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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략 )
종로 2가 파고다공원에서 출발해 헐리우드 극장이 있는 낙원상가, 운현궁, 헌법재판소, 현대사옥, 감사원을 지나 와룡공원에 도달하면 과거 도성을 지켰던 북악산 서울성곽이 나타난다. 종로구 일대를 걸으면 50여 년의 세월 속에 묻혀 있던 학창시절의 추억이 복병처럼 나타나 내 가슴을 쥐어짜기도 하고 마구 흔들어 놓는다. 눈가에 이슬을 머금게 하기도 하고, 나한테도 그리운 사람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나한테 남아있는 10년의 삶에는 마지못해 해야 할 일이 있고, 내 영혼이 움직여서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옛 추억에 푹 잠기고 더듬는 일은 어느덧 제일 하고 싶은 일로 자리를 굳혔다. 어느 작가가 말하기를 추억이란 칡뿌리 같아서 아무리 쓰고 거칠던 시절이라도 되씹어보면 단맛을 낸다고 했다. 또 다른 작가도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추억과 인연을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추억에 연연해하는 내 심정이 이 두 작가의 말로 합리화가 되는 듯싶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4ㆍ19가 일어났는데 5학년 때 쯤 지우개 달린 연필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무척 신기하게 생긴 이 연필을 사거나 구경하려고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매점 앞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이어서 칼 달린 연필도 출현했는데, 칼이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금방 인기가 시들해졌다.
조금 있으니까 기묘하게 생긴 수첩이 얼굴을 내밀고 순진한 학생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좋게 크기가 당시의 내 손바닥만 했으며, 벽돌색 표지가 다소 빳빳했다. 가로가 세로의 두 배 정도 되는 직사각형 수첩의 표지를 젖히면 속 알맹이 전체가 전면은 단 한 줄도 쳐 있지 않고, 점 하나도 찍혀 있지 않은 순 백지 상태인데, 이면에는 두 권투선수가 링 위에서 권투 시합을 하고 있는 그림이 인쇄돼 있다. 근데 재미있는 것은 그림이 종이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종이를 넘길수록 한 선수가 손에 글러브를 낀 팔을 상대 선수를 향해 점점 내뻗는다. 그러면 다른 선수는 반대로 팔을 자신의 가슴 쪽으로 점점 오므린다. 계속 넘기다 보면 양 선수가 동작을 바꿔서 한다. 이 수첩을 이면이 보이게 해서 속 알맹이 전체를 일거에 넘기면 영화에서처럼 두 권투 선수의 팔과 주먹이 살아서 막 움직인다. 종이 넘기는 속도에 비례해 두 권투 선수의 동작도 빨라졌다 느려졌다 해 무척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당시 문구 업자들이 영화를 본뜬 수첩을 만들어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오락거리가 요즘처럼 다양하지 못했던 그 시대의 아이들은 문화공보관(?) 같은 데서 리버티 뉴스라도 상영하면, 처음 시작할 때 봤던 뉴스를 교체하지 않고 계속 상영해도 조금도 지루해 하지 않고 잘만 봤다. 한 뉴스를 여러 번 보니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장면을 쭉 꿴다. 뉴스를 보면서 다음에 무슨 장면이 나온다고 중얼거리면 옆에 있는 어른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는다. 나는 부모님이 강요하는 공부는 절대 안하고 구경거리가 있는 곳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고 부지런히 쫓아 다녔다. 당시 나는 용돈이란 개념을 전혀 몰랐다. 어쩌다 귀한 손님이 오셔서 돈을 조금 주면 나는 그걸 잠시 구경만 했을 뿐 할머니가 독차지하셨다. 아이들이 돈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차곡차곡 모아서 나중에 다 돌려주겠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을 지킬 새도 없이 중병에 시달린 끝에 그만 돌아가셨다.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어도 옛날 얘기 좋아하는 나는 내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많은 영화를 봤다. 내 친구의 큰 아버지가 개봉극장 주인이어서 그 친구 덕을 톡톡히 봤고, 다른 한 친구는 자기 집과 결혼한 누님이 주인인 완구 점포에서 돈과 손목시계를 슬그머니 꺼내온다. 그럼 그걸 밑천으로 해 영화도 보고, 유원지에 놀러가서 아이스크림과 과자도 사먹으면서 두 초등학생 개구쟁이가 여름방학을 아주 행복하고 신이 나게 보냈다.
