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 항아리
저 안에 달을 품고 있네
공룡알 같은 달을 품고 있네
백자 항아리
붉은 연꽃도 품고 있고
비단잉어도 품고 있네
봄비 그친 허공도
매화꽃 떨어진 얼룩무늬도
금란가사(金襴袈裟) 걸친 경허선사(鏡虛禪師)도
품고 있네
백자 항아리
다 품고 있으니 저리 아늑해지네
그윽하고 겸손하고 온유해지네
-『불교신문/문태준의 詩 이야기』2023.09.08. -
백자 항아리는 그 자체로 이 세계를 뜻하리라. 흰 빛의 만월(滿月)을 품고, 진흙에 뿌리를 두고도 깨끗함을 잃지 않는 붉은 연꽃을 품고, 화려한 비단잉어를 품고, 일기가 변화하는 계절을 품고, 가없는 공중을 품고, 낙화의 시간을 품고, 선사의 성품과 법문을 품고 있으니 그러하다. 차별이 없이 삼라만상을 품고 있으니 백자 항아리가 뜻하는 세계는 모나지 않고 원만하고, 부족함이 없이 넘치고 풍요롭다. 아늑하고 그윽하여 온유한 세계를 완성한다.
조창환 시인은 시 ‘꽃그늘 아래’에서 “꽃그늘에 주저앉아 하루를 맞이하며/ 오지 않고 다녀갈 그대를 기다린다/ 곱구나, 좋구나, 이쁘고 선하구나/ 화엄(華嚴) 세상 기다리며 꽃멀미한다”라고 썼다. 이 시구에서의 화엄 세상이 백자 항아리에 갖춰져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