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안되어 답답한 이들에게
돌아보면 기도가 안되어 답답했던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영락없이 기도를 그만하게 되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때가 정말 기도해야 할 때였습니다.
기도하지 못하면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거칠고 극단적이고 파괴적이게 됩니다.
그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남기게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잠 4:23)
주님을 바라보게 되면서 마음을 내 버려두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벧전 5:8).
마음을 빼앗기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주님의 마음이 아니면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안되어도 기도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기 위해서입니다.
기도가 답답한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입술로는 기도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기도가 아님을 자신은 압니다.
그것은 분명히 성령께서 도우시는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를 계속 하여도 하나님께 올라간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억지로 하는 기도요, 시간만 채우는 기도입니다.
그래도 기도하기를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힘이 드니까, 기도가 잘 안되니까, 마음이 잡히지 않으니까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을 마귀에게 빼앗기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기쁨과 확신이 넘친다면 짧게 기도해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실 때나 나사로를 살리실 때, 주님의 기도는 짧았습니다.
그러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주님의 기도는 너무나 치열했고 길었습니다.
너무 피곤하여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마 26:40) 하셨을 정도였습니다.
기도가 안되면 ‘주님 안에 앉아 있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기도 자리에 가만히 있어도 됩니다. 잠이 오면 기도하는 자리에서 자도 됩니다.
기도가 안될 때, 성경을 읽는 것과 찬양을 듣는 것은 너무나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힘들고 답답하였던 기도가 한 순간에 바뀌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렇게 한 순간에 마음이 바뀔 수 있을까, 신기할 정도입니다.
마음이 편안하면서 기도가 계속 나오기 시작합니다.
답답한 마음으로 힘들게 기도하고 있었기에 그 변화는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그 순간 성령께서 역사하심이 믿어지고, 감사한 마음이 일어나고 기쁨이 생깁니다.
무엇 보다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됩니다.
이따금 ‘얼마큼 기도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시간이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의 마음이 품어지기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답답하고 힘들어도 끝까지 기도의 자리를 지키기만 하면 주님은 반드시 마음과 믿음의 변화를 주십니다.
생각이 바뀌고 기도가 달라지면 모든 것이 바뀐 것입니다.
기도 할 때, 기도 응답 보다 예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기도 제목만 생각하면 마음은 강팍해지고 고집이 세어집니다.
나중에는 “하나님, 왜 기도하라 하시고는 응답해 주지 않으시는 거예요” 하며 하나님과 논쟁합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응답만 바라보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모든 기도는 다 응답받습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사실입니다.
아이가 울면 엄마가 오지 않습니까?
아이가 배가 고파서 울고, 똥을 싸서 울고, 몸이 아파서 울지만 언제나 응답은 엄마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가장 먼저 오는 응답이 성령이십니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역사가 있다면 모든 기도는 이미 응답받은 것입니다.
유기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