중고등학생이 돼서는 주로 책값과 단과반 학원비를 부풀려서 받아내 그걸로 영화 입장권 사는 재원으로 활용했다. 아마도 아버지께서는 다 아시면서도 아들의 가슴에 금이 갈까봐 모르는 척으로 일관하셨을 게다. 나이가 들고 아버지 노릇을 해보니까 당시의 아버지 마음이 읽혀진다. 이 세상에 영화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느낀 재미의 태반이 당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정효 작가가 쓴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소설을 읽었을 때 소설 속의 주인공 할리우드 키드가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나한테 영화 본 얘기를 글로 써보라고 하면 소설 책 한 권쯤은 얼른 뚝딱 만들어 낼 자신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아현동에서 살았기 때문에 나도 할리우드 키드 못지않게 현대극장, 경보극장, 대흥극장 등 마포 주변에 있는 극장을 자주 섭렵했다. 만리동 꼭대기 중간 지점에 현대극장이 있었다. 3류 극장이어서 영화 두 프로그램을 동시에 상영할 때가 많았다. 영화 테이프를 처음 돌리는 데를 개봉관(일류극장)이라고 했는데 아현동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하면 화양ㆍ국제ㆍ아카데미ㆍ중앙ㆍ을지ㆍ헐리우드ㆍ대한ㆍ명보ㆍ스카라ㆍ세기ㆍ피카디리ㆍ단성사ㆍ국도극장 순서로 꼽을 수 있다.
개봉관에서 상영을 마친 필름은 며칠 있다가 재개봉관(이류극장)으로 간다. 서대문에 있던 동양극장과 서대문극장, 시청 가까이 있던 경남극장, 종로 YMCA 옆 우미관극장, 대한극장 건너편에 있던 아테네극장, 을지로 6가에 있던 계림극장, 영등포에 있던 경원극장과 연흥극장, 남영동에 있던 남영극장과 성남극장, 청량리에 있던 오스카극장이 재개봉관으로 쉽게 떠오른다. 지금은 대부분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게다.
그리고 그 나머지 극장을 통 털어 3류 극장이라 했는데, 마포, 신촌, 청량리, 노량진, 불광동, 연신내 등 서울 변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재개봉관에서 상영이 끝난 필름이 이곳으로 오다보니까 상영 중에 필름이 자주 끊긴다. 그 때는 영화관이 온통 암흑의 세계로 바뀐다. 여기저기서 휘파람을 불고 아우성을 질러대 공포 분위기를 연출한다. 동네 불량배들이 바로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연신 히죽대면서 부녀자 곁에 다가가 몸을 막 더듬는 모양이다. 물론 좌석도 지정돼 있지 않다. 그러니까 영화 보는 값도 싸고 프로그램 두 편을 동시에 보여줄 때가 많다.
현대극장에서 《아라비안 나이트》의 한 대목인 ‘아리바마와 40인의 여도적’ 영화를 봤는데, 요즘 수영장이나 해수욕장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비키니 수영복에 버금가는 천 조각으로 몸을 살짝 가린 아라비아 여자가 갑자기 화면에 튀어나와 춤을 춰댔다. 갓 사춘기의 감정을 담고 있는 내 가슴은 옆 사람에게 들킬 정도로 쿵쿵 팔딱거리고, 군대에서 화생방 교육 받을 때처럼 숨이 거세지며, 얼굴은 못 마시는 술 억지로 마신 때 마냥 벌겋게 다라 오르고, 단추 구멍만한 눈에서 발산한 음흉한 빛은 무희의 몸 구석구석을 참으로 바쁘게 훑어갔다.
