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금릉초등학교-뒷목골산(244.9)-막은대미재-후곡산(△292.5)-작은민재-x419.6-x485.6-雞鳴山(계명산△775.0)-x707.9-마지막재(531번 도로)-南山(△636.6)-태봉(599.7)-x511.6-x454.7-범바위 등산로 입구-탄금대 이동-대문산(106.9)-게명지맥 끝자락
거리 : 14.03km 탄금대 계명지맥 끝자락 1.5km 총 15.53km
소재지 : 충북 충주시
도엽명 : 엄정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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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0일 (화) 맑음
홀로 산행
뒷목골산(244.9)에서 남산까지는 계명지맥의 마루금이다
2008년 11월 계명지맥을 종주할 때는 뒷목골산 이라는 지명도 모르고 진행했었다
이제 갈만한 곳도 없으니 그 예전 기억을 더듬으며 다시 찾고 계명지맥을 종주할 때 마지막 어둠 속에서 탄금대 쪽 지맥의 끝자락을 포기했기에 산행 마치고 남은 시간 탄금대에서 지맥의 끝자락도 확인한다
이른 아침 서울의 기온은 –1도 정도였는데 충주에 도착하니 남한강 때문인지! 안개 자욱하고 기온은 –6.5도를 알리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크게 추위를 느끼지 못한다
택시로 금릉초등학교 건너편에서 하차 후 아직도 등교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학교를 우측으로 두고 작은 도로를 따르니 저 앞 산자락이 보이고 걸어가는 산책객이 보이는 것이 제대로 온 것 같다
뒷목골산 등산로 입구 이정표를 보며 뚜렷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며 산행 시작이다
▽ 금릉초교를 우측으로 끼고 산자락으로 이르니 저 앞 능선 끝자락 등산로가 보이고 오름이다
▽ 체육시설의 약 230m 남쪽능선 분기봉에서 송전탑으로 내려선 후 오름이다
▽ 오르면 정자에 낡은 지적삼각점이 있고 완만한 오름이면 공터를 이룬 곳 역시 낡은 지적삼각점이 설치된 뒷목골산(244.9) 계명지맥 마루금이다
▽ 북쪽 충주공원묘지 쪽 능선 분기점에서 동쪽으로 진행하는 완만한 송림능선이다
▽ 동쪽으로 잠시 후 살짝 내려선 약 205m 우측 연수주공7단지0.7km 갈림길의 막은대미재 분기봉을 향한 오름이다
▽ 都市가 크기 전에는 亡者의 아늑한 영원한 쉼터였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만 그래도 봉분을 피해 다닌 흔적이다
▽ 약 295m 북쪽 능선 분기봉을 향한 오름 우측 사면 벼랑 위 전망 좋은 곳 표시가 있지만 자욱한 안개로 보이지 않다
▽「충주421 1999재설」낡은 삼각점 전신주 의자의 후곡산(△292.5) 정상에서 막초 한잔하고
▽ 시야가 터지고
▽ 내려서고 14번 105번 송전탑을 지나 올라선 x290.5m
▽ x290.5m에서 곧 폐무덤과 파묘를 지나 내려서려니 눈길을 끄는 바위 다
▽ 약225m「작은 민재」
▽ 작은 민재를 지나 오름은 잠시 후 능선의 날 등의 좌측 사면으로 오르는 등산로에는 체육시설이고 다시 마루금으로 오르려니 파묘 흔적이다
▽ 해발 300m부터 표고차 100m 아주 가파른 오름이고 올라선 분기점에서 서쪽 충주시가지 멀리 음성군의 가섭산 부용산 등의 능선이다
▽ 북서쪽으로 안개 속으로 당겨봉 수례의산(679.0)
▽ 아파트 우측 올라온 능선이다
▽ x419.6m
▽ 겹쳐 보이는 국망산(769.6) 보련산(764.4)을 당겨 크게 본다
보련단맥 보기
▽ x419.6m에서 잠시 부드럽게 내려선 후 가파른 오름 폐무덤을 지나 올라선 x485.6m
▽ 좌측 갈림길을 보며 가파른 오름이 시작되는 곳 安東權公 뚜렷한 봉분이다
▽ 크게 보는 남쪽 가야할 남산 자락 우측 멀리 멀리 괴산 박달산(824.8) 더 멀리 군자산(919.4) 인 듯
▽ 북쪽 능선 분기점에서 우측으로 살짝 틀어간 약 660m 지점 계명산 정상0.7km
▽ 올라선 700m 능선 완만하나 울툭불툭 바위들이 밟힌다
▽ 북-북서쪽 멀리 당겨서 크게 보는 천등지맥 옥녀봉(714.4) 시루봉(695.4) 오청산(656.9)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본다
