서 개량했는가?
그것은 바로 당시 판옥선의 장점을 끌어내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학익진으로 본래 누릴 수 있는 공격력을 몇배이상 누리게 되었다. 정(丁)자 타법을 이용한 것. 자세한 이론설명은 밑에 있음.)
이순신 장군이 개량한 이 개량형 학익진은 두가지 약점을 없애버리고 또한 판옥선의 장점을 이용해 공격력을 배가시킨 반면 대신 새로운 약점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이론상은 약점없는 아주 훌륭한 진법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전혀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할수 없는 진법이라는 것이다.
그 약점은 사실상 원인만 따지자면 두번째와 비슷하다고 할수 있는데 두번째 이유를 극복하기 위해 진형을 약간 바꾸어버린 대가로 일단 완벽히 유지하고 있으면 최강이지만 일단 조금이라도 진형이 흐트러지면 포위당하고 병력이 흩어져 버려서 반대로 몰살당해버리는 최악의 진법으로 변모해버린다는 것이다.
(즉 현대에서도 사용하기 거의 힘들다. 하지만 레이더도 없는 시대에 이순신 장군은 성공했다.)
육지라면 모를까 이 개량형 학익진을 사용하는 곳은 일단 요동치는 바다이다. (현대의 무거운 함선과는 비교하지 말것.)
문제는 그 중에서도 한산도 앞바다는 물살이 굉장히 빠른바다였다는 것이다.
현대에 비해 당시의 작은 배(판옥선기준)로서는 제자리를 지키며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이순신 장군이 높은 성벽위에서 바라보며 진열을 유지시키는 것도 아니다.
원래 병법가는 높은 곳에 자리잡아 진열이 흐트러지지 않게 해야한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 자신또한 바다에 위치한지라 전혀 높은 곳이 없다.
산도 없고 성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높이 높은 기형적인 배(이런배가 있을리도 없지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육지에서도 사용하기 어려운 진법을 제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운 바다에서 사용하고
또 바다 중에서도 물살이 빠른 곳에서 사용했으며
또한 바다인지라 높은 위치마저도 없어서 상황을 알아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다.
대체가 지휘관이 도저히 지휘가 불가능하다.
유지하고 있는 진형이 제대로 보여야 진형을 유지하고 말고 할게 아닌가!
똑같은 높이에 서서 진형을 유지해야 하다니...
게다가 진법자체가 두가지 약점을 보강한 대신 최악의 약점을 가지게 되었으니...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몰살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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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이제 학익진(鶴翼陣)과 정(丁)자 타법에 대해 좀 더 알아보도록 하자.
본래 이론상 4열 종대의 적선 100척과 이순신 장군의 함대 10척이 대적을 했다면, 병력의 차이는 무려 100:10 으로 당연히 불리하다.
적선 100척을 10척으로 모두 쓰러트리고 반면에 우리 아군의 함대는 한척도 쓰러지지 않을 수 있는 사람있는가?
물론 없을 것이다.
위에 있는 자료를 보면 알겠지만 세계에서 해전사 최고라 불리우는 영국의 넬슨제독[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른 영국 해군제독]은 25의 전열로 30의 적을 무찔렀다.
일본의 군신이라고 불리며 추앙받고 있는 도고 헤이아치로 제독 역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3분의 1 규모로써 이겼다.
즉 무려 30의 전열로 90의 적을 쓰러트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순진 장군 앞에서 그런 자랑하다가는 망신만 당한다.
자 그럼 100척을 10척으로 무찌르는 이순신장군이 친히 개량한 학익진을 보자.
학익진은 기본적으로 그림에서 보듯이 적은 아군에게 종대가 되도록 하고, 아군은 횡대가 되도록 배치하는 형태에 적을 감싸 안듯 양 날개가 휘어진 배치가 된다.
이런 배치는 아군의 포격 유효 사거리 안에 적을 최대한 집어넣기 위한 것이다.
즉 학익진을 사용하면 본래 전세는 100:10이지만 접전하는 시점에서는 포위하는 형식이 되어 4:10이 되어 그 비율이 역전되어 버린다.
이 같은 원리를 실전에 적용한 것이 본래의 학익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실전에서는 이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아까도 언급했지만 이런 진열을 바다에서 유지한다는 것은 힘들다.)
