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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게 2주동안 시간 준 보고서란 말입니까?”
김부장이 올린 보고서자료를 스크린과 설명을 듣던 민재는 급기야 짜증을 내며 큰 회의실 안이 울리도록 소리쳤다. 민재의 버럭에 보고서를 올린 김부장은 그저 손을 앞에 모아 고개만 떨굴 뿐이다.
“김부장님”
“.....네,사장님.”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술 드시고 회사 올 시간을 보고서에 투자할 생각은 없었나 보군요. 제 소문, 성격 익히 들으셨을 건데, 이렇게 보고서를 올리고 설명합니까? 아, 설마 소문대로 정말 그럴까 싶었습니까? 설마 밑에 직원들이 보고 있는데도 앞에서 짜증내고 화내고 그럴까 싶어서 실험해보려고 이딴 식으로 올린건가요? 어때요? 설마가 사람잡죠? 직접 느끼신 소감이 어때요? 소문대로 그~대로죠? 아니면 참아줄만 한가요?”
민재는 김부장을 얼어붙을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김부장을 있는 그대로 비꼬았다. 그리고 김부장을 크게 망신줬다. 소문대로 역시 민재는 남을 생각하지 않는다. 한참 자기보다 나이가 많고, 경력도 더 많은 김부장을 말단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처절하게 깔아 뭉개버렸다..
“다시올려요, 다음 보고서도 이딴 식으로 해서 내 입에서 OK라는 말이 안 나오면 각오하시는게 좋을겁니다.”
각오하시는게 좋을겁니다. 사표 쓰실 준비하세요. 라는 말과 같은 말이였다. 민재가 각오하라고 한 뒤 기한을 줬을 시, 또 한번 민재를 실망 시키면 그 직원들은 다음날부터 회사에서 볼 수 없었다.
민재의 말에 김부장은 속으로 ‘한참 어린 놈이 감히 나를...’ 속으로 그를 있는 대로 씹으며 울분을 삼켰다.
“제 욕 하지 마시고, 본인을 돌아보시죠?‘
민재의 찔리는 말에 김부장은 고개를 들었고 민재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바로 고개를 떨구었다.
오늘은 여기까지하죠. 민재의 싸늘한 목소리가 직원들의 귀에 들렸고, 민재는 쾅!! 엄청난 문소리와 함께 회의실에서 사라졌다.
남은 직원들은 김부장에게 다가가 원래성격 그런 거 아시잖아요. 힘내세요 부장님.
이라는 말들을 해주며, 김부장을 안타깝다는 듯이 봐주고는 하나 둘씩 나가고 있었다.
어둡고 공허한 회의실에는 김부장의 보고서화면 만이 스크린에 비춰주고 있었고, 화면의 빛에 그을져 보이는 김부장의 표정은 비참한 표정과 동시에 복수에 대한 악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고봐.김민재 니 놈이 그 자리에 계속 있을 수 있는지’
반면,사장실로 들어온 민재는 나 정말 짜증낫소 하는 표정으로 거칠게 목을 죄이던 넥타이를 잡아 당기면서 그대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커피가 필요해. 그리고 비서실에 연결했다.
“커피 한잔 갖다줘요.”
“네,사장님. 그런데..”
그런데?뭐지?비서의 끝을 흐리는 말에 민재는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늘 박세라씨께서 전화오셨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잊고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맙소사. 박세라 성격에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제기랄. 그놈의 김부장 때문에 계속 기억하던 것을 그 찰나에 잊어버렸군. 중얼거리며 그대로 김비서 커피는 됬고, 오늘 이 시간 부로 난 퇴근 할테니까 알아서 퇴근해.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재킷을 낚아 채듯 들어올리며 민재는 빠르게 사장실을 나섰다.
“하, 오냐 김민재. 넌 뒤~졌어”
한 시간 반째, 커피숍에서 리필 4번을 하며 민재를 기다린 세라는 성질이 날대로 나있었다. 아침부터 전화와서 오늘 데이트 같은 데이트를 하자며 전화 온 민재를 3번이나 뿌리치다가 마지못해 수락하고 나왔는데, 김민재 그 녀석은 머리털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근데 내가 그 녀석과 왜 데이트를 해야 하는 거지? 아아, 맞다 우리 사귀는 척! 하기로 했었지. 2주전 호텔 앞에서의 일로 민재의 부모님은 우리가 사귀는 줄 아시고 결혼을 바로 잡으려고 하셨다. 하지만 정말 무슨 결혼이냐구 말도 안되는 소리. 사귀지도 않는데 사랑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결혼을 해. 하지만 부모님들은 사귀는걸로 알고 계시고, 그때는 이미 아 저희 안사귀는데 그냥 연기한거예요 이럴 수 없는 상황이였다. 민재가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했는데 안 사귄다고 하면 이것들이 부끄러워서 숨기는구나 라고 생각하실 분이였다-민재엄마는 자초지정을 말해도 변명일 뿐이라며 우리의 말을 안믿으실게 분명했다-직접 보고 듣는것만 믿는 분이시기 때문이다.그래서 일단 결혼은 아직이요. 흐지부지하게 말을 넘겼고 식사가 끝난후 민재랑 나는 그날 밤 우리집에서 협상했다. 사귀는 척 하다가 적당한 날에 헤어지고 친구로 남기로 했다고 말이다.