▽ 남산 분기점을 살짝 지나 오른 계명산 정상 낡은 삼각점이다
▽ 계명산 정상에서 사진 좌측 나뭇가지 사이 치악산 능선을 당겨본다
계명산은「신증동국여지승람」(충주)에 주 동북쪽 9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산경표」에는 백두대간에 속하는 산'이라고 수록되어 있고「여지도서」(충원)에는 관아의 동쪽 9리에 있다 금봉산으로부터 뻗어 나온다"는 기록이 있고 심항산(心項山) 오동산 계족산 등의 이칭을 가지고 있다
계족산의 명칭 유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백제 시대에 이 산의 남쪽 마고성(麻姑城)에 왕족이 성주로 있었다. 당시 산에는 지네가 많이 살았는데 성주의 딸이 산기슭에서 지네에 물려 죽게 되어 성주는 산신령께 치성을 드렸다 그러자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말하길 지네는 닭과 상극이니 산에 닭을 풀어놓으라 하였다 성주가 그 말에 따라 닭을 풀어놓아 길러 곳곳에 닭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해서 계족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958년 충주시에서 여명을 알리는 뜻의 계명산으로 개칭 하였다
▽ 동쪽 남한강 바로 앞 작은 사우양산(403.0) 뒤 부대산(626.9) 주봉산(638.4) 중앙 삐죽한 관모봉(628.4)이 뚜렷하고 그 뒤 정상부만 보이는 인등산(665.1) 사진 좌측 앞 지등산(534.9) 그 뒤 천등산(806.6)
▽ 크게 보는 주봉산 우측 잘록한 죽방치의 천등지맥 끝자락 뒤는 婦山(780.2)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이고 멀리 동산 작성산 들이 봉우리들만 보인다
▽ 크게 당겨본 월악산(1092.0) 좌측 용두산(994.7)
▽ 계명산 정상에서 5시 방향 내려서면 약700m 지점 아까부터 요란한 공사 소리는 임도를 만들고 있다 임도를 버리고 전면으로 오른다
▽ 약703m 우측능선 분기봉에 오르고
▽ 내려서고 올라갈 x707.9m를 본다
▽ x707.9m 오름
▽ x707.9m 정상 이정표가 있다
▽ 급격한 내리막이고
▽ 올라서면 약 615m 좌측 아리랑고개 능선 분기점이고 그 쪽 계명산 휴양림1.4km를 알린다
▽ 월악산과 용두산을 계명산 때보다 뚜렷하게 본다
▽ 등산로는 어느 순간 계명지맥의 능선이 아니고 좌측 능선으로 향하다가 다시 우측 사면으로 내려선다
▽ 대몽항쟁전승기념탑 직전 계명지맥의 마루금으로 내려서고
▽ 동쪽 충주호 저 편 제천시와 경계를 이룬 경심령(521.5) 관봉(529.9) 사진 우측 살짝 보이는 것은 등곡지맥 등곡산(589.0)이다
▽ 마즈막재는 공사중이다
▽ 다시 오르면서 가파르게 내려섰던 곳을 돌아본다
마즈막재(心項峴)는 신라 시대에 나무벌(木伐)과 같은 뜻인 깊은 나무고개(心木峙)였다고 전한다
계명산 옛 이름인 심항산에서 따와 심항현이라 하였고 심항현의 한자 뜻을 풀어 마수막재라고도 하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마즈막재로 발음이 바뀌었다는 주장이 있다
한편 청풍과 단양의 죄수들이 사형 집행을 받기 위해 충주로 들어오려면 반드시 이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이 고개만 넘으면 다시는 살아 돌아갈 수 없어 마지막재가 되었다는 애처로운 전설이 있고 예전 남산 아래 마즈막재 부근에 사형장이 있었다
▽ 우측으로 충주시가지와 멀리 음성 수례의산을 본다
▽ 좌측으로 금방 남산산성으로 오르는 임도를 만나지만 능선의 등산로로 오른다
▽ 약 350m 지점 좌측에서 돌아온 임도를 만나지만 능선으로 오르고
▽ 약 405m 지점 방송국 송신시설을 지나 내려서면 마루금과 임도를 만나고
▽ 약 450m 봉우리를 무시하고 잠시 임도를 따라 가파르게 오르면 임도가 우측으로 멀리 돌아갈 때 다시 능선으로 오른다
▽ 북동쪽 크게 보는 경심령 관봉 멀리 제천 청풍면의 금수산(1015.8) 좌측으로 갑오고개 동산 새목현 작성산이다
▽ 약 550m 지점 우측에서 빙 돌아온 임도를 만나지만 마지막 능선으로 오른다
▽ 성곽이 나타나고 올라서면 북문터 다
▽ 서문터 방향 성곽과 멀리 월악산과 좌측 용두산이다