하여간 늘어선 적을 향해 아군으로 깔때기 모양을 만들어 에워싸는 것은 전투병력의 투입 비율에서 상당한 차이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여기에 이순신은 함포전을 통한 일정한 거리의 유지로 그 효과를 극대화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좀전에 '학익진으로 본래 누릴 수 있는 공격력을 몇배이상 누리게 되었다'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라.
원래 학익진의 위력은 10:1에서 4:10으로 역전하는 굉장한 진법이다.
그러나 이순신이 애초에 학익진을 선택한 이유는 조선 수군의 배는 대부분 판옥선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순신은 조선 수군이 보유한 판옥선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거기에 보너스로 더욱 큰 효과를 창출해 낸다.
애초에 이순신이 학익진을 사용한 것도 다 조선수군은 판옥선이라는 배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판옥선의 원리는 하단부분에 설명.)
(물론 이 판옥선을 대량으로 건조해 낸것도 이순신이다. 그렇다면 이순신은 애초에 학익진을 사용하기 위해 판옥선을 대량 생산했다는 말이된다. 학익진은 애초에 소병력으로 많은 병력을 효율적으로 상대하기 위한 진법이다. 그렇다면 이순신 장군은 미리 적병력이 대병력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진법을 만들었다는 뜻이된다. 거의 학익진을 염두에 두고 판옥선을 미리 대량 생산했다는 말이다.
그 뿐만이면 말을 안한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학익진법을 병법가가 그냥 명령을 내린다고 해서 곧바로 사용한다는 게 가능한줄 아는가?
학익진을 사용하기 위해선 적어도 수개월 이상동안 학익진을 계속 훈련하며 연습해야 한다.
한번만에 바로 사용하는 것은 제갈량이 살아나도 불가능이다.
병법가가 진법을 사용할때는 병사들에게 그 진법을 계속 수개월간 훈련시킨후에야 전쟁터에서 써먹을 수 있다.
애초에 진법을 병사들에게 가르쳐주지도 않고 훈련도 안시키고 하란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다.
즉 병법가라도 병사들에게 그 진법을 훈련시킨 이후에야 그 진법을 사용할수 있다는 말이다.
갑자기 지력100짜리 제갈량이 등용되었다고 곧바로 그 병사들이 진법 쓰는 것은 게임에서나 가능하다.
제갈량이 등용된후 제갈량이 병사들에게 그 진법을 훈련시킨 연후에야 그 진법을 쓸수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개량형 학익진은 어려운 진법이다. 그걸 육지도 아닌 바다에서 한번만에 성공한다는 말은 헛소리다.
아니... 10만명의 병사를 만들어 놓고 그보다 더 많은 대병력을 무찌르기 위한 훈련이라니???
이것은 마치 일본의 대병력이 올 것을 미리 예상했다는 말이 아닌가!!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은 이순신이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알고 미리 10만명의 병사를 훈련했다라는 말을 대강 흘려듣는데 이 말은 장난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말로는 굉장히 부족하다. 굉장힌 미사어구를 사용해서 붙여도 모자라다는 말이다.)
본론으로 넘어간다.
본래의 학익진이 본래위력인 10:1을 4:10으로 역전시키는 전법이라는 것은 앞서도 말했다.
그러나 판옥선을 이용하면 이보다 더 큰 효과를 수배 누릴 수 있다.
즉 판옥선의 특징을 이용한 것인데, 이 배는 배의 바닥이 평평해 빠르게 달릴 수는 없으나, 홀수선(배가 물속에 잠기는 선)이 낮아 수심이 낮은 서해에서 유리하며, 특히 양측의 노를 반대로 젓는 것으로 제자리에서의 회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제자리에의 회전은 판옥선을 쉽게 돌려 측면에 설치된 화포를 적에게 발포함으로써, 선수와 선미에 설치된 2문 내외의 화포에 비해 5배인 10여문의 화포를 빠르고, 또 일시에 발포할 수 있게 해 준다.
즉 학익진의 형태에서 종대로 내려오는 적은, 위의 예에서 4척이 각각 2문씩 총 8문의 화포를 발포할 수 있지만, 다시 판옥선의 제자리 회전 기능을 적극 활용한다면, 좌현의 포를 발포할 때, 우현은 장전을 하고, 발포가 끝나면 배를 회전시킨다.
이 시간에 발포를 마친 좌현은 장전을 하고, 장전이 끝난 우현이 적에게 향하면 다시 발포한다.
