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산 12봉을 찾아서,
코스:봉산동-오봉산-구룡고개-보덕봉-용바위고개-금병산-유성구 공군 아파트. (16km/5시간)
관암지맥의 오봉산 (2012년12월)
오늘의 산행지는 대전둘레 산 제 7구간이기도 하지만 관암지맥의 한 구간이기도 해 지난날 이 구간을 종주한적 있는 추억(追憶)의 산길이라 다시 만나는 옛 친구 같은 그런 마음이 드는 산길이기도 했다.
세월이 빠른 건지 내가 바쁘게 살아가는건지 뭐가 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도 늙어 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이 아주 시원하고 멋지다.
甲川을 가로지르는 佛舞橋와 넓게 자리 잡은 대전 산업단지가 한 폭의 그림이었다.
금병산 12봉을 다 찾아볼 생각이었지만 길 좋다는 핑계로 바쁘게 이동하다 보니 제1봉은 찾아보지 못하고 말았다.
※ 제 1봉 옥련봉(玉輦峯) 제 2봉 일광봉(日光峯) 제 3봉 공덕봉(功德峯)제 4봉 도덕봉(道德峯) 제 5봉 옥당봉(玉堂峯) 제 6봉 연화봉(蓮花峯)제 7봉 운수봉(雲水峯) 제 8봉 출세봉(出世峯) 제 9봉 감찰봉(鑑察峯)제10봉 현덕봉(玄德峯) 제 11봉 대법봉(大法峯) 제 12봉 창덕봉(彰德峯)
신라시대에는 金平山, 고려시대에는 萬人山이라 불리었는데 조선건국의 뜻을 품은 이성계가 비단병풍을 갖추고 치성하라는 현몽에 따라 이곳을 錦屛山이라 이름 지었다지만 처음 만나는 비석을 뒤에서 볼 때는 폐 무덤의 비석인줄 착각했으며 별 커다란 意味는 느끼지 못한 게 사실이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행위라 했다"
그것은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내는 하나의 창조 과정이고 목적을 이루어 낸다는 성취감과 함께 온 정력과 최선을 요구하는 결과이기에 더욱 값지고 보람되는 결과라 보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따라 남은 인생, 자연에 맡겨버리고 앞으로 부담 없는 자연과의 생활에 더욱 가까워 지고픈 작은 소망이지만 시작은 있어도 끝은 알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일 것이다.
건강한 마음과 강한 의지는 그 어떤 장비와도 비교할 수 없는 등산장비일 것이다.
예전에 걸어둔 때 묻은
시그널이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같은 산길을 찾고 또 찾는 재미 사소한 이런 것에서 부터 느껴진다면 다른 사람은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 우리 B조는 금병산 (노루봉)넘어 부대 철망을 바라보고는 제1봉쪽으로 A조와는 거꾸로 운행했다.
오늘의 마침은 내일의 시작인 것이다.
곡식은 농부의 발자국소리에 익고 인생은 늙어지는 것만큼 노숙(老熟)해 진다고 하지만 세월은 지나가는 것을 일일이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가까운 大田의 산들을 찾아 보는것이다.
낮긴 해도 나름대로 뜻있는 산길이라 마음 흐뭇했었고 더위와 함께한 회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A조 출발.
우린 갑천 블무교를 돌아 공군 아파트에서 시작.
바라보이는 끝이 등산로 입구이다.(공군 아파트)
들머리 산행입구.
금병산 이정목.
메타세콰이어길에서 쉬어가기도.
계단도 있었지만 상당한 경사길이다.
등산로는 비교적 깨끗하고 양호한 편이다
여기선 진행을 중지 철망과 초소를 바라보고는 이제 제 1봉쪽으로 이동한다.
오늘로선 제일 힘든 곳.
제12봉 창덕봉.
금병산 노루봉 안내.
제 11봉 대법봉.
제10봉 현덕봉.
해공님과 민들레님.
제9봉 감찰봉.
제8봉 출세봉.
언제나 앞서가는 해공님.
드디어 금병산(372m)
금병산에서의 조망.
제7봉 운수봉.
제6봉 연화봉.
선두로 오시는 안종호님과 안재현님.
갑장(정병훈.최상진.안재현)
만난김에 기념하기.
바윗길도 거뜬하게.
제5봉 옥당봉.
버섯 4 둥이
관암지맥(383m)
장창기님과도.
제 4봉 도덕봉.
권박사님도 만납니다.
재간둥이 허총무님과 하문자님.
다시 찾은 제3봉 공덕봉.
하산은 수운교쪽으로.
수운교 봉령각.
수운교 복지관.
젊은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노익장이십니다.
김규훈(89세)
하문자(81세)
수운교는 이상룡(李象龍, 1824년? ~ 1938년)이 서울에서 창교한 동학 계열 종교로, 현재 본부는 대전 유성구 추목동에 있다.
