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힐 공원묘지에 왔다. 꽃집에 들려서 산 하얀 국화가 차창 밖을 기웃거린다. 곱게 다듬은 잔디를 머리에 이고 있는 언덕을 올려다본다. 화환 여러 개가 길게 누워 며칠 전에 있었던 그날을 떠오르게 한다. 강렬한 8월의 태양 볕에 꽃들은 물기를 날려 보내고 시들시들 말라 있다.
아직 잔디가 뿌리를 내리지 못해 엉성한 자리. 누구인지 이름표도 달지 못한 채 어설퍼서 불안해 보인다. 차에서 내려 가까이 다가갈수록 여기에 엄마가 누워 계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아버지가 옆에 계셔서 외롭지는 않으시겠지. 이런저런 잔소리를 들으실 아버지도 내심 반가와하실거야. 양로병원의 침대에 비할까. 언덕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벗 삼아 시내의 전경을 내려다보시니 답답하지 않으실 게야. 스스로 위로를 한다.
떠나가신지 5일째다. 잔디를 손으로 쓸어본다. 가슴께가 미세하게 들썩이는 것 같다. 가벼운 시트조차 몸에 닿는 것을 고통스러워하시던 엄마. 무거운 흙더미를 덮고 계시기 힘드실 터인데.
몸을 숙여 가만히 귀를 대어본다. 강한 진통제에 의지해 잠만 주무실 때 숨을 쉬시나 확인하느라 생긴 버릇이다. 한번 씩 가픈 숨을 몰아 쉴 때마다 얼마나 고마워했던지. 아무 말이나 해보라며 속삭인다. 힘든 가운데에서도 다정하게 주위 사람들을 챙기고 분위기를 환하게 해주던 국화 꽃 같은 분. 자식들을 즐겁게 해주던 엄마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가슴에 안겨 엄마의 그 은은한 체취를 맡고 싶다.
바람의 속삭임인지 귓가를 맴도는 소리들. 통증이 몰려올 때마다 부르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급하게 한국에서 온 두 딸들을 보며 -이건 기적이다. 두 달 넘게 곡기를 끊어서 걱정하는 자식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가 먹여 주시니 걱정 마. 엄마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노래를 불렀더니 고통스러울 때마다 음정 박자 틀리지만 읊으시던-힘내세요 힘내세요. 누구를 더 사랑 하냐고 다툼하는 딸들에게 -모두 다 사랑해. 우울해하는 자식들에게-난 축복 받았어. 행복해. 엄마가 병석에서 하시던 말씀들이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저 모퉁이를 돌아서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기다리고 계실 것 같다. 언제쯤 현실로 인정 할 수 있을 지 자신이 없다. 시간이 필요하리라. 아니 시간이 흐를수록 더 절실해 질지도 모른다. 덜어내려고 애쓸수록 그리움은 한줌한줌 더 쌓여 갈 것이다. 그래도 차곡차곡 담아 두리라. 하나씩 꺼내어 곱씹어야지. 이 슬픔도, 그리움도.
국화 화분 놓을 자리를 찾아 둘러본다. 울퉁불퉁한 잔디위에 놓자니 쓰러질까봐 걱정이 된다. 눈길 가는 곳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화분을 양팔로 두르고 가슴에 품으니 향기가 나를 보듬는다. 고운 꽃잎들이 내 뺨을 어루만진다. 그냥 안고 있을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