다시 배는 회전하고 회전이 끝나면 장전이 마쳐진 좌현이 다시 발포할 수 있는 것이다.이로서 앞서의 8:100은 다시 8:200의 비율로 역전이 된다.
바로 이것이 정(丁)자 타법으로 적선에 화포가 많은 측면을 향하게 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위의 학익진도는 바로 학익진과 정자타법이 동시에 적용되는 형태인 것이다.
이순신은 10:1의 승리비율을 학익진으로 4:10으로 역전!!
화포를 선미, 좌측,화포를 모두 사용으로 8:100의 비율로!!!
거기에 점자타법으로 인해 후미와 우측 화포마저 배가 회전하며 무한 난사를 함으로써 8:200으로 형세는 완전히 역전된다
즉 좌측이 먼저 쐈다고 치면 그다음 회전하면서 선미의 화포가 발사되고 계속 배가 회전하며 우측이 발사되고 마지막으로 후미의 화포가 발사되는 형식이다.
즉 화포발사후 딜레이 타임동안 배의 다른면에 있는 화포를 배가 회전하며 발사함으로써 100:10의 전세는 8:200으로 역전된 것이다
(간략하게 점자타법이란 배가 회전하는 중 이미 발사한 화포는 B병사들이 그동안 재장전하고 또 그동안 배는 회전하며 A병사들이 다른 쪽에서 발사하고... 이런식이다 )
놀랍지 않은가?
진법하나 때문에 100명이 10명한테 덤비는 일이
8명이 200명에게 덤비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모한 짓이 된것이다.
이쯤의 설명이 충분한지는 모르겠으나, 이 전술을 고안하고 실천한 이순신이 왜 대영웅이고, 대제독인지는 분명한 것이다.
설명을 통해서는 쉽게 느껴질 수 있으나 이순신이 이와 같은 전술을 사용하고 있을 때, 이에 당하기만 했던 10여만 이상의 왜군들은 임진왜란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패전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또 본문중의 내용처럼 이 전술의 원리를 일본이 알아낸 것은 300년이나 지난 후였으며, 이순신 이후 대략 이때쯤까지 전세계의 해전은 계속 접현전으로 일관해 왔던 것이다.
(일본이 300년 후에 알아낸것도 이순신의 학익진을 분석해서 알아낸것이지 스스로 개발한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순신이 사용하지 않았다면 현대인들은 아직까지 이러한 전법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란 이야기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이여!!
벌써 놀라지 마라!! 끝안났다!!!
이순신 장군은 신산묘수는 끝이 안났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순신은 100:10의 전세를 8:200으로 올리는 진법의 약점을 보강해버린다.
즉 새로운 학익진을 만들었다.
자 그럼 이순신 장군이 사용한 개량형 학익진을 보도록 하자
(거 전에 이순신 장군 통솔력과 지력 낮아야 된다고 말한 사람 누구예요? 기가 막혀서 원)
<img src="http://www.damool.net/html/jushin/daejusin07.jpg">
(학익진 지도)
이순신의 학인진도를 보면 얼마나 정교한 진형인지 감탄하게 된다.
그림의 학익진 형태(즉 포위진형)는 본래의 학익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약점을 완벽하게 커버하는 것이다.
약점을 기억못하실테니 두가지 약점을 다시 말한다.
그 약점의 첫번째는 이런 진형에서 함포의 사거리가 충분치 못하거나 정확도가 떨어질 경우, 함포의 영향을 받지 않는 중심부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런 진형을 상대하는 측이 충분한 이동속도(여기서는 배의 속도)를 가지고 있고 원추형의 진을 구성해 중앙을 빠르게 돌파하는 종심돌파를 통해 진의 중앙을 깨고 좌측이나 또는 우측으로 돌아 들어가면 순식간에 상호간의 위치, 즉 횡대와 종대의 위치가 반대가 되고, 병력은 반으로 나뉘어져 각개격파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극복해 버렸다.
이른바 진법마다 깨버리는 방법이 엄연히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은 그걸 없애 버렸다.
놀랍지 않은가?
제갈량과 사마의가 서로 진법을 대결할때 당연히 둘은 서로 상대 진법을 깨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의 진법은 바다한복판에서 사용하는 것.
후미에서 갑자기 적이 나타나 공격당해 진형이 일그러질 염려도 없으니 바다에서 사용하는 한 이 진법은 약점이 전혀 없다는 소리다.