근데 왜 데이트를 하는거지? 사귀는 척 하는데 꼭 그래야만 하나?의문을 가지고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엄청 까만머리를 가진 녀석의 머리털이 보였다. 이자식!
멀리서 본 민재는 그래,솔직히 내 친구지만 잘생겼다. 모든 여성들이 좋아할만한 깔끔하고 세련된 원버튼 세미정장을 즐겨 입는 민재는 키도 185cm로 딱 넓은 어깨와 잘빠진 바디 라인으로 긴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비율이 예술이다. 거기다가 얼굴은 그래, 웬만한 배우들 저리가라다. 잘생겼다. 쌍커플은 -얇은 내커플은 있는데 오히려 눈이 더 섹시해 보이게한다- 없는 날카로운 눈에 정장에 어울리는 단정한 머리에 오똑 솟은 코에 작은 얼굴에...으으, 그만해야지. 머리가 안 좋았더라면 아마 지금 쯤 대한민국의 유명 배우가 됬을 놈이다. 간만에 고등학교 때 이후로 민재의 요것 저것을 따져보니 원래 잘나고 잘 생겼지만,그새 훌쩍 이십대 후반인 민재가 더 잘나고 잘생겨졌다는 걸 새삼 느꼈다.
“너,임마, 넌 아줌마 아저씨한테 감사해야해.”
“뭐래?”
“감사해야한다구!”
“알아, 나도 감사해, 이렇게 조각적으로 태어나게 해주신거, 거기다가 머리도 좋아. 요즘은 잘생기면 골이 비었다는데 난 골조차 꽉꽉 찼어. 거기다가 능력있고,어쩌면 엄마 아빠가 날 감사해야 할지도 몰라. 이런 아들을 두신거 말이야.”
“....”
미친놈이라고 해줘야하는데 솔직히 좀 맞는 말이기에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어 그냥 대답대신 커피에 꽂힌 빨대를 빼고 그대로 들이켰다.
“앗뜨뜨뜨!!”
맞다 리필 받은 지 5분된 아주 뜨거운 커피다. 다른곳을 응시하던 민재는 나의 아파 죽는 소리에 쳐다봤고 혀를 데인 나를 보고 깜짝 놀래했다. 그리곤 민재는 여기요 얼음물 좀 빨리 주세요 소리쳤고, 혀에 손을 대며 앗뜨뜨를 외치는 나를 보고 괜찮냐며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앗뜨겅워!!듀거..나중는다아..으아아.. 긍데 니..노마.. 왜 느져뜨어...(앗 뜨거워! 죽어 나죽는다. 으아아 근데 니 놈 왜 늦었어)”
“이 와중에 그게 묻고 싶냐.너 또라인건 알았지만 진짜 또라이인 것 같다. 휴,됬고 그건 나중에 설명할테니 얼음물로 좀 식혀봐!”
어느새 종업원이 가져온 얼음물을 내게 들이밀며 말하는 민재.넌 이거 식히면 죽었어..으헝뜨거워어어어
5분 뒤 좀 진정이 됬지만 뜨거움을 갑작스레 느껴서 눈시울은 붉었고 눈물을 글썽 거리며 옆에 앉은 민재에게 왜 늦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괜찮아 진지 얼마 됬다고 그게 그렇게 궁금하냐 면서, 김부장 때문에 잠시 까먹었다며 대답하는 민재놈의 코를 꼬집었다. 하여간 이뻐할래야 이뻐할 수가 없다!
“아, 왜!!”
“하여튼 넌 너만 잘났지, 너만 바쁘고!”
“아,나 잘났지, 잘난거 모르냐. 근데...아..
미안해! 맛있는거 사줄께!”
“내가 고작 먹을거에... 아참, 근데 왜 우리 데이트 까지 해야해? 사귀는 척만 한다며 그러면 시간 좀 지나고 그냥 헤어졌다고 하면 되잖아.”
“아... 그게 좀 복잡하게 됬어. 나도 처음엔 그럴 생각 이였는데, 엄마가 주위에 친구분들하고 수현이 어머니한테 까지 말해서, 수현이가 또 나한테 물어 보지도 않고, 동창들한테 다 말해버려서 일이 좀 커졌다.”
“머?동창애들한테도 퍼졌다고? 아,맙소사! 은수현 이거는 진짜 도움이 안되 도움이!!”
흥분하면서 또 다시 앞에 있는 커피를 마시려는 세라를 그렇게 데이고도 또 까먹고 먹을려고 한다 또!라며 민재는 핀잔을 줬다.
