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석현준이니 손흥민이니 하면서 해외에서 잘 나가는 유망주들을 보니 지금은
소식이 뜸하지만 한때 인터넷이나 언론을 통하여 소식을 듣던 잊혀진 해외 유망주
들을 정리하고픈 마음이 동하여 이렇게 적어봅니다.
아무래도 기억을 더듬어 가며 적다보니 부정확한 정보가 많을듯 싶고, 제가 언급
하지 못한 유망주들도 많을테니 깊이 헤아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아르헨티나 ??팀 정철영 81-82.??.??
조영증 감독이 u19팀 감독이던 시절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2군으로 올라왔다는 소
리를 듣고 정철영을 차출합니다. 아르헨티나라는 이름값 때문인지 매우 기대가 컸
습니다만 실제 연습경기에서 실망만 얻게 됩니다.
그리고 영주권도 없으며 현거주지가 국내에 있는 삼촌집으로 되어있는 바람에 군
대문제가 생겨 출국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결국 조중연씨가 개인보증을 해줘 무
사히 출국하게 됩니다.
사실 조중연씨는 정철영이 20살까지 영주권을 얻지 못해 신검 및 입대를 위해 귀국
하지 않는다면 보증 선 죄로 5천만원의 벌금을 물었어야 했다는데 과연 어떻게 됐
을지 궁금하네요
* 브라질 코리안킴 ??.??.??
중학시절 천부적인 자질을 뽐내며 브라질로 건너가 유소년팀 클럽 코치를 홀딱
반하게 하고 브라질에서 지속적으로 귀화유혹을 보냈다는 그 천재선수입니다.
사포, 에어발리, 롤링오버헤드킥, 드라이브슛을 가볍게 하는 그 천재성에 협회는
2002년 월드컵의 비밀병기로 비밀리에 육성하고 있었습니다만 치명적인 부상으로
결국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됩니다.
...는 아니고 요즘 유행하는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를 띄우고 싶은
충동이 드는군요. 2002년을 앞두고 한국축구에 대한 자괴감이 만연할때 낚시꾼이
이 들이민 희망이라는 미끼를 다들 덥썩 문 사건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자매품으
로 이탈리아와 혼혈 스트라이커로 16세에 182cm, 100m를 10초에 뛰며 140km의 강슛
을 쏘아대는 금발의 한영진도 있었습니다.
* 안양 정창근 83.??.?? (해외파는 아닙니다만 중요하다는 생각에 포함시킵니다.)
99년 7순위 드래프트로 안양에 입단한 정창근은 최연소 프로선수로 당시 엄청난
주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88년생을 끝으로 없어진 중학중퇴 시리즈의 최초
모델이라 볼 수 있는데, 조광래 감독이 무척이나 극찬을 하며 2002년엔 1군에서 뛸
거라는 전망까지 내놨던 선수였지만 지금은 행방이 묘연합니다.
이 선수는 선수로서 성공을 하진 못했지만 이 선수가 있었기에 많은 중퇴선수가
생겨 이청용이 탄생한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 크루제이로 이진호, 이호, 송한복 1984년
브라질 유학 3인방으로 청소년대표 엘리트 코스를 거쳤으며 이진호와 이호는 세
리에A 키에보 유스팀의 테스트에서 합격을 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사실 이 선수들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거 같습니다. 세 선수 모두 계속 프로
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호선수는 월드컵까지 나가기도 했으니 나름 성공한 케이스
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웨스트햄 이산 1985년 10월 5일
방송에서 이산이라는 선수가 처음 나오게 되고 사람들은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어
난 선수들을 배출한 웨스트햄의 유스에 대한민국의 선수가 있다라는 소식에 들
끓게 되고 이산은 그 열기로 항공사 광고도 찍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U19팀
유럽 전훈 맴버에 뽑혀 대회에서 골도 넣는 활약을 펼칩니다. 하지만 그 뒤로
소집명단에 이산을 볼 수가 없게 되고, 결국 여러팀을 전전하다가 k리그의 남
쪽팀으로 오면서 대한민국에 돌아오게 됩니다만 결국 아무활약도 못하고 k3 로
갔다는 작년 근황이후로 도통 소식을 알 길이 없습니다.
사실 이산이 알려진것 처럼 그렇게 먹튀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실
제로 웨스트햄 u19팀에서 뛰기도 했고, 비록 하부리그지만 셰필드 유나이티드에
서 32경기 15득점이면 나름 준수한 활약이였죠. 제 생각에 육상선수 출신이였던
이산은 조숙한 피지컬과 늦은 나이에 축구를 시작한 탓에 부실한 기본기를 가
지고 있던게 아니였을까 하는데 피지컬적으로 우위에 있던 유스 시절엔 좋은 활
약을 했지만 나이가 먹어가면서 자신의 피지컬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기본기
의 문제는 점점 커져가면서 결국 뒤쳐진 선수가 됐던게 제 생각입니다만 이산을
직접 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이런 예상밖에 못하는군요.