(물론 보이지도 않던 초고속배들이 갑자기 원군으로 나타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런 초고속 배가 세상에 어딨는가? 뭐 전투기가 원군으로 오면 어쩌냐고? 조선시대에 웬 전투기야!!!)
본론으로 다시 넘어가서
그림에서의 학익진도는 학익진 안에 작은 학익진을 배치한 형태로, 진의 중심부에 발생할 수 있는 사각지대를 없애면서 병력의 집중을 통한 종심돌파마저 확실하게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흐르는 물살과 바람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런 형태의 진을 수십척의 함선이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당시 이순신이 이 진법을 사용한 한산도 앞바다는 물살이 매우 빠르다. 레이더 있는 현대에도 사용하기 불가능이다.)
아직 안끝났다.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이순신장군은 이 학익진을 개량해서 사용해서 약점을 줄였고 판옥선의 장점을 응용하여 정(丁)자 타법을 사용해서
더더욱 학익진의 공격력을거더더욱 극대화 시켰다.
그러나 그러고도 모자라서....
또...또... 묘수를 부렸으니...
그것이 뭐냐면
물살이 빠른곳으로 유인해서 그야말로 한순간에 갑자기 포위했다는 말이다!!
이해가 안가시나?
그냥 뭉쳐서 도망가던 적들이 휙! 한순간에 포위시키는 것을 상상해보라.
신나게 쫒아가고 있는데 한순간 갑자기 포위당해있다...
(이것은 지형때문에 적들은 갑자기 포위당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더구나 물살이 빨라 뒤로 후진은 불가능.)
그 기분...
직접 당해봐야 안다.
어떤 이들은 학익진을 천천히 느릿느릿 펼쳐서 포위당해서 일본군이 격파당했다고 착!각!한다.
일본군은 바보가 아니다.
물살이 굉장히 빠른 곳에서...
일=일본군
조=조선군
숨=숨어있는 조선군
대=대기중인 조선군
물살 방향
----------------------->>>
대
일 일 조
조 대
일 일 일 조
조 ㅡㅡㅡㅡ> 도망(유인)가는 방향(물살이 매우 빠름)
일 일 일 조
조
일 일 조 대
대
ㅣ ㅣ
V V
이 상황에서 방향을 조금만 조선군이 각도를 틀면서 흩어지면 자연스럽게 포위가 된다.
왜냐면 물살이 매우 빠르기에 각도를 조금만 사방으로 흩어지듯 틀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물살이 빠르기 때문에 한순간이다.
물살 방향
----------------------->>>
숨 숨
조
대
조 대
일 일 일 일
일 일 일 일 일 일 일 일 조
일 일 일 일 대
일 일 조
일
조 대
조
숨
숨
이 순간은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거제도와 용남면 두 지역 사이의 좁은 빠른 물살을 방금 빠져나오면서 한순식간에 포위된 것이다.
(거제도와 용남면 두 지역사이는 좁은데 비해 흐르는 물이 많아서 매우 물살이 빠르다. 배가 한순식간에 빠져나간다.)
그야말로 한순식간에 학익진을 당한 그 기분 알겠는가?
제갈량이 그때 일본군에 있다한들 한순식간에 걸렸기에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미리알고 추격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아까도 말했다시피 물살이 빠져나오는 매우 빠른 지역이라 뒤로 도망가기도 힘들다.
자 그럼 이순간 이글을 읽는 사람중 누군가는
그러면 직진으로 도리어 조선수군을 가속도를 붙여 돌파하면 되지 않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당신 바보야?
학익진은 돌파가 매우 어려운 진형이다.
(제일 강한 부분이 그것.)
돌파하는 거 막는 것 하면 진법중엔 학익진이 최고다.
아까 학익진 지도를 못보았나?
중앙에 가장 많은 배들이 위치하고 있어서 돌파하려면 할수록 전함들이 셋으로 자연히 나뉘며 각개 격파 당하고 말아버린다는 점을...
(모르겠다는 분은 스크롤 바를 올려서 지도를 다시 볼것)
이건 승률을 환산하기 어렵다.
그래서 환산안했다.
자자...
이글을 읽는 당신...
아직도 이순신 장군의 묘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더있다.
더 중요한점이 있다.
누군가 머리좋고 지식좋고
삼국지 게임 오래해서 나처럼(?) 병법에 대해 논을 하는 자라면
학익진은 중앙이 가장 견고하니까 옆을 뚫고 돌파하면 어떻냐라고 물을 수도 있다.