▽ 희끗하고 푹 들어간 아리랑고개 우측 x380.6m 좌측 뒤는 시우양산 삐죽한 관모봉 우측 뒤 인등산 관모봉 좌측 멀리 천등산
▽ 크게 보는 좌측에서 길게 늘어진 주봉산 자락과 우측 뒤 관봉 경심령 관봉 멀리 금수산 좌측으로 갑오고개 동산 새목현 작성산
▽ 크게 보는 삐죽한 등곡산 다랑산 야미산들이 줄줄이 보인다
▽ 계명산에서 좌측으로 아침에 금릉초등학교 뒤에서 올랐던 낮은 능선들
▽ 충주시가지 멀리 크게 당겨보는 보련산과 좌측 국망산
▽ 성곽을 따라 남쪽으로 오르면 서문터 다
▽ 서문터에서 좌측으로 살짝 오르면 남산 정상「충주11 1979재설」1등 삼각점이다
南山은 예전에 봉황이 살았다 하여 금봉산(錦鳳山)이라고도 불리고 또 범이 많아 범바우 라고도 불렀다고도 한다
「조선지형도」에서 지명을 확인할 수 있고 산정에는 충주산성으로도 불리는 돌로 쌓은 옛 성터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금단산 수정봉에 은거하고 있던 마고선녀(麻姑仙女 마고할미)가 하늘의 법도를 어기고 마구 살생하자 대노한 옥황상제가 하천산 노둑봉으로 쫓아냈다 500년이 지난 후 마고할미가 잘못을 뉘우치고 금단산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빌자 옥황상제는 금봉산에 들어가 성채를 쌓고 처소로 삼도록 하되 성은 반드시 북두칠성을 따라 한 별씩 7일 동안 쌓게 하였다
마고할미가 명을 받고 이 산에 이르러보니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전망이 좋아 흡족하게 생각하고 명령대로 7일 만에 성을 완성했다 그러나 옥황상제가 살고 있는 서쪽을 향해 수구가 뚫려 있는 것을 보고 괘씸하게 생각한 옥황상제는 마고할미를 성주가 아닌 성지기로 삼았다 그 뒤 이 산성이 마고성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 남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봉우리는 오르지 않고 사면으로 돌아가는 쉬운 코스 다
▽「태봉」으로 표기된 x599.7m 역시 좌측사면으로 돌아가는 등산로지만 올라서서 좌측으로 틀어 내려간다
▽ 우측 卍백운사 쪽 능선 분기점에는 쉼터 시설이고 내려서고 오르기 전 좌측 창룡사0.4km 갈림길 표시 다
▽ 역시 좌측 사면 등산로지만 북쪽으로 오르면 x511.6m다
▽ 충주시가지 멀리 보련산 국망산
▽ x453.7m 직전 우측 계단으로 내려서는 등산로입구0.73km를 지나 살짝 오른 x453.7m
▽ 그 옛날에는 明堂吉地 그래도 사람들은 봉분은 밟지 않고 좌우로 피해서 다닌다
▽ 약 285m 범바위0.7km를 알려주지만 산행을 마칠 때까지 범바위는 볼 수 없었다
▽ 약 185m 지점 마지막 막초 마시고 가파른 내리막이다
▽ 도로로 내려서며 산행은 끝나고
도로 따라 인근 버스정류장으로 가보지만 시 외곽이라 버스가 다니지 않아 부근에 지나가는 택시로 탄금대 주차장으로 이동한다
2008년 11월 계명지맥 마지막 구간을 종주하면서 어둠 속의 늦은 시간 탄금대까지 못가고 마친 기억이 찜찜해서 남는 시간 계명지맥 끝자락을 가보기 위 함이다
▽ 圖上 대문산(106.9)을 향한 산책로를 따르고
▽ 신립 장군과 팔천고혼 위령탑이다
▽ 동천 권태응의 노래비가 자리한 이 위치가 圖上 대문산(106.9)
▽ 마루금과 관계없이 인근 대흥사도 둘러보고
▽ 마루금에 위치한 충주문화원 건물을 지나고
▽ 마지막 봉우리에서 강 건너 용섬을 보고
▽ 달천이 남한강으로 합수하는 곳에 내려서니 끝자락은 장례식장이다
계명지맥 끝자락 장례식장에서 택시를 호출하고 남은 막걸리를 마시고 터미널로 이동해서 소주 한 병에 간단한 식사 후 일찌감치 돌아온다.
첫댓글 충주 다녀오셨네요. 저도 마지막 탄금대는 못 갔습니다. 날이 흐린데도 월악산 조망이 뛰어납니다.
신립장군이 충신이기는 해도 허허벌판 강가에서 조총을 가진 왜군에 기병으로 돌격한 것은 큰 패착이었겠지요. 돌이켜보면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유교적 관점에서 목숨을 걸고 배수진을 친 뜻은 이해하겠지만 지금의 생각으로 보면 본인 개인의 죽음은 몰라도 부하들의 생명을 생각해야 했겠지요
갈만한 곳이 없으니 이제 온통 재탕 산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