“아..맞당”
귀엽게 말을 꼬며 흥분을 가라 앉히려는 듯, 손으로 부채질 하는 세라의 모습에 민재는 조그만 웃음을 흘린다.
그리고, 왠지 너랑 연인행세 하는 것도 재밌을것 같아서.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노란파스텔톤의 커텐이 달린 커피숍 창가로 따스한 햇살이 내린다.
옆자리에 앉아 아웅다웅 싸우는 민재와 세라.
그 모습이 따뜻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아름다운 한쌍이다.
커피숍에서 있기를 30분 후 민재의 잘빠진 아우디를 타고 근처 영화관으로 갔다. 그런데 입구부터 사람이 터져나간다.
뭐지? 왜 이렇게 복잡하지? 연말도 아닌데, 민재를 바라보니 나와 같은 생각인지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해한다.
내가 보고 싶어했던 동해를 2장 끊으며 팝콘,콜라 먹을래? 하며 또 다시 사러 가는 그의 뒷 모습을 보고
짜식- 그래도 데이트 형식은 갖추는 군. 흐뭇한 미소로 주위를 한 바퀴 돌았는데.
"........."
"........"
태영이다. 썬글라스를 끼고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걸어가던 태영이도 나를 보았는지 수많은 인파 속에 그대로 멈췄다.
우리는 서로를 응시했다. 마치 주위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우리 둘 밖에 없는 듯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썬글라스에 가려진 태영이의 표정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쓸쓸해보이고 슬퍼보인다.
바보야. 나 버리고 다른여자랑 결혼했으면 더 따뜻해야지 왜 슬퍼보이는거야, 쓸쓸해보이는거야.
태영이는 10살때 가족을 모두 잃었다. 엄마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태영인 외아들 이였기 때문에 형제도 없을 뿐더러 태영의 부모님들도 모두 외동 이여서 친척들도 없었다. 하지만 태영이의 할아버지께서 엄청난 부자셨기 때문에 태영인 부족함 없이 자랐다. 하지만 항상 그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옆에 있었어도 그는 외로워 했다.
채희라랑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으면 이제 외로워 하지 말아야지..태영아.
또 눈물이 차오르는 것 같다. 씁쓸한 미소를 지어주며 태영이로부터 뒤돌았다. 그리고 민재에게 걸어갔다.
뒤를 돌아 태영인 보이지 않지만, 태영인 아마 몇분을 거기 서있었을 것이다. 많은 팬들의 소리가 몇분을 그 자리에서 들렸으니깐.
태영이와의 잠깐의 만남으로 기분이 우울해졌지만, 민재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민재
그가 누군가. 나의 가족같은 친구가 아닌가. 금새 나의 표정을 읽고 얼굴이 굳어지더니
"왜그래."
"..뭐?"
"표정이 왜그러냐고 울 것같이."
"원래 내 얼굴 울상인거 모르냐 바보야."
"하긴, 초등학교때 니 얼굴 보고 나까지 울뻔 했으니깐. 넌 울상계의 대모다"
닥쳐. 민재의 복부를 가볍게 때리고는 표를 들고 입장했다. 뒤에서 저 기집애 말보다 손날라오는건 고치지도 않고 아오!
저딴거랑 애인이라니 김민재 인생 왜이렇지! 민재의 고함소리를 싸그리 씹어주고 들어갔다. 김민재 메롱이다.
민재와 영화를 보려고 착석했는데, 커플석이다. 커플석?.. 불편한데 ..불편하다고 중얼거리는 말소리를 들었는지
"커플석 이런건지 몰랐다. 영화관을 와봐야 알지."
"그 많은 여인들이랑 영화관에서 데이트 안하고 뭐했어?"
"영화 볼 시간 있냐? 사랑나누기에도 벅찬데"
장난스럽게 웃으며 코를 찡긋하는 민재. 벼언태!바람둥이!
주위가 검어지면서 은은한 불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고
스크린에는 영화가 시작됬다.엄청나게 크게 울리는 사운드와 빠르게 전개되는 스토리. 남자주인공 조폭이고 여자주인공은 학생인데 둘이 너무 사랑하는데 여자는 나라에서 제일 가는 국회의원의 딸이였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계속 만나다가 결국 조폭인 남자 때문에 여자가 죽음을 맞는 그런 줄거리인것 같았다. 왠지 상투적인 줄거리에 하품하고 있을때
갑자기 배가 출출해졌다. 생각해보니깐 아까 먹은 커피가 오늘 먹은것 전부였다.
그 생각에 민재가 사온 팝콘을 먹으려고 손을 집어넣었는데
그때 민재의 손도 팝콘봉지 속으로 들어왔다.
"..."
"..."
서로 손이 닿아 놀란 마음에 고개를 돌렸는데, 민재 또한 놀랐는지 고개를 돌렸고 우리는 어둡고 주위에 몇몇없는 관객들 사이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 뭔가 꼭 잘못한 여자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고 얼굴엔 땀이 삐질 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