허허허허.
이걸 지적했다면 당신은 제법 삼국지 GAME을 오래해서 병법에 대해 좀 아는 군.
이순신 장군은 아쉽게도 당신보다는 지력이 높은 모양이다.
(전에 이순신 장군 지력낮다고 한사람 누굽니까?)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은 이럴 걸 예상했다.
그래서 미륵도와 화도를 바로 옆에 끼고 학익진을 펼쳤다는 것이다!!
(*미륵도와 화도는 섬이름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옆으로 돌파할려고 해도 섬으로 막혀있는 곳이라서 힘들게 돌파해봤자 다시포위당할 뿐...
돌파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얼씨구나... 진퇴양난...
놀랍지 않는가?
뒤로는 물살이 쎄서 후퇴가 힘들고... 직진 돌파가 거의 불가능한 학익진에... 포위당해서 다굴당하면서
병력은 자연히 학익진에 의해 세부대로 나뉘어버리고 각개격파 당해버리고
3분의 1로 나뉜 병력으로 간신히 옆으로 돌파하려고 해봤자 거긴 거대한 섬이 있고....
결국 전멸....
(그나마 좌와 우로 나뉜 일본군은 완전히 몰살당했고 중앙에 있던 일본군들은 그나마 도망갈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뒤로 힘들게 물살을 헤치며 도망갔다. 물살을 헤치고 도망가는 것이라 너무 느려서 결국 그것도 다 따라잡혀 거의 몰살되고 소수만 간신히 살았던 것이다.)
또 이 섬은
아까 농담삼아 말했던 보이지 않던 초고속 배로 이루어진 일본군이 혹시나 옆에서 나타나더라도...
(그런 초고속 배가 세상에 있지도 않지만 혹시 다른 일본군이 우연히 지나가다 도와준다고 가정하고 하는 말이다.)
미륵도와 화도가 옆에 있어 옆에서 공격을 당할 우려가 없다는 말이다.
일본군의 원군이 와봤자 섬때문에 돌아가기 때문에 그냥 싸우고 있는 본대에 자연적으로 흡수되어 같이 포위될 뿐이다.
그 이상으로는 사정거리가 안되기에 공격불가능.
그 뿐만이 아니다. 미륵도와 화도는 적들로 부터 돌파를 못하게하는 효과는 물론 또한 도리어 적들로부터 포위당하지 않게 하는 효과까지 있어거니와 게다가 돌파를 못하게 함으로써 적들을 가두어 놓는 효과까지 있었다.
허허허
자자...
아직 안끝났다.
이순신 장군은 그래도 뭔가 걱정스러웠다.
약점이란 약점은 모조리 원천봉쇄한뒤 완벽한 진을 펼쳐야 하는 것이다.
만약 적들의 원군이 후방에서 온다면???
(중요한 점은 재빨리 포위당하고 또한 섬 때문에 일본군 본대가 나뉘어 후방으로 올 수는 없다. 만약 원군이 있다면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일본군의 원군이 후방에서 오는 것은 이마저도 불가능했다.
거대한 섬인 한산도가 있기에 엄청 멀리 돌아가야하는데 가능할리가 없다.
화도와 한산도 사이에서 공격해 온다고 가정한다치더라도 좁아서 일렬로 소수만 들어올 수 있거니와
그정도의 소수의 함대는
본대의 뒤에 있는 중앙에 위치한 함대가 이곳옆을 자리잡고 있기에 조금만 진형을 돌려 받쳐주면 그만이다.
이른바.... 절대 빠져나갈수 없는... 학익진인 것이다.
거기다 조선수군은 혹시나 만일에 사태가 발생한들하더라도 재빨리 대죽도를 방패삼아 두울포 쪽으로 후퇴할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한번더 진을 펼쳐 싸우기도 좋은 곳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조선군: 10 여명 사망.
일본군: 8980 여명사망. (오직 190여명만 살아서 도망갔음)
조선군전함: 한척도 격침안당함.
일본군전함: 59척 격침당함.
나머지 일본군은 부상병. 포로 (아마 사형당했을듯.)
