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조금 못 자는 걸 가지고…" 우리 사회는 왜 잠에 야박할까
"잠 조금 못 자는 걸 가지고…" 우리 사회는 왜 잠에 야박할까
대한수면연구학회는 4일 올림픽파크텔에서 '2025 세계 수면의 날'을 기념해 현대인의 수면 부족이 건강과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 국내 수면장애 치료의 현실적 어려움을 알리고자 심포지엄 및 미디어 간담회를 개최했다.
세계 수면의 날은 세계수면학회가 수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수면질환 예방과 관리의 중요성을 알려, 수면장애로 인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고 질병 부담 등을 줄이기 위해 2007년에 제정했다. 매년 3월 우리나라를 비롯 세계 70여 개 회원국에서 기념 행사를 진행해오고 있다.
대한수면연구학회 신 회장(신경과 교수)은 "수면장애는 신체, 정신 그리고 인지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공공의 보건 문제이며 국가적 차원에서 건강을 관리하는데 있어서 수면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면 건강은 국가 경제에 큰 영향대한수면연구학회 주은연 부회장(성균관대 신경과 교수)은 '현대인의 만성 수면 부족이 개인 건강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손실'에 대한 주제로 발표했다. 2007년과 2010년 이후 선진국과 신흥국에서 수면 건강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며 글로벌 수면 헬스 시장이 2025년까지 약 6000억 달러(841조 8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주은연 교수는 "7시간 미만의 수면은 감기 발병 위험을 3배, 6시간 이하의 수면은 관상동맥질환과 뇌졸중 위험을 각각 48%, 15% 증가시킨다"며 "반응 시간 저하, 인지 기능과 기분 장애 등 다양한 건강 문제를 야기한다"고 했다.
또한 수면 부족으로 직원 생산성이 50% 이상 떨어진다. 미국, 일본, 영국은 각각 연간 4,110억 달러(GDP의 2.28%), 1,380억 달러(GDP의 2.92%), 500억 달러(GDP의 1.86%)의 경제적 손실을 기록했다. 폐쇄성 수면무호흡증(OSA)은 한국에서 약 11조 원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고 보고했다. 주 교수는 "수면 건강은 개인의 삶의 질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다"며 "수면 건강 개선을 위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했다.
"잠 조금 못 자는 걸 가지고…" 우리 사회는 왜 잠에 야박할까
◇수면 문제에 관한 전문가 접근성 낮아 대한수면연구학회 김 홍보이사(신경과 교수)는 '2024년 한국인의 수면실태'에 대해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58분으로 OECD 평균보다 18% 부족하다. 수면의 질과 양에 만족하는 비율도 세계 평균의 75% 수준에 그쳤다. 특히 매일 숙면을 취하는 비율은 7%로 세계 평균(13%)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며, 응답자의 60%가 수면 문제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수면 부족과 장애의 양상은 성별·연령별로 차이를 보였으며, 남성은 '수면 시간 부족'을, 여성은 '수면 장애'라고 답했다. 젊은 층은 수면 부족, 고령층은 수면 장애를 더 많이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숙면을 방해하는 주요 요인은 '심리적 스트레스(62.5%)'가 가장 높았다. 신체적 피로(49.8%), 불완전한 신진대사(29.7%), 소음(19.4%) 등이 뒤를 이었다.
김혜윤 교수는 "디지털 수면 보조장치를 활용하는 비율이 증가했으나 수면 장애 그룹의 60.5%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며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고 했다. 또한, 김 교수는 "응답자의 64%가 수면 문제로 의료진 상담을 받아본 적이 없으며, 전문의 상담 경험도 세계 평균(50%)의 절반 수준인 25%에 그쳤다"며 "전문가 접근성이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이어 "수면 건강이 삶의 질 향상과 직결된다"며 "개인적 노력뿐 아니라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과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코리아 패싱이 문제, 수면 장애 환자 치료 어려워 대한수면연구학회 전 홍보이사(신경과 교수)는 '대한민국 수면장애 치료의 현주소- 보험과제도의 사각지대'에 대해 말했다. 전지선 교수는 "기면증, 하지불안증후군, 기면병, 렘수면행동장애 등 다양한 수면질환에서 최신 치료제가 도입되지 않거나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환자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특히 글로벌 제약사의 '코리아 패싱' 현상으로 인해 일부 치료제는 국내에서 아예 공급이 중단돼, 기존 치료제조차 높은 비용으로 인해 환자들이 충분한 치료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고 했다. 전 교수는 "전문가들은 신약 접근성 확대와 보험 급여 적용을 통해 수면장애 치료의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며 "정부와 의료계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와킥스' 공급 중단으로 기면병 환자들 어려움 겪기도마지막 순서로 기면병환우협회 이한 회장과 대한수면연구학회 김 부회장(신경과 교수), 황 총무이사(신경과 교수), 주 보험이사(신경과 교수)가 참석해 국내 수면 실태에 대해서 논의하고 특히 기면병환자의 단순히 졸린 병으로만 인식되는 사회적 편견에 따른 개선 방향과 장애제도 개선, 약제 공급 중단 및 수입 어려움에 대한 해결 방안에 대해서 심도 있게 얘기를 나눴다.
기면병은 비교적 드문 질환이지만 낮 동안 극심한 졸음을 유발하며 탈력발작 등의 증상을 동반할 수 있는 신경계 질환 환자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 교수는 "기면병 치료제 중 하나인 '와킥스'는 기존의 각성제 기반 치료제들과는 다른 기전으로 히스타민 H3 수용체를 조절하여 각성을 유도하는 약물이다"며 "2024년 9월 16일부로 국내 공급이 중단됐다"고 했다. 이어 "이는 국내 의약품 가격이 글로벌 시장 대비 지나치게 낮아 제약사가 공급을 포기한 결과다"며 "가격이 가장 낮다고 하는 프랑스에서도 1만원 이상으로 결코 저렴한 가격에 공급되는 것이 아니나, 국내에서는 2500원 수준으로 책정됐다"고 했다. 이로 인해 제약사는 한국 시장을 철수하기로 결정했고, 결국 기면병 환자들은 대체할 수 있는 동일 성분의 약물이 없어 치료 공백을 겪게 된 것이다.
이 회장은 "한 기면병 환후가 와킥스를 섭취하면서 기면증 증상이 완화돼, 일을 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며 "다가오는 6월 와킥스 공급이 중단되면, 환우는 더 이상 일을 할수 없거나 다시 은둔형 외톨이처럼 집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된다"며 "기면병 환우들이 '환자'가 아닌 '국민'으로서 활동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심포지엄을 마무리하며 김 교수는 "수면 문제는 사회의 사각지대에 위치해있다"며 "'잠 못 자는 것 쯤이야'라며 수면 문제를 후순위로 미루는 사회적 현상이 있다"고 했다. 이어 "근면 성실함을 지향하는 우리나라에서 '수면은 게으른 것이다'라는 국민적 인식을 개선해야 할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