동학의 창시자이자 천도교의 교조인 최제우는 1864년 대구에서 처형당했다. 수운교의 교리에 따르면 이때 최제우가 신통력을 부려 가짜 육신이 죽은 듯 보였을 뿐, 진짜 육신은 살아남아 금강산 비로봉 도솔암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도솔암에서 천일 기도를 마친 뒤 성을 이최李崔로 고치고 출룡자出龍子라는 호를 지어 전국을 떠돌며 수도를 했다.
이상룡이 정말 자기 주장대로 최제우라면 1822년에 태어나 1938년에 사망했으니 117세까지 산 셈이다.
이상룡은 1923년 서울에서 천황교라는 교명으로 창교하려 했으나 일제가 허용하지 않아 수운교라는 교명으로 창교했다. 이상룡은 자신이 최제우의 후신이라 선전하며 포교 활동을 전개했고, 동학계 종파들인 천도교ㆍ시천교ㆍ상제교 신자들이 다수 모여들었다. 그러나 이들 종교들로부터 최제우를 사칭한다는 논란과 시비가 일어나자 1925년에 교단 본부를 충남 대덕군 탄동면 추목리(현재 대전 광역시 유성구 추목동) 금병산 기슭으로 이전 했다.
1929년에는 조선 시대 건축술을 잘 보여주는 수운교 도솔천을 건립했다. 수운교 도솔천은 이상룡이 직접 설계하고 (경복궁과 보천교 본당 십일전을 지은) 도편수 최원식이 건축한 걸작이다. 이후 사람들을 상대로 포교하여 인근에 수운교 신앙촌을 형성했다. 1933년부터는 천단 내에 금강탑ㆍ미륵탑ㆍ무량수탑을 건립하였다.
1937년 일제의 식민 통치가 본격적으로 민족 말살기에 접어들면서 문화 탄압이 거세지자 종교 생명의 연명책으로 1938년에 일본의 진종불교(眞宗佛敎)와 야합하여 불당을 짓고 아미타불을 안치, 흥룡사(興龍寺)란 간판을 걸고 활동하였으나, 광복 이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5공 시절 군사 정부는 수운교 본부 인근을 군사 시설 보호 구역으로 지정하고 다른 곳으로 쫓아내려고 했다. 수운교 신앙촌은 군사 정부에 의해 사라졌고 자운대가 들어섰다. 수운교는 법정 소송을 통해 현 위치에서 자기네 종교 시설을 지켜 현재에 이른다.
동학의 종파답게 신앙 대상은 ‘한울님’이다.
기본 교리는 유교, 불교, 도교의 원리를 합일하여 포덕천하(布德天下)·
광제창생(廣濟蒼生)·
보국안민(輔國安民)함으로써 동서양이 합덕되는 용화세계, 지상천국을 건설하자는 불천심일원(佛天心一圓)을 종지로 한다.
사람이 곧 하늘이기 때문에 사람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 하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수심정기(守心正氣)로 성경신(誠敬信)을 잘 실천하면, 죄악으로부터 구제되어 지상천국에서 살게 된다고 한다. 종교의례로는 조례식ㆍ석례식ㆍ법일예식이 있으며, 이런저런 기념일들이 있다.
수운교 교훈
1. 우리는 제세주 수운천사님을 모앙한다.
2. 우리는 유불선 합일의 대도를 천하에 전도한다.
3. 우리는 포덕천하 · 광제창생 · 보국안민의 삼대원을 성취한다.
4. 우리는 사람섬김을 하늘님 공경하듯이 한다.
5. 우리는 정성과 공경과 믿음으로 지상천국을 건설한다.
4. 문화재 지정 현황.
수운교 도솔천은 대전 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었다.
다른 시설들도 대한민국의 등록 문화재 제331호 ~ 335호로 지정되었다.
제331호 대전 수운교 봉령각
제332호 대전 수운교 용호당
제333호 대전 수운교 본부 법회당
제334호 대전 수운교 본부 사무실
제335호 대전 수운교 종각 및 범종
이외에 수운교석종(水雲敎石鐘)이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다.
5. 참고사항.
자운대 인근에 자리 잡았으므로 한때 수운교에 출입하려면 군 부대 출입하듯 신분증 검사까지 했다고 한다. 또한 뒷산 금병산은 입산이 금지되었으나 현재는 가능하다.
우리 만산동호회 회원 여러분 삼복더위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주 뵙겠습니다.
같이해서 즐거웠습니다.
첫댓글 대전의 둘레길산 구경 잘했습니다. 멋진 산행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요즘의 산행은 새로운길이 아닌 대부분 한번 정도 지났던길을 추억삼아 다시훑어보는 정도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