이 얘기를 하다보니까 종로 3가에 있는 세기극장(지금은 서울극장)에서 《아라비안 나이트》의 한 대목인 ‘신밧드 모험’ 영화를 본 기억이 떠오른다. 이 영화를 본 날이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학교 측에서 하루 전에 수험생들을 소집해 주의사항을 일러주던 날이었다. 학교가 파한 후 세기극장으로 달려갔다. 요즘 트랜스포머 영화에서 보여 주는 것처럼 공주가 새로 변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옷을 다 벗은 공주의 맨몸에다 마법사가 약물을 뿌려주니까 공주가 순식간에 새로 둔갑해 창공에 훨훨 날아 오른다. 영화는 겉옷을 벗은 공주가 비키니 수영복처럼 생긴 속옷을 입고 있는 장면까지만 확실히 보여준다. 그 장면이 내 눈을 완벽하게 사로잡아 버렸다. 영화가 다 끝나고 다음 회를 상영하고 있는데도 내가 앉았던 좌석 주인이 영 안 나타났다. 나는 전회 프로가 막 시작한지 얼마 안 되서 입장했기 때문에 예고편과 본 영화 도입부분을 놓쳐버렸다. 그래서 서서라도 못 본 장면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 최근 네 잎 클로버를 본 적이 없는데도 좌석 주인이 안 나타나는 행운이 찾아온 바람에 나를 매료시킨 장면까지만 더 보고 일어나기로 마음먹었다. 어찌어찌해서 결국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프로를 다 봐버렸다. 밤이 많이 깊어졌다. 내일 입학시험 볼 일이 크게 걱정됐다. 오늘 경솔하게 저지른 행동이 어제 밤을 새워 공부한 보람을 망쳐버린 꼴이 돼버렸다. 건강 지키기 위해 기껏 등산하고 내려와서는 실컷 술 마시고 담배 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날은 야단을 안 맞았지만 시험이 끝나고 나서야 아버지의 꾸지람을 들었다.
은행 대리 승진 시험을 코앞에 둔 긴박한 상황에서도 신혼 초였던 나는 아내와 함께 용감무쌍하게 극장을 전전했다. 스카라극장에서 ‘죠스’ 첫 번째 편을, 피카디리극장에서 황금탈출을, 그밖에도 수편의 영화를 봤겠지만 지금은 기억에서 지워졌다. 대리 시험을 마치자마자 달려간 곳이 은행 본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중앙극장이었다. 홍콩배우 홍금보가 주연한 무협영화 ‘인자무적’을 봤는데, 이 영화는 시험보기 며칠 전부터 벼르고 벼르던 영화라 혼자서도 아주 재미있게 봤다.
인사동과 낙원동 경계지점에 낙원상가가 있고, 그 건물 4층에 헐리우드 극장이 있다. 이 극장은 서울에 있는 개봉관 중에서 가장 늦게 생겼다. 이 극장에서 홍콩 배우 이청이 주연한 영화 ‘스잔나’를 학창시절에 봤는데, 보는 내내 꽤 많은 눈물을 쏟았다. 홍콩 괴기 무협영화 ‘음양도’도 여기서 봤다. 칼에 베인 여자가 가슴을 드러낸 채 길에 누워 있고 그 옆에는 강보에 쌓인 아기가 울고 있는 장면만 눈에 아른아른하다. 가장 최근에 헤리포터 시리즈 중 한 편을 보긴 했는데 재미없고, 지루하게 본 것 말고는 뭘 봤는지 생각이 전혀 안 난다.
