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이 극심한 부진을 겪으면서 대중국 경상수지가 21년만에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반면 미국에 대한 경상수지는 사상 최대 규모 흑자를 내면서 무역과 투자 등을 통한 한국의 글로벌 경제지형도가 크게 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내 중간재 수출 ‘텃밭’이던 중국에서 이젠 한중 경쟁이 펼쳐지면서 산업고도화, 수출국 다변화로 중국 의존도를 낮출 ‘탈중국’ 전략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2일 한국은행은이 발표한 지역별 국제수지에 따르면 작년 중국에 대한 경상수지는 77억8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통계를 집계한 1998년 이후 최악의 성적표로서 2001년 7억6000만달러 적자 후 21년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반도체를 포함한 기계·정밀기기, 석유제품 중심으로 수출은 줄어든 반면 원자재 수입이 늘어나며 상품수지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상품수지는 100억6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는데 통계 집계 후 처음으로 적자에 빠진 것이다. 김화용 한은 경제통계국 국제수지팀장은 “전체 대중 반도체 수출은 흑자였지만 메모리 반도체 수출이 지난해 하반기 마이너스를 나타내며 연간으로 감소세를 나타났다”고 밝혔다.
상품 수입을 통해 운송비 지출도 커져 운송수지를 포함한 서비스수지도 5억9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본원소득수지는 26억4000만달러 흑자였지만 전년보단 23억1000만달러 줄어든 수치다.
대중국 경상수지는 1991년 한중간 교역을 시작한 이래 꾸준히 흑자를 기록했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고도성장에 힘입어 흑자 규모도 커져 2013년엔 역대 최고(560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 미중간 무역갈등에 따른 교역규모 축소로 2019년 259억6000만달러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후 2020년엔 172억50000만달러, 2021년 234억1000억달러로 부진하더니 급기야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문제는 대중국 무역적자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란 점이다. 중국내 산업구조 변화로 더이상 ‘중국 특수’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뜻이다. 조상현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그간 한국은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고 중국이 완제품을 만들어 전세계로 파는 협업관계였지만 중국이 중간재를 포함한 자국 산업을 육성하며 경쟁관계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한국이 주요 품목인 반도체 수출을 통해 흑자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글로벌 정보통신(IT) 경기 둔화로 반도체가 타격을 입자 대중 무역관계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국회에 출석해 “중장기적으로 중국에 대한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의 문제가 심각하다”며 “10년간 중국 특수가 사라진 상태라고 보고 경쟁력을 강화할 때”라고 밝힌 바 있다.
대중국 무역성적이 바닥을 친반면 대미국 경상수지는 677억9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해 역대 최대 규모 흑자를 나타냈다. 국내 자동차기업의 대미국 수출 호조에 힘입어 상품수지는 563억8000만달러로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서비스수지 역시 20억2000만달러 적자로 2005년(-33억달러) 이후 적자폭이 가장 작았다. 본원소득수지는 137억9000만달러 흑자로 전년보다 45억5000만달러 늘었다. 김 팀장은 “서비스 수지는 운송수입 증대에 따라 적자폭이 많이 줄었고, 대미 직접투자 증가, 배당소득 증대로 본원소득수지도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유럽연합(EU), 일본과의 경상수지도 개선됐다. 대일본 경상수지는 177억8000달러 적자로 전년보다 적자 규모가 20% 가량 줄었다. 화학공업·석유제품 등 수출액이 커지면서 상품수지 적자폭이 23억6000만달러 감소한 153억3000만달러를 기록한 영향이 컸다.
EU와 거래 역시 70억4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2012년(15억1000만달러) 이후 10년만이다. 국내 수출품의 고급화로 부가가치가 높아져 미국, 일본, EU 등 선진국에 대한 경상수지가 개선됐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대동남아 경상수지는 802억3000만달러로 원자재 수입이 커지면서 줄었고, 대중동 경상수지는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며 890억5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전년(-479억8000만달러)보다 적자폭이 대폭 확대된 것이다.
최대 수출국인 중국 대상 무역환경의 변화 등 한국을 둘러싼 무역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무역대상과 품목을 다변화하고 상품·서비스의 부가가치를 글어올리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원장은 “원전이나 방위산업, 플랜트 등 정부가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품목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동유럽 등 미개척 국가와 교역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