[위 자료는 과거에 웃대에서 퍼온것이라 약간 틀릴수도 있습니다. 왠지 웃대 자료는 믿음직스럽지 못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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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군 '李舜臣' 이름 항공모함에 쓰려고 고이고이 간직
해군은 지난달 31일 인수한 국산잠수함 7호에 ‘이순신(李純信)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과 동명이인으로 임진왜란 때 충무공 밑에서 많은 공을 세운 수군(水軍)제독이다. 해군은 90년대 이후 국산기술로 제작한 국산 구축함이나 잠수함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의 이름이 붙여왔다. 이는 자주국방의 의지를 담고 장병들에게 자부심을 주기 위한 것.
96년부터 단계적으로 실전배치된 한국형 구축함(KDX)의 경우 1∼3호의 이름이 각각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함, 을지문덕(乙支文德)함, 양만춘(楊萬春)함이다. 이들 함정은 3800t급으로 해군이 보유한 함정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핵심전력.
국산 잠수함 역시 91년에 첫 취역한 1호 장보고(張保皐)함을 시작으로 이천 박위(朴줠) 이종무(李從茂) 등 맹장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러나 충무공 이순신의 이름을 딴 구축함이나 잠수함은 아직 없다. 대양 해군을 목표로 하는 해군이 언젠가 갖게 될 항공모함에 사용하기 위해서 이름을 아껴두기 때문.
해군 관계자는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해군을 격파한 일본 해군 제독들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친 영국 넬슨제독보다도 충무공 이순신을 더 존경할 정도였다”며 “한국 해군의 정신적 지주인 충무공의 이름을 아무 함정에나 붙일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첫댓글 이런건 동양사 게시판으루...
근데 저거 어느정도 사실인건지...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염...
해전결과만 보면 조선군은 일본군상대로 훈련하고 온거 같네요..ㅋㅋ
근데 치트공께서 엄청난 전공을 세우신 건 맞는 데...원균이 칠천량에서 전부다 말아먹은 ..ㅡㅡ;;
설마 수군 1만명이 상당수 죽진 않았겠죠?
얼마나 신뢰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굳이 이정도로 미사여구를 더하지 않아도 이미 치트공....ㅋㅋ
그런데 저렇게 격침시켯는데도 다시 꾸역꾸역 모아서 복구해내는 일본의 국력이 그렇게 강했는지 궁금하군요.
조선은 칠천량 한큐로 수군을 없애려고까지 햇는데...
일본은 땅에다가 뿌리박은 해처리가 수십개, 조선은 공중부양시킨 배럭이 수십개였으니깐요. ㅋㅋㅋㅋ
자국민 쥐어 짜는 양이 다릅죠. 조선 본진에서 싸우기도 했고.
세금이 서울 점령했으니 향후 민심을위해서 30%로해줌 ㅇㅇ 본국도40%인데 내가좀 내너쩌는 성군임 ㅋㅋㅋ
이런씨@뭐먹고살라고 !! 이런상황 ㅋ 내는 세금이다른 인구도 저쪽이더많고 애초에 ㅇ리본배는 덩치도 작고
도고제독의 저 언급은 근거 없는 낭설이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납니다만... 물론 딴지는 아닙니다 :)
이순신장군은 이유불문 치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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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의 글필요없이 이순신싸우면 다이김 진거 한번있는데 육지에서 북쪽에있을떄 1번졌다고암
아이고 너무 재밌게 읽었네요. 그런데 링크가 깨졌네요.
만화 [조선왕조실록]의 저자이신 박시백 선생께서 그러더군요. '조선시대 인물 중 가장 추앙받는 두 인물 '세종대왕','이순신'은 뭔가 후대에 과장되거나 영웅화 작업을 위해 덧입혀진 이미지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특별히 이 두 인물은 그 기록들을 샅샅히 훑고 또 홅었다. 결론은 "아, 씨바, 도무지 깔 게 없구나..."였다.' '그리고 오히려 반대로 그들의 대단함이 사실에 비해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측면들도 있다.'
또, 누가 그러더군요. '내가 어느 이름없는 병사인데, 인류 역사의 모든 전쟁터 중의 딱 한 군데를 선택해 싸울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싸우겠다.' 상호간의 전력이 터무니없이 맞지 않아 일방적 학살수준의 전투를 제외하면 이순신 장군 휘하에 있는 것이 생존률도 가장 높지 않겠습니까?
전서할 가능성은 낮을 지 몰라도 이순신 장군한테 처형당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는게...
그리고 중간에 칠천량에서 죽을 확률도 꽤 높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