개인적으로 응원했던 선수여서 너무 이 선수가 K3 갔다는 말에 정말 안타까운 마
음이 들었습니다.
* 안양 -> FC쇼쇼 조원광 1985년 8월 23일
테스트 6게임 동안 4골 2도움의 맹활약을 보이며 맨유로 부터 입단제의를 받았
고 그 전부터 수원, 안양, J리그로 부터 열렬히 러브콜을 받은 축구천재 조원광
선수. 15세에 181cm, 65kg 에 100m을 11초로 뛰는 주력과 뛰어난 개인기량은 다
시 축구팬들을 들끓게 만들었습니다. 정창근과 함께 안양의 2대 비밀병기로 꼽히
며 15세때 J리그와의 연습경기에서 득점을 할 정도로 천재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국축구의 미래를 책임질것 같았던 조원광도 04년 U19 아시아대회를 앞두고 대표
팀에 뽑히며 오른쪽 미드필더로 대회 내내 주전으로 뜁니다만 저조한 활약으로
국내팬들의 기대치를 한풀 꺾이게 만듭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쇼쇼로 진출하면서
다시 큰 기대를 받게 되는데 별다른 활약을 못하고 K리그 인천으로 복귀하게 됩
니다만 그것도 얼마 안돼서 네셔널리그로 이적하게 됩니다.
사실 조원광에 관련된 알려지지 않은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 선수가 어린시절
보였던 활약은 언론에 알려진 그대로이며 당시엔 정말 대단한 선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축구외적인 일로 인해 몇년간 계속 축구에 집중을 못하게 됐고 오히려 기량
이 퇴보하여 결국 기대이하의 선수가 됐다더군요. 김호감독은 조원광의 영입을 염
두하여 한때 드래프트에서 대학선수를 뽑지 않는 결단은 내렸다던데 어린시절의 조
원광은 정말 대단했나 봅니다.
PS. 검색해보니 남쪽팀으로 k리그 복귀한거 같은데 포지션이 DF 네요.
* 리토라우FC 임규혁 1985년 1월 19일
펠레가 키우고 있다라며 한때 사커월드에서도 많은 이슈가 됐던 선수입니다. 박성
화감독이 이름처럼 여론의 성화에 못이겨 결국 청소년팀에 소집시켰다가 바로 불합
격 판정을 내린 선수였죠. 현재 k3 천안fc 에서 뛰고 있는거 같은데 나름 괜찮은
활약을 하는 모양입니다.
솔직히 이 선수는 자기 몸값을 올리기 위한 공작으로 밖에 보이지가 않아서 기대자
체를 안했던 선수입니다.
* 코란티안스 최우석 1986년 7월 22일
초등학교 시절 언터처블의 선수였던 최우석은 브라질의 명문 코리티안스의 유스로
가게 되고 16세 이하 그룹팀인 '인판추'의 13세팀의 주전스트라이커로서 51골을 기
록하는등 경이적인 모습을 보이고 이때의 활약을 본 나고야그램퍼스는 조기 스카우
트를 위해 유학비용 전액을 부담하는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이후 k리그 울산에 조기입단하고 u16 아시아대회 대표팀에 발탁이 되며 서서히 주
전과 교체를 오가며 출전을 하게 되고 예맨과의 결승전에서 한번의 테크닉으로 다시
금 축구팬들을 들끓게 합니다.
하지만 이후 행방이 묘연해지며 결국 몇년 전 네셔널리그의 수원시청에 있다가 지금
은 뭘 하고 있는지 알길이 없습니다.
유학시절 방학기간에 잠깐 국내 중학교 팀에서 뛰기도 했었다는데 기술은 좋은데 너
무 개인플레이만 해서 오히려 팀웍을 깨친다며 불만들이 많았다더군요.
하이텔 시절부터 너무 기대해서 인지 사람을 정말 허탈하게 만든 선수였습니다.
* 라싱 산탄데르 이호진 1983년 3월 9일
고교시절엔 오히려 주목을 덜 받았던 이호진이였지만 u19 아시아대회때 부터 그 진가
가 들어나며 4강 사우디전에선 최고조에 이릅니다. 그때부터 점점 주가가 상승 하더니
급기야 u20 세계대회에서 독일전의 골로 그야말로 창창한 미래가 그의 앞에 있는줄 알
았습니다.