그런데 헐리우드극장이 시대 상황에 맞게 변모해, 2010년 3월부터 실버영화관으로 거듭났다. 인터넷 홈페이지(www.bravosilver.org)는 빈약하게 꾸며져 있지만 우수한 영화만을 엄선해서 상영한다. 나는 변모한 헐리우드 극장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희망과 행복을 느낀다. 타임마신 없이도 그리운 시절로 되돌아간다. 이 극장은 단 하루도 쉬지 않는다. 하루에 세 번 상영하고, 월요일은 마지막 회를 상영하지 않기 때문에 두 번 상영한다. 오전 10시 30분에 첫 회 상영을 시작한다. 한 영화를 일주일간 계속해서 상영하며, 매주 금요일에 다른 영화로 교체한다. 55세 이상 입장객에게는 요금 2,000원을 받는다. 관객은 후반생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를 차지한다. 영화 시작 전에 60대 후반으로 짐작 가는 사장이 직접 홀에 나와 늘 똑같은 식으로 안내를 한다.
모자를 쓴 채 영화를 보라고 한다. 벗은 모자를 극장에다 놓고 가는 노인이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안경도 놓고 가는 노인이 많다고 한다. 핸드폰도 꺼놓지 말고 영화를 보라고 한다. 만약 전화가 오면 잠간 밖에 나가서 통화를 한 후 제자리에 다시 와서 영화를 보라고 한다. 노인들은 핸드폰을 꺼놓고서는 여간해서는 다시 켜놓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이 밖에 있는 부모님과 통화가 안 돼 애가 탈 때가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주머니에서 지갑이 빠져나오는지도 모르고 영화에 몰입하는 노인도 많다고 한다. 영화보다 목이 컬컬하면 입구에 와서 극장 측이 준비한 사탕 2개를 들라고 한다. 비 오는 날 우산이 필요한 관람객한테는 보증금 2천원을 맡겨놓고 핸드폰 번호와 이름을 알려주면 우산을 빌려준다고 한다. 나중에 빌려간 우산을 반납하면 보증금으로 받은 2천원을 그대로 돌려준다고 한다. 빌려간 우산이 망가져도 보증금 2천원을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집에 있는 성한 우산을 대신 가져오면 2천원을 돌려준다고 한다. 옛날 낙원극장 건물에 있는 식당에 가서 입장권을 보여주면 음식 값에서 천원을 깎아준다고 한다. 원하면 임플란트 값을 싸게 해주는 치과도 소개해주겠다고 한다. 입장권 1매를 기준으로 하절기엔 매실차 한 잔을, 동절기엔 국화빵 두 개를 무료로 제공하고, 목요일 오후 5시 경에 상영하는 영화 무료 초대권 1매도 제공한다. 여기까지가 극장 측이 노인 관람객을 위해 특별히 신경 쓰는 CS경영 전부이다.
헤어진지가 45년이나 지난 친구를 우연히 만난 일도 이 극장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나는 최근에 이 실버영화관에 첫 발을 내딛었다. 처음에는 낯설고 생소해 많이 주저했지만 지금은 많이 당당해 졌다. 사장하고 얘기도 나눈다. 무슨 영화를 상영해주면 좋겠다고 부탁도 한다. 이 극장에서는 오래 전에 상영됐던 영화 중 감명 깊은 영화, 흥행 성적이 뛰어났던 영화만을 골라 상영한다. 비록 50여 년 전에 봤던 영화라도 그 여운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그런 영화를 상영한다.
죤웨인이 주연한 ‘징기스칸’과 서부영화 ‘리오부라보’, 서부영화 ‘론레인저’, 버트랑카스터가 주연한 ‘진홍의 도적’, 카크다글라스와 토니커티스가 주연한 ‘봐이킹’, 미스터 유니버스인 스티브리브스가 주연한 헤라크레스가 나오는 영화, ‘풍운아 사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 그레고리펙이 주연한 인디안과 싸우는 영화는 내가 초등학생 때 본 영화로 수많은 장면을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지금 이런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 극장이 있다면 그 어디라도 기필코 찾아가서 보고야 말겠다. 그런데 급시우처럼 나타난 헐리우드극장이 이런 영화만을 골라 상영한다. 비록 제작한지가 너무 오래돼 필름에서 뿜어내는 총천연색 빛이 약해져 스크린에 반사된 영상이 덜 선명하더라도, 극장 스크린 세로가 인증규격에 다소 미치지 못해 영상이 가로로 퍼지게 나타나도, 음향 효과가 지금 제작하는 영화보다 훨씬 뒤져도 나한테는 전혀 흉이 되거나 불편하지 않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내 마음은 그 영화를 처음 봤던 학창 시절에 가있다.
조금 있으면 존웨인이 주연한 ‘징기스칸’을 상영하는데, 그때는 초등학생으로 돌아갈 것이다. 찰톤 헤스톤과 율브린너가 주연한 ‘십계’와 1963년에 상영해 대박을 터뜨린 이만희 감독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봤을 때는 중학생으로 돌아갔고, 안브라이스가 주연한 뮤지칼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 007시리즈에 숀코네리 다음으로 주연한 로저무어와 캬롤베이커가 주연한 ‘기적’, 그리어 가슨과 로날드 콜맨이 주연한 ‘마음의 행로’를 봤을 때는 고등학생으로 돌아갔다. 영화는 내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보는 동안도 행복하지만, 보고나서도 행복하다. 오랫동안 음미하니까!. 여운이 오래오래 남으니까! 고등학생 때 학생 전용극장인 아테네 극장에서 미국의 전설적인 코미디언이고 6.25 전쟁 직후 주한미군 위문공연차 우리나라에도 온 적이 있는 보브 호프가 주연한 ‘요절 대 열차 강도’를 봤다. 너무 재미있고 웃겨서 영화가 끝난 후 전차 타려고 퇴계로에서 을지로까지 걷는 동안 내내 히죽히죽 웃지 않고는 배기질 못했다. 집에 와서도 생각만 하면 웃음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아마도 그 다음날 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테네 극장에서 본 영화 중 그레고리 펙과 찰톤 헤스톤이 주연한 ‘빅 칸츄리’와 종교 영화 ‘다윗과 골리앗’도 오랫동안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쯤 피카디리 극장에서 상영하는 ‘마음의 행로’를 우리학교 학생 전체가 단체관람을 했다. 그때쯤은 흑백영화가 옛날 영화 축에 끼어 인기가 시들했고, 서부영화가 아닌 애정영화라서 전혀 기대를 안 했는데, 내 눈물샘을 건드려 눈물이 핑 돌게 만든 감동적인 이야기를 뜻하지 않게 봤다. 영화가 끝나자 나는 눈가에 남아 있는 눈물 자국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극장을 나왔다. 그 영화를 본지가 정확히 44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 감동을 못 잊고 있다. 근데 그 영화가 헐리우드극장 예고프로로 잡혀 있음을 발견했다. 마켄나가 발견한 황금 그 이상으로 나한테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영화 시작할 날을 기다리는 마음이 마치 총각 때 장가가려고 아가씨 선보는 날 기다리는 마음같이 가슴이 설렜다. 나 혼자 보기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가장 친한 대학교 친구 한 명을 불러내 같이 봤다.
영화 ‘마음의 행로’는 1942년에 미국에서 제작했고, 우리나라에서는 6ㆍ25전쟁 휴전협정이 체결된 해인 1953년에 맨 처음 상영했고, 1967년에 재 상영했다고 한다.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한 찰스(로날드 콜맨 분)는 전투 중 부상을 입어 기억 상실증에 언어 장애까지 겹치게 된다. 종전되던 날(1918년) 갇혀 지내고 있는 영국 멜브리지 수용소에서 안개가 자욱한 틈을 타 몰래 빠져 나온다. 담배를 사려고 가게에 들어간다. 수용소를 탈출한 사실을 눈치 챈 주인 노파가 신고하려 하자 쇼 무희인 폴라(그리어 가슨 분)가 어느새 나타나 도와주는 바람에 그곳을 무사히 빠져 나온다. 갈 곳이 없는데다가 수배 인물까지 된 스미스(원래는 찰스였으나 본인이 기억을 상실해 병원에서 그냥 찰스라고 불렀음)를 돌봐주다가 그를 사랑하게 된 폴라는 직업을 포기하면서까지 한적한 시골 마을 실개천이 흐르고 숲이 우거진 곳에 은신처를 마련해 스미스와 함께 지낸다.