독일전의 골은 그에게 명성을 줬지만 너무나도 큰 부상을 안겨주게 되는데, 뭔가 될듯
싶으면 언제나 이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게 됩니다. 수많은 유럽진출 시도로 많은 실
패를 겪으면서도 결국 라싱 산탄데르에 입단하게 되고 시즌 마지막 경기 리켈메를 필
두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비야레알과의 경기에서 엄청난 활약으로 아시안컵 대표에
뽑아야 된다라는 말까지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이 경기가 그의 마지막 불씨였나 봅니다. 이후 감독이 바뀌면서 용병제한으로
결국 타유럽팀의 테스트를 전전하다가 국내로 복귀하게 되고 이미 폼이 다떨어진 이
호진은 k리그에서도 버티지 못하며 다시 타국을 전전하다 폴리스 유나이티드라는 태국
1부리그 팀으로 가게 됩니다.
이호진은 독일전의 부상이 너무나 큰 부상이여서 계속 발목을 잡았다고 합니다. 거기에
이호진은 무조건 유럽에 대한 의지가 워낙 강해 한참 기량의 꽃이 필 나이에 테스트만
전전하여 몸이 완전 망가져 버리게 됐죠. 이 사건으로 홍모 에이전트는 선수죽이기의
대명사가 됩니다.
첫댓글 최우석선수는 부천FC1995에서 뛰고 있습니다. http://bucheonfc.co.kr/
코리아킴 ^^ 웃음이 나는 추억이네요 그당시 하이텔 축게를 뜨겁게 달구던 낚시였죠.
어떤닉을 사용했던님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브라질까지 가서 코리아킴을 취재해 오겠다. 인증하라등등
01410을 사용했던 그시절 코리아킴은 진실임을 믿고 싶었던 1인이였기에 ㅎ ㅎ
코리아내셔날축구팀 서포터의 이름을 만들기 위해 붉은악마 붉은도깨비 빨간고추등의 의견을 내놓으며
투표하고 신동일님의 글을 읽으면서 글참 잘쓰시는분이구나 느꼈던 생각 이런저런 생각이 문득 떠오르네요^^
코리아킴 한철영 이건 다 소설이구요~ 외국에 있다고 무조건 유망주니 이런건 지양해야 된다고 봅니다.
이호진선수는 핀란드에서 뛰다가 지금은 태국에 있더군요 아;
이산, 정창근 제일 궁금하네요..
코리아킴 유포자의 이름이 김현회 였다는데 혹시 우리가 아는 김현회 기자와 동일인?! 흐흐..코리아킴은 97년부터 시작해서 02년이 될때 까지 잊을만 하면 떠돌았던게 생각납니다. 어떤분은 최우석이 코리안킴이다! 이러면서 낚시를 시도했지만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죠. 재미있는게 당시 기술위원장이였던 이용수씨가 한영진에게 진짜로 낚여 찾으려 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추억의 선수들 이군요..
유스에서 성인으로 올라오면서 방황이 많이 되나 봅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
개인적으로 조원광 선수가 가장 안타깝습니다. 그 당시 퍼거슨 감독이 직접 오퍼를 넣었고 조원광 선수가 벨기에까지 가서 훈련에 참가했었죠. 하지만 잉글랜드나 해외 리그에서 유망주부터 출발해서 큰선수가 되기는 상당히 힘들죠. 그리고 조원광 선수가 집에서 늦둥이 막내입니다. 실제로 큰누나 자식들과 나이가 비슷한 또래라고 합니다. 매형은 거의 아버지뻘이 되는거죠. 맨유 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클럽에서 오퍼가 왔지만 늦둥이 아들을 타지에서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마음에 결국 안양으로 갔으나 그것이 실수 였죠. 조광래감독 믿고 안양에 있었던 3년간 완전 스탯하락 제대로 겪고 한동원에게 밀려 경기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실제로 "안양에선 박제가 된 천재"라는 기사가 있었죠. 비오는날 45분 내내 몸만 풀다 들어가는 날이 부지기수였다는.. 그러다 결국 어떻게 프랑스까지 가긴했지만 그 후로 계속 풀리지가 않네요. 너무 아쉬운 선수입니다. 그 잃어버린 3년을 체계적으로 키웠다면 지금 박지성, 박주영이 부럽지 않을 선수가 됬을지도 모르는 선수죠.
이호진 부상후에 국내에서 착실히 재활하고 경기감각 회복했으면 좋았을뻔 했는데 만신창이 몸으로 너무 험한세계만 돌아다녔습니다..아쉬워요..
제가 구상만 하던 글인데 이렇게 올려주시니 제가 다 기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