스미스는 폴라의 도움과 사랑으로 건강도 되찾고 그녀와 결혼해 아들도 낳는다. 노력한 결과 작가로 입문해 대단찮은 수입도 올린다. 스미스에게는 폴라가 유일한 행복이자 삶의 목표였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은 이들을 더 이상 행복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연재기사를 계약하려고 혼자 리버풀 신문사를 찾아가는 길에 자욱한 안개와 촉촉히 내리는 비를 만나 그만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 바람에 잃어버렸던 과거의 기억은 되살아나지만 안타깝게도 폴라와 함께 한 세월은 기억에서 사라져버린다. 군대에서는 연대장 이었고, 명문가의 아들로 밝혀진 챨스는 늦게나마 고향에 돌아와 사업가로 크게 성공하지만 기억에서 사라진 몇 년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떠올리려고 애쓰는 모습은 관객들을 참으로 가슴 아프게 한다. 틈만 나면 줄을 매달아 주머니 속에 넣어 간직하고 있는 열쇠를 꺼내 놓고 만지작만지작 한다. 마치 마법을 건 주문에서 풀려나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이 열쇠는 찰스가 리버풀 신문사를 가려고 집을 나설 때 폴라가 건네줬다. 교통사고 직후 자신도 모르는 열쇠가 주머니에 들어있음을 알고 무척 의아해 한다. 한편 폴라는 잡지에 난 챨스의 기사를 보고 찾아와 의도적으로 그의 개인 비서가 된다. 찰스와 자신이 부부라는 사실을 절대 밝히지 않고 비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폴라는 늘 찰스의 곁에 있으면서 그의 기억이 되살아나기만을 안타깝고 초조하게 기다린다. 챨스는 국회의원이 된다. 챨스는 당신 없이는 기업가도 할 수 없고 국회의원도 할 수 없다고 폴라한테 고백한다. 그러면서 의정활동상 아내 역할이 필요하니 형식적으로나마 부부가 돼달라고 간청한다. 쌍방 합의하에 이 두 사람은 형식적인 부부로 맺어진다. 폴라는 챨스의 의정활동을 기업가일 때 보필했던 것처럼 헌신적으로 돕는다. 영화는 챨스가 머지않아 내각의 한 사람이 됨을 예고한다. 두 사람은 형식적인 부부관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는다. 찰스가 우연한 일로 리버풀에 가는데 옛날 사고 당했던 지점을 통과하면서 모퉁이를 돌면 담배 가게가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린다. 그래서 담배 가게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교통사고 날 때 잃어버린 원고가 들어 있는 가방을 여태껏 보관하고 있는 호텔 방에도 들어가 보고, 안개 자욱한 멜브리지 수용소 근처도 가보고, 그러다가 기억나는 대로 어찌어찌해서 옛날 살던 시골집까지 가게 된다. 늘 만지작거리던 열쇠를 꺼내 문을 연다. 폴라는 최근 며칠 새의 챨스 행적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한편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옛날 살던 시골집으로 부지런히 발길을 향한다. 찰스보다 좀 늦게 그곳에 도착한다. 폴라는 문을 향해 서있어 등을 보이고 있는 찰스를 향해 ‘스미스’하고 부른다. 그 소리를 듣고 찰스는 곧 돌아선다. 드디어 찰스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둘은 굳게 포옹을 한다. 그러면서 영화는 서서히 아주 서서히 막을 내린다.
첫댓글 아스라히 멀어져간 어릴적의 추억을 하나씩하나씩 사실적으로 끄집어내준 정곡님의 글솜씨에 빠져듭니다.
'마음의 행로' 다시 한번 보고 싶네요~~
기끔씩 좋은 영화 추천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더 유익하고 흥미있는 글 자주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